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틱스 노츠 DaSH (2019)
공식적으로는 로보틱스 노츠의 정식 후속작이라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 스핀오프에 가까운 작품. 같은 시리즈 내에서 보면 슈타인즈 게이트와 선형구속의 페노그램의 관계에 가까운 인상이다. 부제로 붙은 DaSH는 슈타인즈 게이트의 등장인물 하시다 이타루의 ID로, 전작의 야시오 카이토와 함께 더블 주인공으로 활약한다.
구성은 2장에 걸친 공통루트와 2장에서의 분기를 통해 작중에서 '페이즈'로 부르는 개인루트로 분기되는 심플한 방식. 원작의 사건이 끝나고 6개월 뒤 가고시마에서 재수생 노릇을 하고 있던 야시오가 다네가시마의 축제를 겸해 귀향하고 모종의 목적으로 동시에 다네가시마를 방문한 하시다 이타루를 만나며 스토리가 시작되며, 평화로운 도입부를 지나 축제가 개시되려는 타이밍에 전작의 메인 빌런이었던 키미지마 코우가 다시 등장해 앞으로 축제 기간중 이변이 발생할테니 이를 저지하고 싶다면 섬 곳곳에 자신이 설치한 지오태그를 AR 어플리케이션으로 발견해 제거하라고 도발한다.
애초에 전작에서 키미지마 코우가 완전히 소멸한 것도 아니었고 제2, 제3의 자신이 나타날 거라는 암시를 남겼으니 그가 돌아오는 것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고, 여기까지만 보면 평범하게 후속작인 것 같지만... 이게 팬디스크나 스핀오프가 아니라 정식 후속작이라면 아마도 시리즈 최악의 문제작이다.
그 이변이란 건 여성 캐릭터들이 첫날에 네꼬미미 메이드복, 둘째날에 블루머 체육복을 강제로 입게 되고 셋째날에는 전원 수영복 상태가 되는 것. 여기에 전작의 최종보스였던 키미지마까지 승부라며 주인공 일행과 금붕어 잡기나 사격을 하고 노는 꼴까지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들도 이런 키미지마의 돌변에 당황하면서도 이게 사람들로 하여금 안심시키려는 수작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굳이 그런 목적이었다면 모습을 드러낼 필요 없이 조용히 실험을 하다가 본격적으로 역습하는 게 더 합리적이지. 그냥 팬서비스를 넣기 위해 삽입된 장면일 뿐.
아니, 뭐 팬서비스가 나쁜 건 아니다. 이 게임이 로보틱스 노츠 러브츄츄 같은 제목이었다면 처음부터 대충 이런 느낌일 거라 예상했을 것이고 실망할 이유도 없겠지만 이게 정식 후속작에서 저지를 내용인가? 일단 여기까지는 내용이 한심한 건 물론이고 신규 주인공으로 참전한 하시다 이타루도 출신 원작보다 변태적인 발언의 비율이 늘어났는데, 슈타인즈 게이트 시절보다 여성진에 대한 성희롱 발언의 빈도도 높아졌고, 그것도 이미 29살이나 쳐먹은 그가 17~18세의 애들한테 이러고 있으니 지켜보기 불쾌한 장면이 많다. 입만 터는 게 아니라 수영복 차림의 애들을 이상한 필터 안경으로 쳐다보거나, 다이토쿠의 바지를 벗기고 가라데 연습을 시키면서 그걸 밑에서 올려보고 있으면... 차라리 이놈보다 니시죠 타쿠미가 나아 보인다. 적어도 니시죠는 2D 한정이고 겉으로는 얌전하니까.
아무튼, 공통루트에서는 키미지마가 설치했다는 AR 지오태그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게 되는데 지오태그가 발견되는 장면 자체는 정해져 있지만 그걸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축제장 어디를 방문하는가에 따라 다른 인물들과 만나면서 이벤트가 발생하고 분기 플래그가 정해진다. 2장의 맵 트리거 방문순서에 따라 분기되는 건 다이토쿠 준나, 유키후네 아이리, 히다카 스바루, 코지로 프라우, 텐노지 나에 5명분. 이상을 전부 클리어하면 세노미야 아키호 페이즈가 메인화면에 추가되며, 세노미야 시나리오 클리어 후 마지막 페이즈가 추가된다.
