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Unfinished Swan

언피니시드 스완 (2012)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게임들을 다수 발매한 안나푸르나 인터랙티브에서 소니 플래폼으로 발매했던 1인칭 어드벤처 겸 퍼즐 플래포머. 개발은 이후 에디스 핀치의 유산을 제작하는 자이언트 스패로우에서 맡았으며, 최초에는 PS3로, 2014년에 PS4와 비타로 이식되다가 2020년에 기타 플래폼들로 발매되었다. 당시에는 PSN을 통해 비타판을 구입해 플레이했었지만 비타를 처분한 지 오래라 스팀판을 다시 구입했다. I am hogu.

 

동화적인 분위기의 그림책같은 게임이지만 내용은 제법 무거운데, 프롤로그에서 소년 몬로의 엄마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그림을 시작하기는 잘 해도 끝내지를 못해 300여점의 미완성 그림만을 남기고 죽었다는 걸 알게 된다. 몬로는 고아원에 들어가게 되며 이 그림들 중 한 점만을 간직할 것을 허락받게 되고 엄마의 그림들 중 '미완의 백조'를 선택. 그러나 어느날 백조가 그림에서 뛰쳐나와 본 적이 없는 문으로 도망치게 되고, 몬로가 엄마의 붓을 들고 백조를 쫓아가며 게임이 시작된다.

 

 

 

게임은 총 4장으로 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완전히 1인칭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완전히 다른 플레이 메카닉을 보인다. 1장 '정원'에서는 처음에 순백의 화면에서 시작해 뭐가 어찌 돌아가는지 어리둥절할 수 있지만 화면 중앙에 조준경이 보이며, 마우스를 클릭하거나 컨트롤러로 버튼을 누르면 검은 페인트탄이 날아가며 그 주변의 환경이 드러난다. 이와 같은 식으로 몇 번인가 주변에 먹칠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오브젝트들이 드러나게 되며 이를 이용해 주변을 탐사하고 길을 찾는 것.

 

게임 내에 등장하는 주요 오브젝트들은 컬러코딩으로 쉽게 눈에 띄게 놓여 있다. 초반에는 노란색으로 된 백조의 발자국을 따라 진행하면 되고, 그 외에도 스토리 요소들이 있는 오브젝트들이 노란색으로 되어 있다. 빨간색으로 된 오브젝트는 대개 페인트탄을 맞춰 작동시키는 오브젝트들로 어디에 어떻게 놓여있는가에 따라 기능이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게임 진행을 위해 최소 한 번씩은 사용해야 한다. 

 

어째선지 이 게임의 트레일러부터 시작해 대부분의 영상리뷰나 기사들도 이 1장의 모습만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 1장은 그리 긴 챕터도 아니고 구성도 단순한 편이라 왜 이 1장에만 관심이 모이는지는 나로서는 미스테리다. 아무래도 독특한 탐사 메카닉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는 챕터라 홍보용 트레일러에서 여기에 주목시키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반대로 1장 영상만 보면 이 게임이 결국 흔한 워킹 시뮬레이터일 뿐인 것으로 오해하게 될 수도 있다. 사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오해하고 구입했다 도중에 놀랐고 말야.

 

 

 

2장 '미완의 제국'에서는 주변 환경이 순백이긴 하나 분명히 형체가 묘사되는 평범한 1인칭 3D 플래포머의 형식으로 바뀐다. 2장으로 들어오면 검은 잉크가 아니라 물대포를 쏘게 되며 이를 이용해 일부 물체와 인터랙트할 수도 있지만 메인 기믹은 덩굴. 덩굴에 물을 쏘면 그 자리에 덩굴이 자라나며 이를 이용해 벽을 타거나 다리 밑으로 덩굴을 자라게 해 그 아래에서 줄기를 붙잡고 건너거나 하게 되며, 전체 게임에서 가장 길고 플래포밍 요소가 많은 구간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주의사항으로 언급하고 싶은 점이 하나 있는데, 여기서부터 3D 멀미가 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나는 원래부터 3D멀미에 약한 편이지만 비타로 플레이했을 때는 화면이 작아서 그런지 당시엔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PC로 플레이하면서는 1장에서부터 슬슬 느낌이 이상하더니 2장 도중에 드러눕고 말았다. 이후 재시작해 옵션을 조절해 보려고도 했지만 기껏해야 마우스 감도 정도 외에는 이렇다할 옵션도 없고. 3D 멀미는 개인차가 크긴 하지만 나로서는 이렇게 게임하다 드러누워보긴 매니폴드 가든 이후 처음이었다.

