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이자와 유괴안내 (1985)
포토피아 연속살인사건, 북해도연쇄살인에 이은 통칭 호리이 미스테리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으로 발매는 다시 에닉스. 시나리오만 아스키에 제공한 북해도와 달리 가루이자와는 다시 호리이 1인제작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최초 발매는 PC-88, 이번에 플레이한 버전은 MSX. PC-88쪽이 그래픽의 질은 조금 더 좋지만 에뮬레이션의 편의성이나 화면전환 속도 등의 이유로 플레이하기에는 MSX가 더 쾌적하게 느껴진다.
전작들과 달리 주인공에 이름을 직접 지어줄 수 있으며, 주인공의 직업도 경찰이 아니다. 주인공이 일본의 휴양지로 유명한 가루이자와의 별장에 있는 애인 쿠미코를 방문하는 데서 스토리가 시작되는데, 함께 있어야 할 여동생 나기사가 역앞에 간장 사러 간다고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걱정된 두 사람은 경찰도 불러보지만 무슨 협박전화같은 것도 없었고, 평소에도 방랑벽이 있는 사람 아니었냐며 사건화에 소극적. 두 사람은 다음날 아침부터 가루이자와 곳곳을 돌아다니며 나기사의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쿠미코는 초반에 함께 다니며 전작의 조수 역할을 수행하다가 일시적으로 이탈, 후반에 다시 참가한다.
기본적으로는 꾸준히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모든 인물에게 두세번씩 같은 말을 걸어보는 레트로 어드벤처 게임의 기본을 지키면 진행이 크게 어렵지는 않고, 게임오버도 없으니 마음 편하게 이것저것 다 시도해 보면 된다. 여기에 6장 구성으로 장 구분이 있어 게임 초반에 놓친 힌트나 플래그 때문에 나중에 다시 백트래킹할 필요도 없다는 점 역시 호평. 어드벤처면서 RPG스런 필드맵을 준비한 것도 재미있는 시도다. (아니, 후반으로 가면 아예 체력, 힘, 방어의 스탯이 생기고 진짜 RPG가 나오기도 한다.) 다만 위 이동화면에서 볼 수 있듯 한번에 많은 장소가 동시에 개방되고, 조사 첫날부터 여러 인물들에게 탐문을 하고 다닐 필요가 있는데 이 중 누군가와의 대화를 빼먹었다면 누굴 놓쳤는지 기억할 수 없고 그러면 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수가 있으니 주의.
힌트가 좀 애매한 지역들도 있는데, 쿠미코가 이탈한 뒤 다시 가루이자와를 혼자서 수색하고 다니던 중 스코프(삽)을 입수하고, 필라테스클럽에서 요코를 멱살쥐고(!) 정보를 협박하면 신부가 힌트를 줄 수 있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신부에게 가 봐도 딱히 새로운 정보가 없이 교회를 떠나려 하면 그제서야 어딘가에서 H키를 눌러 스코프로 땅을 팔 수 있다는 설명을 해 주는데, 그게 어딘지에 대한 정보는 아쉽게도 없다. 정답은 하나무라의 별장. 별장에 들어가기 전에 H를 누르면 땅에 묻힌 볼트를 발견할 수 있고, 이걸 들이대고 멱살쥐고(!) 협박하면...
무슨 닌자도 아니고 연막탄을 던지고 도망간다. 이 장면에서 주인공도 혀를 차며 '시리어스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라며 메타발언. 여기서 제작자가 호리이 유지라는 걸 다시 상기하게 한다. 배경 그래픽에서 특정 장소를 찍어서 조사해야 하는 요소도 건재한데, 이 게임에서도 결코 쉽지만은 않다. 예를 들면:
여기서 왼쪽 화면에 있는 소파 가운데를 4. 조사하다 로 선택하면 자동으로 열쇠가 발견되는데, 오른쪽에 있는 전등은 조사하다로는 반응이 없지만 5. 가져오다 로 선택해야 소지품에 회중전등이 추가된다. 반응을 보이는 영역도 그리 넓지 않아 정확히 찍어야 하는 만큼 현세대 어드벤처의 알아서 해 주는 주인공들에 익숙해졌다면 재적응이 좀 필요할 것이다. 그 외에도 플래그가 대체 어디서 세워지는지 제한된 선택지 내에서 같은 행동을 몇 번을 해도 반응이 없다가 어느 순간 이벤트가 진행되는 등의 모습도 보인다. 분명 내가 뭘 다르게 했으니까 이벤트가 진행되는 거겠지만, 대체 뭘 다르게 했던 걸까.
