沙羅曼蛇

사라만다 · 라이프 포스 (1986 Arcade)

 

1986년 코나미 발매 아케이드 게임. 영어식으로 읽는다면 '샐러맨더', 한자식으로 읽는다면 '사라만사'가 되어야 하겠지만 아무도 그렇게 읽지 않고 일본식 독음인 '사라만다'가 정착되었으니 여기서도 사라만다라고 부르겠다. 스크램블 - 그라디우스 - 사라만다로 이어지는 코나미 슈팅 초기 시리즈를 이루는 게임이다. 전작 그라디우스의 주인공 기체 빅 바이퍼(Vic Viper)와 스테이지 보스 빅 코어(Big Core)가 재등장하기도 하고, 스테이지 요소였던 모아이와 화산 등이 재등장해 시리즈 전통으로 자리잡게 된 것도 이 작품부터이며 또 사라만다의 보스들이 이후 그라디우스 시리즈에 재등장해 필수요소화되는 등 제목상 연관점만 없다 뿐이지 실질적으로 후속작이다.

 

이 때까지만 해도 코나미는 숫자를 붙인 후속작보다 매 작품마다 별도의 제목을 붙이는 걸 선호했던 것 같은데, 여기서 그라디우스 포스팅에서도 설명했던 이 시리즈의 개족보를 일부만 간단히 짚고 보면 다음과 같다.

  • 그라디우스 (1985년 아케이드)
  • 사라만다 (1986년 아케이드)
  • 그라디우스 2 (1987년 MSX)
  • 그라디우스 II 고퍼의 야망 (1988년 아케이드)

사라만다를 후속작으로 인정한다면 한 게임에 대한 후속작만 3종류가 존재하는 셈이 되며, 이 삼형제는 전부 전혀 다른 기획과 시스템을 갖고 만들어진 별도의 게임들이다. 가끔 이 중 누가 정통인지 논하는 틀딱...아니 훌륭하신 분들을 일웹에서 볼 수 있는데, 아케이드를 중심으로 한 세력은 막내인 그라디우스 II야말로 진짜 정통 후속작이라고 주장하고, MSX 지지세력은 당연히 그보다 먼저 나온, 최초의 넘버링 후속작인 그라디우스2를 지지한다. 사라만다그라디우스란 이름을 달지 못한 죄로 장자임에도 서자 취급을 받는다.

 

현재 가장 구하기 쉬운 이식작은 스팀이나 콘솔 다운로드 서비스의 코나미 아케이드 애니버서리 컬렉션 수록 버전일 것이다. (아케이드 아카이브스를 기본으로 하는 만큼 플랫폼에 따라서는 단품으로 구입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사라만다 포터블' 컬렉션으로 PSP에도 발매되었지만 그라디우스 컬렉션이 히트박스 사이즈 조절이나 도중 세이브 같은 부가기능을 지원한 데 비해 사라만다 포터블엔 그런 추가기능이 없는 점이 아쉽다. 양쪽 모두 사라만다라이프 포스를 같이 수록하고 있지만 이 두 컴필레이션의 라이프 포스는 같은 게임이 아니다.

 

 

코나미 아케이드 애니버서리판 타이틀 화면

여기서부터 다시 개족보 타임. 원작 아케이드판 사라만다의 파생작으로는 해외판, 일본판 2종류의 라이프 포스가 존재한다. 애니버서리 컬렉션에 수록된 라이프 포스는 해외판으로 그래픽이 일부 변경되고 음성이 추가되는 등 변경요소가 있으나 기본 시스템은 동일하다. 사라만다 포터블의 라이프 포스는 이걸 다시 역수입한 일본 버전으로, 스테이지 구성 등은 기본적으로 같으나 그래픽을 다시 일부 변경하고, 파워업 아이템을 직접 먹어 강화되던 것을 그라디우스 스타일 파워업으로 되돌린 게임이다.

