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녀 2 (1996, PC-98)
전작 메타녀와 동년인 1996년에 발매되었으며, 원제는 '자이 메타녀', 한국에서는 '메타녀 2'로 발매되었다. 관련자료를 검색해 보다 보면 로마자 표기가 'Zwei Metajo'인 경우도 보이긴 하는데 중국어 再인 만큼 zai로 읽는 게 맞다. 오프닝을 보다 보면 '再'가 나오고 가타카나 ツァイ가 그 위로 올라온다. 그렇다면 가타카나를 보든 중국어 再로 보든 짜이 메타녀 라고 해야 할 거 같은데 어째 '자이 메타녀'로 알려져 있으니 그리 쓰겠다.
맨 위의 이미지는 한국 주얼판 커버로, 여기에 보이는 한국 정발판 캐치프레이즈는 "학원가를 수호하는 미녀삼총사". 으...응? 유리카, 유키코, 카호리 3명을 그린 듯 보이는데 유리카는 백발이고 유키코는 OP에서 드러나는 모습을 보면 검은 장갑을 끼고 있으며, 빨간 격투장갑은 오히려 카호리가 비슷한 걸 끼고 있... 아니 이런 건 굳이 츳코미를 넣을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전작의 오프닝에서 캐릭터 소개가 인게임 전투장면 연출 뿐이었던 데 비해 주요 인물들의 음성을 통한 자기소개와 약간의 애니메이션 컷씬까지 들어가 있고, 다양한 시나리오 분기로 게임의 볼륨도 전작에 비해 파워업했지만 하술할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전작만큼의 평가는 받지 못하는 게임이기도 하다. 제작자가 한때 전작 메타녀와 함께 PC-98 에뮬레이터로 돌릴 수 있는 HDI 파일을 공개로 배포했었지만 지금은 사이트가 사라졌고, 제작사인 R-Force는 현재도 일단 존속하며 여러 게임들을 외주로 제작하고 있는 것 같지만 공식 홈페이지의 개발 작품 연표에 메타녀 시리즈는 실려 있지 않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정발된 한글판과 별도로 PC-98판에 대한 패치가 따로 제작되기도 했으며, 한국 정발판에서 삭제된 튜토리얼 스테이지나 일본어 음성지원 등을 즐길 수 있다.
일단 시스템적인 이야기부터 해 보자면, 전작과 대동소이하면서 미묘한 밸런스 조정이 여러 곳에 가해져 있다. 독이나 적을 약화시키는 상태이상 개념이 도입되었고, 특정 스킬을 익힌 캐릭터들이 적을 양쪽에서 둘러싼 상태에서 공격을 하면 협공이 가능해져 공격회수가 늘어나는 등의 아기자기한 요소들이 추가되었다. 다만 템포에 문제가 있는데, 일단 소규모 파티의 특수임무를 다루는 소재 자체는 충분히 흥미를 끌 수 있지만, 이게 SRPG라는 장르와는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는다. 애초에 SRPG는 다수 대 다수의 싸움을 보여주기 위한 장르인데 파티를 소규모로 짤 거라면 그냥 평범한 RPG 구성이었어도 되지 않을까.
스테이지 디자인에도 아쉬운 부분들이 남는다. SRPG에서 스테이지 시작하고 처음 몇 턴 정도는 아직 싸움이 없이 이동만 하는 경우도 많을 수 있지만, 대체로 적을 향해 접근하며 어떻게 위치를 잡을 것인가라는 최소한의 생각은 하면서 움직여야 하는 만큼 플레이어도 처음 2-3턴 정도라면 딱히 지루하다고 느끼진 않는다. 다만 교전을 상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장소 A에서 장소 B까지 움직여야 할 뿐인 상황이라면 일반 RPG에선 파티가 통으로 이동하니 불편을 느끼지 않지만 SRPG에서 하나하나하나하나 턴을 소비하며 움직이면 플레이어는 쉽게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잠입'을 컨셉으로 한 여러 임무들이나 스테이지 17 천문부 입부시험 등에서 이렇게 포인트 A에서 포인트 B까지 이동할 뿐인 장면들이 등장한다.
