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III: Wanderers from Ys

이스 III: 원더러스 프롬 이스 (1989)

 

이스 I & II에서 이어지는 후속작. 부제 Wanderers from Ys를 번역해 이스로부터 온 방랑자로도 불린다. 이스 II 이후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으나 탑다운뷰였던 전작들과 크게 달라져 횡스크롤 액션 스타일로 만들어져 시리즈 내에서 가장 이질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대표 이미지에 하필 북미판 제네시스용 커버를 가져온 건... 깊은 의미는 없다. 그저 드립의 유혹을 견디지 못했을 뿐. 아니, 이스 III를 소개하는 데 있어 이 이미지를 사용하는 건 일종의 양식미라고 할 수도 있을 거야. 

 

처음에는 후속작이 아니라 별도의 횡스크롤 액션 게임을 만들려고 의도했다는 것 같으나 어찌어찌 하다 보니 주인공이 아돌로 결정되며 시리즈가 이어지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스 II는 본래 '최종장'이었으니까. 최초의 기획 의도는 젤다의 전설 II: 링크의 모험같은 게임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사실 당시 팔콤의 액션RPG 라인업을 보면 드래곤 슬레이어 시리즈의 초대 드래곤 슬레이어를 제외하고 이때까지 전부 횡스크롤이었으니 그렇게 보면 이질적인 건 오히려 이스 I & II였다고 할 수도 있겠지.

 

 

PC-8801판. 특유의 색감은 어쩔 수 없지만 동기종 최고 수준의 미려한 그래픽과 스크롤링을 선보였다.

최초 버전은 1989년에 PC-8801용으로 발매되었으며, PC-8801로 자연스러운 다중 스크롤링을 구현하면서 동시에 퍼포먼스도 나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PC-88은 후계기인 PC-98과 달리 8비트 PC로, 그래픽의 표시능력 자체는 동시기 다른 PC들보다 좋아 정지화상은 미려하게 그려낼 수 있었지만 처리속도는 느려 액션게임에는 잘 맞지 않는 하드웨어였는데 이를 보란듯이 해낸 것이다.

 

이후 다양한 하드웨어로 이식되었는데, 플레이 버전은 허드슨이 PC엔진 CD로 이식한 1991년판. 수많은 이식작들이 있는 와중에 대개 PC-88 원작의 사양을 따르는 계열과 샤프 X68000 이식판의 사양을 따르는 계열의 두 계통으로 갈린다. X68K 라인은 전체적으로 난이도가 높게 조절되어 있고 특히 최종보스인 갈바란의 난이도가 흉악한 게 특징이며, 메가드라이브나 슈퍼패미컴판도 이 라인에 해당한다. PC-88 사양을 따르는 라인은 전체적인 난이도가 살짝 낮으며 갈바란도 그리 어렵지 않게 격파할 수 있는 수준으로, MSX나 PC엔진판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건 고성능 기기였던 X68K로 이식되는 와중에 높은 처리능력을 바탕으로 액션성을 강화하기로 하며 덩달아 게임 자체도 어려워진 것이라 한다.

 

PC엔진 버전은 난이도도 너무 높지 않고 CD음원 및 등장인물들의 여러 대사들이 음성으로 처리되어 있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퍼포먼스는 상당히 나쁜 편에 속한다. 가장 중요한 아돌과 적 캐릭터들은 문제없이 즉각적인 반응성을 보이고 슬로우다운도 발생하지 않지만 화면 스크롤시 멀리 있는 배경이 뚝뚝 끊어지는 움직임을 보여주며, 후반부에 등장하는 움직이는 플래폼도 뚝뚝 끊기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PC엔진이 1개 이상의 배경 레이어를 스크롤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어 그 대신 스프라이트를 이용해 패럴렉스 스크롤을 구현했기 때문인데, 덕분에 아돌은 60fps로 움직이지만 배경은 30fps... 아니, 15fps인가. 눈에는 거슬리지만 가장 중요한 주인공과 적들은 여전히 매끄럽기 때문에 플레이에는 문제가 없고, CD음원과 트레이드오프라고 생각하면 타협 가능한 수준이다.

 

이스 III의 다양한 이식작들 대부분은 팔콤이 직접 개발한 게 아니라 다양한 회사에서 외주로 작업한 것들인데, 상기한 PC-88은 물론 도저히 스펙이 안 되는 MSX 이식판에서도 퍼포먼스를 희생하며 패럴렉스를 구현한 걸 보면 팔콤은 이 다중 스크롤을 이스 III의 메인 어필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1989년은 가정에서 이런 스크롤링이 아직 대중화지 못했던 시기이긴 하지. 이스 III의 다양한 이식작들 중 다중 스크롤을 완전히 희생한 건 빅터 음악산업의 패미컴판이 유일하다.

