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edy Girl Overdose (Needy Streamer Overload)

니디 걸 오버도즈 (2022)

 

감정의 기복이 극단적이고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아메. 자타 공인으로 예쁜 얼굴 외에는 자존감도 의지력도 바닥인 그녀지만 생활은 해야 하겠고, 그렇다고 남들처럼 일을 하기도 싫은 그녀는 '초절정 귀요미 천사', 줄여서 '초텐'이란 페르소나를 만들고 인터넷 방송으로 한 달의 기간동안 팔로워 100만을 모아 '인터넷 엔젤'로 살아가기로 결정, 플레이어는 아메와 동거중인 P. 프로듀서의 역할을 맡아 한 달간 그녀의 일정을 관리하게 된다.

 

해외판의 영문 제목은 니디 스트리머 오버로드. 덕분인지(?) 동직업에 종사하는 여러 스트리머들에 의해 플레이되며 지명도를 얻기도 했다. 제목이 바뀐 건 아마 원제의 '오버도즈'라는 표현이 이런저런 의미로 위험한 단어다 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싶은데, 게임 내용에서도 일반의약품부터 더 위험한 약물까지 오버도즈하는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어 눈 가리고 아웅이란 느낌이지만 그러려니 하겠다. 장르는 일단은 육성 시뮬레이션. 그러나 종래의 육성 시뮬레이션들과는 일선을 긋는 전파계 작품이다. 제작은 WSS Playground. 

 

게임 내에서의 하루는 낮, 오후, 밤의 3블럭으로 구분되며 밤은 스트리밍 시간, 낮과 오후에는 호감도를 올리거나, 휴식을 취해주거나, 다른 행동을 통해 방송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같은 아이디어로 여러번 방송을 할 수는 없고 각 테마에는 레벨이 붙어 있는데, 게임을 통해 시간을 보내면 게임 실황 1레벨을 할 수 있게 되고 이후 아키하바라로 외출하면 레트로 게임을 구입해 게임 실황 2레벨 방송을 할 수 있게 되는 식. 행동에 따라서는 2블럭 이상의 시간을 소비하게 되기도 하며 매일 연속으로 방송을 하면 그만큼 보너스가 붙지만 스트레스 관리가 힘들어진다.

 

 

 

관리해야 하는 스탯은 총 4종으로 육성 시뮬레이션으로서는 단순한 편. 팔로워 수, 스트레스, 호감도 및 어둠(やみ度, 멘탈)의 4종. 팔로워 수는 첫날 방송 후 1000명에서 시작해 100만까지를 목표로 하게 되며, 스트레스는 최대 100. 스트레스가 80 이상인 상태에서 이틀을 보내면 자해 이벤트가 발생하고 스트레스 한도가 120으로 증가하지만 이 이벤트가 발생하면 이후 엔딩에 변화가 올 수 있다. 호감도는 말 그대로지만 100에 다다르면 아메가 얀데레화되어 화면이 사랑한다는 메시지로 뒤덮히고 게임오버로 이어진다.

 

멘탈은 강인한 정신력이 아니라 얼마나 마음이 병들어있는가를 나타낸다. 방송 내용에 따라 음모론이나 야한 방송을 하면 어둠의 레벨이 올라가기도 하고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약물에 의존하다 보면 빠르게 상승한다. 이 약물도 처음에는 (일본에서는)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들이지만 멘탈치가 상승하면 수면제나 대○, SD까지 선택지에 추가된다. 이를 낮추기 위해서는 낮에 외출해 병원을 찾아가면 소폭 감소한다.

 

이 4가지 외에도 이런저런 스탯들이 존재해 방송후 팔로워 증가량에 보정이 들어가지만 그보다 방송 내용 자체에 붙는 배율 및 연속방송 보너스가 훨씬 영향이 강하고, 각 방송 테마의 회수 제한이 있다보니 특정 분야를 전문으로 하기보다는 다양한 장르의 방송을 섞어서 하게 된다. 30일을 다 채우지 않더라도 특정 행동이나 방송 장르를 반복해 실행하거나 스탯 조건을 만족시키면 바로 엔딩으로 이어지며, 만약 도중에 다른 플래그를 만족시키지 않았다면 30일째의 스탯을 기준으로 에필로그격 엔딩들이 분기된다.

 

 

"아침에 못 일어나! 밖에 나가기 싫어! 성실히 일하기 싫어! 타인이 무서워! 어른 짜증나! 머리도 나빠! 그래도 떠받들어지고 싶어!"

