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 and the Princess

마법사와 공주 (1980 APL2)

 

시에라가 아직 시에라가 되기 전, 온라인 시스템즈로 불리던 시기에 미스테리 하우스에 이어 발매한 고화질 어드벤처 시리즈 2번째 어드벤처 게임. 디자이너는 마찬가지로 로베르타 윌리엄스. 전작이 1980년 5월에 발매되었는데 동년 8월에 바로 후속작을 내놓은 건 역시 윌리엄스 부부가 작정하고 물 들어올 때 노 저었다는 거겠지.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물론 컬러 그래픽이겠지만 내용적으로도 미스테리에서 판타지로 바뀌었으며, 이후 고화질 어드벤처 시리즈는 이렇다할 테마 없이 다양한 장르로 제작된다. IBM 호환기로는 세레니아에서의 모험(Adventure in Serenia)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는데, 제목이 바뀌게 된 경위는 불명.

 

사악한 마법사 할린에 의해 프리실라 공주가 납치되고, 이에 왕이 공주를 찾아오는 자에게 왕국의 절반을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매뉴얼에만 있는 배경설명을 참조한 뒤 기동해 보면 세레니아에서 게임이 시작된다. 이후 이식판에 따라서는 주인공이 세레니아에 오게 된 배경이 묘사되는 부분이 추가되었다고 하며, 본작의 배경이 되는 세레니아는 이후 킹스 퀘스트 시리즈에서도 재등장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렇다할 다른 힌트가 없으니 주변의 사막을 돌아다니다 보면 거대한 뱀을 만나거나 황량한 사막이 반복될 뿐. 이후의 킹스 퀘스트를 경험해본 사람들은 왜 세레니아가 사막 한복판에 있는지 의아해할 수 있을 텐데, 설정상 마법사 할린의 짓이라 하지만 그보다 그냥 설정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시작하면 남, 남, 동, 남, 동, 남으로 이동하고 GET ROCK을 입력해 그곳에 있는 돌을 주워야 하며, 그 외의 장소에서 돌을 주으려 하면 그 뒤에 숨어있던 전갈에 물려 죽는다. 시작부터 갈 길이 험난하게 느껴진다.

 

 

시작부터 이래서야 앞날이 험난하다

애플 II 버전의 매뉴얼을 다시 펼쳐보면 최초에 길을 가로막는 방울뱀을 통과하는 법에 대한 힌트가 알려져 있다. 일단 게임을 시작할 수는 있게 해 주는구나. 전갈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LOOK ROCK으로 먼저 안전을 확인한 뒤 돌을 회수하고 방울뱀이 길을 가로막던 곳으로 돌아가 THROW ROCK으로 죽여야 했던 것. 이 사막을 탐사하다 보면 STICK과 LOCKET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걸 얻을 수 있고 돌에 깔려있는 뱀을 발견할 수 있는데, 다른  GET ROCK을 사용해 뱀을 구출해 주면 보답으로 마법의 단어를 알려준다. 그런데 얄밉게도 이 마법의 단어가 HISS, 뱀이 내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라서 이게 그 마법의 단어인지 처음에는 깨닫지 못했다.

 

이 사막 파트에서는 도중에 목이 마르다며 물을 마셔야 하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일부러 한참을 돌아봐도 갈사하거나 하진 않았고 특정 위치에 도달했을 때 발생하는 이벤트인 듯 하니 여유있게 탐색해도 좋을 듯 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고 할까. 목이 마르다는 메시지가 나오면 그 때 마셔주면 되며, 메시지를 무시하면 물론 갈사한다.

 

추가로 더 돌아다니다 보면 구멍이 난 바위를 발견하며 여길 들여다보면 안에서 CRACKER를 얻을 수 있고, 땅이 갈라진 곳을 발견하면 HOCUS 라는 명령어를 치면 바위가 생겨난다. 처음에는 길을 막는 뱀을 돌로 죽여야 했는데 나중에 바위에 깔린 뱀을 다시 구출해야 하는 부분도 그렇고, 매뉴얼에도 설명이 없는 HOCUS라는 커맨드가 이곳에서 단 1회 필수로 요구되는 등 미스테리 하우스에 비해 플레이어의 시행착오를 늘리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아, 그리고 전작에서 내부에 간단한 설명서와 HELP 기능이 들어있었던 데 비해 본작에서 HELP를 입력하면 'NO WAY.' 라는 한 마디만 출력되며 도움을 거부한다. 로베르타씨...

