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 랜더 (1979)
아타리의 1979년 아케이드 달착륙 시뮬레이션. 모티브는 말할 것도 없이 아폴로 계획일 것이다. 이제 와서는 이미 반세기도 지난 역사가 되었지만 60, 70년대 우주계획에 대한 열기는 대단했다. 이는 단지 과학적 발전만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의 국가적 자존심을 건 대결이기도 했으니 그에 대한 관심은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이를 모티브로 한 게임들도 여럿 제작되었는데, 시기가 시기인 만큼 60년대말-70년대 초중반 일부 대학이나 연구소에서나 볼 수 있었던 메인프레임 컴퓨터에서 제작되어 공유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텍스트 기반의 게임들이 주였다가 간단한 그래픽을 추가한 버전들도 등장하며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영문판 위키백과는 Lunar Lander를 장르로 서술하고 있는데, 이를 하나의 게임 장르로 인식한다면 최초의 게임 장르 중 하나이면서 게임의 대중화가 오기도 전에 끝물에 다다른 희귀한 예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달착륙 게임의 끝물에 아타리가 아케이드로 가져와 대중화한 게임이 바로 루나 랜더. 아타리는 이 외에도 세계 최초의 컴퓨터 게임으로 알려진 스페이스워!를 2600으로 가져오는 등 아타리가 아니었다면 대중에게 알려지지 못 했을 게임들을 건져내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아무튼 이하 루나 랜더와 함께 달착륙 장르에 직간접적으로 속하는 게임 몇 가지를 함께 세트로 소개한다. 태그에 HAL, Muse, Taito 등이 함께 보이는 건 그 때문.
달착륙 장르를 현재의 게임 용어로 설명하면 일종의 물리 시뮬레이션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현재의 물리엔진과는 비교할 수도 없지만 말이지. 루나 랜더에서 플레이어는 달착륙 모듈을 조종하고 분사기를 이용해 속도를 조절해 게임상의 지정된 지점에 착륙해야 하는데, 여기에 달의 중력과 관성이 적용되어 원하는 지점으로 이동하기가 까다롭다. 처음에 시작하면 화면 왼쪽 위에 있는 플레이어의 모듈이 화면 오른쪽으로 계속 흘러가는데 분사기로 반대 속도를 내려 해도 바로 방향이 바뀌는 게 아니라 오른쪽으로 향하는 속도가 줄어들며 점점 0에 가까워지다가 이후 계속해야 왼쪽 방향으로 속도를 내게 되는 것.
추가로 달의 중력도 작용해 수직방향 속도가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위 방향의 분사도 같이 섞어주지 않으면 목표지점에 닿았다 하더라도 추락하는 꼴이 되어 모듈이 파괴되어 버리니 두 속도를 잘 조절해 원하는 지점으로 유도해야 원하는 지점에 안전히 착륙할 수 있다. 처음에는 넓은 화면이 보이지만 지면에 가까워지면 그 부분이 확대되고, 착륙 목표지점은 2x, 4x, 5x 하는 식으로 점수 배율로 표시되어 있는데 물론 점수 배율이 높은 곳에 착륙할수록 더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있지만 경사면에 있다거나 하여 그만큼 착륙이 까다롭다. 게임 시작시에는 잔기와 연료의 양이 정해진 상태로 시작하고 착륙에 실패해도 잔기가 남아있으면 재도전할 수 있지만 연료는 회복되지 않으며, 지형에도 몇 가지의 패턴이 있어 랜덤하게 등장한다.
처음에는 이 관성의 감을 잡지 못해 몇 번이고 모듈이 파괴되는 모습을 보게 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 어느 정도 감을 잡으면 2x 정도는 어떻게든 되게 된다. 착륙이든 추락이든 할 때마다 아마도 직전의 속도에 따라 다양한 메시지가 출력되는데, 추락하면 이렇게 비싼 걸 부셨다거나 2마일 크레이터를 만들었다는 식의 메시지가 나오고 완전히 파괴되지 않고 어떻게든 착륙시켰어도 수직방향 속도가 너무 높았다면 연료통이 박살나거나 생존자가 없다는 메시지가 나온다.
