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er 2049er (1984 APL2)

마이너 2049 (1982 Atari 8-bit, 1984 Apple II)

 

팩맨을 포스팅한 김에 일견 관계 없어 보이지만 다시 보면 분명 팩맨클론이라 할 수 있는 게임 2가지를 추가로 픽업. 마이너 2049는 본래 아타리 8비트 PC로 발매된 게임으로, 실질적으로 개인 개발자였던 Bill Hogue가 Big Five 라는 사명으로 1982년에 발매되어 베스트셀러로 등극, 이후 당대의 여러 플래폼으로 이식되었다. 물론 2600으로도 이식은 되었지만 뚝뚝 끊기는 조작감에 내용도 본래 10개 스테이지 구성인 걸 3스테이지씩 잘라 Volume I, II로 나눠 발매하기까지 했으니 반드시 2600판을 선택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히는 사람 외에는 권하기 힘든 버전이다.

 

 

Miner 2049er Vol I & II (2600)

이는 이식사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2600이 이미 당대 타 플래폼 게임들을 이식하기에 버거워졌다는 의미기도 하다. 아타리 8비트는 후의 후계기인 아타리 5200의 베이스가 된 시스템이기도 하기 때문에 한 세대 앞선 시스템, 비유하자면 슈퍼패미컴이나 메가드라이브 게임을 패미컴이나 마스터 시스템으로 이식한 셈이다. 아무튼 2600은 짚고만 넘어가고, 이 글은 1984년 애플 II 버전을 기준으로 한다. 굳이 애플 II인 이유는 딱히 없고, 나도 편애하는 플래폼이 있으니까.

 

내용은 2049년의 광부 바운티 밥(Bounty Bob)을 조종해 광산을 뒤덮은 방사선 물질들을 제거하고 광산 곳곳에 널린 물품들을 이용해 방사능으로 탄생한 뮤턴트들을 제거하는 것. 본래는 위 2600용 스크린샷에 보이는 것처럼 다양한 종류의 아이템들이 있으나 애플 II에서는 무지개색 애플 로고로 전부 대체되었는데, 결국 팩맨의 파워 팔레트같은 존재로 먹으면 일정 시간동안 몬스터의 색이 변하며 쓰러트릴 수 있게 해 주는 아이템. 적들은 플래폼을 좌우로 이동할 뿐 플레이어를 추적해 오지는 않아 팩맨의 추적 요소는 여기서는 삭제되어 있으며, 대신 광산 청소라는 설정으로 각 스테이지의 플래폼을 밟으면 바닥의 색이 채워지고 이와 같은 식으로 스테이지의 모든 플래폼을 밟으면 스테이지 클리어. 도트를 바닥으로 전환시킨 셈이다.

 

 

스테이지 2부터 5까지

일견 동키콩팩맨을 악마합체 시킨 듯한 인상일 수 있으나 동키콩보다는 당대 유행했던 2D 퍼즐 플래포머들에 가까우며 거의 매 스테이지마다 새로운 기믹을 등장시켜 신선함을 유지하지만 동시에 기믹을 파악하고 스테이지 클리어에 필요한 정확한 루트를 발견하지 않으면 막히기 십상이다. 당시 대부분의 게임이 그랬듯 점프가 시작하면 공중에서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며, 자기 높이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사망한다. 사다리에서는 점프할 수 없고, 점프중에 사다리에 닿아도 안착할 수 없다. 발견할 수 있었던 롬파일이 전부 잔기 무한으로 개조된 버전밖에 없어서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죽는 거 자체는 큰 문제가 안 되었지만 일단 죽으면 스테이지 전체가 리셋되기도 하는 만큼 난이도도 상당히 높았을 거라 생각한다. 여기에 타이머는 덤.

 

대신 스테이지 기믹들이 상당히 다채로운데, 스크린샷 왼쪽 위의 스테이지 2에 플래폼 사이사이를 연결한 흰 바는 미끄럼틀이다. 일부러 밟아야만 칠할 수 있는 바닥도 있지만 강제로 낙하되는 만큼 장애물로 기능하기도 하는데, 오른쪽 아래 스크린샷의 스테이지 5가 대표적인 예. 점프로 적을 피하며 동시에 미끄럼틀에 빠지지 않게 그 사이사이를 메꾼 뒤 마지막 빈칸을 채우기 위해 미끄럼틀에 올라타야 하는 식이다.

 

스테이지 3은 화면 중앙에 엘레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바닥에서 엘레베이터를 호출해 숫자키를 누르면 해당 층으로 이동시켜 주는데 사실 이것도 함정. 바닥을 1층이라 할 때 3층을 제외한 모든 플로어는 점프를 통해 어찌어찌 다다를 수 있게 되어 있고, 만약 4층까지 엘레베이터로 올라갔다가 아래로 내려오기라도 한다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기 전까진 엘레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게 되어 막히게 되기도 한다.

 

스테이지 4와 5는 보다시피 작은 플래폼들로 이루어져 있고 5면에는 움직이는 플래폼이 추가되는데, 어느 스테이지나 정답 루트를 찾는 게 쉽지만은 않다. 동키콩 종류처럼 아케이드 감각으로 즐기는 게임이라기보다 천천히 생각하며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게임인 것. 끝까지는 클리어하지 못 했지만 10면까지 꾸준히 새로운 기믹이 추가되다 전부 클리어하면 스테이지 1로 루프된다. 이후 1985년에 바운티 밥의 역습(Bounty Bob Strikes Back)이라는 후속작이 만들어졌고 비슷한 게임성을 보이나 여기서는 생략한다.

