팬텀 탱크 · 엑조세 · 열려라 참깨

패미컴의 전성기였던 8비트 시대, 여기에 끼어들어 닌텐도의 승인 없이 게임을 개발하거나, 타사의 기존 게임을 가져다 내용을 살짝 바꿔 해적판을 만드는 행위도 성행했다. 이런 미승인 개발사는 일본 본토는 물론 미국이나 한국에도 있었지만 해적판 게임의 중심지라면 단연 대만이었다. 초기에는 MSX나 세가 SG-1000 등의 플래폼에도 해적판의 제작과 유통이 성행했지만 80년대 중후반 이후 패미컴으로 화력이 집중되고, 수십개의 게임을 한 팩에 몰아넣는 합팩이나 스프라이트만 갈아치운 롬핵에 불과한 얄팍한 해적판부터 이미 차세대기로 등장한 게임을 8비트로 다운이식하는 시도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이들의 화력은 패미컴이 본토에서 생명력을 다한지 오래인 2000년대 이후에도 이어지는데, 이는 중국의 2000년대 콘솔 규제정책과도 얽혀있다. 대륙 당국의 규제 때문에 16비트 이상의 콘솔을 외부에서 들여올 수도, 내부에서 개발할 수도 없게 제약되다 보니 8비트 패미클론 중심의 시장이 이어질 수 밖에 없었고 이미 패미컴 역설계의 달인이었던 대만의 해적판 메이커들이 여기에 뛰어들게 된 것.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이미 2600 시대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이번 편에서 다룰 보택유한공사(普澤有限公司)의 영문명은 비트 코퍼레이션(Bit Corporation). 그 외에도 판다(Panda)나 프로고(Froggo)라는 기업들이 중화계, 아마도 대만 기업들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정보는 찾기 어려운 가운데 비트 코퍼레이션은 대만 회사임이 분명하고 10여개의 타이틀을 2600으로 발매했으며 그 외에 콜리코비전과 패미컴용으로도 게임을 제작한 것이 확인된다.

사실 이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을 쿠소게편으로 장식하기로 하며 조사하다 보니 다룰 게임이 너무 많아서 대만산을 모아 하나, 그 외를 모아 다음편에 마무리하고 끝낼 예정이다. 이런 기획이라도 아니면 2600용 쿠소게를 따로 포스팅할 일이 없으니 겸사겸사.

 

 

 

 

Phantom Tank

팬텀 탱크 (1983)

 

발매처에 따라 Phantom Panzer 혹은 Tanks But No Tanks라는 제목으로도 발매되었으며 남코의 1980년작 탱크 바탈리언의 표절작이다. 탱크 바탈리언은 생소해도 85년에 패미컴으로 나온 배틀시티는 당시 패미컴 유저라면 합팩 등을 통해서라도 한 번쯤은 접해보았겠지. 노골적인 표절작인 만큼 구성도 대체로 같고 화면 상단에서 적 탱크들이 스폰되는 걸 정해진 수 이상 격파하면 스테이지가 클리어되며, 그 와중에 화면 하단의 사령부를 지키지 않으면 게임오버되는 것도 동일.

 

제목이 팬텀 탱크인 건 스프라이트 동시표시 한계로 인해 적 탱크들이 심한 깜빡임 현상을 보이는 걸 연출인 것처럼 슬쩍 넘어가려는 술책이 아닐까. 위 스크린샷이 찍힌 시점에는 4~5대의 적 탱크들이 존재하지만 한 프레임에 표시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라 스크린샷에는 1대 이상 동시에 잡히지 않는다. 편집으로 끼워넣는다면 모를까. 이게 꽤 심각한데, 때로 플레이어의 탄이 그대로 적을 통과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동시 스프라이트 표시제한 자체는 패미컴을 비롯한 차세대기들에서도 발생하는 문제지만 팬텀 탱크는 프로그램 단계에서 심하게 잘못된 게 아닐까 추측되는 게, 다른 프레임마다 다른 적 스프라이트를 그려넣는 식으로 스프라이트 제한을 넘은 게 아니라 프레임마다 적이 순간이동하는 게 아닌가 추측된다. 그러면 표시되지 않는 프레임에서는 아예 메모리상에도 해당 적이 존재하지 않는 게 되니 해당 위치에 스프라이트가 없는 상태에서 탄이 통과하면 충돌판정도 발생하지 않게 되고, 플레이어의 눈에는 샷이 적을 그대로 통과한 걸로 보이게 되는 것.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달리 설명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면 애초에 충돌판정을 위한 코드 자체가 이상하게 짜여있을 수도 있겠고.

 

 

Panda의 Tank Brigade (1983)

위는 판다(Panda)에서 발매한 탱크 브리게이드. 맵의 구조가 약간 다르고 컬러링이 단순하긴 하지만 거의 같은 게임이며, 깜빡임은 오히려 더 심해 위 오른쪽 스크린샷에는 아예 적 탱크가 표시되지 않고 탄알만이 잡혀 있다. 내용은 팬텀 탱크와 거의 동일하지만 조작성 면에서 적어도 상하좌우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는 팬텀 탱크에 비해 탱크 브리게이드는 조작이 보다 뻑뻑하다고 할까, 즉각적으로 반응해주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판다라는 개발사에 대해서는 거의 정보가 잡히지 않는데, 탱크 브리게이드팬텀 탱크의 프로토타입처럼 보이는 걸 생각하면 어쩌면 같은 제작진이 2개의 다른 명의로 발매했을 뿐인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악질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게, 제작사 명의도 제목도 다른 게임이 동시에 진열되어 있으면 설마 같은 게임을 두 번 팔아먹는 짓일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거 아냐.

