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일리언 · 마이크로 결사대 · 패스트 에디
80년대 초 아타리 2600 황금기 모음, 액티비전과 미드웨이 편에 이어 무려 "Games of the Century"라는 당돌한 슬로건을 달고 참전한 20세기 폭스 편이다. 거긴 영화사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한때는 20세기 폭스도 게임을 개발했다. 지금처럼 게임 개발이 대규모 인원을 필요로 하는 거대 산업이 아니라 한 명의 개발자가 한 게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담해 만드는 게 보통이었던 시대니 20세기 폭스만이 아니라 게임과 관계 없어 보이는 여러 회사들이 게임시장에 참전하곤 했는데, 어찌보면 이런 뜬금없는 메이커들의 참전이 당시 '아타리 쇼크'로 향해가는 시장의 과포화 상태를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겠다. 다음은 퍼스트파티 아타리편으로 이어진다.
20세기 폭스는 영화 라이센스를 무기로 시장에 진입했지만 반드시 영화 게임만을 만든 건 아니고 나름 다양한 게임을 공급했다. 스타워즈 IP를 갖고 있으면서 스스로 스타워즈 게임을 만들지 않고 아타리나 콜리코에 라이센싱만 한 것도 특이한 점.
위키백과의 2600 게임 목록과 AtariAge의 검색결과를 교차해 확인해보면 20세기 폭스는 총 17편의 작품을 발매했고, 추가로 7편의 게임을 제작했으나 개발이 중단되거나 완성되었어도 발매가 취소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발매가 확인되는 모든 게임은 1982-1983년 사이에 발매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사실 다른 메이커들과 함께 다루기에는 잠깐 들어왔다 나간 뜨내기 손님 느낌이지만 오히려 이런 회사에서 짧은 기간에 대량의 게임을 뽑아낸 것이 이 시대에나 있을 수 있었던 일인 만큼 뜨내기 대표로 픽업했다. 게임사로서 20세기 폭스는 상당히 그 퀄리티가 들쭉날쭉했는데, 이하의 두 게임을 잠깐만 보고 넘어가자.
포키스는 81년 동명의 영화를 바탕으로 만든 일종의 다장르 액션 게임으로 여러 스크린에 걸쳐 진행되지만 비슷한 컨셉인 혹성의 위기와 달리 각 장면이 플레이어의 머리속에서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되지도 않고 각 장면의 게임성도 좋지 않아 혹평을 받은 영화 라이센스 배경의 쿠소게. 이 게임은 길게 이야기할 것 없이 그냥 AVGN의 리뷰를 참조하면 무방하다. 이 게임에 한해서는 전적으로 나도 그와 같은 의견이다.
반면 스페이스마스터 X-7은 스타 캐슬이라는 아케이드 게임의 모방작이지만 그 스타 캐슬은 사실 아타리가 이식하려다가 기술적인 문제로 2600으로 어레인지를 포기해버린 게임이다. 스타 캐슬은 중앙에 적이 있고 움직이는 실드의 틈으로 적을 공격하는 컨셉의 게임인데 오히려 20세기 폭스에서 그 게임성을 간직한 게임을 만든 것. 참고로 스타 캐슬의 이식을 포기한 아타리가 그 컨셉만을 재활용해 만든 게임이 야스 리벤지다. 게임회사로서 활동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쿠소게와 양작을 고루 배출한 셈.
에일리언 (1982)
당시 북미에서 최대 인기작이었던 팩맨의 수많은 변종들 중 하나. 당시의 맥락을 설명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최초에 아타리가 이식한 실패작 팩맨이 1982년 3월, 미즈 팩맨은 1983년 2월에 발매되었다. 에일리언은 그 사이인 1982년 11월에 발매되었으니 발매 직후에는 가히 2600 최고의 도트이트 게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하술할 사운드 도용 문제와 라이센스 소재의 뜬금없음을 제외하면 플레이 자체는 제법 타이트하게 잘 만들어져 있어 2600으로 등장한 팩맨클론들 중에서도 평가가 좋다.
대체 왜 에일리언 영화를 가지고 팩맨클론을 만들기로 했는지에 대한 결정은 너무나도 미스테리하지만 그러려니 하자. 어떻게 보면 리플리가 에일리언을 피해 도망다닌다는 설정이 다른 액션 게임들에서 에일리언을 때려잡고 다니는 것 보다는 더 원작 재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자기들도 이게 무리수란 걸 알고는 있었는지 TV 광고에는 아예 게임 영상이 1초도 등장하지 않는다. 확신범이군.