 

여기에 하필이면 전체 게임 중 가장 긴 챕터가 2장이기도 하니... 스팀에서 보여지는 부정적인 리뷰들이 대체적으로 지적하는 것도 이 부분. 일단 너무 밝고 카메라 높이도 호빗 시점인데다 진행 가능한 루트를 찾기 위해 카메라를 사방으로 돌려야 하고 여기에 플래폼 점프액션까지 들어가니 쓰러지는 사람이 생길 수 밖에. 덕분에 몽환적이고 아름다우며 독창성이 돋보이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조건부로밖에 권할 수 없다.

 

 

 

3장 '심야'의 전반부에서는 페인트탄으로 맵 곳곳에 있는 등불을 밝히거나 둥근 빛나는 구체를 이동시키며 이를 따라가며 진행된다. 어둠 속에는 눈만 빨갛게 빛나는 괴물들이 보이고, 이것들이 가까이 있는데 빛이 없는 곳으로 들어가면 공격당하는 연출과 함께 체크포인트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 게임 유일의 '적' 요소.

 

그렇게 주변을 탐색하다 어느 성문 앞으로 돌아오면 새로운 메카닉이 추가되는데, 심야의 세계와 밝은 그림속 세계를 오가며 플레이어가 그림속 세계에서 임의로 특정 장소에 플래폼을 그려넣으면 심야의 세계에 그 플래폼이 구현되어 이를 통해 새로운 에리어로 들어가게 되는 식이다. 이 3장의 메카닉은 이것만 떼서 별도의 게임으로 만들어도 좋았을 것 같은 느낌인데, 제작사는 게임 전체가 하나의 메카닉에 의존하길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꽤 재미있는 메카닉이지만 슬슬 손에 익었다 싶으면 이미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3장 전체가 그리 길지 않은데 그 중에서도 후반에만 잠깐 등장하는 요소다 보니 아쉬움이 남는 것.

 

그나마 3장에서는 그나마 멀미 요소가 줄었다. 어두운 곳에서 빛을 찾아 이동하는 구성상 상대적으로 다음 루트로 가는 길을 발견하기 쉽고, 그림 속 세계는 2장처럼 지나치게 밝지만 심야의 세계로 돌아오면 다시 어두워져 눈이 편하며 플레이어에게 요구되는 동선도 비교적 얌전한 편이라 여기서부터는 다시 견딜 만 했다. 

 

 

"그리고 깨달았지. 모든 게 무너졌지만 슬프지는 않았어. 즐거웠으니까. 다시 하라고 해도 할 거야."

4장은 에필로그로 그동안 스토리 내내 언급되던 '왕'과 대면하며 1~3장의 모든 메카닉들이 짧게 한두번씩 사용되고 엔딩으로 이어진다. 몬로의 아버지이기도 한 '왕'은 자신의 인생을 걸고 만든 순백의 정원도, 거대한 미궁과 도시도, 자신이 존재했다는 흔적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 만든 거대한 동상도 결국 완성되지 못하고 어느 것 하나 미완의 상태로 끝나게 되지만 끝내 자신도, 그의 모든 업적도 언젠가 사라질 것임을 납득하고 몬로에게 붓을 넘긴다.

 

어느 것 하나 완성하지 않고 미완의 상태로 남긴 몬로의 엄마와 불멸의 업적을 추구하며 애쓴 아버지 '왕'은 삶을 대하는 두 가지 대조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1장의 순백의 정원은 몬로가 잔뜩 먹칠을 해 버렸고, 2장의 성 역시 몬로의 손에 의해 덩굴로 뒤덮혀버렸지만 왕은 거기에 대해 더 이상 화를 내지도 않는다. 이미 완성될 수 없었다는 걸 깨닫기라도 한 듯이 후대에 붓을 물려주며 퇴장하고, 몬로는 이 모든 일의 시발점이었던 그림 '미완의 백조'를 자신의 손으로 완성하며 끝난다. 한 세대의 업적은 그 세대에서는 끝날 수 없고 다음 세대의 손에 의해 매듭지어진다는 이야기일까.

 

본작의 결말과 주제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해석이 크게 달라질 것 같은데, 시작하기만을 좋아하고 끝내지 못한 엄마, 완성을 추구했지만 끝내 이를 이루지 못한 왕, 그리고 그들의 유산을 보며 자기 나름대로 매듭을 짓는 몬로 중 어느 쪽에 감정이입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언피니시드 스완은 인사(人事)의 무상함을 말하는 오즈만디아스일까, 아니면 다음 세대로의 이어짐을 말하는 작품일까? 

 

 

에디스 핀치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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