 

 

이 화면은 서쪽을 보고 있는 시점이다

이쯤에서 이동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위 화면에서 동굴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UNLOCK DOOR, OPEN DOOR로 잠긴 문을 열고 동서남북 방향을 입력해 나가야 하는데, 나가는 방향은 동서남북 중 어느 방향일까? 화면에서는 왼쪽으로 문이 나 있으니 WEST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지만 사실 정답은 SOUTH다. 문을 열고 SOUTH를 입력해야 밖으로 나가지는데, 미스테리 하우스도 이런 문제가 있었지만 게임 대부분이 저택 내에서 이루어지고 대부분의 방에 고유 그래픽이 있기도 해 대강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 감을 잡기가 어렵지는 않았지만 본작에선 무대 자체가 넓어지기도 했고 거의 같은 지형이 반복적으로 보여지는 구간도 늘어나 내비게이션이 혼란스럽다.

 

여기에 대한 공략법은 결국 매핑이다. 똑같이 생긴 지형에 똑같은 메시지가 출력되는 지점이라도 어느 지점에서 WEST를 입력하면 갈 수 없고 NORTH는 가능한 식이라, 해당 칸에서 갈 수 있는 방향을 확인하며 전부 가 보며 맵을 작성해야 하는 것. 그러다 보면 죽을 수도 있고 진행이 꼬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맵이 준비되었다면 그 이후는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으니 작성된 맵을 참고하며 이동하면 마지막에 다다랐던 지점까지 금방 복귀할 수 있다. 아니면 맵이 첨부된 공략을 참고해도 되겠고. 개인적으로는 힌트는 어지간히 막히기 전엔 가급적 보지 않되 맵은 참고하는 정도가 무난했다.

 

아무튼 간단히 요약해 보자면 갈라진 협곡 앞에서 HOCUS로 다리를 놓고 건너면 노움이 등장해 모든 아이템을 훔쳐가 버린다. 돌아다니다 보면 바위가 갈라진 곳을 발견해 여기서 HISS를 사용하면 뱀으로 변신하게 되고, GO HOLE로 그 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이 동굴에서 아이템들을 회수한 뒤 위 화면에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된다.

 

 

 

아이템을 회수하고 주변을 탐사하다 보면 앵무새를 발견할 수 있는데 LOOK PARROT을 사용해도 이렇다할 반응이 없지만 GIVE CRACKER를 사용하면 VIAL을 준다. 여기서 VIAL을 마셔보면 새가 되는데 (이미 뱀으로도 변신해 보았으니 새롭지 않다), 이후 EMPTY VIAL이 손에 남을 뿐 재입수할 수 없으며 이 행동이 필요한 장면은 나중에 등장한다. 사자는 길을 가로막고 있을 뿐이니 GIVE BREAD를 주면 비켜준다.

 

전작과 달리 자체적으로 세이브 기능을 지원하기 때문에 아이템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시험해 보다 보면 특징을 대강 파악할 수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동사를 받는지에 대한 힌트가 모자란 점이 살짝 귀찮다고 할까. 클릭 형식이라면 모를까 텍스트 파서이기도 하고, EAT CRACKER, DRINK VIAL처럼 상식적인 조합도 있지만 (물론 크래커는 스토리 진행에 필요한 아이템이니 먹으면 안 된다) 소지하면 주문을 쓸 수 있게 해 주는 아이템들은 아이템과 주문의 연관성 및 그 주문의 효과를 미리 짐작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해변가에 닿으면 로프가 떨어져 있으니 GET ROPE로 회수하고 보트에 탈 수 있는데, 보트에는 구멍이 나 있다. USE BLANKET을 사용하면 구멍을 막을 수 있으며 이후 바다로 이동. 그러면 이제 바다를 건너 보물섬에 닿게 된다. 주변에서 앵커를 발견하고 입수한 뒤 돌아다니면 트리하우스가 설치된 나무를 볼 수 있는데, 여기서 TIE ROPE, TO ANCHOR, THROW ROPE를 순차적으로 입력하면 로프가 걸린 앵커를 던져 붙잡고 올라갈 수 있게 된다. 이 두 가지 아이템을 이런 식으로 조합해서 트리하우스에 올라가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 한가?

 

아무튼 트리하우스 위에는 삽이 있으니 입수하고 내려와 처음 보트로 내린 지점으로 돌아오면 X자가 표시된 곳이 있으니 DIG X를 사용하면 보물상자가 나온다. 그러나 이를 열려고 하면 해적이 나타나 빼앗아가니 추가로 돌아다니며 동굴을 발견해 들어가면 상자가 있고 열면 그 안에서 하프를 얻을 수 있다. 이제 앵커를 발견했던 지점으로 돌아와 VIAL을 사용하면 새로 변신하고, 그대로 NORTH로 이동하면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진다.

