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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프론트 (2011)

 

북한이 남한을 흡수통일하고 일본과 동남아를 연달아 합병하며 대동아공영권을 이루고 미국과 맞짱떠 절반을 삼켜버린다는 어이없는 설정으로 유명한 그 게임. 제작은 카오스 스튜디오, 유통은 THQ지만 카오스도 결국 THQ 자회사고 THQ 망하는 과정에서 사라졌으니 그냥 THQ 게임이라고 치자.

 

사실 액션 위주의 게임에서 백스토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인간은 인간의 형태를 한 것을 쏘고 싶어하면서도 아무 인간이나 쏘기에는 또 불편함을 느끼는 귀찮은 짐승이기 때문에 적을 잘 골라야 하는데, 그 중에서 그나마 납덩이를 꽂아넣어도 괜찮은 인간형 짐승으로 인정받는 대표적인 몹이 나치와 좀비이다. 근데 미국에 좀비가 창궐하는 이야기는 너무 많고, 이 시대에 나치를 미국까지 오게 하기도 좀 그렇고, 북한 정도면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겠지? 정도였겠지. 미국인 발상이 그 정도지 뭐.

 

물론 후에 밝혀진 바로는 본래 스토리의 적은 중국이었는데 중국시장에서 밴당할까봐 북한으로 바꾼 거다, 라고 하지만 왜 굳이 북한으로 바꿨냐고 한다면 저거밖에 이유가 없다. 총알을 박아넣어도 괜찮은 인간형 몹을 우선 정해놓고 스토리를 거기 맞추려 하다 보면 스토리가 병신같아질 수 밖에 없지. 그나마 후속작 홈프론트: 레볼루션에서는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어 넣어 대체역사 세계관 비슷한 걸 하려고 하는 거 같지만 여기선 아쉽게도 그냥 북한이 짱쎄서 미국을 정복했음 이상의 설명이 없다.

 

 

 

하지만 배경스토리에 무리수를 둔 것과는 별개로 미국의 평범한 교외 주택지를 배경으로 한 건 나쁘지 않은 초이스다. 미국인이 총 쏘는 게임이라 하면 십중팔구는 해외파병 나가거나, 굳이 미국 배경으로 한다면 결국 좀비나 쏴대거나 하게 되는 게 일반적이지. 북미 거주자들에게는 평소에 늘 보며 익숙한 환경에서 이런 내용의 게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신선할 것이다. 오버워치에 부산맵이 추가되었을 때 좋아했던 한국 유저들이 설마 부산이 이국적이고 새로운 배경이라 좋아했을까? 그 반대잖아.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본토가 점령되었다'는 상황을 오버해서 드라마틱하게 만들려고 한 건지 초반에 잔혹하고 충격적인 장면들을 너무 연달아 내보내고, 스토리 전체적으로도 완급의 조절이 없이 시리어스 시리어스 시리어스한 모습만 보여주다 보니 역으로 몰입을 방해한다. 대사를 갖고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 역시 클리셰를 벗어나지 못하며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능력 없는 기획자가 너무 자기 작품에 심취할 때 흔히 보여지는 모습이다.

 

처음 주인공이 끌려가는 버스에서 보여지는 총구 앞에 줄줄이 무릎꿇은 미국인들, 그 중에는 아이가 보는 앞에서 부모를 살해하는 장면도 보여진다. 이후 강제노동소나 대규모 시체 매장처럼 충격적인 씬들을 계속 보여주고, 주인공을 구출한 저항군 동료들도 자유를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하는 뭐 이런 걸 보면서 아 씨발 애국심이 끓어오른다고 게임에 몰입할 미국인이 얼마나 될까? (만약 있다면 아직 정신적으로 미숙하거나, 가치관에 문제가 좀 있는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충격적인 장면을 쓰지 말라는 건 아니다. 충격적인 장면은 때를 봐서 사용해야 의미가 있는 거다. 영화 쉰들러리스트에 아우슈비츠는 아주 잠깐만 등장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 장면이 명장면이 되는 거지, 영화 10분마다 가스에서 유대인들이 죽는 모습이 나왔다면 그건 오히려 시청자를 무뎌지게 할 뿐인 그런 것.

 

 

 

주인공 제이콥의 본직은 파일럿. 조선인민군에 징용되길 피해 숨어있다 잡혀 끌려갈 위기에 처한 것을 레지스탕스가 어떻게 알아내 구출해낸다. 근데 그를 구출한 목적과 향후 계획을 처음에 설명을 좀 해 줘야지 당장 코앞에 뭘 해야 하는지만, 그것도 짧은 명령형 대사들로만 말해주기 때문에 적어도 매 순간 내가 뭘 해야 하는지는 알 수 있는데 그걸 왜 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게임을 클리어한 뒤에 되짚어 보면

  1. 목표는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공격하는 것이다.
  2. 그런데 미군이 항공유가 없어 항공지원을 못 하고 있다.
  3. 마침 조선인민군의 연료탱크 트럭 3대가 이곳을 지나간다. 근데 하필이면 이곳은 콜로라도이다.
  4. 연료탱크를 맨몸으로 고속도로로 콜로라도에서 캘리포니아까지 보낼 수는 없으니 헬기로 항공엄호가 필요하다.
  5. 그렇다면 파일럿을 영입해야 한다.