전투 밸런스 면에서도 느낌이 많이 달라졌다. 대규모 회전 중심이었던 전작에서는 적, 아군 양측에 다수의 NPC들이 참전해 아군 주요 캐릭터들이 받는 피해도 어느정도 분산되며 PC는 빨피 남은 애들을 중심으로 잡아댈 수 있는 데 비해 본작에서는 소규모 특수임무가 주가 되며, 결과적으로 소수의 아군이 다수의 적을 상대로 싸우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전작에서 강력했던 마법들이 크게 너프되어 광역마법을 통해 적의 머릿수를 줄일 수 없어 하나하나 처리해야 하며, 그러다 보면 가뜩이나 딜러가 적은데 거의 매 턴 누군가를 힐해줘야 하니 전투가 더더욱 늘어진다. 게임 후반으로 들어가면 이제 좀 메타녀스러운 대규모 전투가 펼쳐지기도 하지만 그 때까지 흥미를 유지시킬 요소가 모자란다.
그래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미션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실패했던 미션 중에 입수한 레벨과 경험치를 그대로 유지한 채 몇 번이고 같은 스테이지에 도전할 수 있고, 재도전할 때마다 아군이 조금씩 강해지니 어느 순간에는 돌파되게 되어 있으니 시간을 들이면 어찌되든 클리어할 수 있긴 하다.
위에 설명한 늘어지는 템포는 자이 메타녀가 전작에 비해 박한 평가를 받는 요인 중 하나겠지만, 관련해서 검색해 보면 그 외에 스토리적인 부분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듯 하다. 위의 시스템적인 부분에 비해 스토리성은 평가가 아무래도 더 주관적이 될 수 밖에 없을 텐데, 여기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아무래도 네타바레를 피할 수 없으니 주의.
자이 메타녀는 전작의 정신나간 세계관과 시스템을 계승하며 전작의 1년 뒤에 발생하는 일들을 다룬다. 그렇게 직접 스토리가 연결되는 만큼 당연히 전작을 플레이했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진 건지, 전작의 사건들을 언급하면서도 여기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도 없기 때문에 만약 전작을 플레이하지 않고 이 작품부터 들어온다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지금에 와서야 별 문제가 안 되지만 아직 신작이던 시절에는 문제였을 지도 모르겠는데, 모르긴 하지만 매뉴얼이라도 충실했다면 큰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여기에 전작에 비해 스테이지 분기가 대폭 늘었고, 초반에는 어떤 임무를 받을 것인지 선택지가 주어지기 때문에 모든 시나리오를 플레이해 보기 위해서는 회차 플레이가 반드시 필요하다. 중후반으로 가면 다시 하나의 오솔길 시나리오로 통합되게 되긴 하지만, 이후에도 여러가지 대화 선택지들을 통해 최후까지 주인공 유리카와 함께 싸워줄 멤버들이 정해진다. 전작의 노리코나 천문부-네오천문부 분열 플래그와 마찬가지로 전부 회피하면 그동안 함께한 주요 지휘관 전부를 데리고 최종결전에 임할 수 있으며, 애들 너무 갈구지 않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바른생활 선택지를 따르면 그리 어렵진 않다.
다만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주인공 유리카 일행이 무엇을 위해 왜 싸우고 있는 건가에 대한 감정이입이 어려울 수 있다. 초반에 이들이 생도회 첩보부대 소속으로 교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위법행위들을 단속하고 다니는 부분까진 괜찮겠지만, 중반에 들어가면 초반에 벌어진 위법행위들을 일으킨 장본인들이 생도회와 사법거래를 통해 면책되기도 하고, 메타여고의 평화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위법적인 수사를 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무고한 사망자를 내기도 하고. 우리는 메타여고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남산의 부장들이었단 말인가.
