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ol's Errand

바보의 헛걸음 (1987)

 

클리프 존슨(Cliff Johnson)이 제작한 퍼즐게임으로 원제는 더 풀즈 에런드(The Fool's Errand). 매킨토스, DOS, 아타리 ST, 아미가 등으로 발매되었다. 존슨의 게임들은 당시로서는 특이하게도 개발사 명의가 법인이 아니라 개인으로 되어 있으며 유통사와 직접 유통계약을 맺고 발매되었고 이후 옛날에 만들었던 게임들을 자기 웹사이트에 공개로 풀기도 했으나 2024년 3월 현재 정비중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내려져 있다.

 

제목은 일종의 언어유희인데, The Fool은 타로카드의 카드 '바보'를 나타냄과 동시에 fool's errand는 헛수고, 헛걸음이란 의미의 숙어이기도 해 이를 감안해 제목을 바보의 헛걸음으로 번역했다. 

 

바보의 헛걸음은 어드벤처 게임에 퍼즐요소가 들어간 게 아니라 순수한 퍼즐게임 모음에 강한 스토리성을 부여한 게임이다. 게임은 타로카드 메이저 아르카나 0번 카드인 '바보'가 14종의 보물을 찾아 여행을 떠나며 메이저, 마이너 아르카나의 타로카드 인물들과 만나며 스토리북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스토리는 전체가 직선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부분부분으로 보여지며 각 만남에서 주어지는 퍼즐을 풀다 보면 새로운 스토리 챕터와 퍼즐이 해금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전체는 5장으로 구성. 시작은 태양(The Sun)과 만나는 장면부터 시작이지만 위에 보이듯 중간중간 비어 있으며, 메뉴에 다이아몬드 아이콘이 있는 챕터들은 아직 클리어하지 못한 퍼즐이 있다는 의미이다. 스토리는 순서대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각 장을 넘나들며 파편적으로 주어지며, 이 스토리 자체도 주의깊게 읽어야 하는 것이 스토리 속에 퍼즐의 메타힌트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스토리의 퀄리티도 힌트를 얻기 위해, 혹은 전체 스토리를 파악하기 위해 앞뒤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면서 쉽게 질리지 않을 만큼의 퀄리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같이 상징주의가 깊게 녹아있는 작품이나 타로카드라는 소재를 좋아한다면 스토리만 놓고도 감상할 만 하다.

 

제작자는 매킨토시 버전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것 같고 도스판도 UI나 색감이 매킨토시 느낌이지만 여기서는 도스판으로 플레이했다. 지금의 맥OS가 아니라 80년대-90년대 초의 모토롤라 86K 아키텍처 매킨토시 PC. 매킨토시 버전은 흑백이기 때문에 일부 퍼즐에서 컬러를 지원하는 도스버전이 더 보기 편하기 때문. install.exe에 마우스/키보드 선택 옵션이 있으며, 도스박스의 CPU 사이클이 너무 높으면 진행이 어려운 구간이 있기 때문에 2000 이하까지 팍 낮추는 게 좋다.

 

 

 

본작의 특징은 퍼즐의 다양함과 높은 난이도다. 개중에는 쉽게 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단순한 것들도 있으나 첫눈에는 목적을 알기 어려운 것들도 있고, 약간의 서술트릭 같은 것도 실려있는데 일례로 최초에 만나며 주어지는 태양(The Sun)의 퍼즐은 직소퍼즐이지만 모든 피스가 한 번에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스토리 진행을 통해 피스가 점점 늘어나는 방식이기 때문에 시작시점에서 태양의 직소퍼즐에 시간을 쓸 필요 없이 다음으로 넘어가자. 위는 상대적으로 초반의 상태와 후반부 상태를 비교한 것. 퍼즐을 하나씩 풀어나갈 때마다 피스가 늘어나며 새로 추가된 피스들은 아이콘으로 표시되어 하나씩 벗겨가며 지도를 완성하게 된다. 다만 위 스크린샷처럼 너무 오래 방치하고 피스가 쌓이게 놔 두면 오히려 고생하는 수가 있으니 적당히 맞출 수 있는 부분들을 중간중간 맞춰가며 진행하는 게 막판에 고생하지 않을 수 있다. 9x9 직소퍼즐을 완성도 없이 한 번에 맞추는 건 고역이니까.

