ドラゴンクエストモンスターズ テリーのワンダーランド

드래곤퀘스트 몬스터즈: 테리의 원더랜드 (1998 GBC)

 

늦은 밤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는 미레유와 테리 남매의 앞에 갑자기 털복숭이 몬스터가 등장하고 미레유를 납치해 서랍장 안의 세계로 도망쳐버린다. 테리는 누나를 되찾기 위해 그 뒤를 따라 등장한 다른 몬스터를 따라 서랍장으로 들어가며, 도착한 곳은 거대한 나무에 딱다구리처럼 굴을 파고 살아가는 '큰 나무(大樹)'의 나라. 그저 누나를 찾고 싶은 테리이지만 이 나라의 왕이라는 자는 테리에게 다짜고짜 몬스터 마스터가 되어 '별내림의 대회'에서 우승해 달라고 하는데...

 

테리의 원더랜드드래곤퀘스트 몬스터즈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개발은 토세에서 맡았다. 포켓몬스터의 폭발적인 인기에 영합해 드래곤퀘스트의 몬스터들을 이용해 만들어진 몬스터 컬렉션 RPG로 흑백 게임보이 및 동년인 1998년에 발매된 게임보이 컬러 양쪽에 대응한다. DQ, 특히 드래곤퀘스트 VI를 기반으로 한 스핀오프로 본작의 테리와 미레유는 DQ6의 동료로 등장하는 그 테리와 미레유의 어린시절이다. 이후 2편의 후속작이 등장했으며, 3DS용으로 리메이크된 버전이 현재 모바일 및 스위치로도 판매되고 있는데 3D화된 건 물론 등장하는 몬스터 수도 215종에서 600여종으로 대폭 늘어 거의 별도의 게임으로 봐도 무방하다.

 

게임의 기본 진행은 매번 랜덤하게 형태가 달라지는 던전을 돌아다니며 몬스터를 각종 고기 아이템으로 유혹해 '동료'로 만들고 이 동료들을 강제로 이종족 교배시켜 새로운 몬스터를 만들어내며 계속 새로운 던전에 도전하는는 것의 반복. 등장 몬스터는 215종이며, 포켓몬스터처럼 레벨에 따라 진화하지는 않고 여신전생의 악마합체처럼 합성을 통해 새로운 몬스터를 만들어내며 성장시키는 개념. 종족의 벽을 넘어 강제로 교배당한 몬스터들은 새끼의 알을 남기고 사라지게 되며, 이렇게 몇 세대간의 교배를 반복하며 끔찍한 혼종을 만들어내는, 동화적인 도입부와 달리 생각해 보면 상당히 위험한 바이오호러 게임이다.

 

포켓몬스터에 영합해 기획되었으리라는 건 분명하지만 나름 독특한 자기만의 개성을 갖고 있어 짭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가장 크게 눈에 띄는 차이는 몬스터를 3마리까지 동시에 파티에 넣고 최대 3:3으로 싸우는 전투 시스템 및 대부분의 전투가 오토로 진행된다는 점. 주인공인 테리의 역할은 도중에 아이템을 사용해 전투를 보조하거나 공격우선/보조기술 활용/회복우선의 전투방식을 지시하는 것이며, 구체적으로 어느 적을 공격하라던가 어느 기술을 사용하라는 지시를 내릴 수는 있지만 매번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기가 UI적으로 상당히 번거롭다. 유저가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는 게 아니라 자동전투가 디폴트인 건 아마 테리의 포지션이 어디까지나 마물 조련사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일까.

 

 

 

새로운 몬스터를 동료로 영입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전투를 반복하다 보면 랜덤하게 동료가 되기도 하지만 확률을 높이기 위해 고기를 던져줄 수 있다. 당연히 고급진 고기를 제공할수록 몬스터가 동료가 될 확률이 늘어나며, 특정 몬스터를 원한다면 그 몬스터만 남겨놓고 고기 아이템을 사용하면 되지만 동료가 되는 건 일단 그 몬스터를 쓰러트리고 전투가 종료된 이후에 판정되기 때문에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막타를 날리기 전까지 영입에 성공할지 아닐지를 알 수 없다. 만약 각종 지팡이 아이템으로 테리가 직접 몬스터들에게 데미지를 입혔다면 그건 다른 몬스터가 아니라 테리가 직접 공격한 것이 되어 몬스터가 동료로 들어오지 않게 되며, 포켓몬스터와 달리 다른 트레이너의 몬스터도 이런 방식으로 빼앗을 수 있다. 플레이어의 몬스터가 빼앗기는 경우는 없으니 안심.