 

이 그래픽 변화가 꽤나 묘한데, 사라만다는 전작인 그라디우스와 마찬가지로 생체적인 느낌이 나는 스테이지, 우주 배경의 스테이지, 기계 배경의 스테이지 등이 혼재해 있는, 좋게 말하면 다양성이 있고 나쁘게 말하면 아트 디렉션이 산만한 게임이었다. 해외판 라이프 포스에서는 거대한 우주괴수의 신체 내로 들어간다는 컨셉을 잡고 유기체 테마로 통일화시키려 한 것 같지만 일부 보스 디자인 등에서 여전히 원작 그대로의 기계적 요소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걸 다시 역수입해 만들어진 일본판 라이프 포스에서는 더욱 생체적인 느낌이 강화되고, 테트란을 비롯 많은 적들이 생체 형태로 바뀐다. 덕분에 일본판 라이프 포스는 시리즈 중에서도 눈에 띄게 튀는 게임이 되었지만, 오히려 너무 튀어서인지 아니면 그래봐야 결국 이미 나온 게임의 재탕이라서인지 시리즈 전체 중에서는 마이너한 게임에 속한다.

 

그 외의 이식작들까지 가면 너무 많으니 자세한 건 생략하지만, 개중에는 PC엔진판처럼 아케이드에 충실한 것부터 패미컴 이식작처럼 하드웨어 성능을 고려해 이리저리 마개조된 어레인지 버전도 있고, MSX판 '사라만다'처럼 아예 아케이드 원작과 관계 없는 별도의 동명이겜도 존재한다.

 

 

2면 보스 테트란. 왼쪽이 사라만다, 오른쪽은 일판 라이프 포스
3면의 프로미넌스 스테이지. 왼쪽이 사라만다, 오른쪽은 해외판 라이프 포스. 일판 라이프 포스에서는 프로미넌스의 색도 파란색으로 변한다.

근데 이렇게 아트 디렉션을 통일하려는 시도가 있던 것도 어디까지나 아케이드 부서 내에서나 있었던 일인 것 같은 게, 패미컴 사라만다에는 해골이나 고대 이집트 스테이지가 오리지널로 추가되며 원작 아케이드 이상으로 중구난방의 산만하며 판타스틱한 꼬라지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각 팀들이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제작에 임했다는 거겠고 나쁘게 말하면 부서간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 막장상태였다고 할 수도 있겠다. 코나미 슈팅은 패미컴으로 이식되며 어레인지나 추가요소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거기까지 이 글에서 다루기엔 장문충인 내가 보기에도 너무 길어지니 다음 기회에.

 

일단 정리하면:

  • 사라만다: 일본판. 파워업 아이템을 직접 먹는 방식.
  • 해외판 라이프포스: 파워업 아이템을 직접 먹는 방식.
  • 일본판 라이프포스: 파워캡슐을 먹고 그라디우스 방식으로 파워업.

어쨌건, 처음 플레이하는 입장이거나 초견이 아니라도 너무 오래되어 재활이 필요한 플레이어에게 가장 손대기 쉬운 건 해외판 라이프 포스가 아닐까. 게임플레이 자체는 사라만다와 거의 차이가 없지만 동시에 추가된 음성들이 곳곳에서 힌트를 주는데, 예를 들어 3면에서 화면 위아래에서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걸 사라만다에서는 아주 짧게 주어지는 시각적 힌트와 기억에 의존해서 피해야 하는데 해외판 라이프 포스에서는 음성으로도 경고가 나오기 때문에 한결 수월하다. 3면은 패턴을 알고 나면 쉬어 가는 보너스 스테이지지만 모르면 전부 초견살이라 순식간에 녹는다.

 

 


버전과 관계 없는 사라만다 전체의 특징부터 이야기하면 게임의 절반이 횡스크롤, 절반이 종스크롤로 되어 있다는 점일 것이다. 홀수면인 1, 3, 5면이 횡스크롤로, 짝수면인 2, 4, 6면이 종스크롤로 진행된다.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서 결정장애를 겪는 분들을 위해 짬짜면이 있듯 횡스크롤과 종스크롤 사이에서 고민하는 분들은 사라만다를 하면 된다. 그러면서도 난이도적으로나 구성적으로나 어느 쪽이 더 낫고 못하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게 높은 수준으로 완성되었다는 점은 높게 평가할 만 한 부분이다. 많은 게임에서 그렇게 못 되고 어느 하나가 다른 한 쪽의 발목을 잡기 쉽다는 걸 생각하면 역시 코나미.

