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of Orion

마스터 오브 오리온 (1993)

 

심텍스에서 개발, 마이크로프로즈에서 발매한 4X 우주 전략 시뮬레이션. 4X라는 용어 자체가 본작의 게임성을 묘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로, 시리즈 3편째의 흥행 실패로 긴 동면에 들어가긴 했으나 초기 문명과 함께 장르의 양대 작품으로 알려져 있기도 했다. 현재는 2015년의 리부트로 찾는 사람은 찾는 정도의 게임. 2015년작도 제목이 동일하게 마스터 오브 오리온이기 때문에 제목에는 연도를 병기했다.

 

아무래도 초창기 게임이라 UI적인 불편함은 어쩔 수 없는 거고, 맵의 축소확대 대신 어딘가에 미니맵이라도 넣어줬다면 넓은 맵을 여러 곳을 동시에 확인한다거나, 이후 게임들처럼 세력권을 맵상에 색으로 칠한다거나 하는 기능이 아쉽긴 하지만 적응이 어려운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다수의 유닛들을 한 번에 몰아서 조작할 수 있고, 성계 관리도 클릭수를 많이 요구하지 않는 심플하고 좋은 UI 디자인이다. 

 

각 성계에는 인구, 방어시설 및 생산량의 3개의 스탯이 존재한다. 최대인구는 행성마다 정해져 있으며 적은 것은 15, 많은 것은 100 언저리까지 다양하며 기술을 올리면 테라포밍을 통해 조금씩 최대인구를 늘려나갈 수 있게 된다. 생산량은 해당 성계에 얼마나 많은 공장이 있느냐를 나타낸 것으로, 초기에는 인구 1당 공장 2개를 돌릴 수 있다. (이 인구의 단위가 백만이니까.) 따라서 최대인구 100으로 시작하는 모성에는 최대 200개까지의 공장이 들어갈 수 있으며 이것이 생산력 200을 제공하는 식으로, 인구는 공장을 받춰주기 위한 존재일 뿐 인구 자체가 생산치를 갖지는 않는다. 이 인구당 가동 가능한 공장의 수는 기술 발전에 따라 늘어나며 이 때마다 생산력이 크게 올라간다.

 

 

 

이 생산력은 함대 건조(Ship), 방어시설 건설(Def), 공장 건설(Ind), 환경(Eco) 및 기술 연구(Tech)의 5개의 항목에 퍼센트로 분배된다. 생산력 100인 행성에 함대에 20%, 공장에 20%, 환경 10% 및 기술 50%로 설정한다면 각각 그만큼의 생산량이 해당 분야의 생산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 후속작 마스터 오브 오리온 2에서는 문명 스타일로 각 성계마다 건물을 짓는 방식으로 변했지만 1편에서는 그런 것 없이 슬라이더를 조정하는 것으로 해결되며, 연구력을 늘리기 위해 연구 보너스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단순히 예산을 전부 연구에 꼴아박으면 그 행성의 아웃풋이 연구로 가는 식이라 상당히 플렉시블하다. (다만 연구는 갑자기 슬라이더를 올리면 일시적인 히든 패널티가 있다는 말도 있다.)

 

환경은 상당히 중요한 요소인게, 공장을 계속 돌리면 거기서 오염이 생겨나고 이를 카운터하기 위해서 다시 생산력을 소비해야 하기 때문. 만약 종족이 실리코이드(Silicoid)라면 인구가 늦게 늘어나는 대신 오염이나 척박한 환경을 무시하는 종족 특성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지만 다른 종족들은 이 환경이 초반 답답함의 원인이 될 수도 있겠다. 

 

어느 종족이나 초반 테크는 그래도 산업에 올인해 일단 생산력을 확보하는 것. 처음에 본성과 함께 정찰선 2대와 이민선 1대를 갖고 시작하며, 먼 고대에 정찰병 하나를 대륙 반대편으로 도보이동시키는 게 가능한 문명과 달리 자신의 소유 행성에서 3파섹 내의 거리에만 이민선을 파견할 수 있다. (게임에서는 반드시 이 거리 내에 1개 이상의 식민 가능한 별이 생성되게 되어 있다)

 

제목의 오리온은 작중 고대문명의 별로, 은하계 어딘가에 생성되며 이를 점령하면 연구 보너스를 크게 받을 수 있다. 오리온은 가디언이라는 것들이 지키고 있으며, 밖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들어오려는 함대를 갈아버리는데, 공략을 보니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마크 6-7 이상에 무장은 매스 드라이버, 이동력 4 이상을 갖춘 소형선 1500-2000대 가량을 준비하면 뚫을 수 있다고 한다. 고난이도로 플레이하면서 중후반에 테크가 밀리는 걸 따라잡기 어렵다 싶을 때 오리온 공략을 고려할 수 있지만 반드시 필요하진 않다.

 

 

연구는 첩보나 외교적 협박을 통해서도 입수할 수 있다. 첩보로 훔쳐올 때는 다른 종족에게 덤탱이를 씌우는 것도 가능.

