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피드 (1980)
센티피드는 1980년 아케이드로 등장한 고정화면 슈팅 게임으로, 당시 아타리의 아케이드 최고 히트작 중 하나였다. 이후 자사 게임기를 포함 여러 플래폼들로 이식되었고 1982년에는 몇 가지 요소가 추가된 확장팩 밀리피드로 이어졌다. 위 스크린샷은 아타리 볼트 컬렉션에 수록된 버전인데, 현재는 50주년 애니버서리 컬렉션이 발매되며 각종 스토어에서 내려져 구할 수 없는 버전이다. 업그레이드하려면 언제든 할 수 있겠지만... 뭐, 어느 컬렉션이든 내용이야 동일할 테니 상관없나.
센티피드는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그늘 아래 있는 건 분명하지만 인베이더 공식에 대한 독창적인 재해석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던 작품으로, 플레이어는 '버그 블라스터'라는 화면 하단의 작은 포대를 조작해 위에서 내려오는 지네를 요격해 제거하는 것이 게임의 목표이다. 스테이지에는 많은 버섯이 놓여 있어 지네의 움직임을 가로막는데, 지네는 기본 좌우로 이동하며 화면 끝이나 버섯에 닿으면 1칸 아래로 내려오는 방식으로 이동한다. 버섯을 샷으로 제거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4발이 필요하며 제거해도 금방 다시 생겨난다.
지네를 공격할 때 몸통 어딘가를 맞추면 그 자리에서 어째선지 둘로 분열되어 별도로 움직이기 시작해 난이도가 높아지니 가급적이면 머리를 노리는 게 좋지만 지네가 움직이는 속도도 빠르고 화면 하단에서 쏜 샷이 날아가는데도 시간이 걸리는 만큼 그 타이밍을 노리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래서 초반에는 지네를 직접 노리기보다 전략적으로 버섯을 제거하는 걸 우선시하기도 하는데, 지네가 수직으로 이동하는 타이밍을 맞춰 아래에서 올려쏘면 머리부터 시작해 안정적으로 제거할 수 있기 때문. 때로 전갈이 나타나 화면을 지나가며 버섯을 색이 다른 독버섯으로 바꿔놓는데, 지네가 여기에 닿으면 즉시 하단으로 직진해 내려온다.
어지간한 고수가 아니라면 지네는 결국 조각조각 난 상태로 화면 하단에 다다르게 될 텐데, 화면 맨 바닥까지 닿으면 게임 오버인 스페이스 인베이더와 달리 같은 방식으로 좌우로 이동하다 한 칸씩 반대로 화면 위로 올라가다 도중에 다시 내려오기를 반복한다. 대부분의 유사 게임에서라면 바닥에 닿은 순간 피할 수 없게 되겠지만 센티피드에서는 이 화면 하단 10% 정도의 범위 내에서 상하 이동도 가능하다.
그 외의 적으로는 거미, 벼룩, 전갈이 등장한다. 거미는 화면 하단에 등장해 불규칙한 움직임으로 귀찮게 하며 때로 버섯을 먹어버리기도 하는데, 이건 상황에 따라 좋을 수도 있지만 화면 하단의 이동가능 에리어에 버섯의 수가 5개 이하로 줄어들면 벼룩이 나타나 화면에 버섯을 추가로 생성시키니 좋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전갈은 화면 좌우에서 나타나 가로질러 이동하며 버섯들을 독버섯으로 만들어 버린다.
센티피드처럼 이렇게 제한된 범위 내에서 상하이동이란 컨셉은 당시의 인베이더 클론들 중에는 상당히 레어한 개념으로 당장 떠오르는 유사작은 남코의 1984년작 갭플러스(Gaplus) 정도 뿐. 이 작은 변화로 인해 한 조각만 남아 돌아다니는 맞추기 힘든 적을 잡느라 굳이 애쓰지 않고 아래로 유도한 뒤 대기하고 있다가 제거하는 등 융통성 있는 전략이 가능해졌고, 이렇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느낌 자체도 당시로선 신선하지 않았을까. 여기에 버섯의 배치가 매 플레이마다 랜덤하게 바뀌는 특성상 고정된 전략이 없이 매 판이 달라진다는 점도 인기에 한몫 했으리라 생각한다.
센티피드 리차지드 (2021)
벡터스캔을 모사한 선 중심의 그래픽에 형광색 발색으로 스타일리쉬한 분위기를 낸 2021년 리메이크판. 파워업 아이템들을 추가하고 도전과제와 챌린지 미션을 넣은 누구라도 생각할 만한 오소독스한 업데이트지만 괜히 이상한 짓을 시도하기보다는 정공법으로 원작의 플레이 감각을 재현하는 데 집중했다는 인상이다. 덕분에 원작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센티피드라고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느낌으로 구현되었다. 그 자체는 물론 나쁘지 않다.
