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 홈 (2013)
1995년 6월. 케이티 그린브라이어는 오랜 유럽 체류를 끝내고 오리건으로 돌아온다. 가족은 케이티가 자리를 비운 사이 새 집으로 이사한 상태였는데, 집에는 아무도 없고 동생 여동생 사만다(샘)이 남긴 자신을 찾지 말아달라는 메모를 발견한다. 물론 그렇다고 얌전히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게임이 진행되지 않을 테니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가족들과 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집 곳곳에 흩어진 힌트를 통해 맞춰나가기 시작한다.
곤 홈은 풀브라이트(Fullbright)에서 제작, 안나푸르나에서 유통한 워킹 시뮬레이터로, 디어 에스더나 에디스 핀치의 유산과 같이 주어진 환경 내를 탐험하며 스토리 요소를 해금해 나가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풀브라이트는 당시 바이오쇼크 2의 확장팩을 개발하던 직원 셋이 독립해 세워졌으며, 곤 홈이 발매된 후 현재는 창립자 중 하나인 스티브 게이너(Steve Gaynor)만 남아 이제는 1인기업이라 한다.
플레이어는 케이티를 조작해 4인가족이 살기에는 쓸데없이 넓은 이 저택을 뒤지며 샘의 일기장 기록을 발견하며 가족, 특히 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추적해 나가게 된다. 도중에 간단한 어드벤처 요소가 있기는 하나 미미한 수준이고, 저택 맵을 참고해가며 플레이하면 느긋하게 모든 텍스트를 숙독하며 진행해도 2-3시간이면 클리어할 수 있는 구성. 당시 평론가들이 찬사를 보낸 것과 별개로 스팀 페이지 등을 보면 평가가 '복합적'인데, 이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리뷰들을 요약하면 다음 3가지 포인트로 나뉘는 것 같다.
첫 번째 문제는 도입부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 스토리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와중에 눈 앞에 보이는 거대한 저택,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기대했던 것과 달리 집에는 아무도 없고 응접실로 첫 발을 내딛으면 불안한 배경음악과 함께 조명이 점멸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미스테리물이나 호러물처럼 보이기 쉽고, 여기에 초반에 입수하는 힌트들을 보면 이 저택이 주변에서는 '싸이코 저택'이라 불리며 뭔가 사건이 발생했다는 뉘앙스를 풍기지만 사실 곤 홈의 그린브라이어 맨션은 평범한 가정집일 뿐이다. 서스펜스나 미스테리를 기대하고 들어왔던 사람이라면 당연히 실망할 수 밖에 없다.
두 번째는 가격. 이 정도 분량의 게임에 20달러는 너무 세다. 주인공의 어머니 재니스의 불륜이나 아버지 테런스의 작가 커리어 등 서브플롯도 전모가 온전히 드러나진 않으며, 넓은 저택을 탐사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보이고 있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방마다 들어가 인터랙션 가능한 오브젝트들을 하나씩 뒤지는 게 전부이니 내용 부족을 느끼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정당한 비판이다. 여기에 내가 한 가지 더 붙이자면, 내용상으로는 저택을 탐사하면서 샘의 일기 내용이 해금되며 보이스로 재생되는데 세상에 일기장을 조각조각 나눠서 집 곳곳에 흐트려놓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또 일기와 관계 없는 엉뚱한 오브젝트를 집어들었는데 나레이션이 들리기 시작하면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이래서는 어드벤처 게임이 아니라 어드벤처를 어설프게 흉내냈을 뿐인 게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만약 주인공이 케이티가 아니라 샘이고, 집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둘러보며 회상을 이어가는 방식이었다면 그리 어색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좀 더 어려운 부분인데, 스토리 자체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본작의 실제 주인공은 케이티가 아니라 여동생 샘이며, 샘이 남긴 일기를 발견하면서 이 저택으로 이사온 뒤 샘에게 있었던 일들을 발견하며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샘이 로니라는 여자아이를 만나며 레즈비언 관계가 되지만 부모를 비롯한 주변인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며 답답해하는 과정을 바라보며 플레이어에 따라서는 그냥 생리적으로 공감할 수 없었던 것 아닐까. 이렇게 말하면 PC충들은 입에 게거품을 물겠지만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이 이들의 관계를 비극적으로 묘사해 플레이어에게 감정을 투사하려 하는 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평론가들이 이 게임을 치켜세운 것에 대한 반감을 느꼈다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곤 홈은 그 자체로 글러먹은 게임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후의 명작으로 칭송할 만한 게임도 아니다. 퀴어 소재를 다루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평가를 높여줘야 할 이유도 없고, 거기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우리가 뭔가에 공감할 수 있는가 아닌가는 우리가 살면서 경험으로 쌓아올린 주관성의 틀 속에서 결정되고, 내가 총 한자루 들고 전장에 나가는 군인에 공감하지 못 하듯 어떤 사람이 레즈비언 소녀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는 거지. 굳이 말하자면 이 게임 자체의 잘못보다는 퀴어물이라고 해서 무리하게 곤 홈을 명작으로 띄운 PC 평론가들이 문제였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