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드라이드 3: 이차원의 추억 (1987 MSX2)
하이드라이드 II의 후속작이자 시리즈의 완결편...이었어야 했던 작품. 메인 제작자인 나이토 도키히로(内藤時浩)에 따르면 II 발매 이후 더 이상의 속편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회사에서 연말 시즌에 맞춰 빅 타이틀을 내야겠으니 하이드라이드를 만들자고 했다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임은 4M 카트리지라는 당시 최고 수준의 볼륨을 지닌 대작으로 탄생했...는데, 기술적인 부분은 잘 모르니 자세한 설명은 피하겠지만 전작들과 비교만 해 봐도 이게 같은 하드에서 나온 게임인가 싶을 정도로 눈이 즐겁다.
3편은 한글화된 윈도우즈 이식판이 하이드라이드 3 골드팩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고, 잡지번들로 제공된 적도 있기 때문에 접해 본 유저도 조금 더 많지 않았을까. 원본도 일본어만이 아니라 게임 내 옵션에서 영어/일본어 변환을 내부적으로 지원하며, MSX판을 기반으로 한 한글패치도 존재한다. 단 MSX판에 내장된 영문 텍스트는 어법이나 표현이 좀 괴랄해 일본어로 역해석을 해야 의미가 통하는 부분도 많은데, 만약 영문으로 플레이하길 원한다면 MD로 이식된 슈퍼 하이드라이드 쪽이 번역의 질이 더 낫다. (그런데 역시나 MD로 이식될 무렵에는 이미 한 세대 전의 낡은 그래픽으로 보이게 되어 서구권의 평가는 좋지 않다.)
아무튼 전작들에서 (MSX에서 흔히 보이는 방식대로) 주인공을 제외한 NPC나 적들이 투명 배경의 단색 스프라이트로 처리되어 있던 것에 비해 16비트 콘솔과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디테일을 보이며, 단색의 타일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던 배경의 디테일 역시 크게 향상되었다. 오히려 너무 신경을 쓴 걸까. 보통 맵타일을 통째로 만들고 그 위로 스프라이트를 움직이게 하는 게 아니라 배경 위에 스프라이트를 띄우고, 그 스프라이트의 일부 혹은 전체를 가릴 수 있는 배경애셋이 올려져 있어 때로 적들이 여기에 엄폐해 들어가기도 한다. 90년대쯤 오면 흔하게 보이지만 이건 87년. 여기에 시간 개념을 추가해 같은 지형이라도 시간대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 05:00 - 07:00 : 새벽
- 07:00 - 18:00 : 낮
- 18:00 - 20:00 : 저녁
- 20:00 - 05:00 : 밤
여관에서 잠을 자면 7시에 게임이 시작되어 아침을 먹고, 13시에 점심을 먹은 뒤 19시에는 저녁을 먹어야 한다. 밥을 먹으면 라이프도 약간 회복되지만, 만약 밥을 제때 챙겨먹지 않고 방치하다 보면 결국 굶어죽는다. 비슷하게 밤에 잠을 안 자면 수면부족 상태이상에 빠지는데.. 아니, 잠깐. 보통 RPG라면 주인공의 생물학적 욕구따윈 기본적으로 무시하거나,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일부 작품에서 식량 정도를 챙겨야 하는 정도인데. 먹고 자고 싼다는 기본 욕구 중 싸는 것만 빼고 다 구현한 건 관점에 따라 선구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과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여기에 밤이 되면 적들이 강해지는데 (내부적으로는 주인공 방어력에 패널티가 들어간다고 한다) 그래도 게임 내의 모든 던전과 퀘스트는 가장 가까운 거점이 되는 여관에서 시작해 아침에 출발해 당일치기로 되돌아오거나 다른 마을의 여관에 닿을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어디까지나 이론적으로. 헤메다 시간을 낭비하는 건 플레이어의 책임입니다) 아무튼 결국 밤에는 돌아와서 자야 하는 구조다 보니 레벨 노가다를 하면서도 쿨타임 되면 돌아와야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편의점에서 도시락 사 랩업하러 출근한 뒤 밤이 되면 퇴근해 돌아오는 이세계 노동자의 삶을 대리체험할 수 있다.