여기까지는 나름 스탠다드한 편이라 괜찮지만 여기에 본격적으로 AR 지오태그를 찾는 장면에서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어디 구석에 희미하게 감춰져 있을 지 모를 아이콘을 찾아다녀야 하니 성가시기 그지없을 뿐. 그나마 다행인 건 다른 루트를 들어가기 위해 2장을 반복해 플레이해도 지오태그의 위치는 변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어 2회차 이후에는 바로 해당 지점을 찍어주면 된다
트위터를 사용한 기믹은 없어졌다. 트위터 자체는 야시오와 하시다 시점에서 각각 로봇부 멤버들과 라보 멤버들의 트윗을 볼 수 있지만 재미로 열어보는 것 외에 직접 답변의 내용을 선택하거나 이로 인한 분기는 없다.
분기가 시작된 이후 각 스토리가 전개되는 방식도 이건 아니다 싶은데, 일단 명목상 야시오 카이토와 하시다 이타루가 더블 주인공이지만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야시오와 작중 슈퍼 해커, 거기에 슈타인즈 게이트 이후 10년간 수라장을 겪었을 하시다는 나이 차이는 물론이고 스펙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러니 모든 스토리에서 하시다가 주역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야시오는 그저 옆을 따라다니며 길안내를 하거나 전작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시다에게 설명하는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그래도 하시다가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부분은 그리 나쁘지 않지만 각 캐릭터들의 개인적인 사정에까지 개입하며 그들을 위해서란 명목으로 '선의의' 거짓말을 일삼으며 애들 감정을 갖고 노는 모습은 썩 유쾌하지 않다. 꼰대 냄새가 난달까. 여기에 이런 인격적인 멘토 역할까지 맡길 거였으면 변태발언도 적당히 자중하게 했어야지. 2ch 슬랭을 쓰거나 에로게 네타를 던지며 능청을 떠는 정도였으면 아직 괜찮지만, 자기보다 한참 애기들 상대로 직접적인 성희롱을 하는 변태로 만들어 놓고 어른 역할을 맡기는 건 무슨 짓이야?
하시다가 미스캐스팅이라는 건 아니다. 전작의 인물을 재등장시키는 것 자체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흥행을 위해서든 시리즈 내 각 작품들간의 연관고리를 강화하기 위해서든 필요하다고 치자. 누가 적임일까? 일단 멘토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한 인격적 성숙도 및 기가로마니악스에 대한 지식 내지 경험, 혹은 그와 같은 현상을 만들어 내는 '전자파조사장치'를 다룰 수 있을 만한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면 인격 파탄자 집단인 카오스 헤드 캐스트는 일단 전멸이고, 카오스 차일드라면 미야시로 정도가 있겠지만 수감중일 것이며 쿠노사토는 능력은 있지만 성격이 너무 독선적이다. 그러니 결국 슈타인즈 게이트에서 고른다면 남는 건 오카베, 마키세, 하시다 정도. 오카베와 마키세는 시리즈 최고 인기 캐릭터들이니 존재감이 너무 크고 로보틱스 노츠 캐스트를 병풍으로 만들 리스크가 너무 크다. 이미 하시다만으로도 충분히 야시오를 들러리로 만들었으니까. 그래서 어쨌건 그나마 적임자로 하시다를 뽑은 것 까지는 좋은데, 그러려면 그 역할에 맞는 캐릭터성을 부여해야지 그 나이 쳐먹고 상태가 오히려 악화되어 있으니.
기존 시리즈에서 후속작 포지션인 슈타인즈 게이트 0나 카오스 차일드가 전작들의 테마인 타임머신과 망상의 현실화라는 개념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과 비교하면 테마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도중의 루트들 중에는 유키후네 아이리처럼 아예 로봇이 소재로도 등장하지 않는 것도 있고, 망가졌다 하더라도 어쨌건 빌런인 키미지마의 수단은 인위적으로 기가로매니악스와 유사한 현상을 일으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망상을 현실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도 전자파로... 시즈쿠?
