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연지기 (2018)
한국의 1인제작자 유래(Yurae)가 만든 포인트 앤 클릭 그래픽 어드벤쳐 게임. 한국의 문화재들을 모티브로 한 아트 디렉션이 눈길을 끄는 게임이다. 사실 그래픽만 보면 무슨 MSDOS 시절 게임같은 느낌도 주는데, 의도적인 레트로 스타일일 지도 모르니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실제로 플레이 감각이 도스시절 그래픽 어드벤쳐 게임들과 흡사하기도 하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어디서 봤을 이미지들을 채용해 충분히 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러나 아트 디렉션과 별개로 기술적으로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일단 게임을 켜면 옵션 기능이 아예 없고, 풀스크린으로 고정되며 좌우의 레터박싱이 보여주듯 와이드 화면비를 지원하지 않는다. 작중의 애니메이션은 매우 제한적으로, 애니메이션이 들어간 스프라이트도 고정된 자리에서 약간의 움직임을 보여줄 뿐, 기본적으로 스틸 이미지 위에서 오브젝트를 클릭하면 대사가 출력되거나, 발 아이콘이 뜨는 곳을 클릭하면 다른 씬으로 이동하는 정도이다. 아니, 적어도 같은 화면 내에서 주인공이 움직이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걸.
주인공은 연못의 소금쟁이 신 호연. 지난 밤에 큰 비가 내려 채 피우지 못하고 꺾인 연꽃 봉오리를 들고 부처님께 데려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게임의 목적을 처음에 분명히 제시해 주는 건 좋은데, 그 과정이 A를 얻기 위해 B와 대화하면 C를 요구하고, C를 얻기 위해 D와 이야기하면 E를 해야 하는 심부름 퀘스트의 연속으로 이어져 있을 뿐이라 개연성을 갖춘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되지 않는다. 사실 이렇게 심부름을 반복하는 것 자체는 고전적인 포인트 앤 클릭 게임의 일반적인 진행방식이라 그 방식 자체는 괜찮다고 치더라도 호연지기의 이벤트들은 스토리적으로도 연결되지 않을 뿐더러 통일된 주제의식마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아쉬운 점.
남는 건 세계관과 분위기를 즐기는 정도지만 상호작용 가능한 오브젝트와 애니메이션의 종류도 매우 제한되어 있어 깊이가 얕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최초 시작 지점인 연못에서 물고기를 클릭하면 처음엔 물고기가 호연에게 인사하는 대사가 출력되지만 딴짓을 좀 하다 돌아와 클릭해 보면 하늘에서 새가 날아와 물고기를 채간다. 이런 건 스토리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이벤트지만 이런 작은 것 하나하나가 세계에 생동감을 주고 유저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가 될 수 있는데, 아쉽게도 수가 너무 적기도 하며 그나마 있는 인터랙션 대부분도 텍스트로만 이루어진다.
클리어까지 걸리는 시간은 1시간 이하. 매 순간 다음에 어딜 가서 뭘 해야 할 지 알아내기에 어려운 구간도 없고 그런 만큼 스트레스 받지 않고 플레이할 수 있는 건 좋지만 반대로 딱 그것 뿐이기 때문에 아쉬움을 느낀다. 이 쿠소게 언제 끝나는지 괴로운 것 보다야 물론 백번 나으니 비주얼에 매력을 느껴 플레이한다면 질리기 전에 게임이 끝난다는 걸 장점이라고 해야 하나. 하긴, 깊이가 모자란 만큼 이 상태에서 분량만 2배로 늘렸다면 그것 나름대로 고역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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