여기에 하이드라이드 3의 리얼리즘 노선을 보여주는 다른 시스템이 아이템 소지 중량. 아이템의 소지수 총량 제한을 두는 게임은 많지만 모든 아이템이 각자의 무게를 가지고, 레벨업과 함께 소지 가능 중량이 늘어나며 더 많은 아이템과 장비를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러다 보니 처음 1레벨에서는 당장 그날 먹을 도시락과 단검, 회복 아이템 몇 개를 들면 간신히인 수준이라 방어구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아이템 와꾸가 생기고 나면 대충 할 만해진다.
...그리고 돈도 중량을 가진다. 거기까진 좋은데, 10G 동전, 100G 동전, 1000G 동전 하는 식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각 동전마다 개수와 무게를 따로 잰다. 자, 그렇다면 생각해 보자. 100원짜리 10개와 500원짜리 동전 2개라면 어느 쪽이 더 무거울까? 100원짜리 10개가 더 무겁다. 이 게임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잔돈을 많이 갖고 있으면 같은 양의 돈을 갖고 있더라도 인벤토리 무게를 더 많이 차지한다. 여기에 소지 아이템이 너무 많으면 캐릭터의 이동속도가 느려지며, 심해지면 아예 움직이지 못 하고 그 자리에 멈춰서버린다. 처음 기획에는 돈을 맡길 수 있는 은행 시스템을 넣으려 했던 것 같고, 게임 내의 첫 마을인 숲속의 마을에 은행 건물은 존재하는데 카트리지 용량 문제로 삭제되어 기능하지 않는다. ...아니... 그걸 삭제할 거면 돈의 무게제한도 같이 삭제해 주던가. 적이 드랍하는 잔돈 때문에 몸이 무거워지면 돈을 버리면서 진행하게 되는 상황도 왕왕 발생한다. (메가드라이브판에서는 은행이 구현되어 있으며, 중량 패널티를 경감시키는 주문도 추가되었다고 한다.)
이 중량 제한을 두고 유저를 불편하게 할 뿐인 시스템이라고 하는 의견도 있지만.. 글쎄, 그 정도까진 아닌 것 같은데. 인벤토리 개수 제한을 두는 건 흔한 일이고, 레벨이 올라가며 중량 한도가 점점 늘어나기 때문에 게임 밸런스도 거기에 맞춰 조정되어 있어 딱히 문제라는 인상은 들지 않는다. 다만 적이 드랍하는 아이템이면 무조건 일단 먹고 보기 때문에 한참 싸우다 갑자기 중량 오버로 움직임을 정지당하거나 할 때도 있어서, 음, 그래. 패널티가 좀 극단적이긴 하다. 이 게임 리얼타임이잖아.
전투 시스템 면에서는 전작의 몸통박치기에서 탈피, 칼을 뽑고 휘두르거나 원거리에서 투척무기를 던지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여기에 꽤 세심한 조정이 들어간 게, 정면에 적이 있는 상황에서 공격을 하면 바로 명중하는 게 아니라 칼을 찌르는 애니메이션이 발생하며 해당 칼이 몬스터와 닿아야 명중된다.무슨 소리냐면... 만약 주인공이 마주보는 적이 캐릭터 반 개분만큼만 겹쳐져 있다고 치자. 주인공은 오른손잡이기 때문에 주인공의 오른쪽과 겹쳐져 있는 상태에서 공격하면 명중되지만 왼쪽 절반과 겹쳐 있는 상태에서는 헛손질이 된다. 주인공은 4방향밖에 공격할 수 없는 만큼 약간 어긋난 위치에 있는 적들은 주인공을 때릴 수 있는데 주인공은 공격이 맞지 않는 상황도 왕왕 발생한다. 물론 하이드라이드 시리즈가 애초에 강한 적 상대로 개돌격해 치고박는 게임이었던 적이 없고 적의 후방이나 측면을 노려 자기보다 한두체급 강한 적을 하나둘씩 조심스럽게 쓰러트리는 게임이긴 했지만, 적잖은 던전들이 좁은 통로로 이루어져 있는데 벽을 통과하고 날아다니는 몬스터들이 등장하면 어어어 하는 사이 털리게 되기도.
