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공주님 (2004 Arcade, 2015 Steam)
케이브 제작 종스크롤 탄막슈팅. 아케이드로 최초 공개되고 이후 이리저리 이식되다 2015년에 스팀에까지 입점했다. 비슷한 시기에 도돈파치 대부활이나 데스스마일즈 등도 연이어 들어오며 잠시 기대하기도 했지만 현시점에선 결국 거기까지. 케이브가 기대했던 만큼의 실적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일까?
육중하고 메카메카한 상남자의 게임을 만들던 케이브가 슬금슬금 여캐를 넣기 시작하다 본격적으로 모에에 눈을 뜬 게 아마 이 무렵이 아닐까 싶다. 옆트임까지 들어간 초미니스커트에 요망요망한 포즈로 등장한 주인공 레코는 필연적으로(?) 노팬티 의혹에 휩싸이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음, 프로듀서 이케다의 이후 후속작인 벌레공주님 두 사람과 관련한 인터뷰에서 "입고 있는 쪽이 이상하잖아" 라는 명언 아닌 망언으로 노팬티임이 확정되게 된다. 사실 생각해 보면 게임의 배경이 되는 세계는 거대 곤충들과 식충식물 같은 것들이 서식하는 열대우림지역처럼 보이기도 하고, 이런 기후대에서 팬티 따위를 지어 입으면 어지간히 통풍이 잘 되는 재질이 아닌 이상 가랑이 사이에 습기가 빠지지 않아 습진을 불러일으킬 뿐일 테니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지도 모른... 아니 왜 이런 소리를 하고 있지.
게임을 시작하면 노비스, 노멀, 어레인지, 1.5의 총 4개의 모드로 플레이할 수 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모드는 아케이드 사양의 노멀 모드이며, 노비스 모드는 여기서 난이도를 대폭 낮춰 초보자가 다가가기 쉽게 만든 모드. 노멀이나 노비스로 들어가면 다시 오리지널, 매니악, 울트라의 3가지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정지화면 스크린샷만 놓고 보면 오리지널 모드가 탄막의 밀도도 낮고 가장 쉬운 모드로 보인다. 울트라는 애초에 멀쩡한 인간 하라고 만들어진 모드가 아니니 논외로 치더라도 매니악만 되도 상당히 빽빽한 탄막에 정신차리기 힘들 것 같은 비주얼인 데 비해 오리지널은 탄이 드문드문 보이는 만큼 상대적으로 쉬워 보이는 것. 하지만 오리지널 모드에서는 탄의 수가 적은 대신 탄속이 빠르게 조절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오리지널이 더 쉽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수는 적지만 빠르고 예측하기 힘든 탄막 vs 많아 보이지만 이동이 느려 눈으로 보고 피할만한 탄막. 어느 쪽? 사이쿄 슈팅을 비롯한 고전적 슈팅에 익숙한 베테랑이라면 오리지널 모드 쪽이 다가가기 쉽겠지만, 동방프로젝트 등으로 입문해 빡빡한 탄막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는 데 익숙하다면 매니악 모드 쪽이 오히려 쉽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어느 모드를 선택하든 플레이 메카니즘은 복잡한 기믹 없이 적을 쏘며 탄을 피하고, 위험하면 봄을 쓴다는 지극히 단순한 왕도적인 게임이다. 방향레버 외 3개의 버튼만을 사용하며 각각 샷, 봄, 자동샷에 대응한다. 자동샷은 누르고만 있으면 수동으로 연사할 필요 없이 전방으로 샷을 쏟아내며, 샷 버튼은 길게 누르는 것으로 옵션들의 공격을 전방에 집중시킬 수 있다. 자동샷을 누른 상태로 샷을 수동연사하면 추가 데미지가 늘어나는데, 가정용 컨트롤러로 한다면 자동샷을 숄더나 트리거에 설정해 놓고 엄지손가락으로 샷을 연사하면 맷집이 좋은 적들을 제거하거나 보스전 등에서 약간 도움이 된다...라고 하지만 솔직히 나는 피하느라 정신없어서 보스 HP따위 볼 여유가 없다보니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 외에 컨트롤적인 면에서 특기할 사항이라면 봄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방향 레버를 조작해 봄이 날아가는 방향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정도? 오토봄 따위 없이 피탄하면 바로 1미스가 되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부활해 아이템을 회수하면 지금까지의 파워를 그대로 유지한 채 플레이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바로 재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건 반대로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부분인 게, 게임 밸런스 자체가 어느 시점에서 얼마나 파워업이 되어 있는가를 전제하고 조절되어 있기 때문에 파워업을 한다고 딱히 게임이 쉬워지지는 않는다. 죽었다 부활해도 파워다운이 없고, 일부러 피해다니지 않는다면 개발자가 상정한 이하의 파워 레벨에서 플레이할 일은 없다. 그렇다면 파워업이 시스템으로 존재해야 할 이유도 없지 않을까?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돈파치 대부활 같은 게임에서는 아예 추가 파워업 개념이 없이 처음부터 자기가 강화된 상태로 등장한다.