 

이런 실험적인 요소들을 보면 아직까지는 그라디우스의 후속작으로 제작하면서도 전작에 얽매이지 않고 독창적인 기획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 시리즈화를 결정하며 파워업 시스템과 부활 시스템이 초대 그라디우스 기준으로 돌아가고 스크롤도 항상 횡스크롤로 고정된다. 그라디우스의 적자 서자 논쟁에서 사라만다가 항상 서자 취급받는 것도 이런 사라만다의 특징들이 시리즈 전체에서 이질적인 존재가 되게 했기 때문 아닐까. 지속적으로 후속작이 나온 아케이드나 MSX 기반 작품들과 달리 사라만다의 정식 넘버링 후속작은 1996년이 되어야 등장했고, 그렇게 늦게 나온 사라만다 2가 망겜 취급을 받으면서 입지가 더 약해진 것도 있을 것이다만.

 

 

영원한 2P기체 로드 브리티시의 첫 등장

그 외에 스테이지 전체의 스크롤과 적의 탄속 등이 그라디우스에 비해 많이 빨라져 스피디한 플레이 감각을 보인다. 말이 좋아서 스피디한 구성이라 할 수 있지만 덕분에 난이도가 올라가는 원인이기도 하다. 적의 저항도 거세졌지만 동시에 플레이어도 전작에 비해 더 빨리 파워업을 갖출 수 있기 때문에 한 장면 한 장면을 차분히 전진해 나가는 그라디우스에 비해 힘으로 찍어누르는 파워 판타지에 더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다만 그러다 한 번이라도 죽고 난 뒤 부활이 쉽지 않은데, 전작과 달리 죽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맨몸으로 부활하기 때문.

 

그라디우스는 체크포인트에서 부활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부활하는 지점이 정해져 있고, 따라서 각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며 어떻게 다시 파워업을 회복하고 부활할 수 있는가를 연구해 '부활패턴'을 짜는 것을 가능하게 하지만 반대로 매번 체크포인트로 돌아가야 하는 만큼 코인 러시로 어거지로 돌파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한다. (초대 그라디우스 아케이드판은 애초에 동전을 넣어도 컨티뉴가 안 되긴 하지만.) 그에 비해 사라만다는 어디서든 죽을 수 있고 그때그때의 상황이 다 다르니 안정적인 부활패턴의 정립이 어렵다. 특히 적이 떼거지로 몰려와 공격하는 구간에서 죽는다면 더더욱.

 

다만 플레이어에게 유리한 부분이 없진 않은데, 피탄 시점에서 옵션을 갖고 있었다면 아이템으로 되돌아가 스크롤아웃하기 전에 먹으면 다시 회수할 수 있지만 미사일이나 레이저 등의 다른 강화요소들은 사라진다.

 

특이하게도 게임 오버 전에 크레딧을 넣어야 잔기가 늘어나고 게임 오버가 뜬 이후에는 컨티뉴가 안 되는 시스템을 갖고 있는데, 어째선지 애니버서리 컬렉션 버전에서는 크레딧을 넣어도 그 자리에서는 잔기가 늘어나지 않는다. 사라만다 포터블 수록버전에서는 크레딧을 넣을 때마다 실시간으로 잔기가 추가되는 만큼 코인러시라도 좋다면 무한정 크레딧을 넣으며 어거지로 클리어하는 것도 가능하다. 사라만다는 점수나 아이템을 통한 1UP이 존재하지 않지만 돈으로 승리를 살 수는 있는 것. 역시 코나미.