 

이후 총 70여개의 퍼즐들이 이어지며, 특정 장면에서만 등장하는 유니크한 것들이 있는가 하면 비슷한 장르의 퍼즐이 4~5회 반복되어 등장하기도 하는데 전체 공략을 다 싣기에는 너무 많고 몇 가지 주요한 분류들만 짚어보겠다.

 

 

 

스토리상 태양 다음으로 바로 등장하는 것이 운명의 수레바퀴. 노인(Old Man)과 메이저 아르카나를 사용하는 카드게임을 해야 하는데, 왼쪽에 노인이 가진 2장의 카드 중 하나, 오른쪽에 현재 바보가 받은 카드 2장이 보여지며 가운데에 주어지는 3장 중 한 장을 선택해 3장의 카드로 페어를 만들고 서로의 패를 비교해 더 높은 페어를 가진 쪽이 점수를 가져온다. 목표는 노인보다 먼저 720점을 획득하는 것. 만약 답이 없다 싶으면 Y(ield)로 패스할 수 있으며 점수를 상실한다.

 

애석하게도 어느 카드들이 페어를 형성하는지, 또 어느 조합이 어느 조합보다 강한지는 시행착오로 알아내야 하는데 극초반에 등장하는 게임 치고는 시작부터 까다롭다. 최소한 카드를 선택하는 장면에서 이 카드가 지금 내가 가진 어느 카드와 페어를 형성한다는 정도만 힌트로 주어졌어도 좋을 텐데. 다른 퍼즐들은 스스로 해결한다 하더라도 이 게임만큼은 일단 규칙을 알아야 하니 공략을 참조해도 좋을 것이고, 어쩌면 제작자는 그 규칙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퍼즐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 복잡하진 않고 어느 카드들이 페어를 만드는지 정도만 파악해도 일단은 충분하며, 최초로 등장하는 퍼즐 중 하나가 이 카드게임인 건 따로 카드만 플레이하고 싶은 플레이어를 위한 배려 아닐까.

 

 

 

미로퍼즐. 아치(The Archway)를 시작으로 등장한다. 첫눈에 보면 그냥 길을 따라가면 될 것 같지만 도중에 비밀문이 닫혀 가로막히거나, 막다른 곳이라 생각되었던 곳에 비밀문이 열리거나 하며 꼼꼼한 탐색을 요구한다. 여기에 미로에 따라서는 처음에 전모가 드러나지 않아 막힌 곳으로 이동을 시도하면 그 곳에 벽이 드러나거나 곳곳에 워프가 설치되어 있기도 해 꽤나 시간을 잡아먹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차분히 조사하면 어떻게든 되는 종류.

 

 

 

빈칸 채우기. 위의 사당(The Chapel)에서는 스토리에 한 남자가 글자 3개를 새기려 한다는 힌트가 주어져 있으며, 그래픽에 등장하지 않는 글자 3개를 찾아 해당 글자들의 조합을 찾아야 한다. 아래 예시는 봉의 시종(Page of Wands)으로, 현재 장면을 설명하는 문구를 짐작해야 하는데 힌트는 이전의 대화 파트에 숨겨져 있다. 피라미드의 방향을 묻는 봉의 시종에게 바보는 지도를 보여주며 E라 표시되어 있으니 남쪽이라고 대답해 주는데 (즉 바보가 길을 잘못 알려준 것) E가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으니 이를 통해 짐작하는 것.

 

이렇게 그림을 보고 텍스트를 채우는 퍼즐들은 그것만 놓고 시도하면 도저히 답이 떠오르지 않을 수 있지만 대체로 이걸 클리어하고 바로 다음에 해금되는 어딘가에 정확히 그 문구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넷 아카이브에 보관된 제작자 홈페이지에 개재되었던 전체 스토리를 참고하며 진행하면 답을 발견하기가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

 

 

 

암호해독과 크로스워드 아나그램. 위의 봉의 기사 암호해독 예시에서는 처음 시작하면 FBUMEFF = SADNESS 라는 힌트가 보여지며 F, B, U, M, E, F를 찾아 각각 S, A, D, N, E, S로 고치면 해당 글자들이 암호 내 모든 글자들이 동시에 교체되며 나머지는 문맥에 맞춰 글자를 유추하다 보면 본래의 문구가 드러나는 방식. 여기서도 전후 스토리가 일종의 메타퍼즐 힌트로 기능한다. 그나마 힌트가 있으면 그리 어렵지 않지만 이후에는 힌트가 없이 그냥 맞춰야 하는 경우도 등장해 난이도가 올라간다. 팁이라면 한 글자는 1인칭대명사 I 아니면 부정관사 A 이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크랙하면 된다. 

