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onymie

멘헤라플레시아: 플라워링 어비스

Katiusza 2024. 7. 18. 14:47

メンヘラフレシア フラワリングアビス

멘헤라플레시아: 플라워링 어비스 (2021)

 

얀데레 명가(?) 카론의 2017년작 프리게임 멘헤라플레시아의 리메이크판. 리메이크와 함께 플라워링 어비스라는 부제가 붙었고, 일신된 그래픽 및 음성지원과 함께 보너스 루트들이 추가되었으며 무료로 공개되었던 원작과 달리 상업용으로 발매되었다. 선택지를 골라가며 진행되는 비주얼 노벨 형식이며, 선택지에 따라 고어로 볼 수 있는 장면도 있으나 적어도 스팀판에서는 고어에 모자이크가 들어 있으니 안심. 직접적 후속작은 사이코로사이코.

 

제목은 멘헤라 + 라플레시아. 멘헤라는 mental health + er로 만들어진 일본식 속어로, 우울증이나 정서불안, 성격장애 등을 통칭하며 스테레오타입화된 단어이다. 좋지 않은 단어이니 일상생활에서는 쓰지 않는 게 좋으며, 창작물에서는 쉽게 우울해지거나 극단적인 성격을 보이는 특징을 보이는 일종의 캐릭터 속성이기도 하다. 창작물의 클리셰로서 멘헤라는 얀데레와도 교집합이 있는데, 상대를 소유하려는 집착을 보이는 얀데레와 달리 상대에게 지나치게 정서적으로 의존했다가 기대가 배반되면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보이는 식으로 흔히 묘사된다.

 

멘헤라플레시아에서는 꽃에서 모티브를 따온 총 5명의 병든 히로인 시나리오를 임의로 선택해서 플레이하게 되며, 모든 스토리에서 주인공 이타로의 설정이나 성격이 서로 달라 완전한 별도의 내용으로 전개된다. 종합 플레이시간은 약 5시간 정도, 카론의 게임들이 대체로 그렇듯 게임성 자체는 별거 없이 다양한 패턴으로 망가지는 주인공과 히로인을 감상하는 게 포인트. 도중에 선택지가 가끔씩 등장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같은 내용에 대사의 일부가 달라지다 마지막의 중요 선택지에서 굿/배드 엔딩으로 갈라진다. 

 

히로인 5명은 최상단 이미지에서 왼쪽부터 미호리, 아유메, 마츠리, 모에코, 네네네. 상대적으로 전통적인(?) 얀데레의 특징을 가장 많이 보이는 건 마츠리, 그 외에는 얀데레보다는 멘헤라 속성이 더 강하며 아니면 주인공에게 애정이 있을 수도/없을 수도 있는 사이코패스도 섞여있다. 카론 게임인 만큼 당연히 훈훈한 결말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그나마 히로인과 함께 스파이럴 마타이 하는 엔딩이 가장 해피엔딩에 가까우려나? 링크를 건 건 아마 해당 게임의 오마쥬일 거라는 생각에.

 

 

 

5개의 스토리를 전부 클리어하고 나서 패스워드 かぜのおと를 입력하면 카론의 초기작 파라노이아의 주인공 미사토가 등장하는 점까지는 원작과 마찬가지지만 그 외에도 본편에서는 서로 만날 일이 없는 5명의 히로인들이 티타임을 가지는 스토리 및 히로인 루트에서 이들이 평범한 연인이 되었다면이라는 IF 스토리 및 다수의 카론 작품에서 주인공의 친구로 등장하는 유키마루 시점의 루트를 선택해서 볼 수 있게 된다.

 

트루 엔드의 해금 패스워드는 5명의 루트를 클리어할때마다 한 글자씩 주어지며 5개를 전부 모으면 かぜのおと(바람의 소리)가 되며 트루를 보려고 할 때마다 매번 새롭게 입력해 줘야 한다. 아래에 일부를 옮겨본다.

몽현의 꽃이 광기의 소용돌이 사이에서 피어났다. 사랑과, 광기와, 엽기를 가진 꽃은 슬플정도로 아름답다. 내가 키워낸 꽃들은 형형색색의 공포를 퍼트린다. 이에 누구라도, 꿈과 현실의 구별이 불가능해졌다. 그래도... 이 세계가 아무리 강렬하더라도 여기서밖에 살 수 없으니까. 이 세계가 아무리 잔혹해도 여기밖에 있을 곳이 없으니까. 이 세계가 아무리 부조리해도 죽는 건 용서받지 못하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 썩은 대지에 뿌리를 내려 추한 꽃을 피우는 것이다. 현세라는 밀림에 단 한번밖에 피어나지 않는 꽃을.

 

전부 별개의 스토리로 무슨 진상이 있는 게임이 아니다보니 이 기묘한 문장은 카론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표현한 것이라 보는 게 무난하지 않을까. 후속작인 사이코로사이코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며 본작의 히로인들이 까메오 출연을 하기도 하지만 두 게임의 트루를 연결해도 딱히 피스가 맞춰진다거나 하는 건 없다.

 

 

 

카론이 염세주의적, 비관론적인 눈으로 세계를 보면서 그 안에서 단 한 번 사랑, 광기, 엽기를 가진 추한 꽃을 피워내는 히로인들을 보며 '슬플정도로 아름답다'라고 하는 건, 벌써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질리지도 않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히로인들을 그려낸 본인의 미학을 나타낸 것이겠지. 다만 이런 게임들에 고정팬들이 있는 건 본인이 우울증세가 있는 사람들은 의외로 카론이 그려내는 정신나간 히로인들에 대해 감정이입이 가능하기 때문이겠지. 오해가 없길 바란다면 자신의 결핍된 부분을 200배 확대해서 갈데까지 보여주는 모습에 카타르시스같은 걸 느낀다고 할까, 그런 거다. 슈퍼히어로물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다들 쫄쫄이를 입고 싸우러 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이런 게임을 한다 해서 바로 따라하지는 않는다. 

 

게임의 UI면에서는 살짝 아쉬운 점들이 있는데, 스팀 오버레이를 통한 스크린샷 기능을 지원하지 않으며, 오토플레이가 있지만 오토중일 때 아무런 표식이 없어 오토중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 선택지가 뜨면 일시적으로 중지되다가 선택지를 고르면 다시 오토가 재개되지만 메뉴를 불렀다가 돌아오면 오토가 풀려있고, 때로 중간중간 멋대로 오토가 풀리며 오토를 눌러도 진행되지 않는 등 게임이 다소 불안정하다. 여기에 스토리의 대부분이 이타로와 루트 히로인의 관계에 일점집중되어 있으며, 그런 만큼 전개가 빠르기는 하지만 플롯이 지극히 단순하고 마지막 한 번의, 카론의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상 반드시 올 거라 예상할 만한 반전 하나에 의존한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무료로 공개하던 시절에는 분량이 빈약해도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이 분량에 2000엔은 좀 세지. 

 

 

얀데레 컬렉션

얀데레 컬렉션 (2021) 얀데레, 멘헤라, 사이코호러 등을 주로 만드는 일본의 제작자 카론의 초기작 컴필레이션. 멘헤라플레시아, 우츠로 일기, 사이코로사이코 등의 게임은 체험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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