그러면서 사법거래로 포섭된 유령부는 부실 방에 전작의 흑막이자 최종보스인 화란의 사진을 걸어놓은 생물부 잔당임을 알게 된다. 전작에서 생물부가 다른 부서는 말할 것도 없고 자기들 부원 목숨도 하찮게 여기는 악역으로 그려졌다는 걸 생각하면 그 보스인 화란을 추종하는 이놈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그러면서 새롭게 타겟이 되는 적대역은 전작의 주인공들인 천문부다. 즉 플레이어는 전작 메타녀에서 힘겹게 재건한 천문부를 다시 무너뜨려야 하는 것이다.
메타여고는 12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백스토리가 있고, 그 중 천문부와 생물부는 양대 세력으로 1000년이 넘게 항쟁해 왔다는 어이없는 설정이 있는데, 단지 정신나간 설정 중 하나로 넘기지 말고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그렇게 오랜 항쟁을 했다면 이미 누가 먼저 잘못했고 그런 건 다 의미 없는 지난 일이고, 현재에 와서는 그저 타도해야 할 숙적에 불과하다. 즉 왜 싸우냐는 질문 자체가 우문인 것이다. 적이기 때문에 싸운다. 그게 '적'의 개념이다.
그러면 전작에서 화란이 왜 그런 대규모 동란을 일으켰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적진에 내분을 일으킨 뒤 하나씩 제거한다, 너무나 정상적인 판단이지 않은가. 요시미의 네오천문부 쿠데타 역시 현직 천문부장이 적과의 협정을 맺으려는 것에 반발해 이런 물러터진 놈으로는 안 된다며 나섰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진보정부가 대북 완화책을 쓸 때 보수의 반응을 생각해보자) 물론 모니터 밖에서 보는 제3자 입장에선 그냥 서로 싸움질 그만 하고 같이 학교생활 하면 안 되겠니?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랜 적대와 불신의 역사는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게 쉽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은 판문점 가서 우리 이렇게 살지 말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자고 설득해 주시길 바란다. 성공하면 노벨평화상 득템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이 메타녀에 등장하는 세력들의 동기도 납득이 가능해진다. 카틴 이하 유령부는 생물부 잔당이기 때문에 당연히 천문부와 싸울 수 있다면 누구와도 손을 잡는다. 그들이 불법 카지노를 운영하거나 원예부의 고구마밭을 약탈해 고구마 품귀현상을 일으킨 것도 자기들 딴에는 생물부 부흥운동의 자금을 모으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마사미 이하 생도회는 그 긴 역사속에서 메타여고의 전란을 지켜보며 저년들은 답이 없으니 생도회 1강체제를 만들어 모든 분쟁을 힘으로 찍어누를 수 있게 하는 게 유일한 답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마치 소련 붕괴 직후 약 20년간 미국이 그랬던 것 처럼 말이지. 마침 메타녀가 제작된 것도 그 미국 1강 시기이다.
마유미 이하 천문부는 그래도 전작 주인공 보정을 받아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인다. 얼핏 보면 천문부는 가만히 있는데 마사미가 집적거렸고, 맞았으니 응전했다는 것 뿐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천문부 역시 전작의 생물부가 만들던 조약위반 WMD를 차지한 뒤 후계기를 제작하고 있었으니 정의로운 조직이라 할 수 없다. 이 WMD 의혹이 마사미의 누명일 거라는 해석도 가능하긴 하겠지만 천문부에서 탈취한 부품으로 완성해 작중에서 사용되기까지 하는 만큼 이 WMD를 폐기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했다는 건 적어도 천문부 내의 누군가가 천문부에 의한 메타여고 지배를 꿈꾸고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 그게 부장 마유미일지 부부장 타쿠미일지는 모르겠지만.
플레이어는 마지막에 마사미와 마유미, 어느 쪽에 가담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마사미에 가담한다는 건 생도회 독재를 위해 마유미의 천문부를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의미기도 하니 대부분 유저들에게 아무래도 찝찝한 엔딩일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건 마유미를 인정할 것인가이다.
