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키콩 (1981 Arcade)
동키콩 클래식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닌텐도의 간판 캐릭터인 마리오와 동키콩의 데뷔작이자 2D 플래포머 장르를 정립한 것으로도 알려진 그 게임. 마리오는 당시에는 현재의 이름이 아니라 점프맨이라고만 불렸지만. 1978년 스페이스 인베이더, 1980년 팩맨에 이은 당대 아케이드 최대 히트작으로 덕분에 무수한 아류작과 변종들을 낳았으며, 덕분에 다른 레트로 게임들을 이야기할 때 동키콩이 함께 언급되는 회수도 많은 만큼 클래식 시리즈를 전체적으로 되짚어 본다.
일단 2D 플래포머를 정립시켰다는 말은 너무 추상적이니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
- 플레이어 캐릭터는 통과할 수 없는 지면이나 플래폼 위에 있고 좌우로 이동이 가능하다
- 점프를 하면 일시적으로 화면 위로 올라갔다가 일정 높이에 도달한 뒤 떨어진다
- 점프시 제자리에서 뛰거나 방향과 조합해 전방으로 거리를 두고 뛸 수 있다
- 점프를 통해 적이나 장애물을 회피하거나, 게임에 따라서 공격에 쓸 수도 있다
정도를 플래포머로서 성립하기 위한 최소요건이라 할 수 있겠지. 플레이어가 보는 화면은 2차원인데 한 축은 높이에 배정해야 하기 때문에 남는 축은 가로방향 이동이 되고 결과적으로 자연스럽게 사이드뷰가 된다. 2D 게임이면서 탑다운뷰에 점프 요소가 들어가는 게임도 있지만 어설프게 시도하면 거리감 조절이 어려워져 쿠소게가 되기 쉬우며 당연히 그 수도 적다.
1년 뒤의 핏폴! 역시 비슷한 시기에 같은 결론에 다다른 게임이지만 스크린을 이어붙여 월드를 확장한 핏폴!과 달리 동키콩은 한정된 화면 내에서 플래폼을 따라 복잡하게 움직이는 구조를 택했다. 아케이드 버전의 첫 스테이지 '배럴'은 총 6단 구성이며 이를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구조니 실제로는 가로 5~6화면분의 이동을 필요로 하게 되며, 이를 통해 한 화면을 곧 한 스테이지로 완성해 탁 트인 느낌의 핏폴!과 달리 보다 오밀조밀한 구성을 보인다.
동키콩은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은 리스크 판단을 요구한다. 첫 번째 스테이지로 등장하는 배럴에서는 경사진 플래폼이 지그재그로 되어 있으며 도중에 끊어진 사다리와 이어진 사다리들이 있는데, 상단과 거리가 먼 화면 가운데의 사다리로 오르려 하면 올라가는 시간이 그만큼 걸리며 위에서 굴러온 통이 그 사다리로 내려오면 피하지 못하고 잔기를 잃을 수 있다. 그렇다고 가장자리로 가면 굴러오는 통을 피하려고 점프를 했다가 상단에서 굴러오는 다음 통에 들이받게 된다. 굴러오는 통이 가운데 사다리로 떨어질지 가장자리 사다리까지 가서 떨어질지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행동을 취하든 리스크를 안게 되는 것. 해머 아이템을 사용하면 통을 파괴할 수 있지만 이 상태에서는 사다리를 오를 수 없다.
배럴을 클리어하면 1회차에서는 바로 리벳 스테이지로 넘어가진다. 기울기가 없는 스테이지에서 적들을 피해가며 8개의 용접을 끊어내는 구조로, 용접이 설치된 자리를 지나가면 자동으로 제거된다. 그러면 빈 공간이 남는데, 적은 이 빈 틈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적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용도로도 쓸 수 있으며 마리오도 이 틈으로 떨어지면 죽기 때문에 점프로 뛰어넘어야 한다. 화면을 사이드뷰로 만들고 중력과 점프의 개념을 넣은 팩맨클론 구조로 적의 움직임을 보며 가변적으로 동선을 짜야 하는 것. 클리어하면 구조물이 무너지고 동키콩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폴린을 구출하게 된다.