여기에 스크롤이 아니라 화면 전환 방식인데 새 화면에 들어갈 때마다 몹이 랜덤하게 스폰되고, 시작하자마자 까다로운 위치에 적이 스폰해 원거리 공격을 퍼붓는다면 순식간에 라이프가 바닥난다. 그 대신이라고 할까, 전작에서 별 쓸모 없던 공격마법들을 제거하고 각종 보조마법들을 추가해 플레이를 보조하게 되었다. 그리고 필드나 던전 내 일부 지형에서 HP가 자동으로 회복하거나 줄거나 하던 요소가 삭제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하이드라이드 3의 전투는.. 사실 이후 일본 ARPG의 표준이 된다. 적어도 90년대 스퀘어나 퀸텟의 ARPG들을 보면 하이드라이드 3의 시스템을 베이스로 불편한 부분들을 개선하거나, 너무 복잡한 부분들을 단순화시키거나, 모자란 부분을 확장하거나 한 느낌. 기존에 없던 장르를 개척하다 보면 당연히 시행착오적인 부분도 있기 마련인데, 이렇게 보면 하이드라이드 시리즈 전부가 이런 시행착오를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 시행착오적인 부분을 보여주는 게 무기의 리치. 투척무기는 벽이나 지형지물을 통과하지 못하지만 근접무기는 리치만 닿는다면 벽 너머의 적들도 공격이 가능하다. 추측이긴 하지만 아마 투척무기의 공격판정이 캐릭터가 쏜 위치에서 생겨나 궤적을 따라 이동하는 식인 데 비해 근접무기의 공격판정은 리치에 따라 캐릭터로부터 일정 거리 정면에 생성되며, 그게 몬스터에 닿으면 공격이 발생한 걸로 처리되지만 그 공격판정과 캐릭터 사이에 장애물이 있는가를 확인하는 처리가 빠진 게 아닐까. 뭐, 덕분에 좁은 미궁에서 레벨링에 유용하게 쓰이는 테크닉이 되었으니 불만은 없다. 플레이어에게 유리한 건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게 예의다.
본작은 전작에 비해 진행에 필요한 힌트도 많이 늘어 굳이 공략을 보지 않더라도 일단 자력으로 진행이 쉽진 않겠지만 가능한 수준은 되는 것 같다. 시작지점인 숲속 마을에서 북쪽의 탑과 구름 위의 마을에 대한 힌트를 듣고, 북쪽으로 올라가면 하벨의 탑이 있다. 처음에는 그냥 던전인 줄 알고 진행하다가 6층에서 엘레베이터 스위치를 발견, 엘레베이터를 타면 무려 190층까지 올라갈 수 있다. 190층에서 내려 좀 더 올라가다 보면 198층에서 구름으로 이어진 길이 있고, 그렇게 천공의 마을에 도착하면 여기서 탑 176층에 숨겨진 '구름의 돌'이라는 아이템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 식이다.
물론 이 게임은 하이드라이드이기 때문에 숨겨진 요소도 있고, 또 상술한 구름의 돌을 입수한 뒤에도 지정된 장소 외의 다른 곳에서 뛰어내리면 죽는다. 176층의 구름의 돌 외에 113층에는 본 게임 최고의 공격력을 가진 '빛의 검'이 존재하는데, 빛의 검의 존재는 어디까지나 숨겨진 요소기 때문에 힌트가 없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구름의 돌을 입수하는 것도 처음에는 헤메기 쉽다. 엘레베이터에서 내려 176층을 철저히 뒤져도 아이템은 등장하지 않으며, 내렸다가 다시 엘레베이터에 타고, 층을 선택하는 창이 나왔을 때 엔터(리턴)을 눌러 취소한 뒤 엘레베이터 내부에 있는 동안 메뉴로 들어가 조사하기 커맨드를 눌러야 발견된다. 빛의 검도 마찬가지. 빛의 검이야 숨겨진 아이템이라 그렇다 칠 수 있겠지만 구름의 돌은 필수 아이템인데 이래서야.
또, 본작의 아이템들 중에는 왠지 그럴듯해 보이지만 도저히 쓸모가 없이 인벤토리 중량만 차지하는 것들도 있다. 위에 언급한 하벨의 탑을 탐사하는 과정에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인 '마법의 부적'은 중량 1000g에 장착하면 마법의 지속시간을 늘려주지만 '오도레이터'란 아이템은 같은 중량에 사용하면 신발의 발냄새를 제거했다는 말과 함께 아무 것도 발생하지 않는다. 실제로 저런 곳에서 모험을 해야 한다면 상쾌한 발을 위해 킵하고 싶은 물건일지도 모르지만 화면 밖의 플레이어 입장에선 그냥 쓸모없는 아이템이기 때문에 버려버리고 싶지만 -- 그렇잖아? 공략이라도 보기 전에는 혹시 이게 필요한 이벤트가 나중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버리지도 못 한다구.