이런 '착륙'만을 주제로 한 게임은 이후에는 좀처럼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지만 구조의 간단함 덕분에 프로그래밍 연습으로 만들어 본 사람들도 제법 많을 것 같다. 달착륙은 이후 독립된 장르로 유지되기보다 그 요소들이 다른 게임들에서 메카닉에서 많이 차용되는데, 특히 일부 슈팅 게임이나 플라이트 시뮬레이션에서 안전한 착륙을 위해 속도와 고도를 조절해야 하는 요소들, 아니면 일부 슈팅에서 정확히 속도와 위치를 조절해 도킹을 해야 하는 메카닉들의 원형인 셈. 이런 요소들이 들어간 게임들이 대체로 그 게임에서 가장 어렵고 까다로운 구간이기 쉽다는 걸 생각하면 루나 랜더도 업보가 깊은 게임이다. 이런 세밀한 속도 조절의 착륙 요소가 어딘가에 들어간 게임을 나열하면 끝이 없지만 달착륙 장르의 주요 게임들 몇 가지를 간단하게 함께 짚어본다. 1990년 게임보이용 루나 랜더와 현재 2024년 2월 현재 데모판이 공개중인 루나 랜더 비욘드는 여기서는 제한다.
주피터 랜더 (1981)
별다른 이유는 없이 일단 C64부터 시작해 보자면 첫 번째는 1981년 HAL연구소의 주피터 랜더. 후에 커비나 대난투를 만들게 되는 그 HAL연 맞다. 제목만 달에서 목성으로 바꾸었을 뿐 노골적인 클론 게임인데, 랜딩 모듈의 디테일은 아타리 버전보다 자세하게 그려져 있지만 그 외에는 HAL연의 흑역사라 해도 될 만큼 빈약하다. 가장 큰 문제는 왼쪽 스크린샷에 보이는 지형이 게임 내에 존재하는 유일한 지형이며 이 지형 내에서 x2, x5, x10 랜딩포드에 반복해 내리면서 하이스코어를 재는 것 외에는 할 게 없기 때문.
그래도 아타리의 루나 랜더에 비하면 맵이 좁은 것도 있어선지 조작은 살짝 편하다. 루나 랜더는 부스터를 사용해도 속도가 유의미하게 올라가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지만 주피터 랜더는 보다 즉각적이고, 마지막에 클로즈업될 때 오른쪽에 보여지는 수직방향 속도 게이지가 0에 가깝게 유지하면 되니 아무래도 가정용에 맞춘 난이도 조절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한 게임의 길이가 기껏해야 5분 남짓이고 C64는 브라우저에서도 플레이가 가능하니 비슷한 게임을 접해본 적이 없다면 간단히 맛보기로는 적당할 지도. 당시에 이걸 구입한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스페이스 택시 (1984)
다음은 Muse Software에서 마찬가지로 코모도어 64용으로 발매한 스페이스 택시. 단순히 탐사선을 착륙시키는 게 아니라 부스터를 활용해 공중을 날아다니며 손님이 있는 곳에 착륙해 탑승시킨 뒤 손님이 원하는 플래폼으로 이동해 내려주는 걸 반복하는 게 목적이다. 이걸 몇 번 반복하다 보면 Up Please라고 하는 손님이 나타나며 이 손님을 데리고 화면 위쪽의 열린 게이트로 빠져나가면 스테이지 클리어.
특징이라면 랜딩기어가 추가되어 적당한 타이밍에 랜딩기어를 펴야 하며, 루나 랜더에서처럼 착지 직전까지 분사를 계속하다가는 택시가 파괴된다. 초반 미션들은 그런대로 할 만 하지만 손님 위에 내려버리면 손님을 실수로 죽여버리기도 쉽고 스테이지 구조도 금방 복잡해지는데다 갖가지 기발한 장애물 기믹들이 추가되어 상당히 직접 플레이해보면 상당히 어렵다. 여기에 루나 랜더에서 이어지는 연료 시스템도 유지되고 있어 연료가 바닥나기 전에 F로 표시된 주유소 플래폼에 내려야 하고 승객들로부터 받은 요금으로 기름값을 내야 한다. 즉 너무 시간을 끌면서 진행할 수도 없는 것.
