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onymie

이브(Ib)

Katiusza 2024. 7. 13. 15:45

Ib

이브 (2012, 2022)

 

어느 날 부모님과 함께 바이스 게르테나라는 화가의 개인전을 구경하러 온 이브. 부모님이 접수처에 있는 사이 먼저 들어가 미술관 구경을 시작하는데, 2층으로 올라가 '상상화의 세계'라는 작품을 보게 된 뒤 조명이 어두워지고, 바닥에 글자가 나타나며 미술관에 있던 사람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후 '심해의 세계'라는 작품을 통해 미술관의 이면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유메닛키아오오니의 뒤를 이어 RPG 쯔꾸르 호러게임의 중흥기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게임. 딱히 이브만이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센(せん)의 미사오매드 패더, 후미(ふみー)의 마녀의 집, 해저수인의 모게코 캐슬, 사나다 마코토의 안개비가 내리는 숲 등이 2011-2013 사이에 공개되었고, 대략 이 시기를 기점으로 쯔꾸르 게임들의 퀄리티가 높아져 쯔꾸르의 기본 애셋을 사용하지 않고 배경과 스프라이트의 도트를 전부 찍어 비주얼로 승부하는 게임이 늘어나 쯔꾸르 제작자들의 허들이 올라가게 된다.

 

이브는 전투요소가 없는 어드벤처 형식의 게임으로, 게임오버가 있기는 하지만 회복 및 세이브 포인트가 제법 여유있게 배치되어 있어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다. 가끔 추적장면이 등장하긴 하지만 아오오니처럼 게임 내내 쫓겨다니게 되는 것도 아니고, 탐색이 중심이 되면서도 미사오마녀의 집처럼 즉사트랩이 많은 것도 아니다. 여기에 이브, 게리, 메리라는 3명의 주인공이 각각 뚜렷한 개성이 있으며 스토리성도 좋은 편이라 적절한 난이도와 함께 인기를 끌게 되지 않았을까. 

 

 

쯔꾸르 2000 버전 (영문패치판)

플레이 버전은 2022년에 RPG 쯔꾸르 MV로 제작된 리메이크판. 언어가 중문번체인 건 내가 중국어를 각잡고 공부하던 시기에 대만 실황자들을 통해 이 게임을 처음 접했고 구판을 처음 플레이한 것도 중문번체였기 때문에 이 쪽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어도 공식적으로 지원한다. 리메이크판에서는 전체적인 구성은 오리지널과 같지만 일부 난해한 퍼즐들이 변경되어 상대적으로 직관적으로 알기 쉬워졌고, 게리나 메리와 함께 행동하는 중에는 임의로 대화를 통해 앞으로 진행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새로 그려진 포트레이트나 스프라이트들에 대해서는 원작의 거친 그래픽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리 극단적인 차이는 아니다. 스프라이트 애니메이션은 원작보다 더 다양해졌고 인터랙트 가능한 작품이나 아이템들이 밝게 하이라이트되어 어딜 조사해야 하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다닐 필요가 없어져 쾌적해졌다. 제작자 kouri의 말에 따르면 RPG 쯔꾸르 2000으로 만들어진 원작이 더 이상 윈도우즈 10 환경에서 제대로 돌아가지 않게 되어 리메이크를 결정했다고. 하긴, 나도 쯔꾸르 2000은 그냥 가상머신에 XP로 돌리니까.

 

 

게리와 이브

주인공은 이브. 어쩌다 이런 이상한 이름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만 과묵한 주인공 설정으로 작중에서 직접적으로 표시되는 대사는 없다. 처음에는 혼자 진행하다가 쓰러져 있는 게리를 구출해 행동을 함께 하게 되는데, 9살인 이브와 달리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최소한 20대 정도로 보이는 게리의 대조가 재미있다. 말이 없는 이브와 달리 게리는 살짝 수다스러우며, 이브가 아직 어려운 글자를 잘 못 읽는 걸 도와주거나 무거운 물체를 옮길 때 힘을 써 주기도 하지만 작중에서 이브는 멀쩡한데 개리가 호들갑을 떨며 놀라는 장면들이 종종 나와 일종의 갭 모에 캐릭터로 평가되기도 한다.

 

다만 이건 내 개인적인 해석이지만 사실 두 사람이 놀라고 무서워하는 포인트가 다를 뿐인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게리를 만나기 전에 이브 단독 파트에서 보여지는 호러 연출은 주로 큰 소리가 나거나 이브를 쫓아오는 몬스터의 모습이 많은 데 비해 게리 단독 파트에서는 그보다 아무리 두고 가려 해도 계속 따라오는 인형이나 갑자기 등 뒤에 나타난 석고상처럼 어른의 상식으로 있을 수 없는 비합리적 현상에 중점이 놓여진다. 이 차이는 어쩌면 아이의 눈에서 공포로 느껴지는 것과 어른이 느끼는 공포를 다르게 묘사하려 한 게 아닐까.