생물부 잔당은 잘 모르겠다고 치고, 생도회나 천문부나 메타여고의 평화를 바라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거기에는 '자신들의 헤게모니 아래에서' 라는 전제조건이 있다는 것. 그렇다면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감정이입이 안 되는 유치한 권력싸움으로 보일 뿐이다.
자, 그럼 마유미에게 통일군주로서의 그릇이 있는가? 자이 메타녀에서도 천문부 내에서 쿠데타 미수가 발생하는 등 마유미의 통제력에 한계가 있다는 암시를 주기도 하지만, 마유미의 정치력에 한계가 있음은 이미 전작부터 암시되어 있었다. 애초에 마유미가 부장대행이 된 것은 야전지휘관으로서의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고, 정치력은 천문부 외무장관이었던 타쿠미 쪽이 높을 것이다. 계급도 타쿠미가 더 높았고. 하지만 그건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전작 메타녀에서 묘사되는 메타여고는 마치 군벌들이 항쟁을 벌이는 듯한 모습이며, 각 부에 소속된 학생들 역시 자기가 선택한 주군의 대업을 위해 전장에 나서는 전형적인 삼국지적인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마유미나 마사미 중 어느 쪽에 가담한다면 어느 한 군벌에 의한 천하통일의 대업이 완수된다. 유리카 출세했군. 고작 행동대장에 불과했던 애가 메타여고의 미래를 결정하는 퀸메이커가 되다니.
하지만 결국 군벌에 의한 통일이라면 그게 과연 항구적인 평화인가? 힘을 지닌 절대적 군벌에 의한 독재를 긍정적인 미래로 볼 수 있는가는 둘째치고, 그 세력도 언젠가 약화되거나 분열하면 다시 역사가 반복될 뿐 아닐까? 마사미도 마유미도 메타여고에 항구적 평화를 가져오고 싶어하지만, 정작 그들도 필요하면 위법행위를 저지르고, 무력을 동원해 천하를 통일한 군벌에 불과하지 않은가?
만약 둘 다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양쪽 모두를 쓰러트리고 새로운 체제를 세우는 엔딩으로 갈 수도 있다. 만약 그동안 유리카가 리더로서 동료들의 마음을 얻었다면 동료들이 유리카와 함께 싸워 줄 것이고, 그렇지 못했다면 그동안 함께한 동료가 이탈해 적으로 돌변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이 싸움에서 이기면 유리카는 생도회장으로 스스로 취임한 뒤 생도회의 권한을 크게 줄이고, 각 클럽의 수뇌진 대표들에 의한 의회 시스템을 설립, 임기를 마친 뒤 생도회를 은퇴하는 엔딩으로 이어진다.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는 한계가 있고 각 클럽 대표들에 의한 귀족정 느낌도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현실의 UN에 상응하는 조직을 만든 것이다.
제작사도 이 시리즈를 잊어버린 지 25년이 지난 만큼 어느 엔딩이 메타여고 정사가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난 그래도 이 의회 엔딩이 진 엔딩이 아닐까 생각한다. 만약 그렇다면 자이 메타녀는 전작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 주인공 세력이 이끄는 군대가 천하를 통일해 앞으로 다들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천하통일 내러티브 자체를 부정하는 안티테제적인 작품인 셈이다. 시리즈 후속작으로 나오면서 전작의 본질을 반성하고 그걸 넘어서려는 대담한 작품이 얼마나 될까? 훌륭하다.
엔딩 크레딧 이후에 보여지는 '플레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메시지. 네임드 주인공들이 아니라 전장에서 쓰러져간 일반 학생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전작에서도 포스트 크레딧 마지막 CG에 나온 건 네임드들이 아니라 일반 부원들이었지. 제작진이 생각하는 진짜 주인공은 유리카도 마유미도 아니라 이 일반 학생들이란 의미일 지도 모른다.
메타녀
메타녀 (1996, PC-98) 일본판 정식 명칭은 메타녀 - 부립 메타토폴로지대학 부속여고SP. 제목 '메타녀'의 '녀'는 사실 일본어에서 'XX여자고교'를 'XX여'로 줄여부르는 말로, 저 긴 학교이름의 약칭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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