ドラゴンスレイヤー

드래곤 슬레이어 (1984)

 

80년대 팔콤의 간판 시리즈였던 드래곤 슬레이어 시리즈 첫 작품. 최초 발매는 PC-88로, 이후 다수의 가정용 PC로 이식되었다. 이번에 플레이한 버전은 MSX로, 퍼블리싱을 맡은 건 스퀘어. 커버만 보면 팔콤이 아니라 어디 미국게임인가 싶을 정도의 강렬한 양키센스가 느껴진다. 팔콤은 당시 "前代未聞麻薬的爽快遊戯(전대미문마약적상쾌유희)"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지만 대체 어디가. 일단 기본적인 게임의 흐름부터 설명해 보자면 대강 다음과 같다.

 

 

사각형으로 표시된 게 골드와 파워스톤. 검 다음으로 중요한 아이템들이다.

우선 게임의 기본적인 개념들부터. 화면 우측에 여러 스탯들이 표시되어 있지만 이 중 전투에 관여하는 건 HITPOINT, STRENGTH, EXPERIENCE의 3가지. 각각 체력, 공격력, 방어력에 해당한다.

 

데미지는 간단히 [공격자 STRENGTH - 방어자 EXPERIENCE]의 차이로 결정되며, 공격자의 STR이 방어자의 EXP를 넘어서지 못할 경우 데미지는 최소치인 10이 된다. 몬스터가 플레이어의 방어력을 뚫지 못하고 플레이어가 몬스터를 일격에 보낼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몬스터가 교전을 피해 도망치게 되며, 예외로 플레이어는 아이템 '검'을 입수하기 전까지는 입힐 수 있는 데미지가 최소치 10으로 고정된다.

 

따라서 최초의 목표는 일단 검을 확보해 싸울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고, 이후 아이템을 모아 HITPOINT와 STRENGTH를 올려야 한다. 레벨 같은 개념은 없으며, 맵상에 출현하는 동전 모양의 아이템을 입수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체력이 늘어나고 파워스톤이라는 아이템을 입수해 집으로 돌아가면 공격력이 올라간다. (어느 스탯이나 최대치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이 게임의 2번째 특징, 동시 소지가능 아이템 수 제한으로 이어진다.

 

 

열쇠와 파워스톤을 소지한 상태

처음 게임을 시작하면 주인공이 오른손에 방패를 들고 있고 왼손이 비어있다가 검을 입수하면 왼손에 검을 든 그래픽으로 변경된다. 검은 다른 아이템과 중첩해 가질 수 있고, 체력 강화용 아이템인 '골드'와 마법력 강화용 아이템인 '항아리' 역시 몇 개든 제한 없이 입수할 수 있지만 그 외의 아이템들은 한 번에 하나만 소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맵상에 놓인 상자를 열기 위해서는 열쇠 아이템을 들고 있어야 한다. 열쇠를 손에 든 상태에서는 주인공 옆에 소지한 아이템이 표시되며, 이 상태에서는 다른 어떤 아이템도 추가로 입수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소지수 제한이 없는 골드나 항아리도 마찬가지로 입수 불가능 상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상자를 열어 그 안에 있는 아이템이 드러나게 한 뒤 열쇠를 어딘가에 내려 놓고 다른 파워업 아이템들을 입수해야 하는 것. 여기서 그나마 열쇠를 내려놓고 아이템을 일제히 회수한 뒤 집으로 돌아가 파워업을 할 수 있다면 그래도 괜찮은데.. 문제는 파워스톤이다. 파워스톤은 한 번에 하나만 소지할 수 있으며, 한 번에 한 개씩 입수한 뒤, 매번 집으로 돌아가 스페이스를 눌러 아이템을 사용해야 그 효과를 볼 수 있다.

 

파워스톤 1개를 집으로 가져올 때마다 STRENGTH 2500이 상승하며, 다수의 공략정보를 참고하면 각 페이즈의 드래곤을 쓰러트리기 위해 필요한 STRENGTH는 40만 이상. 단순히 계산해서 160개 이상의 파워스톤을 발견하고 하나하나 집으로 옮겨야 한다... 이 게임을 처음 접했을 때 진행을 포기하게 만들었던 가장 큰 원인. 진짜로 뭐라도 빨기 전에는 이 단순작업을 하면서 마약적 상쾌유희로 느끼긴 힘들 것 같은데.