가끔씩 등장하는 뻘전개만이 아니라 색드립의 레벨도 전작들보다 크게 강해졌는데, 위 장면에서 보면 정보를 주는 대신 조건으로 동행중인 조력자 아사미의 팬티를 보여달라고 한다... 아사미는 물론 싫어하지만 '보여준다' 명령어에 당당히 5번 '팬티'가 추가되어 있다. 비록 아사미는 등장할 때마다 대체로 미니스카로 굴러다니며 판치라에 신경쓰지 않는 성격이라지만 이건 좀.. 뭐 시대가 시대니 드래곤볼 부르마의 모 장면같은 개그의 일종으로 들어갔을 지도. 이후 실제로 팬티를 드러내는 장면이 나오지만 여기서는 생략.
그 외에 개그적인 목적 외에도 성인향에 가까운 장면이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이하는 쿠미코 CG 가운데서 수위가 그나마 멀쩡한 것만 골라낸 것. 가장 심하게는 전라까지 등장하니 왜 이 게임이 패미컴으로는 발매되지 않았는지 납득이 간다. (그런 와중에 한국에서는 이 게임이 당시 MSX가 깔린 컴퓨터학원에서 청소년들이 카피해가던 게임들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유는 뭐, 뻔하지.)
위에도 살짝 언급했지만 마지막에 가면 저퀄리티 RPG가 시작된다. 시작 시점에 주인공과 조력자 쿠미코, 아사미가 파티를 이루는데 쿠미코는 키스를 날려 적의 공격력을, 아사미는 팬티를 보여 적의 방어력을 낮춘다. ...이게 농담이었으면 좋겠는데 게임이 실제로 이렇네. 처음 문앞에 있는 적은 어떻게든 쓰러트린다 해도 다 똑같이 생긴 적들의 전투력도 다 죄각각이기 때문에 까다로울 수 있는데, 스타트 지점으로 돌아가면 모든 적들이 부활한다. 같은 적을 반복해서 쓰러트려도 스탯이 조금씩 오르기 때문에 회복과 리셋을 반복하면 시간은 들어도 어떻게든 된다. 이 게임 발매 이듬해에 드래곤퀘스트가 발매되는 걸 생각하면 어쩌면 가루이자와의 이 부분이 DQ의 프로토타입 같은 느낌일까?
그렇게 힌트를 받고 물웅덩이 사이에서 발견한 아이템은 무려 팬티. 아사미는 이런 팬티 비쳐 보인다며 부끄럽다면서도 그 자리에서 누가 썼을 지 모를 땅에 떨어진 팬티로 갈아입는데, 이후 아사미의 팬티 보이기로 적의 방어력을 기존의 2배 이상 깎을 수 있다. 잘 했어 닌텐도, 이런거 발매했다간 패미컴이 오염될거야.
전체적인 소감이라면 북해도에 비하면 훨씬 깔끔하고, 이야기가 크게 탈선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행방불명된 나기사의 수색이라는 주된 흐름 속에서 이어진다. 후반으로 들어가면 주인공이 그동안 얻은 정보들을 정리하면서 나기사를 납치한 게 누구일지 유저로 하여금 직접 추리하게 하고, 마지막 RPG 부분의 존재가치가 애매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나름 깔끔하게 스토리가 정리된 느낌. 사실 북해도 역시 마지막으로는 흑막의 본거지로 쳐들어가 때려눕히는 전개인데 텍스트로만 표시되어 있어 썰렁한 느낌이었던 만큼 차라리 이렇게라도 플레이어가 직접 참가하게 만든 게 더 좋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가끔 이상한 전개와 심한 섹드립이 보이긴 해도 기본적으로는 목적과 수단이 분명한 게임, 분명한 목적과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분명한 수단의 제공, 아마 좋은 게임의 최소조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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