다른 두 스테이지는 2회차, 3회차에 등장한다. 2회차에서는 배럴 - 엘레베이터 - 리벳의 순서로 진행되며, 3회차에서 배럴 - 시멘트 - 엘레베이터 - 리벳 순. 시멘트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적은 본래 설정상 시멘트인 것 같지만 생긴 모습 때문에 파이 공장이라고도 불린다. 지금 보면 적은 스테이지 수를 보완하기 위한 물타기 느낌이기도. 밝혀두자면 위 두 스크린샷은 마메에서 치트모드를 적용한 상태로, 순수히 실력으로 여기까지 다다르는 건 내 손으로는 무리인 것 같다. 굳이 변명하자면 회차를 반복할수록 난이도가 올라가서 어쩔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 스테이지에는 상하로 움직이는 플래폼이 등장하는데, 내려가는 플래폼 위에 착지했다 하더라도 점프한 높이가 너무 높으면 미스로 처리되며 일단 점프를 하면 공중에서 제어가 안 된다는 점에 주의. 배럴이 눈치와 반사신경, 리벳이 동선 계획에 중시를 두었다면 엘레베이터는 플래폼간 점프의 타이밍과 거리재기가 중요하다.
시멘트 스테이지에서는 동키콩이 있는 단과 그 아래 단을 연결하는 사다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며, 불 붙은 드럼통이 있는 단을 제외한 나머지 단에는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고 있어 조작이 조금 더 까다롭다. 그나마 적들 중 모든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파이어볼과 달리 시멘트는 좌우로 이동할 뿐 사다리를 오를 수는 없기 때문에 사다리에서 잠시 몸을 피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이렇게 조감해 보면 모든 스테이지에 고유한 기능과 게임성이 담겨 있으니 당시 아케이드 유저들도 이 게임은 쉽게 질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식작들 중 주요한 것만 짚어보면 일단 패미컴판은 아케이드의 시멘트 스테이지가 생략되어 3면 루프 구성이 되었으며, 일본에서는 1983년 패미컴 론칭과 함께 패미컴 소프트 1호로 발매되었다. 한국에서는 아케이드 정품이 드물었고 오락실에서는 일종의 클론 게임인 크레이지 콩이 더 많이 깔려 있었다 들었지만 패미컴 이식판은 합팩에서 플레이해 본 사람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북미에서는 NES 외에 콜리코비전판도 잘 알려져 있는데, 콜리코비전판은 시스템 구입시 번들로 포함되어 콜리코비전의 초기 하드웨어 판매량을 견인한 게임으로 북미로 한정한다면 패미컴/NES판보다 더 많은 판매량을 보이기도 했다. 콜리코비전 역시 시멘트 스테이지를 삭제했는데, 배럴-리벳-엘레베이터-리벳-엘레베이터-리벳 이후 배럴로 돌아오는 루프 구성. 하지만 가장 많은 콘솔 판매량을 보인 버전은 아타리 2600이다.
패미컴/NES를 합쳐 약 120만, 콜리코로 200만이 판매되어 어느 쪽이나 밀리언셀러였지만 상기 링크에 인용된 판매량에 따르면 2600용은 무려 460만. 재미있게도 2600용의 개발과 유통 역시 콜리코에서 맡았는데, 1, 4스테이지만이 남겨진 2면 루프 구성에 그래픽적으로도 크게 모자라지만 1982-1983년 아타리 2600의 보급대수가 그만큼 엄청났고 좀 모자라는 이식이라도 동키콩은 동키콩이었기 때문이었겠지. 그리고 자세히 보면 그래픽은 콜리코 버전이 더 좋지만 단 하나가 줄어들었고, 아타리용은 그래픽은 열화되었지만 (그래도 인텔리비전보다는 다소 낫다) 스테이지 구조는 아케이드와 동일하다.
콜리코가 북미에서 동키콩 이식의 권리를 얻게된 건 1982년 발매될 예정이었던 콜리코비전의 론칭 타이틀을 구비하기 위해서였는데, 그러면서 동시에 라이벌 하드웨어라 할 수 있는 아타리 2600으로 동키콩을 이식해 판매한 건 현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행동일 것이다. 벤처 소개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지금으로 치면 소니가 언차티드 라이센스를 사서 엑박과 스위치에 내는 거나 다름없는 행동이니까. 당시 콜리코의 소프트웨어 판매량은 자사 하드웨어인 콜리코비전보다 아타리 2600용의 비중이 훨씬 높았다고 전해지며, 영문 위키백과에는 1982년 콜리코 보고서를 인용해 당년 콜리코가 판매한 카트리지 800만개 중 콜리코비전용은 200만개, 나머지는 아타리 2600과 마텔 인텔리비전용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일종의 리스크 분산 작전이었을까. 당시엔 콜리코만이 아니라 아타리도 콜리코비전용으로 자사 소프트를 이식하는 훈훈한(?) 시대였다.