즉 본작의 중심이 되는 테마는 카오스 헤드에서부터 이어지는 '망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능력/전파'이며 로봇은 소도구에 불과하다. 이는 로보틱스 노츠 본편에서도 발생한 문제였지만 DaSH에서는 그 상태가 더 심해졌고, 마지막에 가면 키미지마가 기술적 특이점에 다다르는 걸 저지하는 스토리로 이어지며 주제가 또 바뀐다. 라스트 페이즈의 스토리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모든 주요 인물들이 다 나름의 역할을 부여받고 공통의 목적을 향해 행동하며 연출도 훌륭해 충분히 좋은 시나리오지만 전후 스토리들과 이어서 보면 대체 무엇을 전달하기 위해 쓰여진 플롯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중구난방인 것. 정식 후속작이라면 이 부분에 집중해 분량을 확충하던가, 그럴 여력이 없었다면 단편집에 수록했어야 할 내용이다.
물론 이상의 불만들은 어디까지나 '후속작'으로 생각할 때의 일이다. 단순한 팬디스크에 불과했다면 어떻게 하든 상관없지. 애초에 이 작품이 로보틱스 노츠 러브츄츄같은 제목이었다면 구입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 뻘짓을 지켜볼 이유도 없었을 테니까. 본작의 메인 라이터는 그동안 본편의 여러 작품들을 집필한 하야시 나오타카와 비익연리 및 러브츄츄 등 스핀오프를 주로 집필한 야스모토 토오루가 공동작업을 한 걸로 되어 있는데, 두 사람 사이에 작품 방향성에 대한 합의가 없었나?
2장 도중의 플래그로 진입하는 5명분의 스토리 중 그나마 전작 후반부의 분위기를 이어받은 건 텐노지 나에 페이즈 정도이고 나머지 넷은 해당 캐릭터를 주역으로 한 단편집 수준의 스토리. 유키후네 아이리와 프라우 코지로는 로봇보다 '전자파조사장치'를 통한 망상의 현실화가 중심이 되는 스토리로, 유키후네는 소녀가 잠시 어른의 모습이 된다는 클리셰적인 모습을 제외하면 그래도 딱히 이상한 전개는 없지만 코지로 페이즈의 BL아포칼립스는 바카게라고밖에 할 수 없는 수준.
다이토쿠 준나와 히다카 스바루 페이즈는 일단 성장 스토리로 컨셉을 잡은 것 같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놈들은 로보틱스 노츠 본편의 사건을 겪으면서 아무런 발전이 없었고, 다이토쿠는 소심한 성격, 히다카는 아버지의 반대라는 본편에서의 고민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게 된다. 다이토쿠는 천성이 그렇다 치더라도 히다카 쪽은 전혀 공감이 안 되는데, 애초에 본편에서 아버지가 보인 행동은 학대와 폭력인데 히다카가 왜 이걸 참아주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 그 정도 재주를 갖고 있다면 혼자서도 충분히 자기 길 개척하고도 남을 텐데 왜 그런 구질구질한 문제에 매달리는지.
이상의 스토리를 전부 보면 해금되는 세노미야 아키호 페이즈와 그 이후 해금되는 라스트 페이즈에서는 헛돌던 시나리오가 제자리를 찾으며 드디어 후속작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전작의 엔딩에서 에필로그 없이 미완으로 끝나 남은 의문들, 예를들어 키미지마 코우의 결말이나 세노미야 미사키의 처우 등이 충분히 설명되고, 상기한대로 소재면에서 카오스 헤드, 인물면에서 슈타인즈 게이트와 크로스되며 독립 작품으로서는 약하지만 전 시리즈의 접점을 만들어내며 깔끔하게 마무리하긴 했다. 물론 이럴 게 아니라 애초에 원작에서 스토리를 깔끔히 완결시켰어야 했지만.
그러나 이는 반대로 말하면 본작의 라스트 페이즈를 100%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가로매니악스와 다이버전스 개념을 이해해야 하고 슈타인즈 게이트와 그 후속작 제로까지의 인물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는 즉 본작 발매 시점까지의 모든 작품을 플레이한 유저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란 말일 텐데... 그런 작품의 2/3를 팬서비스와 변태개그로 때우고 그걸 후속작이랍시고 내놓다니. 도저히 이해가 안 가지만 그나마 가능성을 생각해 보면 팬디스크와 후속작이 따로 기획되다 각각 분량도 안 나올 거 같으니 합쳤다던가? 이런 쿠소게로 마감된 건 역시 기획 단계에서 뭔가 크게 뒤틀려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는 제정신으로 이렇게 만들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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