 

아나그램은 상당히 까다롭다. 각 아나그램의 해답은 대개 일정한 테마를 가진 단어들로 되어 있으며 완성되면 크로스워드처럼 상하로 단어가 완성된다. 각 테마는 전후의 스토리를 통해 대략을 짐작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처음부터 십자로 나오거나 하면 2개의 단어를 동시에 아나그램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난이도가 올라간다.

 

 

 

단어찾기와 직소퍼즐. 왼쪽의 세계(The World)에서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의 이름을, 오른쪽 캐노피(The Canopy)에서는 채소의 이름을 찾아야 하는데 나라 이름중에는 체코슬로바키아나 유고슬라비아처럼 현재는 존재하지 않게 된 나라도 섞여 있고, 오른쪽의 채소 이름을 찾는 중에는 루바브나 스캘리온처럼 한국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종류도 있기 때문에 까다로울 수 있다. 전체적으로 유저의 리얼 어휘력을 시험하는 종류로, 황제(The Emperor) 퍼즐에서는 26종의 새 종류를 찾아야 하는데 dove, eagle, robin 정도라면 모를까 whippourwheel이나 paraket은 뭐 하는 새야 대체.

 

아래는 직소퍼즐. 도스판이라면 컬러이기도 해서 상대적으로 쉬운 편에 속한다. 오른쪽의 힘(Strength) 퍼즐은 특히 호루스의 눈만 4개가 있는데 이게 흑백이었다면...  그나마 위의 두 가지는 상대적으로 쉬운 편으로, 등장하면 일단 안심감을 느끼게 한다.

 

 

 

위 왼쪽은 개인적으로 가장 어렵게 느꼈던 종류. 왼쪽은 숫자를 선택할 때마다 위에 새로운 글자가 추가되며, 어떤 단어가 완성되는 게 정답인지를 파악한 뒤 그 단어가 완성될 수 있도록 번호를 선택해야 한다. 숫자 패널을 선택함에 따라 특정 글자가 교체되거나, 글자가 추가되거나, 글자의 순서가 바뀌거나 하며 정해진 순서로 패널들을 누르면 정답이 드러난다. 위 요술(The Enchantment)은 SIXTEEN SIXTEEN이 나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단 각 패널이 뭘 하는지를 우선적으로 파악해야 하기도 하고, 패널 수가 적을 때는 그래도 경우의 수를 다 때려넣는 어거지도 될 지 모르지만 패널이 7개쯤 되면 그렇게는 되지 않는다.

 

오른쪽은 문장이 아래에 주어져 있는 것 같은데 아나그램도 아니고 특정 글자를 선택하거나 선택을 해제하면 위 이미지 일부가 검게 변하거나 원래 색으로 되돌아오거나 하며 정답을 전부 선택해 하나의 완성된 이미지로 만들어 이 뒤에 있는 글자가 드러나도록 하는 퍼즐. 화면 하단의 글자 패널을 선택하면 특정 부분이 반전되며, 그 부분이 검은색이면 배경색으로, 배경색이면 검정색으로 암전되어 원하는 이미지가 나오게 해야 한다. 힌트라면 정답은 전부 글자라는 것.

 

위의 두 예는 모두 단어를 드러나게 해야 하는데, 메타퍼즐적인 스토리 내 힌트도 찾기 어렵고 정확한 정답은 해당 퍼즐을 클리어한 뒤에 해금되는 스토리 파트 어딘가에 보여지기 때문에 가장 많은 시행착오를 요구한다. 플레이 중 포기하고 공략을 참고한 확률이 가장 높았던 게 이것.

 

 

 

맨 위에서 CPU 사이클을 낮추는 게 좋은 구간이 있다고 했는데, 그 예시라 할 수 있는 퍼즐이 위의 여사제(The High Priestess)와 죽음(The Death).

