メタルスレイダーグローリー

메탈 슬레이더 글로리 (1991)

 

중고로 산업용 로봇을 구입한 주인공 히무카이 타다시. 여자친구 에리나, 여동생 아즈사와 함께 첫 기동을 시켜보는 와중 이것이 메탈 슬레이더라 불리는 군용 로봇임을 알게 된다. 자신에게 이걸 판매한 겐이라는 딜러는 잘 자기는 잘 모르고 대기권 밖의 콜로니 35구에서 들여온 것이라며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면 스스로 방문해 보라 하며 달기지에 주차된 자기 우주선을 빌려주기로 한다. 이에 세 사람은 셔틀을 타고 달로 향하는데...

 

메탈 슬레이더 글로리는 이런 덜떨어진 도입부로 시작되는 패미컴 황혼기에 발매된 어드벤처 게임으로, 제작사는 HAL. 그래픽적으로 패미컴의 한계에 도전했다는 평을 받는데, 실제로 화면을 채우는 인물과 배경, 메카 등의 치밀한 CG가 눈을 끈다. 얼핏 보면 그냥 그림을 크게 그리면 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기 쉬울 수도 있지만 기술적으로 그렇지 않다. 일단 간단한 예시로 아래 드래곤퀘스트 III 패미컴판의 스프라이트를 보자.

 

 

 

모든 캐릭터가 단 3개의 색깔 + 배경의 검은색으로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패미컴의 모든 그래픽은 8x8 픽셀 단위의 타일을 조합해서 만들어지며, 각 8x8 타일에는 총 56색 중 3색만을 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2진수로 표시하면 00, 01, 10, 11의 4종류로, 바이너리라면 00, 01, 10, 11의 2비트 데이터에 투명을 포함한 4가지 색상을 대응시키는 것. 모든 배경과 캐릭터 스프라이트는 이 8x8 타일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타일들은 다시 32*30 그리드 위에 배치되며, 8*8 픽셀 타일을 32*30 그리드로 배치하면 256*240. 즉 패미컴의 표준 해상도가 나온다. 

 

패미컴이 그려내는 모든 그래픽은 배경 아니면 스프라이트이다. 주인공이나 적, 탄알 및 각종 이펙트처럼 동적인 움직임을 필요로 하는 요소들은 스프라이트로 처리되지만 한 번에 그릴 수 있는 스프라이트의 수에는 제한이 있고, 스프라이트가 화면을 가득 메울 때 깜빡임이 발생하는 건 이 때문이다. 그에 비해 배경은 동시에 깜빡임 없이 더 많이 그려넣을 수 있지만 그리드 형태로 배치되기 때문에 서로 겹치거나 상하, 좌우로 반진시킬 수도 없다. 여기에 배경은 8*8 타일을 2*2로 배치한 형태, 즉 16*16마다 동일한 팔레트를 사용하게 되어 있다. 하나의 16*16 배경 오브젝트에 3개 이상의 색이 들어갈 수 없다는 의미.

 

덕분에 패미컴으로 디테일이 풍부한 그림을 표시하려고 하면 첫째는 물론 전체 해상도가 발목을 잡고, 둘째는 총 56색밖에 고를 수 없는 팔레트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며 마지막으로 3색 이상을 쓰려고 할 때 팔레트의 경계선인 16*16을 항상 의식해 경계선이 눈에 띄지 않도록 색의 배치와 구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메탈 슬레이더 글로리처럼 화면을 가득 채우게 그려넣는다면 그만큼 많은 8*8 타일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니 고용량 ROM을 필요로 하는 건 덤. 여기에 부분적이든 전체적이든 애니메이션을 넣는다고 한다면 그림의 일부는 배경으로, 일부는 스프라이트로 처리하거나 배경 타일을 실시간으로 교체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메탈 슬레이더 글로리는 패미컴의 제한된 타일셋 팔레트 제한에도 불구하고 제법 복잡한 그림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으며, 여기에 대사가 출력될 때 입이 움직이고 눈을 깜빡인다거나, 고개를 돌리거나 물건을 건네는 등의 간단한 애니메이션까지 구현되어 있어 CG 면에서는 여타 동일 장르의 게임들이 따라올 수 없는 비주얼을 보인다. 아니, 눈을 깜빡이거나 대사 표시에 맞춰 입이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은 차세대기에서도 드문 연출이고, 사실상 이걸 감상하기 위한 게임인 셈.