 

 

레이저(좌)와 리플(우)

사라만다와 해외판 라이프 포스에서는 파워업 시스템에 대개변이 이루어졌다. 파워 캡슐을 모아 일정 수 이상 스톡이 쌓이면 그 수에 따라 알맞는 파워업을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발동시킬 수 있는 그라디우스의 파워업은 지금에 와서는 하나의 전통이자 공식이 되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그라디우스는 '파워업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많은 답변들 중 하나였다. (트윈비 역시 이런 고민 속에서 나온 답변 중 하나.) 1년 후에 나온 사라만다는 전작과 전혀 달리 완성품 파워업이 통째로 드랍되고 이걸 즉시 섭취하는, 보다 직관적이고 흔히 보이는 시스템으로 변경된다. 덕분에 그라디우스에서 옵션을 하나 장착하기 위해서는 파워 캡슐 5개가 필요했던 데 비해 사라만다에서는 옵션이 통째로 드랍되는 걸 주워먹으면 되니 금방 풀파워에 도달할 수 있다.

 

다만 거기까진 좋은데, 스테이지가 그라디우스 감각으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밸런스 조정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인다. 파워업 아이템은 고정된 적들로부터 고정된 개수만큼만 출현하는 만큼 그 배치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데, 예를 들어 스피드업을 보면 그라디우스 시절 빅 바이퍼는 바닐라 상태에서는 너무 느려 그대로 진행하기 어려운 만큼 스피드업 1~2단계를 취향에 따라 올려서 진행한다. 부활 이후에도 최초로 입수되는 파워캡슐 1개로 바로 스피드업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기동성이 필요한 구간이라면 바로 스피드업을 취하고, 미뤄도 될 구간이라면 캡슐 2개를 모아 미사일을 먼저 취한다거나 하는 선택도 가능하다.

 

사라만다는 죽으면 그 자리에서 부활하기 때문에 빅 바이퍼의 기본속도가 그대로라면 플레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파워업이 현재 무장상태에 반응해서 조절되는 게 아니라 항상 고정된 위치에 출현하기 때문에 느려터진 빅 바이퍼를 끌고 다음 스피드업이 언제 나올 지 모르는 와중에 회피까지 해야 한다면 난이도가 급상승한다. 그 때문인지 사라만다의 빅 바이퍼는 기본속도가 빠르게 조절되어 있는데, 이러면 반대로 스피드업을 먹을 이유가 없어진다. 사라만다에서 1속만 올려도 그라디우스의 2~3속 정도로 빨라지며, 1속까지는 취향에 따라 먹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이상의 스피드업은 탄막 밀도가 높은 사라만다에서는 자살골이 될 수도 있다.

 

리플과 레이저는 전작의 더블과 레이저의 관계처럼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레이저는 직선으로 뻗는 반면 리플은 원형의 빔이 멀리 갈 수록 넓어지는 방식으로, 리플은 공격범위가 넓은 대신 레이저는 관통능력을 가지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생각되기 쉽지만 사실 레이저의 공격판정이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위아래로 두껍고, 레이저가 나와 있는 상태에서 빅 바이퍼가 이동하면 레이저도 함께 이동하며 범위공격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일단 레이저를 장비한 뒤에는 리플로 돌아갈 이유가 없다.

 

빅 바이퍼의 정면에 붙어 방어를 제공하는 포스 필드도 등장하지만 게임 전체를 통틀어 단 3번 등장하는데다 적탄만이 아니라 아이템에 닿아도 포스 필드의 내구도가 감소하는 관계로 평범히 플레이하다가는 파워업을 회수하다가 포스 필드를 날려버리는 일도 심심치 않게 발생할 수 있다. 이건 버그지. 더욱이 포스 필드의 장착은 랭크 상승을 불러일으켜 이후 게임 난이도를 상승시키기도 하기 때문에 먹어도 도움이 되지 않는, 기피 아이템이 되어버린다. 즉 아이템의 종류가 많지도 않은데 그 중 3가지가 하나는 계륵(스피드업), 하나는 하위호환(리플), 다른 하나는 버그(포스필드)라면 이건 문제가 있다. 그라디우스 이후 1년만에 완성되어 출시된 게임인 만큼 스케줄에 쫓겨 마감작업이 충분하지 않았으리라 짐작해 본다.