목표는 미로의 쿠키를 전부 먹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깔린 에일리언의 알을 전부 부수는 것. 팩맨과의 차이점이라면 화염방사기를 갖고 있어 버튼을 눌러 구동할 수 있는데,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하긴 하지만 에일리언을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게 할 수 있으나 화면 왼쪽이나 오른쪽 끝에 캐릭터가 위치해 있을 때는 사용할 수 없다. 버그인 것 같지만 매뉴얼에도 그렇게 써 있으니 원래 그렇다고 치자. 화염방사기는 소비성으로 기본 1개를 갖고 시작하며 미로 내에서도 스폰된다.
파워 팰릿에 해당하는 아이템으로 '펄사'가 등장하며, 먹으면 에일리언이 파랗게 변하며 제거할 수 있게 되지만 팩맨과 달리 처음부터 있는 게 아니라 화면 상단, 좌하단, 우하단에 한번에 하나씩만 등장. 미로 하나를 클리어하면 마치 액티비전의 프리웨이처럼 에일리언들 사이를 지나 화면을 올라가는 미니게임이 시작되며, 좌우로 움직일 수 없고 상하로만 이동이 가능해 까다롭지만 실패해도 패널티는 없으며 성공하면 점수 보너스를 받는다.
다만 아무리 클론 게임이 양산된 팩맨이지만 에일리언은 좀 심했다는 느낌마저 드는데, 컨셉만이 문제가 아니라 이동시 발생하는 사운드까지 팩맨의 것을 그대로 가져다 썼기 때문이다. 디자인 적으로도 분명히 차별화를 시도한 흔적이 있고 조작감도 좋아 평가가 나쁘지 않지만 다른 SE를 쓸 수는 없었을까. 기왕 에일리언을 만들 거라면 더 나은 음악이 얼마든지 있었을 것을.
게임 스위치를 통해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다. 게임 1이 노멀, 2와 3은 점점 어려운 모드가 되며 게임 4가 이지모드. 그 외 옵션 설정으로 좌우 난이도 스위치를 사용한다.
- 좌 A: 에일리언의 움직임이 랜덤화된다.
- 좌 B: 에일리언의 움직임이 고정패턴이 된다.
- 우 A: 펄사가 에일리언에게 효과가 없다.
- 우 B: 펄사가 에일리언에게 효과가 있다.
마이크로 결사대 (1982)
1966년 영화 Fantastic Voyage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종스크롤 슈팅 게임. 여기서는 해당 영화의 한국 제목인 마이크로 결사대로 부르겠다. 심각한 혈전으로 생명의 위기인 환자를 구하기 위해 초소형화된 잠수함으로 환자의 몸에 들어가 혈전을 제거한다는 내용으로, 일견 스탠다드한 슈팅게임으로 보이나 게임 설정에 맞춘 독특한 디자인이 눈에 띄는 게임이며, 만약 20세기 폭스의 게임을 단 하나만 플레이한다면 이걸 권하고 싶을 정도의 수작이다.
특이점으로 이 게임에서는 보이는 대로 다 쏴죽이면 안 된다. 백혈구는 파괴해도 무방하고 그냥 넘겨도 무방하지만 혈세포는 파괴하면 환자의 상태가 악화된다. 혈관벽에 닿으면 발생하는 항체나 일반적인 적으로 출현하는 효소, 박테리아는 파괴하지 않고 놓쳐 스크롤아웃되면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며, 작은 혈전은 파괴될 수 없는 단순 장애물이지만 큰 혈전은 일부 에리어 끝에 등장하며 혈관을 막고 있어 반드시 파괴해야 다음 페이즈로 넘어갈 수 있는데 15발을 넣어야 하니 빠른 반응이 필요하다.
적들이 직접적으로 공격을 해 오지 않는다는 것도 특징. 혈관이 지형으로 되어 있어 피해다녀야 하지만 패널티는 항체가 나타난다는 정도이며, 박테리아 같은 적들과 충돌한다 해도 바로 죽지 않는다. 단 미스가 쌓이거나 너무 많은 적들을 흘려보내면 환자의 심전도가 빨라지며 심해지면 환자가 사망하고 게임 오버가 된다. 조이스틱 상/하로 기체의 상하이동과 함께 스피드를 조절할 수 있으니 조심스럽게 적을 하나하나 제거하는 페이스의 게임. 적들이 좌우로 이동할 뿐이며 스크롤 속도를 조절해가며 찬찬히 제거해야 하는 게임성은 리버 레이드와 유사한 개념이다.
