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스 트랩 · 스머프 레스큐 · 프론트 라인
콜리코는 1982년에 발매된 게임기 콜리코비전의 퍼스트 파티이면서 경쟁 플래폼인 아타리 2600의 서드파티이기도 했다. 동키콩 클래식 시리즈를 다루면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이 시기는 퍼스트파티들이 경쟁사 하드웨어로 소프트를 내던 시기였는데, 아타리는 아타리소프트라는 자회사를 만들어 콜리코비전용 게임을 유통했고, 인텔리비전의 제조사인 마텔은 M네트워크라는 자회사를 통해 아타리 2600에 소프트를 공급했으며 콜리코는 그런 눈가리고 아웅도 없이 당당히 콜리코 명의로 아타리 2600과 인텔리비전 게임을 공급했다. 이후에도 세가가 허드슨을 통해 자사의 게임 일부를 이식작 형식으로 패미컴에 발매한 사례가 있었지만 이 시기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다.
물론 이건 이들이 선량한 이웃사촌이라 그랬던 게 아니라 단지 퍼스트파티들이 서드파티를 통제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타리 2600에는 바이오스가 존재하지 않고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파츠들로 아예 아타리 2600을 복제해 내는 것도 가능했던 정도였으며, 덕분에 콜리코만이 아니라 어떤 회사가 시장에 난입해 2600용 게임을 제작해도 아타리는 이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뭐, 아타리도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라 소송과 타협의 결과였지만. 콜리코비전이나 인텔리비전은 바이오스를 장착하고 있었기에 2600에 비해서는 피해가 적었지만 그래도 구 직원들을 영입해 롬을 역설계하는 방식으로 서드파티들이 난입하게 되었고, 아타리 역시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남의 파이라도 가져오자는 생각으로 경쟁사 하드에 소프트를 공급한 게 아닐까.
이건 내 추측이지만 콜리코 입장에서는 2600에 소프트를 공급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콜리코는 당시 아케이드 최고 히트작이던 동키콩을 시작으로 론칭 라인업을 준비하며 동세대의 어떤 콘솔보다 강력한 하드웨어로 승부수를 던졌고, 2600만이 아니라 이미 수많은 콘솔들이 각축장을 벌이던 와중에 어느정도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것만으로 충분히 이익을 내기는 어려웠던 게 아닐까. 콜리코비전과 2600의 관계는 이후 메가드라이브와 패미컴의 관계와 비슷한데, 아케이드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던 세가와 달리 콜리코는 자사의 게임 IP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수익 다변화를 위해 경쟁사 하드라도 소프트를 내고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소프트웨어 개발사로서의 콜리코의 특징이라면 자사에서 직접 기획해서 개발한 게임은 거의 없이 아케이드나 개인용 PC용으로 개발된 게임들의 이식작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자사에서 기획한 몇 안 되는 게임들도 외부 IP의 라이센스를 얻어 게임화한 작품들이다. 완전히 새로운 상품을 시장에 내놓는 건 너무 리스크가 크다고 생각했던 걸까.
마우스 트랩 (1982)
이 시기에 활동한 제작사라면 누구든 한 번은 거쳐가는 길, 팩맨클론이다. 원작은 Exidy의 1981년작으로 콜리코는 이식만을 담당했다. 미로 속의 쥐를 조작해 고양이들을 피해다니며 치즈를 먹는 단순한 게임이지만 나름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눈에 띄는데, 화면에 X자 모양의 아이콘으로 된 파워업을 먹으면 파워업이 스톡되고 버튼을 눌러 임의로 발동시킬 수 있다는 게 본가 팩맨과 비교해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일 것이다. 이 파워업은 강아지 뼈라고 하는데, 최대 4개까지 스톡할 수 있으며 발동시키면 어째선지 주인공 쥐가 개로 변신, 이 상태에서 고양이에 닿으면 일시적으로 미로 밖으로 쫓아낼 수 있다.