게임 내에서 NPC들이 진행에 대한 직접적인 힌트를 주긴 하지만, 그걸 소화하는 건 역시 유저의 몫이다. 예를 들어 천공의 성이라는 곳에 들어가 경비 중 하나에게 말을 걸면 이 아래에 물의 성이 있다는 걸 알고 있냐는 말을 듣는다. 오버월드에서 해자로 둘러싸여 들어갈 수 없는 성이 하나 있는데, 그곳인가? 그리고 마을의 다른 NPC에게 말을 걸면 하늘을 날 수 있게 해 주는 구름의 돌이라는 아이템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이 두 가지를 조합해야 하는데, 성에 들어오면서 외벽을 따라 이동해 구름 사이의 갈라진 틈으로 향해 구름의 돌을 장비한 상태로 뛰어내리면 물의 성 해자 안쪽으로 떨어진다.
...이거 때문에 한참 헤멨는데, 힌트를 주는 거랑 별개로 탐색을 철저히 하지 않으면 곳곳에서 막히기 십상. 이후 물의 성내를 탐색하다 보면 자기 ID카드를 잃어버렸다는 궁녀를 볼 수 있는데, 응접실에서 잃어버렸다는 힌트를 듣는다. 입구 부근에 '이곳은 응접실이다'라고 설명해 주는 병사가 있는데, 이 ID카드는 여기에 놓여 있다고 당당히 표시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방 안의 각 마스마다 밟으며 메뉴에 들어가 '찾는다'를 눌러 탐색해야 발견된다. 필수 아이템이 숨겨진 요소처럼 주어지는 건 역시. 아, 물론 아무런 힌트도 없는 2편에 비하면 너무나도 혜자스럽지만 그건 2편이 이상한 거고. 역시 이런 걸 보면 하이드라이드 3도 역시 올드한 게임인 건 분명하다. 마음을 다잡고 찬찬히 하면 혼자서도 가능하지만, 정신건강을 생각해 모르겠다 싶으면 어느 정도는 외부정보를 찾아가며 하는 게 좋은 정도의 밸런스.
2편과 달리 3편은 윈도우즈 리메이크판이 한글화도 되어 있고 공략정보도 찾으면 나오는 만큼 공략 전체를 쓰기보단 최소한 초반에 게임이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할 정도만 설명해 본다.
처음 캐릭터를 만들면 이름을 입력하고 4종류의 클래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전사는 공방이 높고 힘이 세며 초보자에게 흔히 추천되는 것 같고, 강도(!)는 체력이나 힘이 좋아 소지중량도 많고 초반은 편하다만 마법력이 모자란다. 승려는 반대로 신체능력이 딸리는 대신 마법에 여유가 있고, 초반이 힘든 대신 5레벨까지는 경험치를 1.5배로 입수한다. 수도사는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좋고 능력이 높지만 체력이 다른 모든 클래스보다 낮으며 덕분에 초반에 죽기 쉽다.
초기스탯은 어느 정도 랜덤화되기 때문에 리세마라를 하게 될 텐데, 하다가 아주 낮은 확률로 (정보에 따르면 1/150) '괴물'이라는 클래스가 등장한다. 플레이어가 선택한 클래스를 베이스로 하되 체력이 크게 높아진 상태로 시작. 수도사 베이스의 괴물을 만들어 시작하면 수도사의 약점인 체력 문제가 해결된다 하는데 난 리세마라가 귀찮아서 적당한 스탯의 수도사로 했다. 왜 전사가 아니냐고? 우리들 마음 속에 청개구리 하나쯤은 다 키우고 있잖아...
그렇게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나면 마을로 들어가 무기상에서 곤봉이든 단검이든 무기 하나, 그리고 잡화점에서 식량 2개를 구입한다. 그리고 밖에 나가면 슬라임처럼 생긴 젤리라는 몬스터가 돌아다니는데, 체력이 낮고 전작들과 달리 자동회복이 없는 만큼 공격받지 않게 주의하며 밤이 되기 전까지 $1000를 모아 첫날의 여관비를 벌어야 한다. 초반에 이 고통을 감내하고 경험치를 모으면 마을에 있는 신성한 사원에서 레벨업을 할 수 있다. 경험치가 차면 바로 레벨업을 시켜주지 않는 건, 이 게임에서 경험치의 용도가 2가지기 때문이다. 숲의 마을 사원에서는 경험치를 소비해 레벨을 올릴 수 있고, 천공의 마을에서는 마법을 배울 수 있다.