동키콩의 넘버링 후속작인 동키콩 2는 아케이드나 가정용 콘솔로는 발매되지 않고 닌텐도 게임 앤 워치 휴대기기로만 발매되었다. 인터넷 아카이브에서 에뮬레이트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으니 관심있는 사람은 직접 해볼 수 있는데, 스토리상으로는 동키콩 주니어와 마찬가지로 주니어를 조작해 마리오에게 붙잡힌 동키콩을 구출하는 것. 여기에 오리지널 동키콩은 1994년 게임보이에 동키콩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었으며, 기존의 4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폴린을 구출하나 싶더니 이후 97개의 추가 스테이지로 이어진다. 마리오가 공중제비 점프를 하며 사다리를 거치지 않고 단을 뛰어넘거나 슈퍼마리오 USA처럼 아이템을 집어들고 던지는 등 다채로운 액션을 보여주는 게 특징.
동키콩 주니어 (1982 Arcade)
전년도 동키콩의 성공에 이어 역시 아케이드용으로 등장한 후속작. 전작에서 주인공이었던 마리오가 이번에는 악역으로 등장하며 그에게 붙잡힌 동키콩을 구출하기 위해 자식인 동키콩 주니어를 조작해 4개의 플래포밍 스테이지를 플레이하게 된다.
이번에는 선역과 악역이 바뀌어 동키콩을 쇠사슬에 묶어 감금하고 채찍질을 하는 악당 마리오를 볼 수 있다. 아마도 마리오가 분명히 악역으로 등장하는 유일한 게임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이 시기에는 캐릭터성이 그리 분명히 잡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덕분에 농담삼아 마리오 인성드립이 나올 때 반드시 언급되기도 하는 작품. 전작과 마찬가지로 4개의 스테이지로 구성되어 있으나, 순서가 고정되어 4개의 스테이지를 차례로 클리어하면 루프된다.
동키콩 주니어의 메인 기믹은 점프가 메인이었던 전작과 달리 줄타기 액션이다. 물론 점프도 가능하긴 하지만 줄타기에 비하면 비중이 낮다. 주니어는 점프를 통해 로프를 붙잡을 수 있으며, 로프를 붙잡은 상태에서 좌우 입력으로 왼쪽으로 타는지 오른쪽으로 타는지를 선택할 수 있다. 위로 올라갈 때는 다소 느리지만 내려올 때는 속도가 빨라지며, 주니어의 손에 닿는 거리에 다른 로프가 있다면 양손으로 두 개의 로프를 붙잡고 오르내릴 수 있다. 두 손으로 붙잡은 상태에서는 올라갈 때 조금 빨라지며, 내려올 때도 급격히 내려오는 게 아니라 올라갈 때와 같은 속도로 내려오게 된다. 밧줄이나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게임은 많지만 이런 요소는 다른 게임에서는 유례가 떠오르지 않는다.
망치라도 들 수 있었던 전작과 달리 주니어는 오직 피하는 것만 가능하며, 적들과 스테이지 장애물들을 뚫고 마리오 머리 위에 있는 플래폼으로 올라가면 클리어. 마리오는 1면에서는 악어, 2면에서는 새를 날려보내는데 1면에서는 악어가 어느 로프를 타고 내려올 지 알 수 없고, 2면의 새는 구멍을 타고 내려오지만 어느 고도에서 꺾어 왼쪽으로 돌아설 지 예측할 수 없다. 거기다 악어와 새 모두 속도가 빠르고 주니어가 그리 잽싸게 움직이는 캐릭터가 아니다 보니 일단 사선에 들어오면 피하기 어렵다. 결국 눈치와 운 모두가 필요하다.
정글 테마였던 1, 2면과 달리 3, 4면은 원작과 보다 유사해진 구조물 스테이지. 3면은 점프로 적을 피해가며 지그재그로 올라가야 하는데, 빨간 스파크는 같은 단 위를 맴도는 대신 속도가 빠르며 마리오가 작동시켜 내보내는 파란 스파크는 점으로 표시된 사다리 루트를 따라 랜덤으로 내려온다. 주니어는 이 점으로 표시된 사다리를 이용할 수 없으니 화면 좌우 양쪽의 로프를 이용해야 한다. 처음 두 단은 점프의 타이밍을 잡았다면 어떻게든 되지만 3번째 단을 통과해 오른쪽으로 가는 도중에 4지선다로 잘못 걸리면 미스.