나로선 오리지널이나 매니악이나 난이도 면에서는 개찐도찐으로 비슷해 보인다. 원코인으로 가기는 오리지널로 더 많이 갔지만, 플레이 누적시간 70시간 중 약 50시간 정도를 오리지널 연습에 들였으니 오리지널 쪽이 그만큼 패턴에 익숙해졌기 때문이지 오리지널이 딱히 더 쉬운 건 아니다. 오히려 처음 플레이하며 이제 막 익숙해지는 단계에서는 매니악 쪽이 그나마 탄이 눈에 보이고 피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질 정도. 물론 당연한 말이지만 매니악은 탄속이 느린 만큼 대량의 적탄이 화면에 오래 머무른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에 포지션을 잘 잡지 못하면 탄에 둘러싸일 수도 있으니 눈으로만 보고 피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가장 초보자라면 노비스 오리지널. 탄막 밀도가 얕은 건 물론이고, 노비스 모드 보정으로 탄속도 조절되기 때문에 게임에 일단 좀 익숙해지고 싶거나 이런 게임에 익숙하지 않다면 가장 적절한 초보자 모드.
상술했듯 원히트 원데스 시스템인 만큼 잔기 관리가 중요한데, 기본 옵션대로 오리지널 모드에선 매 200만점, 매니악 모드에서는 매 1000만점마다 잔기가 늘어난다. 오리지널에서는 이렇다할 스코어링 시스템이 없어 그저 열심히 적을 쓰러트리고 열심히 점수 아이템인 호박을 회수하는 정도가 최선이고, 그런 만큼 역으로 별 생각 없이 그냥 열심히 하다 보면 충분히 익스텐드에 필요한 점수가 모인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일본의 어느 공략사이트에 따르면 오리지널 모드에서 중보스에 점수 배율을 넣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많은 중보스들에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파츠가 다수 존재하는데 그 중 코어(보통 머리부분)에 데미지를 입혀 격파하되, 그 순간 동시에 데미지를 입히고 있던 파츠의 수 만큼 배율이 들어간다고 한다. 이렇게 말하면 복잡하지만 중보스를 쓰러트리기 직전에 봄을 날려 중보스를 형성하는 모든 파츠에 데미지가 들어가게 해 놓고 머리에 샷을 쏴 제거하면 파츠의 개수만큼 데미지 배율이 올라가는 것. 케이브 게임은 스코어링을 하려면 봄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 의외인 부분이지만 (체인이 끊긴다거나, 봄 보너스가 있거나) 대개 스코어링이 그렇듯 그걸 의식해가면서 플레이할 마음의 여유가 필요할 것이다.
매니악 모드에서는 각 적들에 얼마나 가까이 접근해 죽였는가에 따라 점수 배율이 붙는다. 멀리서 샷으로 쓰러트리면 별로 큰 점수가 나오지 않지만 그 적에 가까이 붙어서 죽이면 많게는 4-5배까지의 배율도 노릴 수 있다. 역시 위험을 동반하는 만큼 상황을 봐 가며 노려보자. 이 스코어링 시스템은 울트라도 동일. 오리지널/매니악 공용으로 가능한 방법으로 2면에 등장하는 나무 모양의 적을 통해 점수를 불리는 것도 가능하다. 열렸다 닫혔다 하며 열려 있을 때만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적인데, 만약 닫혀서 무적상태일 때 다가가 샷을 꽂아넣으면 무수히 호박이 생성되며 점수가 늘어난다. 물론 이 짓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다른 적들을 제거하지 못 하니 그만큼 위험이 따른다.
1UP은 3면에서 1회 출현하는데, 조건이 까다롭다. 3면은 거대한 갑각류의 부위를 파괴하며 진행되는 거대전함 스테이지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스테이지 보스 출현 직전에 머리 부분을 파괴하면 등장한다. 단, 머리 양옆으로 내밀어진 거대한 집게 같은 것을 먼저 파괴하고 그 뒤에 머리부분을 파괴해야 하며 머리만 먼저 파괴하면 1UP이 나오지 않는다. 공격이 좀 거세므로 만약 힘들다 싶으면 중앙 부분에 있다가 양옆의 집게발이 반짝 하는 타이밍에 한쪽으로 봄을 던지고 그 사이 다른 쪽으로 이동해 집게를 제거하면 된다.
스팀판에는 상기 설명한 아케이드 오리지널 모드 외에 "어레인지"와 "1.5"라는 모드가 추가되어 있는데, 간단히만 짚고 넘어가면 다음과 같다.