주인공인 아메는 얼굴이 반반한 것 외에는 아무런 재주도 능력도 없지만 남들로부터 칭찬받고 싶은 승인욕구만은 지나칠 정도로 강하다. P에 대한 집착과 과도한 애정 요구, 양극단을 오가는 감정의 기복, 자해 및 ○살기도, 약물의 남용 등의 행동은 전형적인 경계선 성격장애에 해당한다. 픽션 캐릭터의 이상심리를 분석하는 건 뻘짓이라 생각하는 편인 나지만 DSM의 증상 목록을 참고해서 캐릭터를 만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대체로 일치하는데, 픽션의 캐릭터로서는 매력을 느끼지만 현실에서 이런 사람을 사귄다면 당장 도망쳐야 할 레벨. 이쪽(?) 용어로는 얀데레보다는 멘헤라로 분류된다.

 

일례로 플레이어는 그런 아메와 동거중인 것 같으면서도 항상 트위터와 라인 메신저를 통해서만 소통하는데, "needy"라는 제목에서처럼 아메는 P에 대해 상당한 집착을 보이며 라인 메시지를 제때제때 확인하지 않으면 트위터에 라인 확인하라는 메시지가 뜨고 5회까지는 참아주지만 6회째가 되면 아메가 P를 버리며 그대로 게임오버. 뭘 하든 무조건 라인부터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내가 언제 안읽씹을 했는지도 모른 채 당하기 십상이다. 읽씹은 용서해준다.

 

그런 주인공을 데리고 육성 게임을 한다면 이 게임의 '굿 엔딩'이란 대체 무엇일까? 평범하게 생각하면 아메가 건강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게 가장 이상적인 결말로 보일 수도 있겠고, 그러려면 실제로 게임을 진행하며 처음 며칠간 방송이고 뭐고 병원만 데려가 어둠을 0으로 만들면 아메가 스트리머를 은퇴하고 자격증 준비를 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게임이 끝난다. 아메의 입장에서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좋은 엔딩이겠지만 당연히 플레이어는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난 부서져버릴지도 몰라." "반대로, 부숴볼까나."

여기에 처음 게임을 시작하고 2일째, 아메가 P에게 앞으로의 스케줄 관리를 맡기며 인기 스트리머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며 "그렇지 않으면 나는 부서져버릴지도 몰라"라고 하는데, 거기에 대해 제시되는 유일한 선택지 대답은 "반대로, 부숴볼까나."

 

이 한 마디 대사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P 역시 정상적인 인간이 아님을 직감하게 하는 동시에 '어떻게' 아메를 부술지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사실 팔로워 100만을 모은다는 것 역시 명목상 주어지는 목표이긴 하지만 그보다 아메를 대상으로 스트레스, 광기, 약물 등에 대한 내구력 테스트 감각으로 플레이하며 실험용 동물처럼 다루게 되고, 게임 역시 그런 방향의 엔딩을 잔뜩 준비해 놓았기도 하니 그렇게 플레이할 걸 전제로 만들어진 셈.

 

처음에 아직 양심을 가지고 있을 플레이어도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스트레스 관리의 어려움에 마주하면 보다 위험한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30일이라는 무모한 기간이 존재하는 이상 며칠간 쉰다는 선택지를 할 수 없기도 하고, 애초에 연속 방송 보너스 콤보를 끊으면 다음 방송에서 팔로워가 늘어나는 수가 그만큼 줄어들며 목표인 100만에 다르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낮 시간에 스트레스를 낮추는 행동들은 기껏해야 최대 10 언저리의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데 비해 방송을 할 때마다 장르에 따라 다르지만 20~25까지의 스트레스 증가를 보이고, 덕분에 한참 빡세게 굴리다 휴식을 섞어주는 평범한 육성 시뮬레이션 방식으로는 목표에 다다를 수 없다. 그런 게임에서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위한 수단은 섹스와 마약으로 요약된다. 착한 어린이는 이런 게임 하면 안 돼요.

