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el Inc.: Escalation

반란 주식회사 (2018 iOS, 2021 PC)

 

전염병 주식회사의 Ndemic이 내놓은 전략 시뮬레이션 주식회사 시리즈의 두 번째 게임. 본래 모바일 게임이었던 때문인지 UI가 간결하고 한 게임 한 게임의 템포가 좋아 캐주얼하게 한 판 하기도 좋지만 그러면서도 제법 강한 전략성을 가지고 있다. 스팀에서 처음 소개를 봤을 때는 단순한 자기복제 게임으로 보여 한참동안 생각이 없었지만 어느날 변덕으로 플레이 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본작에서의 목표는 아프가니스탄을 모티브로 한 어느 국가에서 반란군을 조직해 정부를 전복시키는...게 아니라 전후복구와 안정화 작업을 수행하며 반군과 성공적인 협정으로 담당지역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는 것이 목표. 전작이 전작이다 보니 제목을 보고 당연히 내가 반란군 리더가 되는 게임인 줄 알았는데. 전염병 주식회사 때 처럼 어디까지나 판타지의 영역이면 몰라도 (나중에 현실화되긴 하지만 게임 나왔을 때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 했을 테니) 현실 배경의 게임을 만들면서 탈레반 시뮬레이션을 만드는 건 역시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었겠지. 특히 반군 주식회사의 게임 오버 상황이 2021년에 현실 모델에 발생해 버린 덕분에 반군 입장에서 플레이하는 모드 같은 건 추가되지 못할 것 같다.

 

 

 

기본적인 게임모드부터 이야기하자면 지도자 타입과 조언가, 작전지역 등을 선택하고 난이도를 정하는데, 난이도 선택창에 보이는 낡은 노트에 써 있는 글자가 뭘까 해서 찾아보니 파슈툰어 پخير‏ 로, 의미는 '환영'이라 한다. 같은 문자를 공유하는 아랍어에는 아래에 점 3개가 찍히는 پ (pe)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글자가 보이면 아랍어가 아니다. 아무튼.

 

지도자 타입은 별다른 의도가 없다면 그냥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공무원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가장 무난하다. 다른 지도자 타입들은 나름의 특징을 갖고 있지만 그게 다들 장단점이 있어 범용적으로 쓰기 어렵고, 공무원도 그냥 무난할 뿐이 아니라 평범하게 우수하기 때문. 조언가는 처음에 시작하면 텅 비어 있겠지만 이지모드부터 시작해서 게임 내 맵들을 클리어하다 보면 하나씩 해금된다. 대부분 조언가들은 다양한 보너스를 제공하며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바로 노멀로 들어가 플레이하다가 버겁다 싶으면 잠시 난이도를 낮춰 조언가를 모으는 것도 방법.

 

 

좌상: 사프론 밭 / 우상: 남부 사막 / 좌하: 검은 동굴 / 우하: 아편길

맵은 총 8종류가 제공되며 DLC를 구입하면 2개가 늘어난다. 전 지구 규모였던 전작에 비해 스케일이 많이 줄어 각 맵은 플레이어가 일하는 나라의 한 지역이라는 설정이며 각 맵에 세부구역들이 있다. 그런 만큼 각 지역별로 특성을 살린 기믹이 생기기도 하는데, 위 스크린샷 왼쪽 아래의 '검은 동굴'에서는 반군들이 산속 깊은 곳에 숨은 땅굴을 이용한다는 설정으로 이를 저지해야 하며 오른쪽 아래 '아편길'은 반군을 상대하면서 동시에 곳곳에서 발견되는 아편밭을 파괴해야 하는 등의 스테이지 기믹들이 존재한다. 그 외에도 지형이 다르니 지상전의 양상이 달라지는 건 물론 맵별로 반군이 생성되는 타이밍이나 안정화에 필요한 지지율 등이 미묘하게 달라 같은 지도자와 조언가라도 맵 특성에 따라 빌드를 조절하게 되며 덜 질리게 되어 있다. 

 

지형과 맵의 구역들의 구조를 파악하고 플레이할 필요가 있는 것이 기본적으로 산악이나 삼림지대에서는 플레이어가 불리하며, 이 반군들은 불리하다 싶으면 주변의 빈 타일로 계속 도망치기 때문에 도망칠 길을 가로막아야 할 필요가 있다. 위 스크린샷의 오른쪽 위나 왼쪽 아래 스크린샷에는 반군 통제구역으로 들어가 전투를 벌이는 부대와 그 후방에서 퇴로를 가로막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완전히 가두면 섬멸할 수 있지만 운영할 수 있는 부대의 수에는 한계가 있고 자칫하면 맵을 가로지르면서 도둑잡기를 하게 되는 수가 있다.