어레인지 모드는 오리지널/매니악/울트라의 난이도 선택이 없이 매니악보다 약간 탄막 짙은 정도로 고정되며, 대신 처음부터 풀파워로 시작되고 옵션이 노멀에서 최대 4개였던 것이 6개로 늘어난다. 여기에 오토봄 기능이 탑재되는데, 봄 1개 이상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피탄할 경우 가지고 있는 모든 봄을 소비하는 대신 잔기를 보존할 수 있다. 뭐, 통상 모드에서 맞으면 봄도 잃고 잔기도 잃는 것에 비하면 충분히 자비로운 걸지도. 이렇게 주인공 레코가 강화된 만큼 적의 화력도 강화되어 한결 카오틱한 개싸움(돈파치)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벌레공주님 어레인지는 우리편도 더 강하게, 하지만 적도 더 강하게라는 컨셉면에서 도돈파치 대부활의 블랙 레이블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있다.
1.5는 처음부터 풀파워로 시작할 것인지 기본 화력으로 시작해 파워업을 해 나갈 것인지를 정할 수 있다. 처음부터 풀파워로 시작할 경우 그만큼 난이도가 높아지는 점은 어레인지와 유사. 다만 어레인지와 달리 옵션은 여전히 4개까지이며 초기 봄스톡 1개로 시작하는 핸디캡이 주어진다. 그 외에 스테이지 구성에 미묘한 변화가 생겨 기존 패턴이 먹히지 않게 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벌레공주님은 대량의 절지동물을 적으로 등장시키는 바이오닉한 이미지지만 게임 내에서 들리는 SE는 생체적이기보다 금속성의 물체를 화약으로 폭파시키는 듯한 느낌인데, 이게 그렇게 묘하게 리얼한 절지동물들이 도돈파치스런 SE를 내며 폭사하고 있어도 딱히 어색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납득해 버리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배경과 적들 모두 상당한 디테일을 갖고 그려져 있지만, 그 와중에도 적이 쏘는 모든 탄은 밝은 보라색으로 통일되어 있어 배경과 탄막을 한눈에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정지화면만 보면 번잡해 보일 수 있지만 밝은 보라색 탄막이 배경 위에 확 눈에 띄기 때문에 시각적인 혼란은 발생하지 않는다. 하필 보라인 것도 배경이나 캐릭터 디자인에 쓰이지 않을 색이기 때문 아닐까. 빨주노초파남까지는 알록달록 곤충의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색들이잖아.
어려운 게임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벌레공주님은 케이브 슈팅 중에서도 제법 초보자가 입문하기 쉬운 게임에 속한다. 오리지널과 매니악 중 자기한테 맞는 타입을 정해 도전할 수 있고, 복잡한 기믹이 없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다. 물론 알기 쉽다가 곧 쉽게 깰 수 있다는 건 아니긴 하지만. (도돈파치 대부활도 자비로운 오토봄 덕분에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편에 속하지만 하이퍼의 적절한 사용법을 체득하기까지는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이 게임이 개막장 초고난이도 게임으로 악명이 높은 건 95%정도 울트라 모드 때문이다. 화면을 자비없이 보라빛으로 물들여버리는 개막장 모드의 스크린샷이나 영상이 퍼지다 보니 벌레공주님 = 화면에 2000발의 탄막을 쏟아붇는 개막장 게임으로 인식되어 버리는 것. 뭐, 굳이 울트라 모드를 플레이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책임으로. 우리같은 평범한 지구인은 지구인의 분수에 맞는 모드로 즐기면 될 뿐. 사실 난 이부분은 케이브의 마케팅 실패였다고 생각하는데, 화면에 탄막 2000발 쏟아붇는 게임으로 홍보해 버리면 보통사람은 손댈 생각조차 없어진다구.
뭐, 사실 후속작인 벌레공주님 두 사람과 달리 본작에서는 일반인이라도 울트라 모드로 들어가 무한 컨티뉴를 이어가다 보면 5면 이후 진 최종보스(True Last Boss)인 아키와 대면이 가능하다. 대면조건이 '울트라로 플레이할 것'일 뿐 컨티뉴 제한도 없기 때문. (후속작 벌레공주님 두 사람에서는 노 컨티뉴로 5면을 격파한다는 조건을 만족해야 TLB를 볼 수 있다)
다만 일정 이상 데미지를 입히고 발광모드로 들어가면 봄 배리어를 탑재, 일정시간 무적이 되어버린다. 이 봄 배리어의 지속시간이 봄의 지속시간보다 길기 떄문에 화면을 가득 메운 탄막을 제거하기 위해 봄을 쓰면 동시에 아키가 무적이 되고, 다시 데미지를 입힐 수 있게 될 무렵에는 이미 다시 화면이 보라빛으로 물들어 있는 것. 굳이 어떻게든 격파하고 싶다! 라면 오리지널이 아니라 노비스 모드에서 울트라를 선택해 아키와 대면하면 된다. 공격이 자비없긴 마찬가지지만 봄 배리어를 쓰지 않기 때문에 컨티뉴를 반복하며 봄으로 밀면 어떻게든 되고, 또 엔딩도 노멀과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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