 

 

 

게임은 내용상 커맨드 선택형 SF 로봇물 어드벤처 게임이다. 상기한 도입부를 현대 기준에서 다시 생각하면 나는 트럭이라 생각하고 중고차를 샀는데 정작 그건 군용 장갑차나 탱크였고, 그걸 탑승해 보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으며, 이걸 판매한 딜러도 자기가 뭘 매매했는지도 몰랐다는 수준의 이야기인 것 같은데. 아무튼 달기지의 스테이션이나 우주 콜로니 35거주구 등에서 이 로봇의 정체에 대해 탐문을 시작하며, 칵핏에서 발견한 V-MH라는 코드번호를 토대로 8년 전 히무카이 마사타다라는 파일럿이 사용하고 있었음을 듣게 된다. 히무카이 마사타다는 타다시의 아버지. 의문은 더욱 깊어지고, 8년 전에 35거주구를 둘러싼 전쟁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며, 이는 35거주구가 모종의 이유로 지구의 중앙정부에 반란을 일으킨 사건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이에 일행은 달기지의 어느 메카닉에게 메탈 슬레이더를 보여주며 이 기체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지를 문의하고 여기서 첫 번째 힌트를 발견한다. 메카닉은 눈 앞에 있는 메탈 슬레이더는 당시 단 1기 생산되었던 특수한 메탈 슬레이더 '글로리'의 레플리카일 거라 상상하지만 타다시 일행은 이게 진품인 걸 알고 있지만 입을 다문다. 이 세계의 세관은 뭘 하길래 이런 게 반입되는 걸 방치하는 거지. 아무튼 그의 설명에 따르면 양산되지 않은 시제기의 제식번호는 설계자의 이니셜과 테스트 파일럿의 이니셜을 하이픈으로 연결한 것이라 하며, V-MH에서 MH가 히무카이 마사타다의 이니셜이라면 V가 설계자일 것이고, 8년 전 대부분의 메탈 슬레이더를 설계한 비바체라는 인물이 설계자가 아닐까 추측한다. 아쉽지만 그의 행방은 현재 알 수 없다.

 

여기에 메카닉의 도움을 받아 칵핏에서 발견한 디스크를 넣고 재생을 시도해 보는데, 뭔가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아즈사가 뛰어들며 오빠 너무 좋아-! 라는 대사를 친다. 이 때 아즈사가 갑자기 뛰어들며 실수로 녹음 버튼을 눌러버린 덕분에 디스크의 내용물을 듣기도 전에 아즈사의 오빠 너무 좋아라는 대사로 덮어씌워져버린다. 아니, 이 디스크는 패미컴 카트리지보다도 용량이 없고 중요한 메시지일지도 모르는데 읽기전용 잠금도 되어있지 않았으며 이 미래로봇의 인터페이스에는 덮어씌우겠냐는 확인조차 없단 말인가.

 

 

 

일행은 낙담하고 일단 밥을 먹으러 가는데, 우연히 비베이스(Vivace)라는 이름의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에리나가 혹시 Vivace의 발음이 비베이스가 아니라 비바체가 아닐까 더올리며, 웨이트리스를 불러 물어보니 그 발음이 맞다고 확인해준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메탈 슬레이더 설계자 비바체에 대해 물어보지만 당연히 아는 게 없을... 것 같던 웨이트리스는 35구의 어느 위치를 나타낸 지도를 그려 타다시 일행에게 넘겨준다. 35구는 달기지와 떨어져 독립적으로 지구궤도에 존재하는 콜로니지만 이 세계에서는 차 타고 옆동네 가는 정도의 느낌이다.

 

그런데 그렇게 다시 35구로 향하는 도중 선체에 충격이 느껴지게 되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선내를 돌아다니며 에리나와 아즈사를 찾던 타다시. 샤워실에서 이제 막 나와 타올로 몸을 두른 에리나를 발견하고 잠시 뒤 아즈사가 어디서 탑승했을 지 모르는 소년과 대화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이름이 무엇이고 어디서 왔는지를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 소년, 에리나와 바톤터치해 소년에게 다시 말을 걸려고 시도해 보지만 갑자기 소년이 외계의 괴물같은 모습으로 변신, 아즈사를 데리고 외우주로(?!) 납치해 버린다. ...아니, 우주선 벽에 구멍 뚫고 도망치는데 이 시점에서 우주선에 구멍 뚫리고 죽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인간은 외우주에 노출되면 죽는다구.

