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OFF (2008 PC)

 

Mortis Ghost가 제작한 벨기에산 인디 RPG쯔꾸르 게임. 무료다. 영어나 한국어 패치 등도 존재하지만 여기서는 원어인 불어 그대로 플레이했다. 아래는 최대한 네타바레를 억제하며 이 게임을 소개해 보려고 애쓴 흔적인데, 이 글을 보는 얼마나 될 지 모르는 불어 능력자분들은 스크린샷에 주의하라는 말 밖에. 워낙 명장면이 많다 보니 스크린샷을 골라내기도 힘들었는데, 영어나 한국어 패치판이었다면 아마 극초반 이후의 스크린샷을 전부 제거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처음 20분 내에 알게 되는 정보정도라면 네타바레라고 할 수도 없겠지.

 

 

 

게임을 시작하면 이름을 입력한다. 주인공의 이름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이름을 입력하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주인공 배터(Le Batteur)와 별개의 캐릭터이다. 마더의 플레이어와도 일견 유사하지만 어디까지나 주인공을 가이드하고 뒤에서 응원하는 입장인 플레이어와 달리 OFF의 플레이어는 그 자체로 분명한 캐릭터이다. 배터는 처음 튜토리얼 메시지부터 '자신을 조종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져지(Le Juge)를 비롯한 일부 캐릭터들은 제4의 벽을 넘어 플레이어의 존재를 인식한다. 이 게임에서는 플레이어와 주인공을 분리시켜 배터에 감정이입할 것을 막으려 하는 것. (여담으로 여기선 일단 한국어패치의 명칭을 쓰기로 한다. 왜 번역하지 않고 음역인지, 음역이라면 왜 불어가 아니라 영어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OFF의 세계는 각각이 가디언(guardien)이 다스리는 3개의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고, 배터의 목표는 각 지역의 수호자를 제거하고 그 지역을 정화하는 것이다. 이 게임은 때로 호러로 분류되기도 하고, 적의 디자인이나 분위기가 떄로는 호러스러운 경우가 있긴 하지만 호러라기보다는 기괴(bizarre)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일본산 호러 RPG들처럼 갑툭튀, 깜놀, 고어 등의 요소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니 호러에 약하다고 해도 충분히 플레이할 수 있으니 안심하자. 호러라기보다는 언캐니 쪽이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 게임의 분위기는 상당히 유니크하다. 그래픽이 객관적으로 훌륭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반대로 이게 아니면 OFF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런 느낌. 단색으로 채색된 오버월드 위를 돌아다니는 데포르메된 픽셀 그래픽의 캐릭터들은 게임 전체에 어딘가 엇나간(OFF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만든다. 연습장에 펜 위로 그린 듯한 캐릭터 비쥬얼 및 몬스터 스프라이트들은 일본풍도, 미국풍도 아닌 방드데시네 풍이 느껴진다. RPG 장르와 게임이라는 미디엄에 대한 시나리오 전반을 흐르는 메타커멘터리, 그리고 이 게임에서 수행하게 되는 배터의 '역할'은 다른 어떤 역할수행 게임에서도 볼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여기서 조금 상상력을 발휘해 보면 야구방망이를 쓰는 주인공의 특징과 게임 전반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어쩌면 배터는 마더2 네스의 안티테제처럼 기획된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찬사를 늘어놓긴 했지만, 사실 OFF는 RPG로서는 단순한 게임이다. 난이도가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니고, 히든 엔딩을 보려고 하는 게 아닌 이상 딱히 레벨 노가다를 하지 않아도 플레이하는 게 가능하다. 전투 시스템은 쯔꾸르라는 엔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시나리오는 처음엔 다소 난해하다. lisez-moi.txt(=readme)의 한 마디를 옮겨볼까?

Q: 스토리가 전혀 이해가 안 돼.
A: 님 정상임. 게임 진행하다 보면 아마도 밝혀질 지도 모름. 보장은 할 수 없음.

