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몬 어택 · 메가매니아 · 피닉스

 

80년대 초의 최고 인기장르를 꼽는다면 아마 스페이스 인베이더 이후 범람한 고정화면 슈팅이 아닐까. 애초에 아타리 2600이 북미시장을 지배할 수 있게 했던 견인 소프트웨어가 스페이스 인베이더2600 이식판이었기도 하고, 90년대 초중반에는 너도나도 2D 플래포머를 만들었고 2000년대 이후 너도나도 FPS를 만들어댄 것과 비교할 만 하다. 여기서는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작품들을 주요 메이커별로 하나씩 뽑아보았다.

 

위의 세 게임은 왼쪽은 타이토 원작 아케이드 게임을 아타리가 이식한 피닉스, 가운데는 이매직의 데몬 어택, 오른쪽은 액티비전의 메가매니아. 세 작품 모두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는데, 가장 먼저 1982년 3월에 이매직이 데몬 어택으로 선수를 치자 액티비전이 동년 9월 메가매니아를 내놓고 서로 TV광고까지 동원해가며 난투를 벌이던 와중 아타리가 난입, 해를 넘겨 남코의 갤럭시안과 타이토의 피닉스 이식판을 연달아 내놓는다.

 

이매직은 구 아타리 개발자들이 이탈해 세워진 신생 스튜디오였던 데 비해 2600의 퍼스트 파티인 아타리는 물론이고 액티비전도 1979년에 이미 설립되어 시장에 자리를 잡은 상태였던 걸 생각하면 설립되자마자 화려한 데뷔전을 치른 셈. 여기에 아타리는 데몬 어택피닉스를 표절했다며 소송을 걸기에 이른다. 이미 필립스를 고소해 팩맨의 표절작 K.C.먼치킨을 판매중지시킨 전력이 있는 아타리지만 이번은 승산이 낮다고 생각했는지 이후 합의하고 고소가 취하되긴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이매직도 시장의 지배자였던 아타리가 그렇게라도 해서 견제하고 싶었던 슈퍼루키였다는 것 아닐까.

 

 

 

 

Demon Attack

데몬 어택 (1982)

 

우선 1982년 3월에 발매된 이매직의 데몬 어택. 겉보기로는 평범한 갤러그 클론처럼 보이지만 중요한 차이라면 적들이 편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불규칙한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일까. 모든 적이 동시에 등장하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가 적을 격추하면 그 빈자리를 채우듯 등장하는데, 이 등장 과정에서 화면 좌우에서 픽셀들이 나타나 중앙 어딘가에서 합쳐지며 완성되는 모습이나 적들이 날개를 퍼덕이는 애니메이션에서 이 시기 2600 게임들 중 눈에 띄는 화려한 연출을 보인다.

 

초반에 등장하는 적들 중에는 일정 고도를 유지하며 좌우로 이동하는 것들도 있지만 같은 외형의 적이라도 때로 지그재그를 그리며 화면 아래로 내려오고, 처음 스폰 위치부터 화면 아래쪽 절반에 등장해 지속적으로 샷을 쏘며 노리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치고 빠지는 타이밍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여기에 후반 웨이브에는 맞추면 분리되는 적들까지 등장하며 자칫하면 적의 수가 너무 많아지는 수도 있다. 플레이어측 샷이 날아가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적들을 편차사격하는 요령을 익히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당할 수 밖에 없는 디자인.

 

덕분에 (너무 많이 분열시키지 않는 한) 한 번에 서너마리 정도의 적들만을 상대하면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로 치면 마지막 한두마리가 남은 상태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단계, 갤러그에서 마지막 한두마리가 남은 상태에서 벌어지는 독파이트의 긴장감을 플레이 내내 느낄 수 있게 한 디자인인 것. 덕분인지 매 웨이브를 클리어할 때마다 잔기가 하나씩 늘어나며 최대 6개까지를 스톡할 수 있다.

 

게임 모드의 선택은 1, 3, 5, 7번을 선택하면 1인용, 2, 4, 6, 8번을 선택하면 2인용이 되며 숫자가 커질수록 난이도가 올라간다. 9, 10번은 2인용이지만 동시가 아니라 번갈아가면서 하는 방식.

 

 

 

 

Megamania

메가매니아: 스페이스 나이트메어 (1982)

 

1982년 9월 액티비전 발매. 데몬 어택이 소수의 적과의 독파이트를 강조한 작품이라면 메가매니아는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편대 특징을 강화시킨 느낌의 작품이다. 스테이지에 따라서 적들이 좌에서 우로 스크롤하듯 움직이거나, 지그재그를 그리며 위아래로 이동하거나, 좌우를 왕복하거나, 좌우이동 없이 수직으로 떨어지거나, 도중에 멈췄다 빨라졌다 하거 하는 복잡한 동선을 보이며 이 움직임이 상당히 빨라 제때 제거하지 못하면 어느덧 최하단까지 내려온 적과 충돌하게 된다. 샷을 통한 공격보다 이렇게 부딪혀 죽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느낌.

 

메가매니아의 다른 독특한 특징이라면 샷이 직선으로 날아가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의 좌우 이동에 반응해 궤도가 휘어진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유사 게임들 감각으로 쏘고 이동하면 샷의 궤도도 함께 휘어지기 때문에 빗맞추게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를 이용해서 직사로는 맞출 수 없는 적을 추적해 맞출 수도 있으니 사용하기 나름. 다만 이런 식으로 유도를 노리다 보면 시선이 샷을 따라가게 되다 보니 다른 적의 샷에 맞거나 어느샌가 다가온 적과 충돌하기도 하니 빠른 판단을 요구한다. 이런 유도기능이 싫다면 직사만 가능한 모드를 선택할 수도 있다.