 

따지고 보면 이렇게 한 번에 하나의 키 아이템만을 소지할 수 있는 시스템은 거슬러 올라가면 아타리의 어드벤처까지 올라가는 나름 유서깊은(?) 방식이지만 당시의 기술적 한계로 만들어진 시스템에 불과한 만큼 이후 이런 시스템을 답습하는 게임은 사라지게 된다. 개발자 키야 요시오(木屋善夫)가 당시 어드벤처를 알고 있었는지는 미지수지만 애플II용 프라이탁의 동굴콥트쿄도와 도적들을 참조했다 하니 어드벤처의 영향이 있었더라도 간접적인 것이었을 듯.

 

 

좌: 스타트 시점의 십자가 / 우: 마법 인터페이스

마법은 입수한 경험치의 양에 따라 해금되며, 엔터를 누르면 마법 메뉴가 열리고 사용에 필요한 단축키를 확인할 수 있다.

  • J: JUMP(1000) 텔레포트되지만 어디로 날아갈지는 알 수 없다.
  • R: RETURN(2000) 집으로 귀환.
  • M: MAP(3000) 주변의 지도를 표시한다.
  • C: BREAK(5000) 지정한 방향의 벽을 파괴한다.
  • K: KICK(10000) 지정한 방향의 벽을 걷어차 날린다. 적을 죽일 수 있다.
  • Z: FREEZE(15000) 주변의 적을 얼려버린다.
  • L: FLASH(25000) 일정시간 적의 움직임을 멈춘다.
  • F: FLY(50000) 일정시간 변신하여 하늘을 날 수 있다.

그 외에 주요 아이템을 간단히 짚어보면 우선 십자가. 소지시 적이 공격해 오지 않으며, 플레이어도 적을 공격할 수 없다. 십자가의 효과는 소지한 게 아니라 그 위에 올라선 상태에서도 적용되며, 이를 이용해 결계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MSX에서는 페이즈 1 시작지점에 바로 놓여있기 때문에 시작하자마자 죽는 상황은 피할 수 있다.

 

반지 역시 재미있는 아이템인데, 이를 소지한 상태에서는 미궁을 형성하는 벽을 블럭처럼 밀어서 옮길 수 있다. 단순히 탐색을 위한 통로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응용해 몬스터가 스폰되는 포인트인 무덤을 벽으로 틀어막아 버리면 해당 지점에서 스폰된 적들은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된다. (대각선으로 이동가능한 몬스터도 있으니 8방향을 막아야 한다) 거기에 추가로 주인공의 집 역시 반지로 밀어 옮길 수 있기 때문에 대량으로 상자를 깐 뒤에는 그 중 반지가 어딘가 있을테니 하나 집어서 주인공의 집을 밀어 가까이 옮겨놓으면 그나마 약간 편해진다.

 

몬스터는 필드상에 일정수 이상 스폰하지 않게 되어 있으며 약한 몬스터를 쓰러트리면 그 대신 맵 어딘가에 더 강한 몬스터가 스폰하는 구조이다. 프라이탁의 동굴의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부분이 이 부분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덕분에 한참 파워업 했다고 신나게 몬스터들을 잡고 다니다가는 되려 당할 수 있다.

 

그리고 어찌어찌 머리 셋 달린 드래곤을 쓰러트리면 크라운이라는 아이템이 출현해 맵 곳곳에 흐트러진다. 크라운의 개수는 총 4개, 쓰러트린 직후에 1개를 가진 상태로 나머지 3개를 찾아야 하는데 크라운을 1개 이상 보유한 상태에서는 일체의 마법을 쓸 수 없게 된다. PC-88에서는 4개의 크라운을 한번에 하나씩 옮기면 되지만, MSX에서는 한 번에 4개의 크라운을 전부 입수해 집으로 돌아가야 스테이지가 클리어된다. 그리고 여기서 본 게임 최악의 보스가 등장.

 

 

워낙 빨리 스쳐지나가서 캡쳐 잡기 힘들었다. 왼쪽 위에 흰 선으로 된 몹이 유령.