여기에 미로 곳곳에는 짙은 색으로 표시된 벽들이 눈에 띄는데 이것들은 '문'이다. 버튼을 길게 누르면 미로 전체의 문이 여닫히게 되며 이를 이용해 고양이의 접근을 가로막을 수도 있고, 화면 중앙에 4개의 문으로 가로막힌 지역의 치즈를 먹고 미로를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최소 1회는 문을 여닫아야 한다. 파워업을 모아두었다가 원하는 타이밍에 쓸 수 있고 이 파워업도 스테이지마다 4개씩 출현하기 때문에 고양이를 피해다니기보다 반대로 사냥하고 다니는 입장이 되기 쉽다.
난이도는 본체의 좌우 난이도 스위치로 조정한다. 좌측 스위치를 A로 맞추면 고양이의 AI가 향상되며 우측 스위치를 A로 맞추면 고양이의 속도가 빨라진다. 두 스위치 모두 B면 가장 쉬운 상태.
위는 같은 게임의 아케이드판과 콜리코비전판. 아케이드나 콜리코비전판에서는 3개의 버튼이 3색의 문에 대응되어 있어 한 번에 한 종류의 문만을 여닫을 수 있어 조작이 좀 더 복잡하며, 미로 위를 날아다니는 매가 때때로 출현하는데 (위 콜리코비전 스크린샷 중앙 부근의 보라색 스프라이트) 닿으면 미스. 파워업해 개로 변한 상태에서도 매는 쓰러트릴 수 없다. 약간의 그래픽적 열화가 있긴 하나 이 정도면 아케이드의 완전이식에 가깝다.
그에 비해 아타리 2600용으로 발매된 버전은 그래픽적인 열화는 물론 미로의 구조도 단순해지고 문도 1종류로 통일되었으며 매도 등장하지 않는 단순화된 버전. 꼭 동키콩만이 아니라 이런 게임들이 직접 비교되며 '콜리코는 2600용 이식작을 일부러 쿠소게로 만들었다'는 음모론이 퍼지는데 일조하기도 했는데 아타리 2600은 1977년, 콜리코비전은 1982년 시스템이니 편의상 같은 2세대 콘솔로 분류될 뿐 실질적으로 1세대 수준의 차이가 있는 만큼 그렇게 잘라 말하기도 힘들다.
스머프 레스큐 인 가가멜즈 캐슬 (1983)
타사 게임의 이식이 아니라 콜리코가 처음부터 직접 개발한 몇 안되는 게임들 중 하나. 2D 플래포머로서 스크롤 기능이 없이 화면전환 방식인 건 핏폴!을 참고한 것 같지만 아쉽게도 점프 버튼을 사용했던 핏폴!과 달리 콜리코는 조이스틱 위를 곧 점프로 만드는 중죄를 저지르고 만다. 방향키 4개가 다 따로있는 PC용 게임에서라면 위 버튼으로 점프하는 것도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조이스틱에서는 덕분에 원하지 않는 타이밍에 실수로 점프를 발동시키게 되기 쉬우니까. 버튼을 다른 기능에 사용해야 했다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니라 왜 이렇게 했을지 의문이다.
여기에 점프방식도 독특한데, 위를 한 번 입력하면 제자리에서 소점프, 그 상태에서 다시 좌우 방향과 함께 위를 입력하면 최초의 소점프가 끝나고 하이점프가 발생한다. 유투브에서 이 게임의 플레이 영상을 검색해 보면 대부분의 장애물을 제자리 점프 이후 롱점프로 2번씩 뛰며 통과하는 걸 볼 수 있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펜스나 개울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죽기도 쉬운데, 위 스크린샷의 거미가 있는 장면에서 그대로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계단에서 미끄러져 사망하니 점프로 착지해야 하며, 스머펫을 구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우선 의자로 점프해 올라가고 테이블 위로, 다시 스머펫이 있는 플래폼으로 점프를 해야 하는데 최초에 의자로 점프하지 못하고 땅에 착지하면 사망한다.