 

게임의 대부분은 퍼즐을 풀면서 진행되고, 이 퍼즐을 풀기 위해 메모지, 때로는 스크린샷 도구를 상시 지참할 것을 권한다. 아이템 X를 장소 Y에 가져와라가 대부분인 RPG의 퍼즐들에 비해 OFF의 퍼즐들은 다소 정신나가고 위험한 것들이 많이 섞여있다. 이 퍼즐들에 대한 힌트는 게임 내에서 완전히 제공되지만, 그 힌트 중에는 엽기적인 것들도 섞여 있다. Zone 3 수호자의 방으로 가는 문을 여는 퍼즐의 힌트는 분명 게임 내에서 주어지지만, 그 힌트를 이런 식으로 주는 게임은 난 OFF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이 없다. (이후 두근두근 문예부!가 그나마 비슷한 기믹을 활용한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면, 게임 후반의 어느 지역에서는 캐릭터의 스프라이트가 상하로 뒤집혀 등장한다. 게임 내의 캐릭터 시점에서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겠지. 하지만..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이 얼마나 엇나간(OFF한) 모습으로 보이는가. '퍼즐을 풀라'가 아니라 이건 뭔가 좀 아닌데,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 만들면서 그 해결법을 탐색하도록 플레이어를 유도하는 것이다. 게임 내의 메시지들과 이미지들에 대해서도 상시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동시에 정말 중요한 힌트들에 대해서는 배터가 "이건 중요한 것 같다"라고 말하면서 플레이어의 주의를 환기시켜준다. 다소 머리를 굴려야 할 필요는 있지만, 대체로 어렵지는 않다.

 

굳이 예외를 두자면 Zone 1의 Alma에서 벽에 붙은 달력 이미지를 보고 NPC의 질문에 답해야 하는 장면. 이 장면을 한글패치팀에서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모르지만, 언어의 장벽이 살짝 느껴질 수 있다.

 

 

 

OFF의 가장 중요한 메타게임 기믹은 정보의 불균형 아닐까. 배터는 본인이 뭘 하려 하는지,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분명히 인식한 상태에서 플레이어의 도움을 받아 목적을 달성하지만,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그저 '이 세계의 정화'라는 배터의 표현을 믿고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지금 내가 뭘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며 사람에 따라서는 죄책감까지 느낄 지 모르겠다. 이제 와서는 이런 것도 클리셰화 되어가는 느낌이지만 등장연도가 2008인 걸 생각하면 충분히 선구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OFF는 마지막 단계에서 그동안 해왔던 것을 어느 정도는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사소한 팁이라면 게임을 시작하고 나면 너무 오래 끌지 말고 단기간에 연달아 플레이하는 게 좋다. 게임 최후반에 들어가면 그 동안 게임 내에서 거쳐온 내용들에 대한 퀴즈가 등장하는데, 다른 퍼즐들과 달리 이 퀴즈들에는 단 1번의 기회만이 주어진다. 상점에서 구입할 수 없는 고급장비를 주는 놓치기 아까운 기회기 때문에... 물론 상황상 정 기억이 안 나고 그렇다고 보상을 놓치고 싶지도 않다면 공략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공략을 보지 않고 플레이하길 원한다면 주변 환경에 주의를 기울이며 단기간에 플레이하는 게 좋다. 뭐, 그 보상들 놓친다고 큰 문제가 될 건 없긴 하지만.

 

엔딩은 총 3가지. 공식 엔딩, 스페셜 엔딩, 그리고... 숨겨진 진엔딩이 있다. 앞의 두 엔딩은 최후의 세이브 포인트 이후에 분기되기 때문에 연달아 보기는 어렵지 않은데, 이 히든 엔딩을 보기 위해서는 특별한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마지막 장까지 간 뒤에 그동안 지나온 Zone 1/2/3으로 돌아가면 각 지역들이 변해있다. 새로운 적들이 출몰하고, 보물상자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 지역들을 돌아다니면서 이 게임 세계관의 4대원소 중 플라스틱, 금속, 연기를 상징하는 아이템이 하나씩 있으니 이를 수집하자. 그러고 나면 최종 세이브 포인트 직전에서 마지막 원소인 고기를 상징하는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이후 튜토리얼 지역인 Zone 0으로 돌아가면 히든보스인 슈가를 찾을 수 있고, 슈가를 쓰러트리는 것으로 제5번째 원소인 설탕의 상징을 얻을 수 있다. 후에 이 5개의 상징들을 '양자리의 카드' 혹은 게임 내 최강 무기와 교환할 수 있게 되는데, 양자리의 카드를 가진 상태에서 최종보스를 쓰러트리면 이 히든 엔딩이 등장한다.

 

다만 이 히든 엔딩은 사일런트 힐UFO 엔딩이랑 같은 라인의 개그 엔딩인 만큼 굳이? 라고 생각된다면 보지 않아도 전체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뉴 홈

뉴 홈 (2014) FelixTheJudge에 의해 만들어진 OFF의 파생 게임. GameJolt를 통해 공개되고 있다.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플레이어와 조작 캐릭터가 분리되어 있고, '인형'이라 불리는 이 조작 캐릭터는 본

ludonom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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