 

그런 해프닝을 겪으로 35구로 돌아온 타다시와 에리나. 비바체 웨이트리스가 전해준 지도의 지점으로 찾아가니 그곳은 햄버거 가게가 있을 뿐이었고, 이곳의 직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아는 게 없는지 물어본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던 캬티라는 이름의 직원은 곧 태도를 바꿔 두 사람을 안쪽으로 안내하는데, 그 안쪽은...

 

 

 

다수의 메탈 슬레이더들이 보관된 지하기지. 8년전의 전쟁은 사실 반란같은 게 아니라 이계생물체들과의 교전이었으며, 이 이계생물체들은 인간으로 변신해 인간사회에 잠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구 중앙정부의 군에는 일부러 보고하지 않고(?!) 자기들의 사설군대로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캬티 본인도 햄버거집 알바를 가장하고 있었을 뿐 이 수상한 무장단체의 리더였는데, 설명에 따르면 중앙군을 움직였다가 이계생물체들이 거기에 침투해 들어가면 더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기밀유지가 중요한 건 알겠지만 당시 전쟁을 겪은 소수의 당사자들이 전쟁의 존재 자체를 은폐하고 우주궤도에 수십개는 존재할 일개 콜로니 하나의 가용자원만으로 자칫하면 인류의 존망이 걸린 싸움에 대비하고 있다...? 머리가 아파온다.

 

여기에 주인공이 어쩌다 구입한 글로리는 단 1기만이 제작된 걸로 모자라 테스트 파일럿 히무카이 마사타다 한 사람만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기체로, 그 외의 다른 인물은 탑승해 기동도 안 되게 만들었지만 그 아들인 히무카이 타다시는 원래의 주인으로 인식되었다. 음... 이 세계의 안면인식의 수준은 우주기술에 비해 그리 높지 않은 모양이군. 그런데 마사타다는 이걸 타다가 전사했으니 시험이 끝나지도 않은 시제기를 전장에 투입했고, 그것도 전속 파일럿이 사망하면 파일럿을 변경할 수도 없게끔 설계했고, 덕분에 우연히 그 로봇을 손에 넣은 아들이 유일한 파일럿이다... 로봇물에 흔히 보이는 클리셰 조합이긴 한데, 솔직히 이런 병신같은 설정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을 이해할 수 없다. 뭐, 누구나 탈 수 있었다면 글로리를 양도하고 적당히 사례금을 받아 스토리가 종료되었을테니 주인공을 파일럿으로 만들기 위한 같잖은 변명이라고 치고 넘어가자. 설계자인 비바체가 정말 위급한 상황에 기체에 넣으라는 말을 남겼던, 내용이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르는 금색 디스크를 받고 아즈사를 찾으러 간다.

 

 

 

아무튼 이 과정에서 아즈사를 납치한 외계인이 8년전의 그 이계생물체들임을 알게 되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캬티와 함께 아즈사를 찾으러 달의 뒷면에 있다는 03구역으로 향하게 된다. 이전까지는 커맨드 선택식이면서도 그 상황에 맞지 않는 불필요한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아 모든 커맨드를 하나씩 시험해 보면서도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고 템포가 빠른 전개를 보여주었지만 여기서 갑자기 전개가 답답해진다. 무작정 여기 어딘가에 있을 아즈사를 찾아다니며 3층으로 나눠진 10여개의 방을 하나씩 조사해야 하지만 일부 방들은 문이 잠겨있고 도중에 조우하는 이계생명체를 쓰러트린 뒤 그 시체를 반복해서 조사해야 카드키를 얻을 수 있다.

 

아즈사가 있는 방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여기에 아즈사가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여기에서 '때린다'를 선택하면 손 아이콘이 나타나고, 원하는 위치로 가져가면 에리나가 콩콩 두드리며 조사를 하게 되는데 아즈사는 카드키를 필요로 하는 방들 중 하나의 환풍구 안에 갇혀있다. 이 환풍구를 선택해 '때린다'를 선택하면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고 할 뿐이지만 같은 곳에 '때린다'를 3번째 실행하면 환풍구가 뜯어지며 그 안에서 정신을 잃은 아즈사를 발견하게 되는 것. 통로와 방의 디자인은 계속 반복되기 때문에 '환풍구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도 모든 방에 들어가보며 환풍구를 콩콩 때리기를 계속 반복해야 하는 셈이다.