아케이드 모드는 다시 리차지드, 클래식, 리차지드 클래식의 3종으로 세분화된다. 클래식이 파워업이 없이 잔기 3개로 시작하는 모드라면 리차지드는 새로 추가된 각종 파워업들을 사용할 수 있는 모드이며 잔기는 1개. 리차지드 클래식은 파워업을 쓸 수 있으면서 잔기 3개로 시작되는 모드인데, 각종 도전과제 해결은 어느 모드에서든 가능한 만큼 리차지드 클래식이 기본적으로는 무난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점수 4만점을 노려야 하는 과제는 잔기 1개로 한 번 죽으면 끝인 일반 리차지드 모드나 클래식 모드에서는 도무지 달성이 어렵다. 리차지드에서 2만8천여점까지 달성해 보았지만 포기.
원작에서 단순한 방해꾼에 불과했던 거미가 리차지드에서는 파워업을 드랍하는 존재가 되었으며, 덕분에 오히려 나와 주기를 기다리는 존재가 된다. 파워업은 3방향 샷이나 연사속도 상승처럼 뻔한 것도 있는 반면 화면의 랜덤한 지역에 폭탄을 배치해 터트리면 주변의 적들과 버섯을 제거하게 한다거나, 적의 움직이는 속도를 느리게 하거나, 도망치게 만드는 등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으며 대체로 한 번 사용해 보면 용도를 알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다. 이 파워업들은 시간제한이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거미를 찾아다니게 만든다.
전체적인 난이도는 원작보다 낮아진 느낌이지만 원작보다 더 까다로운 부분도 생겨났는데, 일단 이펙트가 너무 화려해 때로 플레이어 기체나 적을 가려버린다. 멀리 있는 상태라면 별 문제가 안 되지만 화면 하단까지 내려와 근접전이 강제되는 상황에서는 일시적으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게 되며 이로 인해 사고가 나기도 한다. 여기에 지네가 세로로 내려올 때 원작에서는 위치를 잘 잡으면 연사를 통해 깔끔하게 제거할 수 있지만 본작에서는 연사 파워업을 가진 상태에서도 화력에서 밀려 제거를 못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는데, 적이 버섯 위를 통과하고 있는 상태에서 맞추면 적이 아니라 버섯을 맞추며 제거가 안 되는 것 처럼 느껴진다. 즉 독버섯에 접촉해 수직으로 내려오는 지네를 맞추면 그 자리에서 버섯이 생성되고, 지네는 그대로 계속 내려오지만 다음 샷이 지네를 맞추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생성된 버섯을 맞추게 되는 게 아닐까.
여기에 리차지드에서는 각종 파워업이 추가된 데 대한 반대급부로 랜덤하게 다수의 벼룩이 일제히 나타나 화면에 다수의 버섯을 추가하거나, 다수의 전갈이 동시에 등장해 화면 상단을 독버섯으로 메워버리기도 한다. 지네는 독버섯에 닿으면 다른 버섯을 무시하고 바로 수직으로 내려오며, 이것이 몇 번 반복되면 하단 에리어가 버섯으로 가득차 움직일 수 있는 공간조차 제한되는데 지네가 우글우글 몰려있는 지옥도가 펼쳐지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그냥 슬슬 죽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자.
전체적으로 센티피드 리차지드는 큰 모험을 하지 않고 원작의 게임플레이를 대부분 그대로 재현하면서 추가할 건 추가했다는 느낌이다. 원작이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스네이크 게임과 결합한다는 대담한 발상으로 새로운 게임플레이를 만들어냈다는 걸 생각하면 살짝 아쉽기도 하나 최근 35년간 아타리의 기획력이 딱히 믿음직스럽진 못한 걸 생각하면 이 정도가 최선이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는 스페이스 인베이더 익스트림과도 궤를 같이하는 뉴트로 스타일 리메이크이지만 그보다는 시스템적으로도 크게 단순. 개인적으론 스프라이트를 살짝 크게 키우고 대신 화면을 더 밀도있게 구성했으면 싶은 생각이 든다. 여기에 웨이브가 진행될수록 위 스크린샷처럼 화면 전체의 색감이 달라지는 것도 오리지널과 같은 방식이긴 하지만 좀 더 컬러풀한 디자인을 택해줄 수도 있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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