연구도 마찬가지로 슬라이더 형식. 함선의 명중률을 올려주거나 재밍으로 미사일 공격을 막아주는 컴퓨터(Computer), 건설 및 생산에 버프를 주는 건설(Construction), 지상전 보너스를 주는 역장(Force Fields), 테라포밍이나 오염도 절감 등의 효과를 주는 행성공학(Planetology), 함대 이송속도나 함선 엔진의 개량에 쓰이는 추진(Propulsion) 및 각 전투함에 장착되는 무기 모듈을 해금시켜주는 무기(Weapons)의 6종류로, 이 연구들은 기본적으로 동시에 진행되지만 예산의 비중에 따라 어느 연구를 우선할 것인지가 달라진다.

 

테크트리 시스템이라기보다 하위 연구를 하다보면 자동으로 다음 연구로 넘어가지는 시스템이며, 때로 같은 분야에 2종 이상의 연구가 가능할 경우 선택지로 어느 연구를 먼저 할 것인지를 묻기도 한다. 여기에서 마스터 오브 오리온이 다른 전략 게임들과 차별화되는 독특한 점으로 대부분의 연구는 게임에 등장할 가능성이 50%로 결정된다. 즉 같은 수준의 연구를 했다고 하더라도 종족마다 크게 다른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을 수 있다는 뜻. 그러면서도 일부 필수적인 것들은 반드시 등장하게 되어 있으며, 다소간의 차이는 있어도 결정적으로 뭐가 없어서 진다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 나는 뭐가 뭔지 그냥 찍으면서 알아서 연구하게 하지만 오히려 테크를 꿰뚫어보듯 하는 고인물들에게는 매 플레이를 새롭게 하는 요소겠지. 이 방식은 이후 패러독스의 스텔라리스에서도 비슷하게 모방된다.

 

마지막은 함선. 총 6종의 함선 템플릿을 저장할 수 있으며, 새롭게 연구한 모듈을 장착한 함선을 새로 설계해 넣기 위해서는 기존의 함선 템플릿 하나를 삭제해야 하고 템플릿이 삭제된 함급이 현역으로 활약중이었다면 자동으로 해체된다. 이 점이 묘한데, 이미 수십 수백대를 굴리고 있는 함급이라면 기술적으로 너무 도태되지 않는 한 폐기하기 어려워지고, 이를 고려하면 언제 새 함선을 설계할 것인가도 중요한 타이밍의 요소가 된다.

 

너무 자주 업그레이드하면서 찔끔찔끔 생산하다 보면 함대 규모가 늘지 않으며, AI가 꽤 호전적으로 배를 찍어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산업이 갖춰지고 나면 건함을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구형함만 잔뜩 쌓을 수도 없고, 테크를 우선적으로 올리는 것도 좋지만 너무 늦어지면 AI의 물량을 당할 수 없으니까. 이렇게 생산된 함선들은 성계 화면에서 reloc 버튼을 통해 생산되자마자 어디로 이동하라는 랠리 포인트를 찍어줄 수 있다.

 

 

쳉스토호바 성계에 주둔한 함대에 이동 명령을 내리는 화면. 빨간색은 이 성계로 이동중인 적함대들이다.

처음에 가진 함대를 클릭하면 이민선 하나와 정찰선 2대가 표시될텐데, 각 함급 아래의 화살표를 통해 함대를 쪼갤 수 있다. 정찰선을 0으로 하고 이민선만 남긴 뒤 목적지를 지정하면 이민선만 별개의 함대로 나누어져 이동하며, 정찰선도 같은 방식으로 쪼개 주변을 탐사하게 하는 식. 같은 행성의 궤도에 놓이면 다시 자동으로 합쳐지며, 따라서 수십~수백척의 배도 같은 방식으로 동시에 명령을 내리거나, 임의로 원하는 규모로 잘라내는 것이 가능하다. 한 함대에 들어갈 수 있는 함대의 규모에도 제한이 없기 때문에 함대를 쪼개고 합치기 바쁜 엔들리스 스페이스같은 게임이나 유닛 하나하나를 따로 통제해야 하는 게임들보다 쾌적하다. 다만 일단 이동을 지시한 뒤에는 도중에 명령을 바꿀 수 없으며, 도중에 명령을 바꾸려면 중후반부 컴퓨터 기술인 하이퍼스페이스 통신을 연구해야 한다.

 

함대전은 적대함대와 같은 성계에 있을 경우 발생하며, 헥스맵에서 체스처럼 진행된다. 만약 이쪽 함대에 특정 함급의 함선이 200척이라면 한 번에 조작 가능한 유닛은 하나 뿐이며 200척이 통째로 움직이는 방식. 그런 만큼 공격 회수를 늘리기 위해 한 종류의 선체만 냅다 뽑는 것 보다는 섞어서 뽑는 게 유리할 수도 있으나, 반대로 너무 자잘하게 많이 뽑아봐야 각개격파될 뿐이다. 예를 들어 적 함대의 설계를 볼 수 있게 해 주는 배틀 스캐너 같은 장비는 물량으로 승부하는 소형선들에게 달기엔 중량 오버가 되어버니 이걸 단 대형선 몇 척을 포함시키는 식. 그렇지 않으면 져도 왜 졌는지 파악이 안 되니까. 귀찮으면 오토로 돌려놔도 적당히 잘 싸운다. 