 

다양한 패턴으로 움직이는 적 편대와 이들의 움직임에 맞춰 적을 노리는 독특한 리듬감이 매력적인 게임이지만 비주얼 디자인 면에서 좀 더 신경을 써 줬으면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서로 비슷비슷해지기 쉬운 슈팅에서는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기 위해 '분위기'란 것도 중요한데, 각 적들은 단색인데다 애니메이션도 2프레임을 반복하며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회전하는 게 전부, 여기에 적의 내용도 햄버거, 타이어, 벌레, 다이어몬드, 다리미 등 이렇다할 맥락이 없어 메가매니아의 세계관이랄 게 딱히 와닿지 않는다. 일단 설정상으로는 악몽을 주제로 했다는 것 같은데, 변명이 너무 얄팍하지.

 

게임 모드 스위치는 1, 3번이 1인용 유도/직사 모드에 해당하며 2, 4번은 2인용 유도/직사 모드. 2인용은 동시가 아니라 번갈아가면서 스코어를 겨루는 모드이다. 여담으로 이 게임의 개발을 담당한 스티브 카트라이트(Steve Cartwright)는 2600 시기에는 아케이드 스타일 게임들을 주로 만들었지만 이후 코모도어 64로 넘어가며 해커 시리즈나 86년작 에일리언즈 등을 만들기도 하였다.

 

 

 

 

Phoenix

피닉스 (1983)

 

원작은 1980년에 타이토에서 제작한 아케이드 게임으로, 2600용은 아타리가 1983년 2월에 발매했다. 이제 막 세워진 신생기업인 이매직은 물론 액티비전도 아직 중소기업 티를 벗지 못했던 시절이니 비싼 라이센스 비용을 지불하기보다 오리지널 작품으로 승부수를 던진 데 비해 아타리는 보다 여유있는 입장이었으니 아케이드 인기작의 라이센스를 사들이는 안전한 전략을 택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다수의 적이 편대를 짜서 등장하는 갤럭시안-갤러그 스타일이 아니라 비교적 소수로 등장해 복잡한 움직임을 보이며 도그파이트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두 게임이 비슷한 점이 있긴 하다. 그러나 데몬 어택의 대형 적들이 맞추면 분열하는 데 비해 피닉스의 후반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새 형태의 적들은 몸통을 정확히 맞추면 한 번에 파괴되지만 좌우의 날개를 맞추면 날개가 일시적으로 사라졌다 다시 돋아나며, 무엇보다 피닉스에는 데몬 어택에는 없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첫째는 실드. 조이스틱을 아래로 당기면 발동되며, 발동중에는 샷을 쏠 수 있지만 좌우 이동이 불가능해진다. 위 스크린샷 오른쪽에서 기체를 둘러싼 흰색 형태. 시간제한이 있어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지만 적들이 화면 하단까지 내려와 근거리에서 공격해와 회피가 어려워질 때 이를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넘길 수 있게 해 주기도 한다. 내가 제작한 인베이더 클론 나베이더에 실드 기능이 있는 건 이 게임에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피닉스가 게임사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바로 보스전과 보스의 '약점' 개념이다. 처음 몇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다 보면 거대한 UFO와 같은 보스가 등장하며, 이것이 슈팅 게임사 최초의 보스전이다. UFO 중앙에 있는 외계인에게 샷을 넣을 수 있다면 클리어. 화면 하단에서 빨간 블럭을 샷으로 파괴하며 공격이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을 내고 파란 실드를 뚫으면 되는데, 파란 실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스크롤하기 때문에 2샷째가 도착할 무렵이면 다시 막혀버리게 된다. 계속 공격하다보면 구멍난 부분이 돌아오니 그 틈으로 샷을 넣으면 끝. 이렇게 보스의 약점을 둘러싼 방어벽을 파괴하고 그 안에 있는 약점을 공격한다는 컨셉은 슈팅만이 아니라 다른 액션게임들에서도 흔히 모방된다.

 

같은 장르의 메이저 경쟁작들이 일제히 발매되며 팬덤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 건 지금까지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인데, 그럼 이 싸움의 승자는 누구였을까? 단순히 판매량을 비교하면 데몬 어택이 더블밀리언, 메가매니아가 밀리언을 달성했고 피닉스는 순위밖이니 승리자는 이매직일까? 아니면 이렇게 서드파티들이 밀리언, 더블밀리언을 달성하며 하드웨어 견인차 노릇을 했으니 결과적으로는 퍼스트 파티 아타리가 이익을 본 걸까?

 

하지만 아타리 2600로 발매된 타이틀의 수는 이미 1982년이 피크였고, 1983년까지도 다수의 타이틀이 쏟아지지만 시장의 붕괴는 이미 시작된 상태였고, 떠나가는 소비자를 붙잡기 위해 덤핑경쟁이 시작되며 다수의 메이커들이 도산한다. 이매직도 전투에는 승리했으나 전쟁에는 패배했다고 할 수 있겠지. 액티비전과 아타리도 모두 큰 타격을 입긴 하지만 당시 인기가 올라가고 있던 C64를 비롯한 개인용 컴퓨터 시장으로 피난한 액티비전과 달리 하드웨어 회사였던 아타리는 그렇지 못했고, 콘솔시장은 머지않아 닌텐도와 세가에, 개인용 PC시장은 코모도어에 치여 서서히 몰락하게 되니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가 승리자라면 역시 액티비전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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