 

여사제는 본작에서 만악의 근원에 해당하는 존재로, 감히 자기에게 도전하겠냐며 99개의 주문을 내놓는데 위 왼쪽과 같은 화면에서 커서를 움직여 99부터 1까지의 숫자를 순서대로 선택하면 된다. 여기서 CPU 사이클이 너무 높으면 반짝이는 속도가 너무 빨라지고 일정수 이하 줄어들면 숫자패들이 랜덤하게 위치를 바꾸기도 할 때 너무 빠르다 못해 눈이 아플 수도 있다. 이곳 외에도 가끔 비슷한 컨셉의 퍼즐들이 있는데, 갑자기 게임화면이 심하게 깜빡이는 것 같다면 언더클락이 필요하다.

 

오른쪽의 죽음(The Death)에서는 퍼즐에 들어가면 간단한 액션 미니게임으로 변해 호러스의 눈이 마우스 포인터를 추적해 오는데, CPU 속도가 높으면 회피가 불가능한 수준이 된다. 나는 이 구간 한정으로 CPU 사이클을 500까지 낮췄다. 재미있는 것이 죽음 퍼즐에서는 '마우스 포인터'를 추적해 오며, 목표는 화면 하단의 흰색 호러스의 눈을 누르는 것. ESC를 눌러 메뉴를 메뉴를 열면 키보드 조작으로 마우스 포인터를 메뉴 최상단에서 최하단으로 바로 이동시킬 수 있으며, 이 틈을 타서 추적을 피해 흰색 호러스의 눈을 클릭할 수 있다. 일종의 메타요소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생각해 보면 스토리가 퍼즐의 메타힌트를 제공하고 퍼즐이 스토리를 해금하는 순환구조 게임인 만큼 이제와서 이 정도로 놀라... 아니 놀랍다. 이건 1987년 게임이야.

 

 

 

모든 퍼즐을 완수하고 나면 태양의 지도 피스가 맞춰지는데, 이 지도는 이렇게 보면 복잡하기만 하고 의미를 알기 어렵지만 사실은 전체 스토리의 여정을 한 눈에 요약한 형태이다. 도중에 본작의 메인 빌런 역할인 여사제 퍼즐을 하면서 끝까지 진행하지 못했을텐데 다른 모든 퍼즐이 해결되고 태양의 지도가 완성된 상태에서 다시 도전하면 마지막으로 토트의 서(Book of Thoth), 오른쪽의 퍼즐이 등장한다. 위에서 아래까지 총 14행의 빈칸을 최소한의 힌트만으로 채워야 하며, 그 결과로 분홍색으로 표시된 칸에 최종적인 퍼즐 정답이 완성되어야 한다.

 

 

 

토트의 서는 그동안의 모든 스토리와 퍼즐의 총집성이다. 하나만 예를 들자면 6행째에는 "만약 정의가 집행된다면(If justice be done...)" 이라는 힌트가 주어지는데, 도중에 황제(The Emperor)의 스토리에서 누군가 그의 보물을 훔쳐갔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내 사랑하는 아내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라!" 라고 말하며, 여제는 "내 남편이 저 끔찍한 새를 버리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이라는 말을 하며 빨갛게 표시된 글자들이 눈에 띈다. 불의를 당한, 즉 정의가 집행되지 않은 것이 이들을 말하는 거라는 데 다다르기까지가 1차 관문.

 

그러면 일단 힌트는 여제의 "VILE SHADOW", "FIVE CIRCLE" 및 황제의 "WIF DOVE." 여기서 여제의 메시지에서 황제의 메시지 "WIF DOVE"에 사용된 7글자를 제거한다. 여제의 "rid himself of"라는 표현이 힌트인 셈인데, 이 발상까지가 2차 관문. 그러면 VILE SHA CIRCLE 라는 글자가 남으며, 마지막 관문으로 이제 이걸 다시 아나그램하면 그들이 빼앗긴 보물의 정체인 SILVER CHALICE가 나온다... 그리고 이게 고작 14행 중 한 줄에 불과하고 이게 그나마 알기 쉬운 편에 속한다. 일부는 힌트나 아예 해답을 보면서 진행해도 이게 어떻게 이런 대답이 나오는지 어지러울 정도이며, 심지어 미로 퍼즐의 해답 중 최단 이동루트 따위가 그대로 힌트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걸... 메모해 뒀겠어...?) 그렇게 완성된 크로스워드의 하이라이트된 부분에서 등장하는 최종적인 해답은 "지혜의 선물".

