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비포 더 스톰 (2017)
원작 이후 2년만에 등장한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의 외전이자 프리퀄. 이하 LIS:BTS로 약칭. 개발은 돈노드가 아니라 덱나인이라는 스튜디오에서 외주로 진행했다. 2022년의 리마스터 컬렉션에서는 원작과 세트로만 판매되고 있지만 오리지널은 2024년 3월 현재까지 별도로 구입할 수 있다. 이 소개글의 스크린샷은 전부 2017년 원판이다.
배경은 원작의 3년 전. 원작에서 주인공의 파트너 역할이었던 클로이 프라이스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며, 원작의 주인공 맥스 콜필드는 아직 시애틀에 있어 클로이에 의해 종종 언급될 뿐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 대신 원작에서 클로이가 곳곳에 포스터를 붙이며 찾으려 했지만 어떤 관계인지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던 레이첼 앰버와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일단 디럭스 팩으로 업그레이드하면 추가되는 보너스 에피소드에서 클로이와 놀던 어린 시절의 맥스가 주인공으로 재등장하지만 필수적이진 않은 외전의 외전.
2010년대 이후 여러 어드벤처 게임들처럼 에피소드식 구성으로 원작의 에피소드 5편 구성에 비해 3편으로 줄었다. 뭐, 외전격인 작품이니까. 원작은 게임 시작 시점에서 본래 죽었어야 할 클로이를 구하기 위해 일종의 타임리프같은 능력을 가진 맥스가 그녀를 지키기 위해 과거에 간섭하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나비효과를 그리고 있지만 본작의 주인공인 클로이는 그런 초능력 따위 없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내용은 없이 어디까지나 클로이와 주변인물들의 인간관계 문제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덕분에 원작의 메타픽션 요소는 사라지고 스탠다드한 선택지 분기형 게임이 되었지만 그게 나쁜 건 아니지.
상기한 대로 클로이에게는 딱히 이렇다할 능력이 없지만 주요 장면에서의 대화중 상대를 도발하는 말꼬리 잡기(Backtalk)을 실행할 수 있는데, 공식적으로는 맥스의 시간 되돌리기를 대신할 LIS:BTS의 시스템으로 도입된 것 같지만 요는 대화 중 발생하는 선택지를 고르는 것. 클로이가 여러 상황에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 대화 상대를 몰아붙이는 상황에서 등장하는데, 결국 그냥 대사 선택에 불과하니 자세히 무슨 말을 할 내용도 없긴 하지만...
이런 있으나 마나한 기능을 주요 시스템으로 내세운 건 아무래도 전작의 계승을 지나치게 의식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슈타인즈 게이트 0의 라인 트리거처럼 실제 분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장식품 수준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후속작이기 때문에 전작의 기능적 요소를 어떻게든 계승하려다 보니 이런 무리수가 등장한 것. 그렇다고 클로이까지 초능력자로 만들 수도 없고, 아예 빼버리고 그냥 대화 선택지만 남기면 전작의 기능이 없다고, 이렇게 적당히 흉내만 내면 본작의 특징이 없다고... 뭐라고 해도 지적당하겠지. 그러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주자.
아무튼 말꼬리 잡기나 다른 평범한 대화 선택지들이 이후 진행의 전개에 다소간의 영향을 주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기본적인 스토리라인은 변하지 않는 것도 원작과 동일. 덕분에 전작처럼 이런저런 선택지를 시험하다 되감기하는 건 불가능하고 오토세이브가 있는 만큼 선택을 다시 하려면 에피소드를 처음부터 새로 해야 해 오히려 원작보다 각 선택이 가지는 무게가 늘었다는 인상까지 든다.
사실 이 작품은 클로이와 레이첼이 캐릭터로서의 매력으로 캐리하는 작품에 가깝다. 전작의 세상 무서운 게 없고 반항적이지만 마음에 상처를 담고 있는 클로이와 일견 소심해 보이지만 강한 내면을 가진 맥스가 나란히 놓기만 해도 서로 대조되며 묘한 케미를 만들어 낸 것처럼 본작도 솔직한 펑크걸 클로이와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깊은 갈등을 내재한 레이첼 사이의 good vibe가 훈훈하다.
추가로 클로이의 패션, 음악 취향, 행동거지, 말투 등이 북미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아 얘 우리 학교에 있었던 누구같아"라는 식으로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캐릭터성을 보이는 것도 인기 요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여기에 반항적이고 에고가 강하지만 기본적으로 올바른 양심과 가치관을 갖고 있고, 여기에 쌉소리(bullshit)를 참지 못하고 돌직구로 공격하는 모습이 많은 유저들에게 사이다로 느껴지기도 하겠지...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사귀던 누가 떠올라 딱히 반갑지만은 않았지만 그건 내 문제고. 아무튼 전작에서 초반에 존재감이 다소 약했던 맥스에 비해 초반부터 플롯을 분명히 이끌어 가는 만큼 강한 인상을 남긴다.