 

 

 

스토리는 아돌이 전작의 모험을 끝내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방황하는 부랑자 생활을 하다가 전작의 인연으로 동료가 된 도기의 고향 펠가나에 이변이 발생하고 있다는 루머를 전해듣고 이를 방문하며 시작된다. 처음에는 채석장에 몬스터가 나타나 마을사람들이 붙잡혀 있는 걸 구원하러 가는 데서 시작하지만 어찌어찌 일이 커져 더 고대에 있었던 악마 갈바나의 부활을 저지하게 된다. 

 

분량은 전체적으로 매우 짧은 편인데, 사람에 따라서는 3-4시간대, 길어도 그 2배 이상은 걸리지 않을 분량이다. 사실 플레이타임 기준으로 같은 양의 컨텐츠를 제작한다면 횡스크롤은 탑다운에 비해 연비가 크게 나쁘니 어쩔 수 없다. 다중 스크롤을 위해 준비된 부분까지 합치면 이스 III를 위해 투입된 맵 데이터의 양이 이스 II에 비해 크게 적지 않을 것 같지만 같은 맵 위에서 복잡하게 이리저리 움직여야 하는 탑다운에 비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죽 이동하는 횡스크롤이 컨텐츠 소모가 빠를 수 밖에 없는 것.

 

데이터 저장매체의 용량에도 한계가 컸던 80년대 게임에서 이를 극복하려면 팔콤의 이전작인 소서리안처럼 개별 시나리오들을 따로 확장팩 형식으로 판매하거나 하는 수 밖에. 굳이 이 이야기를 길게 한 건 이 짧은 분량이 흔히 이스 III의 단점으로 지적되기 때문이기도 한데, 플레이어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럴만하다 싶기도 하지만 만드는 쪽에서도 리소스는 유한하고, 그 유한한 자원으로 게임의 분량을 잡아늘리기보다 스테이지 하나하나의 퀄리티에 집중한 작품이라 보면 오히려 이 쪽이 정직한 디자인이다. 이스 III도 일단은 RPG기 때문에 다소간의 노가다나 백트래킹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많이 얌전한 편이고, 분량이 짧다는 것도 반대로 생각하면 군더더기가 없다는 말이니 나는 이게 딱히 단점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비록 장르가 횡스크롤 액션으로 바뀌었어도 이 게임은 여전히 이스이다. 게임 화면이나 인벤토리 화면 등의 UI 구조가 의식한 듯 비슷하며, 이스를 돋보이게 하는 주요 요인이었던 적들을 죽죽 베며 시원시원하게 진행되는 템포가 상당히 잘 재현되어 있다. 그런데 횡스크롤로 전환하며 어느정도는 던전의 간략화가 필요하겠지만 좀 심하게 간략화시킨 느낌도 드는데, 총 5개의 던전들 중 맨 마지막의 갈바란 섬을 제외하면 딱히 복잡한 미로성 기믹은 없으며 대체로 좌에서 우로 진행하며 가끔 길이 갈라지는 심플한 구조라 RPG의 탐색 요소는 약한 편이다.

 

채석장이나 유적의 일부 구간에서 꽤 시비어한 정확한 점프를 요구하는 장면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플래포밍 난이도도 얌전한 편. 공격하기 어려운, 플레이어보다 낮은 위치에 잠복한 적들이라던가 발밑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적들이 가끔 귀찮게 굴긴 하지만 안되겠다 싶으면 약초로 체력을 회복하고 마을로 돌아가 재정비해 돌아오면 그 사이 1~2레벨이라도 오르거나 방어구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으로 피데미지가 크게 경감된다.

 

다만 공격과 방어의 판정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는 블랙박스라는 느낌. 같은 적을 상대로 때로는 한 칼에 베어버리지만 때로는 공격이 블럭되며, 또 같은 적의 공격을 때로는 막아내 경미한 데미지만 입고 끝나지만 때로는 눈에 띄게 HP가 크게 줄어드는데 그 규칙이 뭔지 파악하기 힘들다. 일단 적에게 등 뒤를 내주면 피데미지가 늘어나는 건 분명한 것 같은데, 이스다운 요소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플레이어가 그 룰을 파악하고 대응하기가 어렵다. 2개밖에 없는 버튼이 하나는 공격, 하나는 점프에 배정되어 있으니 방어나 패링을 능동적으로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나 싶기도 하지만 그럴 거면 데미지 판정을 좀 더 알기 쉽게 해 줘도 좋지 않았을까.