 

3번째로 등장하게 되는 메리는 이브의 또래로 보이지만 사실 인간이 아니라 게르테나의 작품 중 하나이다. 뭐, 스포일러라면 스포일러지만 메리를 만나고 30분도 안 되서 알게 되는 사실이니. 3명이 함께 행동하는 건 잠시 뿐이고 이후 이브+메리와 게리로 나눠지게 되며 게리 파트 중 금방 정체가 드러나니 메리 팬들에겐 죄송하지만 솔직히 동료라기보다 본작의 호러 요소들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하다. 작중에서 이브와 메리간의 인터랙션도 나름 묘사가 되긴 하지만 게리와 비교하면 훨씬 적고. 분량은 적지만 루트에 따라 메리 단독으로 진행되는 장면도 있긴 한데, 이 장면들에서의 호러 연출은 주로 심리적인 불안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엔딩은 도중에 이브의 행동에 따라 6종의 엔딩 + 4종의 배드엔딩으로 나뉜다. 메리와 얽히는 엔딩들은 리메이크판에서는 2주차 이후에서만 볼 수 있게 되어 있으며, 1회차에서는 보통 이브 혼자서 빠져나가거나, 게리와 함께 빠져나가기는 하지만 미술관 이면의 세계에서의 기억을 상실하고 게리와 평범히 헤어지는 엔딩을 보는 게 보통일 것 같은 게 다른 엔딩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매우 구체적이고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전체 플레이 시간은 3시간 남짓이지만 공략을 참고하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어가며 행동하지 않으면 쉽게 어긋나버리기 십상.

 

가끔 선택지를 통해 직접적으로 호감도나 플래그가 변동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내가 뭘 했는지도 모르는 사이 놓치게 되기 쉬우며 개인제작 게임인 만큼 그럴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결코 좋은 디자인은 아니다. 좁은 미로에서 추적자들을 따돌리는 팩맨같은 구간이나 난해한 퍼즐들을 삭제하고 보다 직관적인 퍼즐로 대체하면서도 이 빡빡한 엔딩 조건은 오리지널보다 더하면 더하지 완화되지 않은 건 어째서일까. 예를 들어 도중에 이브가 정신을 잃고 게리가 자기 코트를 덮어주는 장면이 있는데, 이후 게리의 코트를 회수해 돌려주면 호감도가 올라가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이후 다시 말을 걸어 추가 대화를 보는 것까지 플래그에 포함된다. 사망 플래그, 호감도, 대화 회수라는 3종류의 비공개 스탯을 조작해야 하며 특정 엔딩을 보길 원한다면 공략을 참고하는 게 무난하다.

 

리메이크판에서는 1회 이상 클리어하면 '진 게르테나전'이라는 메뉴가 열리며 이곳에서 지금까지 플레이 중에 확인한 게르테나의 작품들을 안전하게(?) 감상할 수 있다. 다만 여기에 등록시키기 위해서는 이브와 게리가 함께 행동하는 상태에서 작품의 제목을 온전히 읽어야 하며, 엔딩도 여기에 등록되니 컴플리션을 위해서는 모든 엔딩을 보며 도중에 게리를 데리고 이전 에리어로 돌아가 작품 제목들을 다 읽어달라고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렇게 회차 플레이를 전제로 만들어졌으면서 과연 회차 플레이를 유도할 만한 매력이 있는지는 다소 의문인데, 전투 요소가 있는 통상적인 RPG처럼 1회차의 레벨이나 장비가 계승되는 것도 아니고, 95% 이상 동일한 게임이면서 내용은 퍼즐이 중심이기 때문에 작업감을 느끼게 되기 쉽다. 

 

 

 

이브의 매력은 역시 미술관의 살아있는 그림들의 세계로 빨려간다는 독특한 설정과 세계관이 아닐까.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이 세계관의 백본이 될 설정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 게르테나가 그림들에 영혼을 불어넣었다는 점을 충분히 납득한다 하더라도 왜 이브와 게리가 미술관의 이면으로 빨려들어왔으며 구체적으로 왜 이 두 사람이어야 했는지, 혹은 메리와의 엔딩을 보기 위해서는 왜 게리를 희생시켜야 하는가 등에 대한 설명은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스토리 요소는 이 이상한 세계에 빠진 이브, 게리, 메리가 서로를 알아가는 개인적 관계에 집중되어 있을 뿐 진행 자체는 각 방의 퍼즐을 풀고 다음 방으로 전진하는 게 전부니까.

 

호러연출들에 대해서는 사실 말하기 힘든게, 구판도 영상으로 먼저 보고 게임을 했기 때문에 따로 놀랄 것도 없이 평범하게 감상하며 진행할 수 있었고 리메이크판을 하면서도 대강 어떤 게임인지 기억에 있는 상태였던만큼 시종일관 무섭다기보다 그냥 마음이 편했다만 그건 아니까 그런 거고, 초견이라면 감상이 다르겠지.

 

 

모게코 캐슬 · 회색정원 · 대해원과 와다노하라

모게코 캐슬 (2012) 1인 서클?로 보이는 해저수인 명의로 공개된 RPG쯔꾸르 게임 3종 중 첫 번째 작품. 최초 릴리즈 2012년, 업데이트판 2014년. 업데이트판으로 넘어오며 RPG쯔꾸르 2000에서 VX Ace로 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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