 

 

 

일본판 라이프 포스에서는 파워업 시스템이 그라디우스로 회귀하여 파워 캡슐의 스톡을 모아 원하는 타이밍에 파워업을 발동시키는 구조로 변했다. 덕분에 맨몸에서 시작해 풀파워에 다다르기까지 필요한 파워업의 수가 그만큼 많아졌는데, 그렇다고 파워 캡슐의 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냐면 그것도 아니기 때문에 부활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사라만다 시스템으로 죽었다가 부활한 뒤 옵션들이 스크롤아웃 하기 전에 다시 먹으면 그 옵션을 회수할 수 있긴 하지만 화면 아래쪽에서 죽었는데 화면 위로 등장하며 부활하면 옵션을 먹으러 내려가는 사이 옵션이 화면 밖으로 도망쳐 버리고, 하필 적의 공격이 거센 장면이었다면 그 사이에 연속으로 끔살당할 수도 있다.

 

반대로 풀파워 상태에서는 그래픽이 달라졌다는 걸 제외하면 사라만다와 차이점을 거의 느끼지 못할 만큼 같은 감각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 사실 다른 것보다 이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을까 생각도 드는데, 일본판 라이프 포스는 기본적으로 재탕인 만큼 사라만다를 충분히 한 유저들을 상대로 어필을 하려면 뭔가 새로운 요소가 더 필요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라만다를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는 유저에게 라이프 포스는 리스킨에 불과하니 흥미를 느낄 여지가 많지 않았겟지. 적의 등장패턴이나 행동패턴에도 거의 차이가 없고, 두 버전을 연속으로 플레이해 봐도 딱 떠오르는 차이점이라면 테트란의 4개 다리가 사라만다에서는 시계방향으로, 일본판 라이프 포스에서는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한다는 정도 밖에 없다.

 

 

4스테이지 보스전 안전지대

광신자들이 들으면 입에 거품을 물 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라디우스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어딘가 얼빠진 구석이 많은 시리즈로 사라만다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어쩌면 사라만다부터 더 심해졌을 지도 모른다. 이 얼빠진 구석들이라는 건 게임 곳곳에 존재하는 '안전지대'들로, 정면에서 승부를 보려 하면 난이도가 심하게 높은 일부 구간들을 거의 날로 먹고 지나갈 수 있게 해 주는 위치들이 존재한다는 것. 사라만다에서 몇 가지만 뽑아 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유명하다.

 

위는 사라만다 4스테이지 보스. 벽에 붙어 있는 3개의 코어를 파괴해야 하는데, 중앙에 옵션을 일제히 세워놓고 빅 바이퍼를 약간 오른쪽으로 이동시켜 둔다. 그러면 파란 코어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옵션으로 중앙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화면을 튀어다니는 공들에 맞지 않게 된다. 이 장면에서 3개의 코어에서 쏟아내는 파란 공과 같은 탄들은 좁은 스테이지 내에서 핀볼처럼 반사까지 하기 때문에 정상적으로는 회피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데, 튕겨지는 방향이 16방향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사각지대가 생겨버리는 것이다. 중앙의 코어에서 직접 발사되는 파란 공은 이 안전지대로 바로 날아올 수 있기 때문에 중앙은 시작과 동시에 파괴해야 한다. 단 이 안전지대는 난이도 노멀에서만 가능하며, 난이도를 이지로 낮추면 파란 공이 코어가 열리기 전에 이 곳으로 공이 날아온다.

 

 

 

5스테이지 후반. 화면 위아래에서 다수의 자코들이 출현하며 대량의 고속탄을 쏟아내는 부분인데, 화면 오른쪽 위로 숨으면 윗줄의 적들을 나오는 대로 미사일로 격추하면서 아랫줄의 적들이 쏘는 탄을 완전히 회피할 수 있다. 얼핏 보면 일부러 빗나가는 탄(自機外し)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화면의 다른 지점에서 가만히 있다 보면 처음엔 피해지는 것 같다가도 결국 맞는다.

 

 

빅 코어 연전 안전지대

6스테이지 중간보스로 등장하는 빅 코어. 전작의 보스인 빅 코어 3체와 연전을 해야 하는데, 그라디우스 때와 달리 레이저의 속도가 매우 빨라 정면에서 싸우다가 한쪽 구석으로 몰리면 그대로 끝나버리는 수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옵션을 늘어뜨린 상태로 화면 맨 위에 붙어 있으면 빅 코어 뒷부분에 충돌판정이 없어 날로 먹고 지나갈 수 있다. 위의 4면보스, 5면도중 안전지대는 일본판 라이프 포스에서도 그대로 재현이 가능하지만 빅 코어의 충돌판정은 일본판 라이프 포스에서는 수정되었다.

