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est 2000

템페스트 2000 (1994)

 

재규어 라이브러리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평이 좋은 게임이라면 아마 아마 이 템페스트 2000 아닐까. 아니면 레이맨. 1981년 아케이드 게임 템페스트의 리메이크로, 미사일 커맨드 3D도 그렇지만 그나마 아타리 퍼스트 파티 중에서 할 만한 게임이 80년대 초 전성기의 유산을 리메이크한 것 밖에 없다는 건 역시 당시 아타리의 절망적인 기획력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시기를 생각해 보면 3D 공간을 배경으로 어떤 게임을 만들어야 재미있을지 아무도 모르고 맨땅에 헤딩하던 시기였기도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템페스트 2000은 벡터스캔을 사용했던 원작을 3D 폴리곤으로 리메이크하면서 원작의 느낌을 충분히 잘 살렸고, 그러면서 이상한 모드를 추가하지 않고 게임플레이 자체는 원작의 것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원래 명작이었던 게임에 괜히 이상한 변주를 넣는 것 보다는 이게 안전하기도 하고, 또 애초에 템페스트 자체가 간단한 형태의 도형들이 움직이는 추상적인 게임이었다보니 그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플레이를 유지하며 그래픽만 업그레이드하는 게 정석적인 선택이지.

 

제작사는 라마소프트(Llamasoft). 창립자인 제프 민터(Jeff Minter)를 중심으로 한 1인기업에 가까운 곳으로, 198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거의 모든 세대에 걸쳐 게임을 개발해 왔으며 후속작인 2018년작 템페스트 4000도 이 곳에서 만들었다. 민터는 본인이 템페스트의 팬으로 아타리에 후속작을 제안하며 이 게임이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이후 아타리 측에서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봐야 재규어의 성능을 어필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해 불만이었다고 한다. 이 사람의 게임 개발인생도 상당히 파란만장하며 현재는 디지털 이클립스에 의해 라마소프트: 제프 민터 스토리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 겸 컴필레이션이 발매되어 있다.

 

 

 

모드는 총 3가지. 트래디셔널 모드는 아케이드 사양 거의 그대로 진행되기 때문에 다소 심심한 느낌. 거기에 추가 게임 모드로 템페스트 플러스, 템페스트 2000 및 2인 대전 모드를 지원한다.

 

미스가 날 수 있는 방법은 3가지. 첫째는 단순히 적의 샷에 맞는 것이지만 대체로 적의 샷을 플레이어의 샷으로 상쇄할 수 있기 때문에 칸을 이동하다가 타이밍을 못 맞춰 맞지 않는 한 샷 자체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 두 번째 방법은 생포되는 것. 플레이 필드 끝까지 내려온 적은 가장자리를 돌아다니며 플레이어와 닿으면 그대로 낚아채 납치해가는데, 이 상태에서는 일종의 전멸폭탄인 슈퍼재퍼나 2000 모드의 점프 파워업 등이 없다면 벗어나기 힘들다. 마지막 방법은 스파이크. 일부 적들은 멀리서부터 녹색 스파이크를 심는데, 스테이지 클리어와 함께 갈고리 모양의 플레이어 기체가 플레이 필드 건너편으로 빨려들어갈 때 이 스파이크에 걸리면 미스된다.

 

 

AI 드로이드. 화면 왼쪽에 보이는 사각형으로, 알아서 돌아다니면서 샷을 난사해 적들을 제거해준다.

템페스트 2000 모드에서는 다수의 파워업이 추가되어 게임플레이가 보다 다채로워졌다. 일단 상기한 슈퍼재퍼는 사용하면 스테이지 클리어 이후 재충전,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1회로 유지되며 스톡되지 않는다. 여기에 2000 모드에서는 파워업을 통해 샷이 강화되거나, 자동으로 돌아다니며 적을 공격해주는 AI 드로이드가 옵션으로 붙거나, 점프를 사용할 수 있게 되거나 하는 식. 이 점프 파워업은 얻을 수만 있다면 그 스테이지가 상당히 수월해지는데, 이 게임에서는 적이 끝까지 내려오는 걸 막지 못할 경우 가장자리를 돌아다니면서 플레이어 기체를 채가는 식으로 미스가 나는데, 이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템페스트 플러스 모드에서는 평범하게 혼자 플레이하거나 2인 협력 플레이, 혹은 AI 드로이드 옵션이 상시 따라다니는 모드 등이 선택 가능한 것 같지만 어느 모드에서든 조작이 제대로 되지 않아 어느 방향으로는 컨트롤러에서 손을 떼도 계속 빙글빙글 돌기만 하거나, 어느 방향으로는 아예 이동이 안 되거나 해 정상적인 플레이가 불가능했다. 이게 본래 게임의 문제인지 아니면 아타리 50 컬렉션의 에뮬레이션 문제인지는 모르겠고, 설마 본래 게임이 이 모양일 리는 없으니 에뮬레이션 문제겠지 아마. 재규어에는 로터리 컨트롤러가 아예 없기 때문에 입력기기 문제는 아닐 것이고, 십자키나 아날로그 스틱 어느 쪽이나 컨트롤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대전모드. AI도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은데 조작이 제대로 안 들어서 아쉽다.