 

 

 

이제 곧이다. 새로 도착한 지역에서 돌아다니다 보면 RING을 얻고 산에 사는 거인에 대해 힌트를 주는 노파를 만날 수 있으며 무지개가 걸린 곳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GO RAINBOW로 무지개로 갈 수 있는데, 설마 이게 GO 명령어일 줄이야. 가 보면 COIN을 얻을 수 있고 주변에는 삐걱대는 다리가 보인다. 다리가 자기 무게를 견디지 못할 것 같다고 하는데... LOCKET을 입수한 상태에서 로켓을 열어보면 LUCY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여기서 LUCY를 주문으로 사용하면 모든 아이템이 사라져 어디론가로 이동해 버리는데, 일단 몸이 가벼워졌으니 건너가자.

 

다리를 건너가면 발견할 수 있는 다른 동굴에 아이템들이 있으니 이를 재입수하고 (이곳 한정으로 GET ALL로 일괄 회수 가능) 내려와 거인을 만나면 PLAY HARP를 사용하면 비켜준다. 북쪽으로 전진하면 상점이 있으며 여기서는 BUY HORN으로 COIN을 주고 HORN과 교환. 구입 가능한 아이템은 총 5종이지만 HORN 외의 아이템은 쓸모가 없으며 함정이다. 이제 계속 북쪽으로 가면 해자로 둘러싸인 마법사 할린의 성에 닿게 되며 PLAY HORN을 사용하면 다리가 내려진다.

 

 

 

성내는 미로 구조로 되어 있지만 그나마(?) 어느 방향으로 통로가 이어져 있는지 명확히 표시되어 상대적으로 이동하기 편하다. 잠긴 문이 있는 곳에 다다르면 USE KNIFE로 문을 따고 들어가 계단을 오르면 한쪽으로는 더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개구리가 있는 방이 있는데, 일단 위로 올라가 보면 새 한 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새가 마법사 할린이 변신한 모습인 듯, RUB RING을 사용하면 고양이로 변해 새를 잡아먹게 되며 내려와 개구리에 KISS하면 공주로 변한다. 개구리 왕자 이야기를 뒤집은 느낌이니 그나마 알기 쉬운 부분.

 

하지만 공주를 구출한 이후에도 게임이 바로 끝나지는 않는데, 더 동쪽으로 이동해 보면 CLOSET이 있고 열어보면 SHOES를 발견할 수 있다. 입수해 WEAR SHOES를 사용한 뒤 WHOOSH라 입력하면 공주와 함께 세레니아로 텔레포트된다. 이제 NORTH 한 번을 입력하면 공주와 함께 세레니아로 귀환한 걸로 클리어했다는 메시지가 나오며... 게임이 종료되는 게 아니라 계속 이어진다. 로베르타씨, 이 뒤엔 뭘 하라는 건가요. 알아서 끄면 된다.

 

마법사와 공주는 보다 넓은 세계를 배경으로 한 어드벤처를 그리려는 의도가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픽적인 면에서도 훨씬 진보한 모습을 보였지만 게임 전체적으로는 역시 전작에 비해 더 난해해졌다는 인상이다. 미스테리 하우스에도 잘못 들어가면 길을 잃는 숲 에리어가 있었지만 본작에선 하필이면 시작지점인 사막부터 시작해 그런 장면들이 늘었고, 언인바이티드섀도우게이트를 다루면서도 언급했지만 장르가 판타지로 바뀌면 퍼즐에 비논리적인 해답이 정당화되면서 그 자체로 난이도가 상승하는 요인이 되니까.

 

특히 의문으로 남는 게 다리를 놓는 주문인 HOCUS인데, 게임 내는 물론이고 동봉되었을 매뉴얼을 찾아봐도 이렇다할 힌트가 없었다. 주문을 쓸 수 있게 해 주는 다른 아이템들은 버리면 사용할 수 없게 되는데 이 시점에서 아이템들을 버려봐도 HOCUS는 여전히 다리 앞에서 작동하고, 아이템을 살펴봐도 이렇다할 힌트가 없으니... 이후에 공략을 참고하며 해답을 보고 넘어가는 거랑 별개로, 당시에 공략했던 사람들은 이 해답에 어떻게 다다랐을까. 전체적으로는 아직 성장기에 속하는 작품으로 어설픈 느낌도 많지만 동화적인 분위기에 어쩌다 그리 되는지 알 수 없는 인벤토리 퍼즐, 거기에 곳곳에 널린 게임 오버의 함정 등 좋은 의미에서도 나쁜 의미에서도 시에라 테이스트가 확립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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