총 6개의 페이즈로 되어 있으며, 1주차에서는 1, 2, 5, 6페이즈만이 진행된다. 2주차에서 페이즈 3이 추가되며 3주차 이후 6페이즈 전체를 플레이할 수 있게 된다. (각 페이즈와 주차의 길이가 길지 않고 극적으로 난이도가 올라가지도 않으니 90년대 아케이드 슈팅들의 2주차 3주차를 떠올리며 긴장할 필요는 없다.) 각 페이즈마다 등장하는 방해물들의 종류와 조합이 달라지기 때문에 페이즈마다 새로운 전략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 특징. 예를 들어 1페이즈에서는 백혈구가, 2페이즈에서는 혈세포가 대량으로 출현하는 식이다.
게임 스위치를 통해 레벨을 결정할 수 있다. 연장된 모드라고 되어 있는 것들은 각 스테이지의 길이가 길어진 모드.
- 레벨 1: 일반 게임
- 레벨 2: 연장된 일반 게임
- 레벨 3: 고난이도
- 레벨 4: 연장된 고난이도
- 레벨 5: 초보자용
- 레벨 6: 연장된 초보자용
패스트 에디 (1982)
개발사는 Sirius Software로 20세기 폭스는 유통만을 맡았다. 콥트교도와 도적들 제작사로 되어 있는 그 시리우스인데, 애플 II나 아타리 2600이나 다 그렇듯 실질적으로 1명의 개발자가 완성한 게임이다. 패스트 에디는 사실 당대에 흔하고 인기있었던 게임들을 다루려는 이 시리즈에 넣기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인지도가 많이 떨어진다. 그러나 게임의 완성도는 좋은 편이고 달리 이걸 따로 떼서 소개하기엔 쓸 거리가 마땅치 않은데다 한 세트에 팩맨클론이나 슈팅만 2, 3개씩 넣기도 좀 그렇다 보니 집어넣었다. 실제로 나머지 게임들은 장르가 다 겹쳐서...
패스트 에디는 당시 유행하던 싱글화면 점프액션 게임으로, 이 게임에서도 동키콩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면 착각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동키콩처럼 극적으로 스테이지 기믹이 바뀌거나 하지는 않고 스테이지의 사다리 배치가 달라지는 정도이며, 적은 기본적으로 1종류 뿐으로 스테이지가 진행될수록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진다. 화면에 나타나는 점수 아이템들은 고정 장소에 위치해 있기도 하고 화면 상단을 떠다니기도 하며, 아이템들을 회수하다 보면 화면 최상단의 적의 다리가 점점 짧아져 점프로 뛰어넘을 수 있는 일반 적 높이가 되고 열쇠가 나타난다. 이 상태에서 최상단으로 올라가 열쇠를 얻으면 라운드 클리어.
여기에 다른 특징이라면 에디는 사다리를 오르는 중에는 무적으로 적에 닿아도 죽지 않는다. 사다리 위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고 사다리 오르내리기를 지시하면 자동으로 다음 단까지 이동하기는 하지만, 몇 라운드 지나 적들의 이동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하면 사다리를 피신처처럼 사용하게 된다. 컨트롤적으로는 에디의 점프거리가 상당히 길어 한 번에 2마리의 적이나 게임이 진행되면 출현하는 2배, 3배 넓이의 적도 점프로 넘을 수 있지만 방향과 함께 점프를 하면 원하지 않게 적에 부딪히는 수가 있으며, 사다리 2개 이상이 이어져 있을 때 조이스틱을 누른 채로 있으면 연속으로 올라간다는 점에 주의가 필요하다. 한 단만 올라가길 원한다면 짧게 눌러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사다리를 다 올라갈때까지 위를 누른 채를 유지해야 하는 게임이 많기 때문에 다소간의 적응이 필요하다.
상기한 대로 인지도가 높은 게임도 아니고 굳이 치켜세울 생각이 들지도 않지만 나름 다채롭고 게임오버가 된 뒤 컨티뉴를 하면 마지막으로 게임오버된 스테이지에서 재시작하는 등 친절한 모습도 보인다. 동시대에 플레이했던 사람들이 좋은 게임으로 기억하는 것도 이해가 갈 만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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