 

이계생명체들이 왜 하필 아즈사를 납치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은 없지만 등장인물들이 나름대로 추측을 하는데, 위에서는 설명을 생략했지만 죽은 남매의 어머니는 향수 제작자였고, 아즈사의 목걸이에는 어머니가 만든 마지막 향수가 담겨있었다. 아즈사가 여기에 납치되어 외계인들에게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향수 목걸이가 깨졌고, 에리나는 아즈사를 구출했을 때 맡았던 향이 글로리의 칵핏에서 느껴졌던 것과 같은 향임을 지적한다. 이계생명체들의 목적이 글로리였다면 이를 직접 파괴하려 들지 않은 것이 이 향에 거부감을 느껴 접근할 수 없었던 것이며, 아즈사를 환풍구 안에 쳐박아놓고 방치했던 것도 그 냄새 때문이 아닐까라고 하는데... 지극히 억지스럽게 느껴지지만 강제로 납득당하고 계속 진행해 본다.

 

 

 

아즈사를 데리고 35구로 돌아오니 이미 35구는 외계생물체들의 공격을 받은 뒤였고, 다수의 메탈 슬레이더들이 보관되어 있던 사설군의 기지도 파괴되어 있다. 캬티와 함께 비상집합 장소로 향하는 일행, 이 사설군의 실질적인 통수권자가 이 콜로니의 총책임자이기도 했던 스키느라는 걸 알게 된다. 스키느는 이 때를 위해 준비한 거대 전투함 'T-스토크' 발진을 위한 에너지 충전을 개시하는데, 여기서 제기되는 의문. 이계생명체들은 정확히 기지가 위치해 있던 햄버거집을 노려 공격했다. 이 장소를 어떻게 파악했을까? 사실 여기에 내통자가 있었다는 게 아닐까?

 

이제 그동안 등장했던 주연, 조연들 중 누군가를 사실 인간이 아니라 인간으로 변신해 있던 이계생명체일 것이라 지목해야 하는데, 위 아즈사 수색에 이어 자력으로 플레이한다면 진행이 막히게 되기 쉬울 2번째 포인트가 이곳이다. 정답부터 말하자면 잠복해 있던 외계인은 스키느의 비서 사야코. 다소 차가운 인상이라는 걸 제외하면 이렇다할 수상한 포인트도 없고, 그동안 등장이 많았던 것도 아니라 뜬금없이 느껴지게 되는데, 여기에 그럴 리가 없다고 대답하는 에리나를 몇 번이고 무시하고 사요코를 계속해서 지목하며 총 7번의 선택지에서 사요코가 이계생명체라고 우겨야 한다. 보통이라면 그렇게까지 반복하기 전에 아닌갑다 하고 다른 사람을 지목하려 하겠지. 그렇지만 그 때 마침 정신을 차린 아즈사가 등장하고, 아즈사의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를 맡은 사요코는 변신이 풀리고 도망친다.

 

이후 이계생물체의 거대한 모선이 등장, 35구를 통째로 파괴하며, T-스토크가 여기에 대해 영격에 나서고 각 메탈 슬레이더들이 출격한다. 주인공은 글로리에 탑승하고, 혼자 보내지 않겠다는 에리나 역시 남는 메탈 슬레이더에 탑승해 타다시와 페어를 이뤄 전장에 나서는데... 아마추어들이 이렇게 해도 되나. 에리나의 말에 따르면 자기도 오퍼레이터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난 군대를 안 가서 모르지만 2종보통 있다고 바로 전차 몰 수 있는 건 아닐 거 같은데.

 

 

 

우주전에 들어가면 다양한 종류의 외계인들이 순차적으로 나타나는데, 무기의 선택지가 다양하게 존재하긴 하지만 모든 적에 대해 아무 무기로 공격을 해도 무방하다. 무기를 선택하면 조준경이 뜨며 이걸 맞추면 슈퍼로봇대전같은 연출이 간단히 나오며 적이 파괴되며, 적이 먼저 미사일로 공격을 해 왔다고 하더라도 미사일 자체를 요격해 파괴할 수 있다. 예외로 적이 '에너지 볼'을 쐈다면 이건 요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늦기 전에 회피를 선택해 줘야 하며, 어쨌건 시간제한이 있는 만큼 최상단 선택지를 선택하면 1. 빔 건으로 공격한다 → 1. 에리나에게 공격시킨다로 이어져 주인공은 정작 아무것도 안 하고 에리나에게 싸움을 맡겨버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T-스토크의 주포에서 크고 아름다운 빔이 발사되어 외계인의 요새에 명중하지만 요새는 침묵하기는 커녕 크고 아름다운 빔으로 맞대응을 해 오고, 일시적으로 T-스토크와의 통신이 끊어진다. 아즈사의 안위를 걱정하는 주인공, 이전에 기지에서 받은 비바체의 디스크를 칵핏의 드라이버에 넣는다. 그러자 비바체의 음성메시지가 출력되고 이 디스크는 글로리의 최종무기의 열쇠이며 오직 히무카이 마사타다만을 위해 준비한 것이라 설명되고,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신체인식과 패스워드, 그리고 음성데이터로 3단계에 걸친 인증이 진행된다.