여기서 연료탱크라 한 건 주유소에 가솔린 배달하는 그 탱크트럭들이다. 아니 유조선 하나를 탈취해서 미군이 컨트롤하는 항구에 입항시킨다면 모를까, 고작 주유소에 기름 배달하는 트럭 세 대로 미군이 갑자기 작전능력을 되찾는다는 게 말이 되나? 아니 그거 가솔린 아냐? 항공유 필요하지 않아? ...그리고 게임 내에서는 주인공이 헬기로 탱크트럭을 엄호하면서 대공포격을 뚫고 무쌍을 찍지만, 작품 시작시 배경이 되는 콜로라도 몬트로즈에서 최종 목적지인 샌프란시스코까지의 거리는 대강 이 정도다.

 

 

몬트로즈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쉬지 않고 17시간.

고속도로 이동하는 차량을 제트기로 엄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헬기에 맡긴다는 선택은 일단 거기까지는 이해가 가고도 남지만, 저게 전부 적지인데 그걸 헬기 하나가 지상엄호까지 하면서 쫄래쫄래 따라간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특히 저공비행하는 헬리콥터라면 RPG로도 격추될 수 있고, 저 사이 인민군은 뭘 하고 있는가? 여기서부터 스토리의 무리수가 가속된다.

 

 

본작의 최종장 금문교 전투

금문교를 둘러싼 최종전투는 그 장면만 놓고 보면 그럴듯하고 멋지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굳이 이게 필요했을까 싶다. 콜로라도 시골에서 활동하는 레지스탕스의 이야기로 끝내기엔 뭔가 임팩트가 부족했다고 느낀 걸까? 주인공들이 혼자 힘으로 전쟁을 이길 수야 없겠지만 적어도 앞으로의 전세를 반전시킬 큰 계기를 마련하게 해야 한다! 라는 모종의 강박관념이 있었던 걸까?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이건 콜옵의 그림자다. 콜 오브 듀티 게임들이 주요 랜드마크들을 배경으로 한 멋있고 스케일 큰 작전들이 나오니까 홈프론트도 그냥 따라한 거다.

 

그나마 자기들이 원하는 스토리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을 만큼의 분량이 있었다면 모를까, 본 게임의 7개 챕터는 스팀 리뷰를 보면 FPS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서너시간, 발컨에 허접이라도 많아야 6-7시간 정도면 끝날 만큼 단촐하다. 싱글플레이어 켐페인이 이렇게 짧은 대신 멀티플레이어에 공을 들였나? 하지만 애초에 게임이 망해버리면 멀티플레이어가 흥할 리도 없잖아? 아무리 콜옵이 되고 싶어도 이런 것까지 따라하면 안 되지. 싱글플레이어 켐페인이 그 모양이라도 잘 팔릴 수 있는 건 그게 콜옵이기 때문이지 어디서 늅이 그거까지 따라해.

 

싱글플레이어 켐페인도 사실 중간에 헬기나 험비에 탑승하는 등 다양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게임 70%쯤을 차지하는 알보병 모드에선 엄폐하고, 쏘고, 전진하고, 엄폐하고, 쏘고, 그러다 가끔 수류탄 던지고 정도의 반복일 뿐이며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전술을 짤 여지는 전혀 없다. 전술은 시나리오에 이미 다 짜여져 있고 동료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되니까. 덕분에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말하면 FPS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들이라도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는 구성이다. 하드코어들에게는 불만이 있겠지만 누구나 깰 수 있는 게임이라고 나쁜 게임인 건 아니다.

 

굳이 거시기한 부분이 있다면 미션 목표는 'XX를 따라가라' 라고 되어 있는데 정작 따라다녀도 같은 자리를 우왕좌왕할 뿐 플레이어가 먼저 전선을 돌파하기 전까지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아 너 뭐하냐 싶은 모습을 가끔 보인다. 그래도 동료 AI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고 알아서 놔둬도 적을 잘 잡아주는 편이라 이 정도는 그냥 귀엽게 넘어가 줄 만 하다. 적들만 상대하기도 힘든데 덜떨어진 동료 뒤치닥거리까지 해야 하는 게임들에 비하면야 양반이지.

 

켐페인이 너무 짧다는 점만 제외하면 그냥저냥 무난하게 할 만한 게임이니 70% 이상 할인이 뜬다면 추천할 만할 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건 추천의 말이 아닌가? (뭐, 한국에서는 발매가 안 되었지만...)

 

 

홈프론트: 레볼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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