 

점령하는 방식은 2가지. 함선에 폭격 모듈을 달았을 경우 궤도에서 폭격해 그 성계의 인구와 생산량을 대폭 감소시킬 수 있으며, 아예 인구를 0으로 만들면 그곳은 공백지로 되돌아가니 다시 거기에 이민선을 보내 정착시키는 방법. 다른 방식은 플레이어측 성계를 선택해 인구수송(trans) 버튼을 누르면 일정 인구를 수송선에 태워 보내는 것으로, 목적지를 자기 성계로 설정하면 그곳으로 이동하지만 적 성계로 잡으면 그 인구만큼의 병사가 상륙전을 벌이며 승리하면 점거하게 된다. (이 행동을 하기 위해 수송선을 따로 건설할 필요가 없는 건 편하다.)

 

 


종족은 총 10종류. 다들 어딘가에 버프가 있고, 종족에 따라 특정 종족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경우도 있어 적대 종족의 경우 만나자마자 싫어하기도 한다. 만약 초보라면 외교적인 어그로가 적고 AI들이 조약을 잘 받아주는 인간도 무난하고, 연구 중심으로 가겠다면 사일런(Psilon), 생산량 중심이라면 클래콘(Klackon)의 버프가 가장 높다. 상기한 실리코이드(Silicoid) 역시 행성의 환경 패널티나 오염도를 무시하디시피 할 수 있어 단순명료한 게임을 원한다면 유효한 픽. 이번에 스크린샷을 찍으면서는 실리코이드로 플레이했다. 후속작에는 실리코이드에 외교 패널티가 있지만 1편에는 없다.

 

그 외의 다른 종족들은 므르샨(Mrrshan)의 함대전 명중율이나 알카리(Alkari)의 함대전 회피율 보너스처럼 있어서 나쁘진 않은데 그렇게 힘의 균형을 결정적으로 흔들만하진 않거나, 불라시(Bularthi)처럼 지상전 보너스라는 애매한 보너스를 가진 종족도 있다. 사크라(Sakkra)는 인구 증가에 보너스가 있는데, 이 게임에서는 식량 자원을 따로 관리하는 것도 아니고 인구가 많다고 생산량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인구와 공장이 같이 늘어야 의미가 있기 때문에 역시 애매한 편. 달록(Darlock)은 첩보 및 방첩에 큰 보너스가 들어가지만 외교 패널티가 강해 타 문명과의 외교가 힘들어 입지가 애매하다.

 

이게 이 게임의 승리조건은 외교승리와 정복승리 2가지 뿐이기 때문. 정복승리는 다른 모든 외계세력을 전멸시키면 발생하고, 외교승리는 존재하는 모든 성계의 인구를 바탕으로 2/3 이상의 표를 얻으면 된다. 이 과정에서 AI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 플레이어에게 표를 줄 수도 있고 이를 노린다면 인간이 가장 유리하며, 단순히 자기 세력을 확장해 자기 인구가 우주의 2/3이 되어도 달성할 수 있다. 결국 외교 보너스를 갖는 인간으로 적당한 규모의 식민지 개척을 병행하며 평화적으로 플레이할 게 아닌 이상 모로가든 도로가든 정복으로 갈 수밖에. 

 

 

 

마스터 오브 오리온시드 마이어의 문명보다 2년 늦은 1993년에 등장했지만 4X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의 인기작이었는데, 특유의 슬라이더를 통한 자원분배를 버리고 후속작에서는 문명 스타일의 건축물을 올리는 방식으로 바뀌어 올드팬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어느 쪽이 나은지에 대한 지지가 갈린다. 사실 문명 이후로 너무 정형화된 느낌도 있기 때문에 본작의 독특한 디자인은 오래된 게임이지만 신선한데, 정확히는 알 방법이 없지만 SSG의 리치 포 더 스타즈를 부분적으로 참고해서 이런 디자인이 나온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리치 포 더 스타즈는 각 행성의 산업건물의 개수를 늘리고 여기서 뽑아져 나온 생산력을 임의로 함대 생산, 기술 연구, 환경 유지나 방어시설 증가 등에 넣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는데, 이를 숫자를 직접 입력하는 게 아니라 슬라이더로 편하게 조작할 수 있도록 만들고 다른 UI 요소를 개량한 뒤 외교와 기술연구를 복잡화하면 대략 마스터 오브 오리온이 되니까. 아쉬운 점이라면 한 성계에 개척가능한 행성이 하나밖에 없다는 점이나 사각형 맵이 상하좌우로 무한 스크롤 구조가 아니라 '구석'이 존재하며 거기서 존버하는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정도? 뭐, 컨셉상 성계 전체를 개척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긴 하겠지.

 

 

리치 포 더 스타즈

리치 포 더 스타즈 (1983 C64, 1988 Macintosh) 레트로 게이머들에게는 각종 워게임 제작사로 알려져 있는 SSG의 첫 게임이자 역사상 최초의 4X 게임. 당연히 신세계와는 관계없다. 4X라는 말은 본래 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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