 

 

 

 

Exocet

엑조세 (1982)

 

이번 제작사는 판다. 롬의 버전에 따라 명의가 Sancho 혹은 Tang Electronics이기도 하며, 동일한 내용의 게임이 1987년에 Froggo 명의의 크루즈 미사일이라는 제목으로 재발매되기도 했다. 위 팬텀 탱크의 보택유한공사와 같은 곳인지는 알 수 없으나 Sancho, Panda, Tang, Froggo가 같은 곳에서 명의만 계속 바꿔 새로운 게임인것처럼 발매했다고 생각하면 대강 아귀가 맞긴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해적판 제작자들의 자기복제 혹은 상호복제에 불과하지만 여기에 끼어드는 것이 미국의 대형 할인매장 체인인 젤러스. 지금은 망해 사라진 체인인데, 80년대에 아타리 2600용 게임을 직접 생산해 팔기도 했다. 엄밀히 말하면 젤러스는 게임을 '생산'했을 뿐 '제작'하지는 않았는데, 메이커를 가리지 않고 남의 게임을 가져가 무단으로 복제해 제목만 바꿔 판매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게임시장의 모럴 해저드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인데, 한국에서도 백화점에서 짭 게임이 팔리던 시기가 있었으니 남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한심한 건 마찬가지다. 그 와중에 이 엑조세도 복제되어 레이더라는 제목으로 다시금 재발매되는데, 이건 판다의 잘못이 아니라 젤러스의 상도덕 문제인 것 같긴 하지만 같은 게임을 택갈이해 팔아먹는 자들이 자기들 게임을 복제당한 건 어떤 기분이었을까.

 

게임 자체는 지극히 단순한 횡스크롤 슈팅같은 무언가. 처음 게임을 시작하면 화면 상단의 구역에서만 이동할 수 있으며 포탑같은 장애물들이 가로막는다. 좌우로 이동하며 버튼을 누르면 샷이 발사되며 적 스프라이트가 커서 맞추기 쉬울 것 같지만 타겟을 맞추기 위해서는 적의 사선에 들어가는 위치가 아니면 그대로 샷이 적을 통과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선에 들어가 샷을 쏘고 빠지는 플레이가 필요해지며, 일정 수 지상의 포대를 파괴하면 막혀있던 루트가 뚫리며 지하로 들어갈 수 있다. 게임 자체는 끝이 없으며 하이스코어 갱신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다.

 

적어도 엑조세는 그래도 팬텀 탱크처럼 플레이에 지장을 줄 만한 기술적인 문제는 없고 지상과 지하 스테이지를 오가는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는 것 까진 좋으나 적에게 샷을 맞추기 위해서는 나도 적의 사선에 들어가야 하고, 적의 탄속도 결코 느리지 않기 때문에 순식간에 잔기가 녹아버리기 십상이다. 여기에 적들이 노골적으로 스크롤되는 것도 실소를 자아내는데, 화면 왼쪽 가장자리까지 이동한 포대를 쏴서 파괴하면 폭발 이펙트가 화면 양쪽 끝에 생성된다. 화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루프시키면서 버퍼 구간이 없어 화면 왼쪽에서 짤린 이펙트가 오른쪽에 등장하는 것.

 

 

 

 

Open Sesame

열려라 참깨 (1982)

 

아마 동키콩을 실제로 플레이해보지 않고 이러이러한 게임이 있다더라 하는 풍문만 듣고 복제하면 대충 이런 느낌의 게임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 게임. 제작사는 다시 보택유한공사이며, 이 게임 역시 제목을 바꿔 여러 차례 발매되었다. Open Sesame 외에 I Want My Mommy, Apples and Dolls, Teddy Apple, Ursinho Esperto라는 최소 4개의 제목으로 발매된 게 확인되며, 이 중 일부는 특정 지역에서 발매된 명칭이기도 하지만 같은 NTSC나 PAL 내에서도 복제가 있었던 걸로 보인다. 카트리지 이미지들을 확인하던 중 열러라 참깨 버전은 1982년 저작권 표시가 있지만 다른 버전들은 전부 1983년으로 표시되어 있어 열려라 참깨가 오리지널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정확히 알려진 건 없고, 영문 위키백과는 I Want My Mommy를 표제어로 삼고 나머지를 해적판으로 간주하고 있다.

 

목표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 처음 게임을 시작하면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없지만 바닥에 흰 블럭같은 게 놓여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 앞에 서서 버튼을 누르면 사다리가 생성된다. 플래폼 위를 좌우로 오갈 뿐인 적들을 피해가며 최상단까지 올라가면 클리어지만 최상단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모든 플래폼의 모든 사다리를 발동시켜야 한다. 그 외의 요소라면 가끔 노란 박스같은 게 깜빡이며 날아다니는데 이것이 무적 파워업으로, 무적 상태에서는 같은 칸의 적을 쓰러트릴 수 있지만 위아래 단으로 올라가면 무적 상태가 풀린다.

 

처음 접하면 2분정도는 비교적 멀쩡한 게임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것 역시 쿠소게다.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다시 동일한 스테이지가 반복되는데, 다른 유사 게임들이 적어도 2개의 스테이지로 루프를 돌리지만 이건 그나마도 없고, 그렇다고 하이스코어를 노리는 게임이냐면 그것조차도 아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만들었는진 모르겠는데, 디펜스 게임도 아닌데 시간경과에 따라 자동으로 스코어가 올라가기 때문에 그냥 게임 켜 놓고 아무것도 안 해도 무한정 점수가 올라간다. 

 

 

아타리 2600 황금기 #0 쿠소게편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 · 워커 · 소서러 1982-1983년 사이의 2600 전성기를 장식했던 아타리 2600용 게임들 중 단독으로 다루기엔 애매한 게임들을 묶어서 소개하는 2600 황금기 시리즈 마지막편은

ludonom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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