4면은 로프에 걸려 있는 6개의 열쇠를 각각 최상단의 열쇠구멍에 밀어넣는 스테이지. 두 줄을 붙잡고 올라가며 열쇠 2개를 동시에 처리하는 것도 가능하며, 전부 밀어올리면 동키콩이 풀려난다. 1, 2면의 악어와 새가 동시에 등장하지만 최하단의 바닥이 일종의 안전지대기 때문에 위험하다 싶으면 한 줄만 잡고 아래로 빠르게 내려오면 된다. 클리어하면 구조물이 무너지고 동키콩이 풀려나며 마리오가 쫓아가지만 동키콩의 킥을 맞고 굴러가 도망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패미컴에서는 기절하는 데서 끝난다)
초대 동키콩이나 동키콩 주니어나 적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고,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었다는 랜덤성 때문에 현대 기준에서 보면 다소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아케이드 캐비닛 앞에서 무한정 플레이하는 인간들이 양산되었을 테니 어쩔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동키콩 주니어는 한 번에 1줄만 붙잡는가 2줄을 양손으로 붙잡는가에 따라 움직임이 달라지는 독특한 로프 액션으로 1편의 사다리 액션과는 차별화된 게임플레이를 선보이고 있지만 이후 마리오가 닌텐도의 마스코트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 덕분에 그가 악역으로 등장하는 이 게임은 끝내 다시 빛을 보지 못하고 다른 리메이크도 없다. 그래도 캐릭터로서 주니어는 이후 슈퍼패미콤용 마리오 카트에 까메오로 출연했고, 이후 동키콩 컨트리 시리즈에 등장하는 동키콩은 가끔 오락가락하긴 하지만 클래식 동키콩의 손자이며 주니어의 아들이라는 설정.
동키콩 3 (1983 Arcade)
동키콩 주니어는 원작만큼은 아니었어도 충분히 흥행에 성공했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 걸까, 닌텐도는 방향성을 크게 전환해 당시 최고 유행 장르 중 하나였던 슈팅에 동키콩 소재를 결합해 재도전을 시도한다. 그렇게 태어난 게임이 동키콩 3. 덕분에 클래식 삼부작 가운데 가장 이질적인 게임이 되었다.
주인공은 동키콩도 마리오도 아니라 정원사 스탠리. 어째선지 그의 정원에 동키콩이 나타나 벌집을 건드려 벌레들이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 살충제 스프레이를 들고 이에 대항해 화면 하단의 화분을 지키는 게 목적이다. 화면에는 플래폼이 있지만 점프가 아니라 레버를 상하로 조작하는 것으로 위/아래로 이동하며 이를 잘 이용해 적들을 피하면서 요격하고 동시에 화면 상단의 동키콩을 쏴서 화면 위로 도망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닌텐도는 연륜 좀 있는 제작사들 치고 유독 슈팅에 약한데, 3D 슈팅인 스타 폭스를 제외하고 2D 슈팅들 중에는 1980년 아케이드용 레이더 스코프와 1990년 게임보이용 솔라 스트라이커 정도 외에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억지로 긁어모아 본다면 슈퍼 마리오 랜드에 횡스크롤 슈팅 스테이지가 있는 정도...? 레이더 스코프는 당시 유행한 스페이스 인베이더 클론들 중 하나면서도 살짝 비스듬한 시점에 거리에 따라 적 스프라이트 크기를 다르게 해 원시적이나마 원근감을 표시하는 시도를 하는 등 나름의 개성을 가진 작품이지만 유사한 게임들의 홍수 속에 결국 흥행에는 참패했고, 팔리지 않은 레이더 스코프의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컨버전 키트로 기획된 게임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초대 동키콩이다.
사실 동키콩 3의 적들의 움직임이나 곤충 디자인은 남코의 1981년작 갤러그를 모방한 느낌이며, 여기에 벌레들을 빨리 처치하지 못하면 화면 하단에 놓여있는 화분들을 갖고 도망치는데, 이는 역시 남코의 1980년작 킹 앤 벌룬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 적이 내려와 화분을 붙잡으면 BGM이 달라지며 유저에게 경고를 하며, 도중에 샷을 맞춰 잡으면 다시 돌아오는 것도 같다.