 

 

 

본 작품의 시나리오 라이터인 냐루라는 니디 걸 오버도즈를 만들며 2000년대 에로게를 다양하게 참고, 오마쥬했다고 하는데 전파게가 아닌 남성향 에로게엔 딱히 관심이 없어 그 구체적으로 뭘 레퍼런스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게임 전반에서 나타나는 사디스틱한 분위기에서 에로게 시선이 느껴진다고 하면 기분 탓일까. 직접적인 성적 묘사는 없지만 (행동 메뉴에서 섹스를 선택하면 화면 밖에서 하트가 날리는 연출이 나올 뿐) 주인공을 장난감처럼 취급하게 유도하는 게임 시스템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데, 물론 다른 육성 시뮬레이션에서도 일부러 이상한 엔딩을 보려고 주인공을 험하게 굴리는 거야 흔하지만 이 게임에서는 그게 메인이니까.

 

그렇다면 아메가 '행복'해지는 엔딩은 뭘까? 30일째에 팔로워 100만 이상, 호감도 80 이상에서 초텐의 모습을 한 아메와 P가 유원지에서 데이트하는 엔딩이 나오지만 이게 과연 굿 엔딩일까? 21종의 엔딩을 보고 나면 등장하는 스포일러 요소를 제외하더라도 (여기에 대해서는 일부러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애초에 아메와 P의 관계는 건강하지 못하다. 아메는 P에게 과하게 의존하며 집착하는 증상을 보이고 있고, P는 P대로 아메의 일상을 완전히 통제하는 명령권을 가진 존재이다. 이 상태에서 앞으로 계속된다 하더라도 허망한 숫자를 쫓으며 병든 관계가 이어질 뿐이다.

 

반대로 팔로워 100만 이상에 호감도 80 미만이라면? 아메는 새로운 아파트를 구입해 이사하지만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P는 블럭당한다. 사실 이렇게 아메가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고 P를 버리는 엔딩이 몇 개인가 더 있는데, 아메의 입장에서 보면 적어도 P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난 만큼 베스트는 아닐지라도 베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엔딩이겠지? 베스트는 물론 스트리머로서 인기를 얻는 데 실패한 아메가 자격증을 준비하며 사회로 돌아오는 엔딩일 것이고. 그리 생각하면 육성 시뮬레이션으로서는 드물게 플레이어, 플레이어의 분신인 주인공, 육성 대상의 이해관계가 완전히 대립하는 셈이다.

 

 

 

위에서 에로게 레퍼런스는 나는 모르겠다고 했지만 그 외 2ch이나 니코니코 동화에 대한 레퍼런스들은 보면서 즐겁기도 했다. 20년도 전 이야기지만 나도 한때 챤네라 짓을 했던 적이 있었고 한때는 유투브보다 니코동을 메인 동영상 플래폼으로 이용하며 플레이리스트에는 보컬로이드가 가득했던 전력이 있는 인간이라, 깨알같이 곳곳에 들어간 요소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한국에서도 싸이월드 같은 걸 소재로 뭔가 나와주지 않으려나.

 

그러나 그런 패러디 요소나 사디스틱한 게임플레이와 별도로 전파계로서도 상당히 레벨이 높은 작품이다. 보통이라면 금기시될 자해나 ○마 흡연, L○D 사용 등이 직접적으로 묘사되는 것도 단순히 자극적인 소재를 넣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메와 같은 경계선 성격장애에서 종종 보여지는 현실적인 특징이고, 트위터에 아메 계정과 초텐 계정으로 올려지는 극단적으로 다른 내용이나 때로 플레이어가 지시하지 않은 행동을 멋대로 취해버리는 즉흥적인 모습 등도 마찬가지로 흔히 보이는 특징. 물론 경계선 성격장애라도 다 똑같은 건 아니지만 아메가 보여주는 모습은 충분히 그들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니디 걸 오버도즈는 스트리밍이나 인터넷 문화에 대한 사회비판적 게임으로 해석되거나 일부 엔딩과 전 엔딩 달성 뒤 보여지는 내용의 메타픽션적 요소에 포커스가 맞춰지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전파에 포커스를 맞췄다. 그냥 내가 그 쪽에 공감대가 더 많고 쓰기 쉬우니까. 개인적으로는 플레이가 즐거우면서 씁쓸하기도 했는데, 아메가 보여주는 멘헤라적인 모습에서 나 자신, 그리고 한때 파트너였던 사람이 보여 괜히 감정이입이 더해졌달까. 나나 그 사람이나 아메만큼 심하진 않았다 뿐이지 생각하는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현실에서 만나면 인생이 피곤해지는 지뢰이니 다들 피해다니길. 픽션은 픽션일 뿐, 성격장애는 귀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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