 

화면 오른쪽 아래의 녹색 게이지는 평판. 현 정부에 대한 신임도를 나타낸 것으로 지지율을 올려 안정화된 지역이 늘어나면 평판이 늘어나고 반대로 반군을 통제하지 못하거나, 부패가 너무 심하거나 하면 감소한다. 평판이 0이 되면 게임 오버. 어느 정도 반군 세력을 줄여나가다 보면 평화협정이 시작되며 협정 게이지가 추가된다. 오른쪽 아래 스크린샷의 게이지가 그것.

 

 

 

작전 UI는 전염병 주식회사를 해본 사람이라면 실소가 나올 정도로 똑같아 처음에 단순한 리스킨 자기복제 게임일 거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원인이었다. 화면 하단에는 지지율, 부패위험도, 인플레이션의 세 가지 게이지가 보여지고 상단의 탭은 개요, 민간, 정부, 군사의 4개 탭으로 나뉘어져 있다. 지지율은 안정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며 반부패를 제외한 대부분의 액션이 부패를 초래할 수 있고, 메인 화면에서 퍼센트로 부패도를 확인할 수 있다. 부패도가 높아지면 상기한 대로 평판에 악영향을 끼치며, 예산을 사용하다 보면 빠르게 인플레이션이 상승해 모든 정책이 비싸진다. 경제규모가 작은데 정부지출이 갑자기 늘면 시장에 그만큼 대량의 돈이 풀리는 셈이니 인플레이션이 생기는 걸 묘사한 것 같은데, 처음 플레이할 때는 무심코 초기자금을 전부 써버리고 대량의 인플레이션을 생성하며 돈을 낭비하게 되기 십상. 단계적으로 소비하자.

 

민간 탭에는 경제나 인프라와 같은 대민정책들이 모여 있고 정부 탭에서는 반부패, 정부개혁, 대외정책 등을 선택할 수 있다. 군사 탭의 정책들은 게임 시작 직후에는 봉인되어 있으며 플레이어 지역에 반군 활동이 감지되었다는 이벤트와 함께 군사작전이 가능해진다. 처음에는 다국적군을 부르는 것이 유일하며 이후 정부군을 훈련해 배치하거나, 맵에 주둔지를 설치하거나, 드론을 띄우거나, 공군지원을 받아 공습을 하는 등의 추가 작전행동이 가능해진다.

 

처음에는 다국적군만을 부를 수 있으며 1회 이상 소환했을 때 정부군을 편성할 수 있다. 다국적군은 정부군보다 강하고 배치만 되면 되기 때문에 신속대응이 가능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돌아가려 하며, 복무기간을 늘리기 위해서는 평판을 소모해야 한다. 정부군은 상대적으로 약하고 편성에 시간이 오래 걸리며 편성 자체가 부패를 늘리지만 머리수가 필요하기도 하고 정부군을 일정수 편성해야 다음 정책이 해금되기도 하기 때문에 타이밍이 중요.

 

 

피스타치오 숲. 녹색이 정부군, 파란색이 다국적군, 빨간 점들이 반군이다.

게임은 엄밀히 말하면 턴제지만 유저가 행동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턴이 넘어가고, 그 턴의 리얼타임 간격이 짧아 리얼타임으로 플레이하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속도는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으며, 이벤트 팝업이 뜨거나 다른 메뉴를 열면 일시정지된다. 그 외에 수동으로 일시정지하는 것도 가능하니 실제 플레이 감각은 일시정지가 가능한 세미리얼타임.

 

전작과 가장 크게 구분되는 부분은 역시 직접적으로 전투행위를 할 수 있다는 부분일 것이다. 뭐, 그것도 부대를 어디로 이동시킬지를 정하는 것 뿐이고 적과 조우하면 자동적으로 교전이 발생하지만 전략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다. 예를 들어 교전중인 부대 바로 옆 칸에 아군 부대가 있다면 아군의 전투에 도움을 주며 상기한 대로 반군의 도주를 막기 위해서는 퇴로를 차단해야 하는데 가용 부대의 수에는 한계가 있고, 거기에 반군이 맵 곳곳에서 발생해 양면, 삼면 전선을 강요받는다면 피곤한 싸움이 되기도 한다. 위 상황이 그런 상황.