'착륙'을 목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게임 메카닉의 하나로 인식하고 단순한 달착륙 게임을 넘어 확장시키려는 시도가 눈에 띄지만, 달착륙 계열의 섬세한 컨트롤은 복잡한 동선을 요구하는 이런 게임과는 역시 맞지 않는 게 아닐까. 그나마 관성의 컨트롤이 루나 랜더보다는 간단하지만 한 번 내리는 게 아니라 몇 번씩 복잡한 동선을 그리고 장애물까지 피하면서 다녀야 하니... 그러나 5.25인치 디스크 1장짜리 게임이면서 음성 샘플도 들어 있고 나름 C64 팬들 중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게임. 배우는 데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계속 연습하며 감을 잡고 나면 그 미묘한 조작감이 중독감이 있다고. 총 24 스테이지 구성.
루나 레스큐 (1979)
타이토도 만들었다. 루나 레스큐는 달착륙에 자사의 스페이스 인베이더 요소를 결합한 게 특징이다. 하드웨어도 동일하고 샷을 비롯한 일부 사운드는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것을 재활용한 것. 착륙과 귀환의 두 페이즈로 나뉘어져 있으며, 착륙 페이즈에서는 분사를 사용해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점은 동일하지만 좌우 이동이 보다 자유롭고, 소행성들을 피해 랜딩패드에 내리면 써 있는 숫자만큼의 점수를 얻는다. 패드에 내리면 화면 하단의 생존자가 달려와 탑승하고 모선으로 돌아가게 된다.
돌아가는 길에는 소행성들이 UFO로 변하며 공격을 해 오고 플레이어도 샷을 쏠 수 있게 된다. 적의 공격을 피하고, UFO들을 쏴서 맞추거나 피하거나 하면서 모선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바로 모선에 닿으면 파괴된다. 모선은 계속 좌우로 이동하지만 플레이어가 가까이 오면 움직임을 정지하고 해치를 여는데, 이 열린 해치로 들어가야 구출 성공. 이후 총 6명의 생존자를 전부 구출하면 클리어인데, 한 번 랜딩에 성공한 패드는 사라져 50점짜리 넓은 패드를 반복해 이용할 수는 없다.
그라비타 (1982)
아타리의 1982년작 벡터스캔 아케이드 게임으로, 여기에서는 루나 랜더의 조작성에 아스테로이드 스타일의 슈팅 기믹을 더했다. 합쳐서는 안 될 것들을 합친 것 같다면 나도 동감이다. 한 태양계의 여러 행성을 돌아다니며 각 행성의 방어시설들을 파괴하는 것이 목적인데, 위 왼쪽 스크린샷의 지형을 보면 저 좁은 틈으로 들어가 정확히 비행하며 동시에 빨간 방어시설까지 샷으로 파괴하며 진행한 뒤 빠져나와야 한다.
행성을 전부 공략하지 않더라도 오른쪽 스크린샷의 리액터를 공략해도 해당 행성계가 클리어된 걸로 처리되는데, 이걸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구불구불한 안으로 들어가 리액터를 파괴하고 제한시간 내에 탈출까지 해야 성공. 결국 이런 극악한 난이도로 인해 결국 아케이드에서 외면받는 처지가 되었고, 아타리는 그라비타를 블랙 위도우로 컨버전하는 키트를 내놓기에 이른다. 아무리 아케이드 게임은 어려운 게 당연했던 시대라지만 욕심이 과했던 것. 아케이드용은 이 정도로만 해 두고, 2600 황금기 시리즈 아타리편에서 2600 이식작을 기준으로 더 자세하게 다뤘으니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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