 

 

 

그러면 드디어 엔딩. 바보는 14개의 보물을 손에 넣는 데 성공하지만 이에 분노한 여사제가 그를 죽이려 들고, 바보는 여사제에게 자기는 바보일 뿐이라며 마지막 수수께끼를 내 보라고 도발한다. 이에 마지막으로 아나그램이 등장하며 힌트가 주어지는데, 바보는 글자들 아래에 있는 4줄의 힌트를 무시하고 "The Book of Thoth" 라는 답을 낸다. 여사제는 답이 틀렸다고 바보를 죽이려 하는데...

 

 

 

...스토리의 마법사(The Magician) 챕터에서 "여사제는 신성한 토트의 서에게 명령하는 법을 배웠을 지 모르나, 아무리 그녀라도 본질적으로 악한 일을 시킬 수는 없다"라는 마법사의 말이 회수되며 토트의 서는 반대로 여사제를 타로카드로 봉인해버리며 끝난다. 그런데 만약 바보가 제대로 여사제의 마지막 퍼즐의 힌트를 읽고 아나그램을 했다면 어떨까.

the Bog is a Dog
one Hog is a hAg
the Kit is Lit
one rOd is rEd

 

그러면 이제 THE BOOK OF THOTH에서 B를 D로, H를 A로, K를 L로, O를 E로 하나씩 교체해 보자. "one Hog", "one rOd" 라고 했으니 H, O는 한 번씩만 교체한다. 그러면 남는 글자는 TAEDEOLOFTHOTH. 이를 다시 아나그램하면 DEATH TO THE FOOL이 남는다. 만약 바보가 "정답"을 말했다면 스스로 사형선고를 내린 거나 마찬가지가 되는 셈. 힌트를 사용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2가지 아나그램이 나오게 하다니, 참...

 

헛걸음 짚은 대답이 그의 목숨을 구한 셈이다...라는 건 내가 제목 번역을 생각하며 의도한 중의적 의미. 사실 지금에 와서야 인터넷이 있고 얼마든 정보를 찾을 수 있지만 1987년에 이 게임을 클리어한 사람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바보의 헛걸음은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플레이한 퍼즐 게임들 중 가장 어려운 난이도였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개중에 절반 정도는 그런대로 풀리는 수준이지만 1/4 정도는 머리를 싸매야 했고, 후반부로 들어가면 도저히 모르겠어서 포기해 버렸다. 마지막 토트의 서 퍼즐은 특히 이걸 만든 제작자가 두려울 정도. 이 정도 난이도의 퍼즐은 풀어내는 것도 그렇지만 만드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플레이하다 보면 어질어질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쿠소게나 무리게라 부르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작품. 일부 퍼즐의 난이도가 심하게 높긴 하나 다양한 종류의 퍼즐이 등장해 쉽게 질리지 않고, 조각조각 주어지는 스토리는 그 자체로도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며, 퍼즐과 스토리 사이의 긴밀한 인터랙션은 감히 예술의 경지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1차적으로는 직접 시도해 보고, 2차적으로는 전체 스토리를 참고하다 도저히 모르겠다 싶으면 제작자가 직접 제작한 힌트집, 그마저도 무리다 싶으면 포기하고 공략사이트를 보며 진행했는데 그래픽을 업그레이드하고 게임 내에 약간의 힌트를 더 내장하는 정도만 하더라도 현재도 충분히 먹힐 만한 게임이란 인상. 굳이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언어, 즉 영단어를 사용하는 퍼즐의 비중이 좀 많이 높다는 점.

 

이 사람의 다른 게임들도 구경하고 싶어지는데, 이력을 보니 80년대에는 매킨토시와 DOS용으로 여러 퍼즐게임들을 만들면서 매번 다른 유통사를 택하다가 90년대에 존슨은 그 외에도 여러 퍼즐게임들을 자기출판으로 만들었고 본직은 애니메이션 쪽인 듯. 90년대에는 콘솔용으로도 퍼즐 게임들을 계속 개발했는데 하필이면 그 콘솔이 필립스 CDi였다... 이후 바보의 헛걸음의 후속작으로 바보의 돈주머니(The Fool and His Money)라는 게임을 2003년에 발매하려 했다가 계속 좌절되어 2012년에 간신히 발매했다고 하는데, 결국 유통사를 찾지 못하고 자가출판으로 발매했으니 수익은 없다시피 했을 듯. 만약 그가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면 스팀이라도 들어가면 되었을 텐데, 시대를 너무 앞서간 인디 개발자라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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