갑자기 화면 밖에서 나타나는 이 유령은 바닥에 놓여있는 아무 아이템이나 집어다 맵상의 다른 랜덤한 곳에 던져놓으며, 거기서 끝이 아니라 현재 플레이어가 손에 든 아이템까지 훔쳐간다. (어드벤처의 박쥐와 같으나, 유령의 형태를 한 건 애플2로 등장한 모방작 콥트교도와 도적들의 영향일 수도 있다.) 반지를 들고 집을 옮기는 중이거나, 열쇠를 들고 대량의 상자를 까는 작업을 하는 도중에 아이템을 강탈해 간다거나, 간신히 크라운 4개를 모아 집으로 가는 중에 크라운을 훔쳐가거나 하면 ...

 

일단 이 유령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고 하는데, 바로 상기한 십자가로 결계를 치는 것. 중요 아이템을 내려놓고 그 주변 8방향을 전부 십자가로 둘러싸 놓으면 유령이 그 안의 아이템을 가로챌 수 없다. 또 십자가 결계 안에 유령을 마찬가지로 가두면 나오지 못하게 된다고도 하는데, 함정을 파놓고 유령이 거기 빠져주길 바라는 것도 쉽지 않잖아. 아무튼 이런 요소는 어드벤처 계통 게임에서는 카트리지 용량 한계 때문에 10분도 안 걸릴 분량을 간신히 2~30분 정도로 늘리기 위해 존재하는 도구인데, 아타리 2600도 아니고 굳이 이것까지 재현할 필요가 있었을까? 드래곤 슬레이어는 이런 방해가 없어도 한 스테이지에 몇 시간씩 걸리는 게임인데 말야.

 

 

스테이지 1 클리어 패스워드 KANI

도중 세이브가 불가능한 건 덤. PC-88은 경험치 5만 이상일 때 현재 보유한 경험치 1/4을 대가로 세이브가 가능한 것 같은데 (사실 이것도 귀축이지만..) MSX는 메뉴에 세이브 대신 패스워드로 변경되어 있고, 선택하면 패스워드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패스워드를 입력하는 화면이 나오며, 패스워드는 한 페이즈를 완전히 클리어해야 제공된다. 

 

웃기는 건 타이틀 화면에서는 패스워드를 입력할 수 없고, 게임 도중에 사용해야 하는데 새 게임 시작 직후에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고, 마법 인터페이스가 표시되지 않으며, 그 마법 인터페이스에 있는 패스워드 기능도 사용할 수 없다. 즉 어찌어찌 스테이지 1을 클리어하고 2스테이지로 가는 패스워드를 얻었다 하더라도 그 패스워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험난한 초반을 다시 플레이해야 하는 것. 여기에 스테이지 진행에 따라 난이도가 올라가며, 총 6스테이지 구성에 이후 루프된다고 한다. 아니.. 충분한 것 같아.

 

드래곤 슬레이어는 T&E의 하이드라이드와 함께 일본 최초의 액션RPG라 자칭하는 게임들 중 하나이다. 일단.. RPG란 무엇일까? 정말 최소한의 필요조건만 보면 주인공이 스탯을 가지고, 전투의 결과가 부분적으로 스탯에 의존하며, 각 게임 나름의 방식으로 육성해 스탯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 하이드라이드드래곤 슬레이어 모두 이상의 조건은 만족하고 있지만, 다시 '액션RPG'라고 한다면 액션성, 즉 단순히 스탯만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실시간 액션이 동시에 전투 결과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드래곤 슬레이어가 간신히 액션RPG로 체면치레를 하는 것 같긴 하지만 역시 나로서는 하이드라이드를 더 높게 쳐줄 수 밖에 없다. 드래곤 슬레이어의 전투는 닿으면 양쪽의 스탯을 비교해 결과가 나오는 방식인 만큼 액션이라기보다 자동전투로 진행되는 심볼인카운터라는 느낌이 들고 차라리 보코스카 워즈와 유사해 보일 정도니까. 그런 팔콤이 이후 제나두, 다시 이스를 내놓으며 각성하게 되긴 하지만 그건 나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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