플레이의 직관성이 장점이긴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은데, 꼴에 아무리 차세대기라도 20년 전 기기다 보니 해상도의 문제로 멀리서 다가오는 오브젝트를 식별할 수 없다. 아케이드 원작이라면 뭐가 보이면 다 쏘면 될 뿐이지만 템페스트 2000에서는 어느 정도 다가오기 전까지는 저 픽셀 몇 개가 적인지 파워업인지를 알기 어렵다.

 

여기에 이는 템페스트 2000만이 아니라 원작도 마찬가지 문제인데, 역시 이런 원통형 스테이지 게임은 십자키나 아날로그 스틱으로 플레이하기에는 조작 미스나 혼란을 느끼기 쉽다. 플레이어 기체가 하단 절반에 있을 때와 상단 절반에 있을 때의 좌우가 반전되기 때문인데, 원작은 원래 로터리 컨트롤이었던 것을 보통 컨트롤러로 플레이하는 쪽이 굳이 말하면 잘못이니까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재규어에는 로터리 컨트롤러가 아예 발매되지 않았으니까. 사실 발매할 계획은 있었고, 템페스트 2000도 이에 대응해 만들어졌지만 실제로 발매되지는 않았을 뿐이라고... 하는데.

 

만약 로터리 패들이 있었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문제일 것 같은게, 자 인간의 손은 두 개 뿐이다. 한 손으로 패들 하단을 잡고, 다른 손으로 다이얼을 좌우로 돌리면서 플레이를 해야 하겠지. 하지만 재규어 컨트롤러의 버튼은 3개. 템페스트 2000 역시 C, B, A의 3개 버튼이 각각 점프, 샷, 슈퍼재퍼에 배정되어 있다. 그러면 패들을 어떻게 디자인해야 계속해서 다이얼을 돌리면서 3개의 버튼을 누를 수 있을까? 나는 모르겠다. 사실 패들 컨트롤러가 도태될 수 밖에 없었던 게 아마 이런 부분이겠지. 좌우이동에만 특화된 컨트롤러니 게임이 복잡해질수록 써먹기 어려운 물건이 된다.

 

 

 

템페스트 2000은 클리어를 위해 노력하는 게임이라기보다 적당히 기분 내킬 때마다 적당히 플레이하다 게임 오버되면 다른 거 하는 방식으로 즐기기에 어울리는 게임이다. 아니, 애초에 스테이지가 100개라고, 이걸 각잡고 원코인 클리어하려 하면 그건 수행이야. 1UP이 그리 드물지는 않지만 역시 좌우를 혼동하는 순간 미스로 이어지기 쉽고, 게임이 화려하긴 하지만 장기간에 걸쳐 시선을 붙잡아 둘 정도로 시각적 다양성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느 순간 집중력을 잃고 딴생각을 하다가 죽으면 거기서 끝이고, 그러다 보면 컨티뉴도 없다. 그러니 적당히 즐기는 게 무난하지.

 

이후 시리즈의 역사가 좀 기구해지는데, 템페스트 2000은 재규어 단종 이후 PS1으로도 이식되지만 워낙 경쟁작이 많았던 PS1 라이브러리에서는 크게 눈에 띄지 않은 채 사라졌고, 후속작인 템페스트 3000은 누온이라는 재규어보다 더 실패한 콘솔로 나와 플래폼과 함께 조용히 사라졌다. 라마소프트의 민터는 이후 시리즈의 정신적 후계작이라 할 수 있을 TxK라는 게임을 개발, 아타리와 충돌하기도 하지만 이후 원만하게 해결되었는지 정식 후계작인 템페스트 4000을 다시 개발하게 된다. 

 

아타리 50 컴필레이션에 수록된 재규어 게임은 이걸로 전부. 라이브러리를 샘플링하는 기분으로 하나씩 해 보고 나니 덕분에 평소에 잘 손이 가지 않던 장르들도 오랜만에 해 보는 것도 좋았고, 덕분에 재규어의 다른 게임들에도 흥미가 생기고 있다. 난 사실 레트로 게임을 좋아하지만 딱히 추억의 명작같은 것들엔 별 관심이 없고 내가 몰랐던 세계를 알아가는 게 즐거워. 재규어 라이브러리를 좀 더 들여다볼까.

 

 

지오메트리 워즈 · 템페스트 · 블랙 위도우

지오메트리 워즈: 레트로 이볼브드 (X360 2005, PC 2007) Bizarre Creations에서 제작한 트윈스틱 슈터. 스크린샷의 화질이 심하게 나쁜 건 도저히 플레이 도중에 스크린샷을 찍을 여유가 없어 적당히 녹

ludonomie.tistory.com

 

미사일 커맨드 3D

미사일 커맨드 3D (1995) 1980년작 아케이드 게임 미사일 커맨드의 아타리 재규어 리메이크판. 아타리가 당시 기획하고 있었던 주변기기 재규어 VR에 대응하는 소프트웨어로 개발된 것으로 알려

ludonomie.tistory.com

 

'Toponym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라드리우스 블레이즈  (0) 2024.07.27
사이코로사이코: 세븐스 헤븐  (0) 2024.07.26
미사일 커맨드 3D  (0) 2024.07.25
눈소녀 대선풍: 사유키와 코유키의 꽁꽁대소동  (0) 2024.07.25
얀데레 컬렉션  (0) 2024.07.2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