화면 상단의 스코어가 있는 부분에 보여지는 갈색 바는 타이머이다. 한 화면에 머무르다 보면 점차 감소하며 다 떨어지면 물론 미스. 그래도 처음에는 시간도 넉넉하고 독특한 점프에 익숙해지고 나면 그리 어렵지 않지만 2주차 이후가 되면 도중 화면에 새로운 적들이 추가되고 같은 화면이 여러차례 반복되며 구출까지 걸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개울 화면이 2번, 3번 연속으로 등장하거나, 같은 거미 화면을 3번 넘기고 나면 다시 개울이 2번 나오는 식. 화면의 종류도 위 스크린샷에 보여진 4종류와 계단 형태의 화면까지 딱 5종류라 질리기 쉽다. 덕분에 이 시기의 2600용 게임 치고는 상당히 훌륭한 그래픽을 보여주지만 좋은 게임이라 하긴 어려운 정도. 그래도 스머프 게임이라 판매는 좋았는지 어려서 이 게임을 플레이하며 독특한 조작성에 적응해버린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 같다.
프론트 라인 (1984)
원작은 물론 타이토의 1982년작 아케이드작 프론트 라인. 1984년쯤 되면 이미 아포칼립스 상태였던 만큼 엄밀히 말하면 2600 황금기에 포함시키기엔 너무 늦은 감도 들지만 같이 포함시켜본다. 아케이드 원작은 탑다운뷰 런앤건 게임의 시조같은 작품으로, 종스크롤 중심이면서도 자동 스크롤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일정 이상 올라가면 여기에 반응해 화면이 스크롤되는 구조. 전장의 이리, 이카리, 기기괴계 등의 선조라 할 수 있다.
아케이드 원작은 8방향 스틱에 더해 다이얼 스위치로 조준을 돌리고 수류탄 투척 버튼까지 따로 있었으나 아타리 2600에서는 단순화되어 조이스틱을 돌린 방향으로 총을 쏠 수 있다. 여기에 본작의 메인 기믹인 전차에 올라타는 것도 재현되었는데, 보라색 사각형 전차에 닿은 상태로 버튼을 누르면 탑승, 길게 누르면 전차에서 탈출하는 게 가능하다. 다만 버튼 수의 한계로 인해 수류탄은 삭제되었다.
이건 아마 2600의 메모리 한계가 아닐까 싶은데, 본작에서는 한 번에 최대 2마리씩만 적이 출현한다. 플레이어의 이동속도가 약간 빠르기 때문에 적당히 스크롤아웃하지 않을 만큼 한 마리 뒤에서 따라오게 하면 화면 상단에서 한 마리씩만 등장하는 걸 처리하며 진행하게 되니 난이도 자체는 그리 높지 않다.
굳이 프론트 라인을 픽업한 건 그래픽의 열화와 수류탄 기능이 삭제된 걸 제외하면 패미컴 이식판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는 정도의 좋은 이식작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아케이드판도 1스테이지 루프 구조였고 패미컴판도 마찬가지라 기대치가 낮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정글, 사막, 요새 등 원작의 구성 대부분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요새 끝가지 올라가면 검은색 포대가 있는 곳에서 스크롤이 중단되며, 이걸 파괴하면 스테이지 클리어. 이후 루프. 난이도 스위치나 게임 모드는 사용되지 않는다.
아타리 2600 황금기 #4 아타리편
스페이스 인베이더 · 미사일 커맨드 · 그라비타 2600 황금기 시리즈 4번째로 액티비전편, 미드웨이편, 20세기 폭스편에 이어 이번에는 드디어 아타리 퍼스트파티 게임들을 다뤄본다. 70년대에
ludonomie.tistory.com
아타리 2600 황금기 #5 이매직편
드래곤파이어 · 노 이스케이프! · 패덤 슬슬 아타리분이 모자라 금단증상이 오고 있으니 다시 재개해본다. 개발사편으로 이매직. 이매직은 액티비전과 마찬가지로 구 아타리 직원들이 분리
ludonomie.tistory.com
'Toponym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타리 2600 황금기 #9 대만편 (0) | 2024.05.09 |
---|---|
아타리 2600 황금기 #8 세가편 (0) | 2024.05.08 |
아타리 2600 황금기 #6 인베이더 클론편 (0) | 2024.05.06 |
아타리 2600 황금기 #5 이매직편 (0) | 2024.05.05 |
제절초 (0) | 2024.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