 

 

 

 

City Connection

시티 커넥션 (1985 FC)

 

위 게임을 보고 바로 시티 커넥션을 떠올린 분들도 제법 되지 않을까? 아니 애초에 최상단 이미지에 나란히 놓여있어 놀라울 것도 없나. 잘레코가 시티 커넥션을 기획하면서 마이너 2049를 참고할 기회가 있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우연히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설마 싶지만 드래곤 슬레이어같은 예도 있고. 물론 추측일 뿐이다) 게임플레이의 상세는 크게 다르다. 마이너 2049가 퍼즐에 중점을 두었다면 시티 커넥션은 액션과 점프 중심으로,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쪽이 팩맨의 게임성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은 클라리스. 이상형의 남자를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무면허 난폭운전을 벌이며, 추격해 오는 경찰차에 드럼통을 던지며 저항하는, 이대로 GTA에 DLC 캐릭터로 등장해도 금방 적응할 것 같은 15세 폭주소녀. 그런 클라리스지만 패미컴으로 이식되면서 패미컴 사상 최초의 여성 주인공 캐릭터가 되기도 했다.

 

게임의 목표는 맵을 돌아다니며 맵의 모든 도로를 1번 이상 밟는 것이다. 맵 구성적으로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위에서 내려보는 시점이 아니라 측면에서 바라보는 횡스크롤 방식으로, 폐쇄감이 느껴지는 팩맨과 달리 뻥뻥 뚫린 개방감 있는 디자인을 보인다. 원래는 아케이드 게임이지만 여기서는 패미컴 버전을 기준으로.

 

장애물로는 경찰차와 고양이가 등장한다. 경찰차는 초반에는 클라리스의 주행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달리며 스폰된다. 클라리스는 상시 과속중이라 경찰차보다 속도가 빠르고, 브레이크를 밟을 줄은 모르지만 어째선지 180도 U턴은 가능하기 때문에 방향을 돌려 경찰차를 피해야 하며, 피하지 못하면 추돌사고로 잔기가 줄어든다. 그러나 경찰차가 클라리스를 추적하거나 하지는 않으며, 한 무리를 따돌려 스크린 밖으로 사라지게 하면 그냥 새로운 경찰차가 스폰된다. 스테이지가 진행되면 역방향으로 스폰되어 클라리스를 정면으로 들이받는 차들이 늘어나며, 그러다 보니 점프중이거나 해서 공중에 있는에 화면 밖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대처할 시간도 없이 죽는 경우도 생겨난다. 이런 적들의 특징 때문에 전략성보다는 반응속도에 의존하는 액션성이 강조된다.

 

경찰차가 움직이는 장애물이라면 고양이는 도로에 스폰되는 움직이지 않는 장애물로 로드킬해버리면 잔기가 줄어든다. 점프를 통해 회피하는 것도 가능하긴 하지만 화면 밖으로 스크롤 아웃시키는 것으로도 제거된다.

 

 

옛 자레코의 IP는 (주) 시티커넥션이 보유하고 있고, 현재는 퍼블리셔로 활동중이다. 위는 이들의 트위터/X 프로필.

맵은 최상단부터 최하단까지 4층으로 되어 있으며 아래층에서 다른 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끊어진 곳 사이로 점프해 올라타야 한다. 같은 높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끊어진 틈 위를 점프해 넘어야 하며, 도로를 뚫고 이동할 수는 없다. 도로가 끊어진 곳에 다다랐을 때 유저가 아무런 조작을 하지 않는다면 물론 디폴트로 1단 아래로 이동하게 된다. 자동차라 그런지 점프를 눌러도 관성과 약간의 딜레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점프에 익숙해지기까지 약간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파워 팔레트에 대응하는 공격용 아이템으로는 드럼통이 등장한다. 보통 레이싱 게임이라면 드럼통을 먹으면 연료가 채워지겠지만 여기선 무기로 정면을 가로막는 경찰차에 드럼통을 던져 제거할 수 있다. (응?) 후반으로 가며 경찰차들이 역주행으로 등장해 클라리스와 정면충돌하려 할 때 돌파 아이템으로 기능한다.

 

본래 아케이드판은 12개 스테이지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패미컴은 그 한계상 6스테이지 이후 루프 구성. 가끔 등장하는 풍선 아이템을 일정수 얻으면 이후 스테이지로 워프된다.

 

스테이지 1: 미국 뉴욕

스테이지 2: 영국 런던

스테이지 3: 프랑스 파리

스테이지 4: 독일 노이반슈타인성

스테이지 5: 인도 아그라 타지마할

스테이지 6: 일본. 후지산과 넓은 호수가 있는 걸로 봐서 시가현 비와호 부근.

 

이렇게 보면 마이너 2049시티 커넥션은 모두 1. 바닥의 모든 칸을 밟아야 하며 2. 플래폼 점프 요소를 도입해 미로의 벽을 대신한다는 최소한의 규칙만을 공유하고 나머지는 전혀 다른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채워 독자적인 게임을 만들어냈으며 굳이 의식하고 보지 않으면 팩맨이 거의 의식되지 않을 정도로 자기색을 내는 데 성공한 게임들이라 할 수 있다. 같은 모티브로 이렇게 다른 결론을 내렸다는 게 흥미롭다.

 

 

팩맨

팩맨 (1980 Arcade, 1984 FC) 전 세계적 인지도로 마리오와 대적해 모자라지 않을 정도를 넘어 어쩌면 넘어설 수도 있을 만한 게임을 꼽는다면 뭐가 있을까? 포켓몬이나 소닉도 있겠지만 팩맨을 빼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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