 

애초에 이 기체가 주인공 타다시를 아버지 마사타다로 착각해 문제없이 기동되고 있었던 만큼 첫 단계는 무사 클리어. 2단계 패스워드는 힌트도 없이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데, 정답은 AZUSA. 그리고 3단계 음성데이터 인식은 아즈사의 목소리를 재생해야 하는데, 아까 아즈사가 뻘짓으로 덮어씌운 디스크를 재생하자 모든 인증이 종료, 글로리에 실린 최종병기의 사용이 허가된다. 시나리오 라이터의 머리속에서는 이게 뜨거운 전개로 느껴졌을 지도 모르겠지만 난 한여름에 오한이 드는 느낌이었다.

 

 

 

비바체의 메시지에 따르면 글로리의 최종무기의 범위는 최대 50km. 너무나도 위험해 마사타다 외의 인간이 쓸 수 없게 하고 글로리 외의 기체에는 싣지도 않았다고 하는데, 아니 그럴거면 왜 만들었어. 하지만 외계인 요새의 크기가 무기의 유효반경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최종무기만으로는 파괴할 수 없다고 판단한 타다시는 요새가 다음 주포 공격을 해올 때 그 발사구에 최종무기를 꽂아넣을 계획으로 다른 메탈 슬레이더들이 퇴각하는 와중에 홀로 요새에 뛰어든다. 이후 요새는 예상대로 파괴되고, 오빠는 어디가고 혼자 돌아왔냐고 묻는 아즈사를 에리나가 타다시는 반드시 돌아올 거라며 클리셰같은 위로를 한 뒤 저 멀리에서 글로리가 모습을 드러내 T-스토크로 귀환하며 장대한 서사의 막을 내린다.

 

뭐, 이렇게 스토리를 설명하며 이게 말이 되냐고 까대긴 했지만 작품 제작시기를 생각하면 쇼와를 벗어나지 못한 인간들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스토리에 뭐 특별한 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른다. 또 어디선가 본 듯한 전개들이 계속 이어지긴 하지만 달리 말하면 자기들의 능력을 벗어나는 무리한 실험을 하지 않고 로봇물의 왕도적 전개를 따랐다고 생각하면 인상에 남는 부분은 없지만 충분히 볼 만한 스토리긴 하다. 사실상 그래픽을 감상하기 위한 게임이니까.

 

HAL은 이 게임의 제작에 4년 이상의 긴 시간을 투자했고, 끝내 발매된 건 1991년. 이미 슈퍼패미컴이 시장에 나온 이듬해였기 때문에 HAL 입장에선 이거 발매해도 제작비 회수가 가능할까 불안이 있었으며, 독립된 기업이었던 HAL이 도산하게 된 원인이 이 게임에 들어간 제작비를 회수하지 못해서라는 썰이 있다. 일단 공식적으로는 그런 일 없고 판매도 자기들 예상보다 순조로워 제작비를 충분히 회수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정말인지 체면치레인지는 당시 HAL 직원들만이 알겠지. 확실한 건 이 작품 이후 HAL이 독립된 기업으로 유지되지 못하고 그 게임개발 부문이 닌텐도의 세컨드 파티로 흡수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본작은 슈퍼패미컴으로 리메이크되며 메탈 슬레이더 글로리: 디렉터즈 컷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되는데, 패미컴 말기에 등장한 원작처럼 이 리메이크판도 이미 닌텐도64가 시장에 나온 지 1년이 지나 2000년에 발매되었다. 슈퍼패미컴판도 기기의 성능에 맞춰 정성들여 SFC 탑레벨의 CG를 보여주지만, 시기가 시기라 여전히 일본에서도 아는 사람만 아는 정도의 인지도를 보인다. 일부러 이런 타이밍에 발매하는 기행을 벌였을 리는 없고,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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