 

다른 주요 버그로는 일부 스테이지에서 나오는 운석과 같이 파괴할 수 없는 물체들에 미사일을 맞추면 충돌판정이 없어져 맞아도 패널티 없이 지나가게 된다는 것. 꽤 심각한 기능 버그인 셈인데, 노리고 하기에는 타이밍을 잡기 어려울 수 있지만 그냥 평범히 하다가 실수로 죽었어야 할 거 같은데 왠지 살아서 계속 진행하고 있는 것 같다면 이 버그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 이건 비기나 꼼수의 범주를 넘어선 그냥 버그.

 

대부분 슈팅게임에서 고난이도 구간들, 특히 보스를 그냥 날로 먹고 지나가는 안전지대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면 그건 일반적으로 그 게임의 단점으로 인식되기 마련인데 코나미는 이걸 컨셉으로 가기로 작정한 건지 아니면 고칠 능력이 없는 건지 이후 시리즈에서도 계속해서 이런 안전지대들이 발견된다. 다만 최소한 사라만다에서 이런 안전지대가 발견되는 건 의도된 게 아니라 그냥 개발진이 놓쳤거나, 알고도 고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되는게 4스테이지 보스전의 안전지대는 노멀 난이도에서는 쓸 수 있지만 정작 이지로 난이도를 낮추면 먹히지 않는다. 알고 넣었다면 노멀에서 가능하고 오히려 이지에서 안 된다는 게 더 이상하지. 그리고 일본판 라이프 포스에서 시도해 보면 빅 코어 안전지대는 제거되어 있지만 다른 두 안전지대는 그대로 계속 쓸 수 있다. 4면 보스전이나 5면 고속탄 지대에서 안전지대가 발생하는 원인이 결국 적이 쏘는 탄의 발사각이 16방향 중 하나로 고정되어서 생기는 기술적인 한계라고 생각하면 이건 고치고 싶어도 고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비디오 게임 QA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데다 패치란 어림도 없던 시기인 만큼 이런 얼빠진 구석들이 발견되어도 그냥 뭉개고 간 건 당시 코나미만의 문제가 아니기도 하고. 또 이런 헛점들이 있어야 잡지도 그걸 네타로 삼아 공략기사를 작성해 팔아먹고 유저도 동전 하나 덜 넣고 깰 수 있으면 좋으니 모두 행복한 윈윈 아닌가.

 

 

사라만다 엔딩. 탈출 애니메이션 후 스탭롤, 그리고 2주차로 이어진다.
일본판 라이프 포스 엔딩. 탈출 후 마찬가지로 스탭롤과 2주차로 이어진다.

서자 취급을 받는 게임이긴 하지만 만약 이 게임이 처음부터 '그라디우스 2'로 제작되었고 이후 이 사라만다 시스템을 베이스로 시리즈가 뻗어나갔다면 어떤 모습이 되었을 지,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망상은 자유고, 아마 모르긴 몰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근데 왜 제목을 '도롱뇽'이라고 지었을까. 포스터에 나오는 파충류는 대체 무엇일까. 일본판 라이프 포스 엔딩에서 저 포스터의 도롱뇽이 폭발하는 걸로 끝났다면 늦게라도 복선을 회수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마저도 아니고. 이 게임 제목이 대체 왜 사라만다인가 라는 질문은 왜 그라디우스에 모아이가 적으로 나와 입에서 이온포를 쏘느냐와 함께 역사 속의 미스테리로 남게 되겠지.

 

 

그라디우스

그라디우스 (1985 Arcade) 코나미 아케이드 슈팅의 대표격인 그라디우스 시리즈 첫 작품. 아케이드 해외판 제목은 네메시스. 코나미는 꽤 오랬동안 '그라디우스'와 '네메시스' 브랜딩을 국내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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