아무튼, 여러 의미에서 하이드라이드 3 최대의 난관이 바로 이 첫날이다. 마을 입구 주변을 배회하는 적들 중 가장 약한 적인 젤리도 1레벨 캐릭터로 아무 생각 없이 정면에서 들이받다 보면 데미지가 쌓여 여관비를 모으기도 전에 죽어버릴 수도 있고, 여기에 나무 모양을 한 식인수라는 몬스터는 가까이 다가가면 원거리 공격을 가해오며, 랜덤하게 스폰되는 만큼 정말 재수 없다면 캐릭터를 만들고 게임을 시작하자 마자 속공으로 당해버릴 수도 있다. 더 골치아픈 건 나무 모양을 하고 돌아다니는 몬스터 중 '식인수'는 공격을 해 오지만 '나무의 정령'은 선한 몬스터로 분류되어 플레이어를 공격하지 않는데, 외형상 동일하다는 것. (자세히 보면 식인수의 애니메이션이 약간 다르지만 기본 모습은 완전히 동일하다.)
뭐, 그래도 이 구간을 지나고 레벨 2-3쯤 되면 어이없이 화면 이동하자마자 게임오버 당하는 일은 줄긴 하는데, 게임오버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구간이 시작 직후라는 건 밸런싱 문제지. 적어도 스타트 지점인 숲의 마을을 중심으로 3x3에 식인수가 등장하지 않는 정도의 조절이 있었다면 싶지만... 아무튼 매일 최소한 모아야 하는 할당량은 $1500이다. 당일 여관비 $1000에 다음날 아침에 식량 2개를 살 만큼. 정확히는 캐릭터의 매력 수치에 따라 아이템 값을 약간 깎아주기도 하고, 만약 아슬아슬하게 모자랄 것 같다면 식량을 1개만 사고 저녁식사를 해야 하는 19시가 되기 전에 여관에 체크인하면 저녁식사분의 식량을 소비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쯤에서 언급하게 되는 게 본작의 도덕 시스템. 본작의 몬스터들은 플레이어를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악' 몬스터와 공격해 오지 않는 '선' 몬스터로 구분되는데, '악' 몬스터를 쓰러트리면 본작의 카르마인 '정신력(Mind Force)'가 아주 조금씩 상승하지만 '선' 몬스터를 죽이면 순식간에 감소한다. 어느 정도냐면.. 악 몬스터 10마리당 1씩 상승하는 데 비해 선 몬스터를 잡으면 바로 -20. 근데 이게 단순히 착하게 살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닌 게 문제다.
예를 들어 위 화면.녹색 몬스터는 마을 밖에서는 '젤리'라는 악 몬스터로 분류되지만 위 스크린샷의 하벨의 탑에서는 '슬라임'이라는 이름의 선 몬스터로 분류된다. 그리고 그 뒤에서 접근해오는 보라색 원형의 몬스터는 원거리 공격을 해 온다. 이 상황에서 왼쪽 스크린샷이라면 그래도 위 화면으로 도망쳐 피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우측 스크린샷처럼 좁은 길을 양쪽에서 가로막힌 사이에 원거리에서 연속해서 쳐맞으면 대처가 불가능하다. 이 상황에서 그냥 죽고 로드해서 다시 시작할까? 아니면 슬라임을 죽이고 카르마 -20을 받을까? LOSE-LOSE를 강요받는 순간.이런 카르마 시스템은 하이드라이드 2부터 있었지만 그래도 그 때는 떨어지는 속도나 올라가는 속도나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별 큰 문제가 안 되었던 데 비해 3에서는 실수해서 선 몬스터를 죽였을 때의 패널티가 너무 크고, 거기에 오버월드의 나무의 정령 / 식인수, 혹은 위령의 동굴의 부유령 / 악령 처럼 외형상 동일한 선악 몬스터가 혼재해 있을 경우 선공을 맞기 전까진 어느 쪽인지 분별조차 할 수 없다. 식인수도 악령도 얘들을 처음 만날 시점에선 주인공을 순삭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몹들인데 선공까지 양보해야 하다니.