 

스토리는 정말 최소한으로만 존재한다. 게임의 목표인 '별내림의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 투기장을 반복해 도전해 몬스터 마스터로서의 랭크를 올려야 하며, 이것이 포켓몬스터의 체육관 관장전에 대응한다. 다음 랭크를 달성하면 새로운 던전이 개방되며, 여기에 도전해 더 강력한 몬스터를 상대로 싸우며 기존 몬스터의 레벨을 올리거나, 새로운 동료 몬스터를 영입하는 식으로 무한반복. 사실 이 부분이 본작의 가장 큰 약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테리의 동기는 어디까지나 미레유를 찾는 것이지만 왕은 어쨌건 몬스터 마스터가 되어 국가대표로 별내림의 대회에서 우승해 달라고 요구하는 걸 반복할 뿐이고, 거기에 대한 설명이란 것도 몬스터 마스터가 되면 누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막연하고 무책임한 것 뿐. 여기에 작중 배경이 되는 큰 나무 나라에는 투기장이 있고 S클래스까지의 도전 상대들이 상주하고 있는데 왜 테리라는 신삥을 데려다 처음부터 몬스터들을 모으고 배합시켜 이미 그 나라에 있는 몬스터 마스터들 대신 출전을 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없다. 포켓몬스터의 주인공들은 자기 목표가 포켓몬 마스터인 만큼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지만 테리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당장이라도 납치당한 미레유를 찾아나서야 하는데 괜히 시간을 버리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미레유도 비슷한 사정으로 같은 대회에 출전해 결승전에서 만나게 되니 스토리의 시작과 끝은 분명하지만 그 중간이 설득력이 없는 것. 후속작인 마르타의 이상한 열쇠는 스토리 요소가 강화되었다고 하는데, 플레이해보지 못해 내용은 모르지만 아마 본작의 스토리 부재에 대한 피드백을 반영한 게 아닐까.

 

 

몬스터 합성. 하곤x조마 커플링을 갈망했던 사람이라면 여기서 실현해볼 수 있다

모든 몬스터에는 성장 한도치가 있어 야생의 몬스터를 포획해 단순히 레벨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공략에 한계를 맞이하게 된다. 여기서 필요해지는 것이 몬스터 합성인데, 암/수 페어를 맞춰 2마리의 몬스터를 합치면 몬스터의 알이 되고, 이것을 부화시키면 새로운 몬스터가 되며 부모 몬스터들의 특징을 이어받는다. 이렇게 배합으로 탄생한 몬스터는 일단 기본 스탯이 다소 높은 상태로 시작하며 (공격력이 높은 몬스터와 민첩이 높은 몬스터를 배합하면 공격과 민첩이 둘 다 높은 상태로 시작하는 식) 부모들이 배웠던 모든 특기를 습득할 수 있다.

 

여기에 당연히 도감 완성 요소도 존재하는데, 이 도감을 완성하기로 한다면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 따위는 우스울 정도로 많은 시간이 투입된다. 최종 테크는 드래곤퀘스트 VI의 히든보스 다크드레암으로, 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용왕, 하곤, 바라모스, 시도, 조마 등의 역대 보스들을 연성해 내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 한 단계 한 단계가 상당히 빡세다. 과거에 여기에 도전했다가 1/3쯤 진행하고 아마 조마 정도를 만들었다가 포기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여기에 배합을 하기 위해서는 암/수 페어를 맞춰야 하고 같은 몬스터들을 합치더라도 암/수 조합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공략을 참고하며 철저히 계획을 세워서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레벨. 

 

굳이 그런 막장스런 도전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배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적들이 강해지는데, 사실 본작에서 배합의 결과물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각 몬스터들의 기본능력의 차이도 분명 존재하지만 몇 단계에 걸친 배합으로 얼마나 많은 보정치를 갖고 태어나느냐가 훨씬 중요하며, 부모들이 익혔던 주문과 특기를 (최대 10개까지) 전부 습득할 수 있기 때문. 부모가 1인대상 100% 회복마법인 베호마와 전체대상 화염공격 베기라곤을 습득했다면 자식에게 이것이 전달되며, 레벨이 낮을 때는 랭크가 낮은 호이미와 기라를 습득하지만 이후 자식의 레벨을 올리다 보면 마법의 랭크가 올라간다.

 

 

 