 

여기에 후반의 발레스타인 성에는 적 외에도 다수의 함정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 함정의 데미지가 일반 적들로부터 입는 데미지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높다. 하나씩 따로 떨어져 배치되어 있다면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피해가면 되지만 몇 개의 데미지 함정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부분도 있어 악의적이라는 느낌을 들게 한다. 그나마 그런 장면이 많지는 않으며, 언제든 세이브가 가능한 만큼 별 생각없이 달려들었다가 피가 쫙 깎이면 자기 잘못이긴 하지.

 

 

 

다만 스토리가 전작에서 바로 이어지며 아돌이 다시 출연함에도 불구하고 게임 시작시 아돌은 1레벨에 아무런 장비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며, 이스 II에서는 마법도 배웠던 아돌이지만 본작에서는 마법을 쓰지 못한다. 그 사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인간이 망가졌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게임 디자이너의 사정상 그렇게 되었을 뿐이니 딱히 의문을 제기할 필요는 없다. 전작에서 그 고생을 하며 얻은 클레리아 장비는 아돌과 도기가 술먹다 사고치고 어딘가에 저당잡혀 있다는 게 나의 뇌피셜이다.

 

본작은 이후 2005년에 이스: 펠가나의 맹세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며 다시 탑다운 형식으로 돌아가 현재까지 횡스크롤 방식의 이스는 본작이 유일하다. 모티브가 된 젤다의 전설 II: 링크의 모험도 그 시리즈 내에서 유일한 횡스크롤 방식인 걸 생각하면 닮지 말아도 될 것까지 닮은 셈. 이후 개발사가 다른 후속작이 2작품이나 출시되며 족보가 꼬이게 되는데... 간단히 초기작들만 도식화해보면 다음과 같다.

 

 

이스 개족보의 계보

추측일 뿐이지만 본작이 이스 시리즈의 일부로 발매되게 된 건 전작들을 개발한 인원의 다수가 본작의 개발에도 참가했기 때문인 것도 있지 않을까. 덕분에 이스가 일회성 기획이 아니라 장편 시리즈화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나 본작의 발매를 전후해 다수의 개발진들이 퇴사, 이들이 이후 설립하게 되는 회사가 SFC 시기 다수의 명작 액션RPG를 만든 퀸텟이다. 아무튼 이런 와중에 이스 I & II 및 본작을 PC엔진으로 이식한 허드슨이 팔콤에게 이스 IV의 제작을 제의했으나 팔콤은 원작 스탭들도 다수 퇴사했고 당시 바람의 전설 제나두를 제작하는데 가용자원을 집중하고 있는 상태여서 난색을 표했는데, 이런 사정 속에서 팔콤은 라이센스와 기획만을 빌려주는 형식으로 이스 IV의 제작이 결정난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허드슨만이 아니라 통킹하우스와 세가도 여기에 끼어들며 총 3종의 이스 IV가 원안만을 공유한 채 별도로 제작되게 된다. 이 중 메가CD로 발매될 예정이었던 세가판은 도중에 엎어지게 되지만, 그 외에 통킹하우스가 SFC용으로 이스 IV: 마스크 오브 더 썬, 허드슨이 PC엔진용으로 이스 IV: 더 돈 오브 이스라는 전혀 다른 두 개의 후속작이 등장하게 된다. 덕분에 족보가 꼬이며 어느 스토리가 이스의 정사인가를 두고 정통성 논란이 생기게 되지만 뭐, 그라디우스에 비하면 이 정도 개족보는 귀여운 편이다.

 

팬들 중에서는 이스 III를 두고 다른 시리즈와 작품과 다른 횡스크롤 액션이라는 게임성 때문에 이질적인 존재로 취급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반대로 이스 III가 전작에 이어 흥행에 성공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많은 제작사들이 이식작 개발을 계기로 달려들어 후속작을 제안하고 시리즈가 지금처럼 이어지게 되지도 못 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이스 시리즈의 시발점은 물론 초대 이스지만 본격적인 시리즈화의 물길을 튼 이스 III의 위치도 가볍게 볼 수 없지 않을까. 

 

 

이스 I & II

팔콤의 간판 액션RPG 시리즈. 최초 발매는 1987년 PC-8801, 이후 셀 수 없이 많은 이식작과 리메이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발매 당시의 캐치프레이즈는 "지금, RPG는 상냥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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