판타지 세계의 모험이라 생각했는데 SF 요소가 들어가며 우주까지 범위가 넓어지는 하이드라이드 3는 연출적으로도 시나리오상으로도 파격적...이긴 한데 울티마에서 영감을 받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머리속 한 켠에 든다. 울티마도 초기작은 소드 앤 소서리인 척 후로꾸를 치다가 주인공을 우주로 보내버리거든... 그리고 굳이 스포일러를 의식할 필요 없으리라 생각하고 이야기하자면 주인공은 어찌어찌 하다 전작들의 보스인 바랄리스나 이블 크리스탈은 물론, 페어리랜드 전체를 만들어낸 일종의 창조신격인 존재를 쓰러트리고, 새로운 페어리랜드를 창조해 내는 데 이르는데 (시나리오를 철저히 완결시켜 정말 더 이상은! 후속작은! 만들고 싶지 않다! 라는 제작자의 번뇌가 느껴진다...) 이런 신격살해(Deicide)의 모티브 역시 여러 일본 RPG에서 재현된다.
다만.. 이 게임이 발매된 건 1987년이다. 전작에 비해서는 압도적으로 알기 쉽고 편해졌지만 그렇다고 해도 하이드라이드 3는 여전히 하이드라이드다운 난이도와 괴랄함을 갖고 있다. 스토리 진행도에 따라 마을 사람들의 대사가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다음에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겠다 싶으면 방문할 수 있는 마을을 뒤지다 보면 뭔가 다음에 할 일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지만, 80년대 게임답게 A를 하고, B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지만 A와 B가 어떻게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되는지는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아마도 텍스트 집어넣을 용량의 부족 문제겠지, 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자.
하이드라이드 3가 발매된 87년에는 경쟁사인 팔콤 역시 이스를 발매했다. 전투 시스템만 보면 하이드라이드 3보다는 오히려 이스가 하이드라이드 I, II를 계승한 것 처럼 보이고, 게임의 액션성 면에서는 하이드라이드 시리즈의 어느 게임보다 이스 쪽이 뛰어나기 때문에 하이드라이드가 묻히는 감이 있지만 (특히 일본 국내보다 해외에서 이런 경향이 심하다) 플레이 해본 뒤의 감상은 좀 다르다.
하이드라이드 3가 이스보다 액션성이 약하다고 비판하는 건 디아블로같은 게임을 기대하고 발더스 게이트를 했더니 다이스나 굴리고 자빠져 있고 게임성 구리네 하는 거나 마찬가지. 애초에 두 게임은 추구하는 방향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이스가 내러티브와 액션성에 중점을 두었다면, 하이드라이드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탐색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 시기쯤 오면 슬슬 형체를 잡고 독자적인 클리셰가 갖춰지고 있던 JRPG 노선과 정반대의 울티마 스타일 CRPG로 나왔던 것도 고려해야 하겠지.
시간 경과나 중량 제한 등의 시스템적 불편함으로 저평가되는 면도 있고, 전작보다 나아졌다고는 하나 전체적으로 여전히 불친절한 편에 속하는 게임이라 쉽게 권하기는 힘들다. 은행을 비롯해 시스템적으로 미완성된 상태인 부분들도 있고, 초반에 신체능력이 낮은 직업을 선택했다면 하벨의 탑을 돌파해 천공의 마을에 다다르기 전까진 마법을 배울 수 없는 MSX 버전의 특성상 초반 난이도가 더 올라가 버리는 것도 난점. 하지만 이런 부분들의 상당수는 PC-98의 하이드라이드 3 스페셜 버전이나 메가드라이브용 슈퍼 하이드라이드에서 조정된 것 같으니 그 쪽이라면 조금 낫지 않을까. 윈도우즈 리메이크판도 있고. 패미컴으로는 하이드라이드3 어둠으로부터의 방문자(ハイドライド3 闇からの訪問者)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는데, 약간의 어레인지가 들어가 있다고 한다.
하이드라이드 I・II
하이드라이드 (1985 MSX2, 1986 FC) 이 게임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마 둘 중 하나일 것이다. 80년대에 이미 이 게임을 접했거나, 아니면 AVGN같은 사람들의 리뷰로 들어보았거나. 일본에서 한때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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