 

그러나 거기서 끝이었다면 그냥 쿠소게였겠지만 내정에서 취할 수 있는 각종 행동이나 이벤트 선택지 등이 반군의 스폰율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반군이 아직 남아있는 상태라도 충분한 지지율을 확보하고 반군에 비해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 이후는 평화협정을 어떻게 맺는가 뿐이다. 목적은 섬멸이 아니고, 일시적으로 섬멸했다 하더라도 결국 재스폰되어 끝이 없는 전쟁이 될 뿐이니까. 평화협정 과정에서 얼마나 강경하게 혹은 양보하며 협정을 하는가에 따라 정부의 평판이 떨어질 수 있는데, 어떻게든 깨기만 해도 된다고 한다면 큰 문제가 없지만 남은 평판이 곧 점수로 이어지기 때문에 스코어를 노린다면 어떻게 높은 평판을 유지하며 게임을 종료할 지 머리가 복잡해지게 된다. 전작도 그렇지만 이 게임을 제작하며 전문가들의 조언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덕분에 약간이나마 현지의 문제들을 간접체험 할 수 있는 기능성 게임으로서도 훌륭하다.

 

 

플레이어 전술 선택. 일종의 퍽(perk)에 해당한다.
정부군을 편성할 수 없이 다국적군만 생산되는 스테이지

여기에 플레이에 변화를 주기 위한 요소로 켐페인 모드가 존재하며, 랜덤하게 정해지는 5개의 맵에서 연속으로 진행하되 같은 지도자를 사용하면 패널티를 받으며 한 번 사용한 조언가는 다시 켐페인 중에 사용할 수 없다. 설정상 동시에 5개 지역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작전이기 때문. 여기에 각 스테이지마다 랜덤하게 특성이 부여된다. 물가 상승량이 늘어난다거나, 특정 정책의 비용이 증가한다거나, 정부군이 전부 다국적군으로 대체된다거나, 일부 지역들이 반군에게 이미 점령된 상태로 시작한다거나. 이지모드에서는 패널티를 받으면서도 충분히 켐페인을 플레이할 수 있지만 지도자나 조언가가 채 모여있지 않은 상태에서 노멀 이상에서는 많이 버겁다. 마음이 급하더라도 일반 게임을 반복해 진행해야 하는 것.

 

반란 주식회사는 전략게임으로서 제한된 자원인 예산을 인플레, 부패, 전장의 상태 등과 상담하며 동시에 타이밍까지 신경써야 하는 제법 깊은 전략성을 보여준다. 초반에 대민정책을 많이 해서 지지율을 높힐 것인가 아니면 언제 나올 지 모르는 반군을 기다리며 돈을 아껴둘 것인가? 현재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기 위해 프로파간다를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이미 높아진 부패를 감수하고 부대를 하나 더 뽑을 것인가? 지금 이대로 평화협정에 서명하고 명성에 손해를 보더라도 어쨌건 클리어할 것인가, 아니면 서명을 미루고 지금 전투를 끝내는 대신 새로운 반군이 스폰할 리스크를 감수할 것인가? 등등. 반군의 행동에는 랜덤성도 있겠지만 플레이어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들은 언제나 분명하고 결과는 플레이어의 책임.

 

여기에 각자 나름의 특성을 지닌 맵들과 켐페인 모드의 각종 패러미터 조정까지 감안하면 전염병 주식회사보다 전략게임으로서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며, 기능성 게임으로서 전후복구의 어려움을 간접체험할 수 있는 요소도 훌륭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플레이가 정형화되기 쉽다는 게 흠. 게임 굴러가는 흐름을 대강 읽기 시작하면 결국 반복감을 느끼게 하는 건 어쩔 수 없나. 엔데믹의 두 게임 모두 CPU의 반응이란 게 플레이마다 크게 달라지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구조적 한계일까.

 

 

전염병 주식회사

전염병 주식회사 (2014) 전염병이 되어 인간들을 전멸시키는 게임. 덕분에 2020년에 진짜 전염병이 퍼졌을 때는 엄한 유탄을 맞기도 했던 게임이다. 장르는 전략으로 분류하는 게 좋을까 싶지만 연

ludonomie.tistory.com

 

'Toponym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얼터 에고 · 리틀 컴퓨터 피플  (0) 2024.03.15
우울증의 방  (0) 2024.03.15
삼국지 III  (0) 2024.03.13
해커 I · II  (0) 2024.03.12
구속된 레이디킬러  (0) 2024.03.1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