그러나 남코 게임들의 영향을 받은 것과 별개로 동키콩 3가 단순한 짜집기 게임이라고는 할 수 없는게, 단순히 모든 적을 없애면 되는 기존 인베이더 클론들과 달리 본 게임의 목표는 아래로부터 동키콩을 쏴 화면 위로 도망치게 만들어야 하는 것. 그렇다고 동키콩 아래에서 계속 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계속 스폰되는 다른 적들을 피하거나 제거하면서 동시에 화분도 지켜야 한다. 여기의 기어다니는 애벌레 형태의 적은 죽일 수 없이 쏘면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데 만약 동키콩을 쏴야 하는 사선에서 얼어붙어 있으면 풀려나 이동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그 사이 동키콩이 다시 아래로 내려오게 되는 등 단순히 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보다 복잡한 판단을 요구한다. 여기에 샷도 한 번에 한 발만 쏠 수 있는 많은 인베이더 클론들과 달리 동키콩 3에서는 2발까지 연사가 가능.
동키콩 3는 닌텐도의 다른 많은 게임들처럼 기존 작품이나 장르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자기들만의 독특한 스핀을 넣은 '닌텐도다운' 게임으로 완성되기는 했으나 결국 흥행에는 실패했다. 전작들에 비해 너무 이질적인 게임플레이 자체도 원인의 일부였을 것이고, 1. 동키콩의 높이 2. 스탠리를 향해 날아오는 적들 3. 방해물 애벌레의 위치 4. 화분을 노리고 내려오거나 들고 도망치는 적들 등 동시에 트래킹해야 하는 팩터가 많아 단순해 보이면서도 제법 복잡한 게임성도 원인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원인이 무엇인지간에 동키콩 3는 일본에서의 성적은 나쁘지만은 않았다고도 하지만 북미에서는 완전히 실패, 동키콩 시리즈의 일부가 아니었다면 레이더 스코프처럼 잊혀진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흥행에 실패한 게임에 대해 뒤끝이 오래 가는 닌텐도는 이후 오랫동안 이 게임들을 흑역사 취급하며 봉인해 왔고, 그나마 동키콩 3는 당대에 패미컴으로 이식되기도 했고 이후에는 버추얼 콘솔로 재발매되며 스탠리가 대난투에 까메오로 등장하는 등 닌텐도의 용서를 받은 것 같으나 레이더 스코프는 현재까지도 그 어떤 컴필레이션이나 재발매에도 포함되지 않고 있다.
동키콩은 닌텐도가 메이저 게임회사로 발돋움할 수 있게 해 준 최초의 메인 히트작이자 플레이어에게 점프 액션의 즐거움을 알려준 게임으로 상기한 대로 이후 무수한 아류작들을 낳으며 플래포머 장르 형성에 기여한 게임이기도 하다. 한 스테이지 한 화면 구성으로 다양한 스테이지 기믹을 뚫고 위로 올라가야 하는 종류의 게임들은 모두 동키콩의 그늘 아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이 블로그에서 기존에 소개한 게임들 중에서 예를 들자면 마이너 2049나 패스트 에디가 여기에 해당하고, 이후 팩맨이 걸은 길과 유사하게 동키콩이 성립한 공식은 끊임없이 마개조되며 다양한 장르를 파생시키는 계기가 된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네타거리가 많은 게임으로, 상기한 레이더 스코프의 실패로 위기에 처해 있던 닌텐도를 구원했다는 이야기라던가, 동키콩이 킹콩을 표절했다며 당시 닌텐도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는 거대기업이었던 유니버설에게 소송을 당했을 때 닌텐도를 구원한 변호사 존 커비의 이름이 후에 커비 시리즈에 채용되었다는 이야기 등도 유명. 찾아 보면 쉽게 나오는 이야기들인 만큼 긴 설명은 생략한다.
대신 한국에서는 좀 덜 알려진 이야기를 해 보자면, 북미 레트로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동키콩 라이센스를 획득한 콜리코가 자사의 콜리코비전이 아타리 2600보다 우월한 하드웨어임을 보이기 위해 일부러 2600 이식판을 저렇게 거지같은 비주얼로 만들었다는 음모론이 있다. 나름 그럴듯한 음모론이기는 하지만 당연히 공식적으로 부인되어 있기도 하고, 상기한 판매량의 차이를 생각하면 과연 콜리코가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며 2600을 사보타주하려 했을까. 2600용 동키콩이 기기 성능을 최대로 활용한 이식수준이냐면 그건 분명 아니지만 2600용 팩맨처럼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이식이었다면 460만장을 팔아치우고 멀쩡하게 넘어가진 못했겠지. 실제로 플레이 해 보면 그래픽이 단순할 뿐 플레이는 원작의 게임성을 충분히 잘 재현하고 있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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