LOSE-LOSE의 선택을 강요하는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답게 본작의 선택지들 역시 터프하다. 특히 클로이가 상기했듯 두루 친밀감을 느낄 만한 인물들인 만큼 감정이입 정도에 따라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지. 그냥 싸가지 없는 쿠소가키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이면 굳이 이걸 따로 사서 플레이하지 않는다.
상기한 대로 전체적인 플롯 라인은 변하지 않는 단선형이나 게임 내내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크고 작은 변화들이 발생하며, 그것들이 쌓여 플레이어마다 조금씩 다른 엔딩을 보게 될 것이다. 한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를 표시해 주는데, 자세한 내용은 말하지 않겠지만 3장 종료 이후 마지막 결정의 선택지 비율은 51%대 49%. LIS:BTS를 완주한 플레이어들이 거의 절반으로 갈린 셈이다. 전작의 마지막 결정도 비슷하게 반반으로 딱 갈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설픈 선택지였다면 한 쪽으로 쏠렸을 것을 이렇게 딱 갈리게 만든 것도 재주다.
이 선택을 어렵게 하는 건 본작의 어른들 대부분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다는 걸 적어도 성인 플레이어라면 공감하기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두 사람의 부모들. 이들은 인간이기 때문에 결점도 갖고 있지만 진심으로 클로이와 레이첼을 위한다는 건 알기 어렵지 않다.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결정은 요약하면 상대를 상처입힌 행동이 사실 진심으로 위해서 한 행동의 부산물이었다면 그 '진심'이 면죄부가 될 수 있는가. 참고 어른의 행동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비록 진심이라 하더라도 그 방법을 견딜 수 없다면 밀쳐내야 하는가. 클로이가 '어른'의 방식에 따른다면 두 사람은 채워지지 않는 갈등을 계속해서 마음 속에 시한폭탄처럼 품게 될 것이고, 만약 거부한다면 그 어른이 느끼게 될 실패감, 상실감도 평생의 상처로 남게 되겠지. 다시 말하면 부모의 욕심을 위해 자식을 희생시킬 것인가, 자식의 행복을 위해 부모를 희생시킬 것인가. 플레이어인 나는 이미 거기에 대해서는 오래 전에 결심이 끝난 상태라 고민할 이유가 없었지만, 겨우 고등학생인 클로이에겐 작중의 시간이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며칠간이 아니었을까.
전작에서 맥스와 클로이의 관계가 자중 대부분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미묘한 선상에서 머무는 와중에 연인으로 돌입시키기 위한 플래그 조건이 까다로우며 그나마 최후반에나 가능했던 데 비해 클로이와 레이첼은 더 빨리, 그리고 (플레이어 입장에서) 더 쉽게 연인 루트로 들어갈 수 있다. 전작에서 그렇게 질질 끌며 머뭇거린 게 답답하기도 했는데 여기선 빠꾸 없는 두 사람 답게 전개도 빠르다. 사실 전작에서 도중에 연인이 되었다면 맥스가 마지막 선택을 제대로 못 했을 테니 그랬을 수도 있다만...
그러나 마약, 청소년 음주와 흡연, 학교폭력 등을 그냥 있는 그대로 클로이의 시점에서 게임 내 클로이가 대하는 현실의 일부로 덤덤하게 보여주듯 이들의 레즈비언 관계도 마음이 맞았으니 함께 하게 된 정도로 묘사되고 있을 뿐이며, 주변에서도 그 자체에 대한 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즉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줄 뿐 굳이 이를 '문제'로 만들지도 않고, 거기에 대한 변명을 하지도 않는다. 사실 이런 묘사가 제일 좋은 방식일지도 모른다. 나도 LGBT+ 스펙트럼 어딘가에 속하는 사람 중 하나지만 구질구질한 자기변명이나 어거지로 집어넣은 차별묘사 따위를 보고 싶진 않으니까. 두 사람에 대한 내 인상은 클로이가 이상적인 친구라면 레이첼은 이상적인 연인.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2015) 오리건 해안가의 소도시 아카디아 베이의 사진 명문인 블랙웰 아카데미라는 고등학교를 바탕으로 하는 그래픽 어드벤쳐 게임. 미국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며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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