다만 이러다 보면 결국 역할분담이란 개념이 사라진다. 각 몬스터가 익힐 수 있는 특기의 개수는 최대 10개. 여기에 회복마법인 호이미같은 건 제법 흔하게 나오기도 하고 있어서 손해볼 건 없는 기술이니 결국 전원에게 갖춰주게 되며, 반대로 역할분담 한다고 회복기를 한 몬스터에 몰아주었다가는 그 몬스터가 즉사기 맞고 나가 떨어지는 순간 진행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다 보면 모든 몬스터가 비슷비슷한 특기를 갖고 비슷비슷한 능력을 가진 올라운더가 되기 쉽다. 여기에 슬라임계, 식물계, 동물계, 악마계 등의 몬스터 분류계통이 있긴 하지만 딱히 상성관계가 있는 게 아니라 배합에만 영향을 주며, 전투중에는 여느 RPG처럼 그냥 센 놈은 세고 약한 놈은 약하다. 순수한 강함을 추구하는 플레이어에게는 어필 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와중에 이 하나하나의 개성이 쉽게 묻히는 건 캐릭터물로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이 합성 시스템으로 인해 생기는 다른 문제가 어떤 몬스터를 포획하더라도 극초반이 아닌 이상 이들을 즉시 전력화할 수 없다는 점이다. 초반부터 잡몹들을 합성하며 3, 4세대 이상 지난 몬스터는 필드에서 포획한 몬스터들에 비해 훨씬 강하고 다양한 특기를 쓸 수 있으며, 겉보기에 멋있는 몬스터를 입수해 써 보고 싶어도 너무 약하기 때문에 결국 합성의 재료가 될 뿐이다. 같은 몬스터를 주전력으로 쓰고 싶다면 그걸 합성해서 만들어서 써야 하는 것.

 

드래곤퀘스트의 네임밸류 덕분인지 나름 250만장 이상을 판매하며 흥행에 성공해 이후 시리즈화되는 기반을 닦았지만 끝내 인기가 유지되지는 못한 걸로 기억하는데, 음- 어째서일까. 여러가지 있겠지만 역시 대전의 밸런스가 없다시피하기 때문이 아닐까. 굳이 대전을 해 보는 게 아니라 싱글플레이어로만 해 봐도 밸런싱의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이 느껴지는데, 한 가지만 예를 들자면 즉사기 자키-자라키 시리즈 기술의 존재. 작중에서 대표적으로 투기장 S랭크에 도전할 때 1차전 상대가 일정 확률로 상대 전체를 즉사시키는 자라키를 사용하는데, 운이 나쁘면 1턴만에 아무것도 못하고 전멸이 뜰 수도 있다. 아니면 보물상자를 열었는데 미믹이 튀어나와 자라키를 날려 파티를 반괴시키는 것도 후반부 던전에서는 심심찮게 보게 되는 장면. 당연히 플레이어도 이걸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만약 대전을 한다면 양쪽에서 자라키를 날리고 운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겠지. 꼭 자라키가 아니라도 적 전체대상 상태이상 기술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에 누가 상태이상을 먼저 걸고, 또 상태이상은 확률인 만큼 운에 따라 승부가 갈리기도 한다. 어떤 몬스터가 어떤 기술을 갖고 있을 지 예측도 할 수 없고, 대전이 시작되면 누가 먼저 상태이상이나 즉사기를 거는가에 따라 운 승부라면 그건 대전게임으로서는 망겜이지.

 

 

초반 보스인 드래곤과 골렘. DQ1의 패러디이다
최종보스는 미레유. 다른 나라로 끌려갔다가 똑같이 대회에 참가당했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드래곤 퀘스트 몬스터즈포켓몬스터와 차별화되는 별도의 작품으로 성립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고, 허브월드인 마을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적들이 등장하는 던전을 공략할 뿐이지만 이 던전들이 매번 랜덤하게 생성되기 때문에 지루함을 덜어준다. 대부분은 이상한 던전 시리즈처럼 여러개의 방들이 통로로 연결된 로그 스타일의 플로어들이 연속해서 등장하지만 퍼즐기믹이 들어간 플로어, 상점, 다수의 상자들이 놓여있고 이것이 미믹인지 보물상자인지 알 수 없는 복불복방, 낮은 확률로 등장해 트레이너들과 연전을 할 수 있는 콜로세움 등 다양한 기믹이 섞여있어 지루함을 덜어준다. 여기에 해당 던전의 보스 에리어에는 전작들에 대한 패러디나 퍼즐요소가 들어있기도 해 다음 던전에는 뭐가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플롯의 부재를 지적하긴 했지만 나름 후반에는 반전 포인트가 있기도 하고, 전체적인 스토리의 부재와 별개로 시리즈 팬이라면 알아볼 수 있을 깨알같은 자기 패러디와 레퍼런스 요소들이 들어가 있어 부분부분의 연출은 좋은 편이다. 클리어 후 데이터를 로드하면 추가 던전 6개가 열리며 투기장에 가면 그동안 몬스터 배합을 해 주던 할아버지와 대전을 할 수 있게 되는데, 일종의 히든보스. 초대 포켓몬스터에서 오키드 박사와 대전할 수 있다는 당시 도시전설을 의식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나는 여기까지. 이 게임이 한창 현역일 때 마왕 합성한다고 한참을 매달려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 게임에 엔딩이 있긴 했는지, 아니 내가 엔딩을 보긴 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다시 엔딩을 보고 나서도 여전히 기억이 안 나는데, 사실 봤다고 하더라도 일본어를 몰랐던 시절이니 인상에 안 남았을거야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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