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너 핀볼
루이너 핀볼 (1995)
아타리 50 컴필레이션에 수록된 재규어용 핀볼 게임. 뭐, 어느 콘솔이든 핀볼 한두개쯤 있어야 하는 게 맞긴 하지. 개발사는 하이 볼티지 소프트웨어로 현재까지도 활동중이며 모탈 컴뱃 X, 세인츠 로우, 포트나이트 등의 제작 혹은 포팅에 참가했으나 당시의 하이 볼티지는 이제 막 등장한 신생회사로 재규어의 주요 서드파티들 중 하나였다.
핀볼 보드는 루이너와 타워의 2종. 루이너는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핵전쟁 시나리오를 모티브로 한 게임으로 상단/하단의 2단 핀볼보드를 좌우로 나란히 배치해 총 4개 보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타워는 중세 판타지/악마 모티브로 3개의 보드가 세로로 배치되어 있는 형식이다. 이렇게 다수의 보드를 이어붙인 구성이나 간혹 등장하는 파괴 가능한 오브젝트들은 비디오 핀볼이기 때문에 가능한 판타지적인 요소로, 잘 활용한다면 충분히 훌륭한 게임이 될 수 있다. 본래는 루이너 1종만을 수록할 예정이었으나 아타리의 요구로 2번째 보드인 타워가 추가되었다고.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타워보다 루이너가 더 기합이 들어가 있고 인터랙션도 다양하며, 데프콘 5에서 시작해 점점 내려간다. 루이너 보드를 보면 설정상 핵전쟁의 상대는 중국인듯?
볼의 물리작용은 다소 히트 앤 미스. 볼이 튕기는 각도는 크게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속도가 때로는 너무 느리고, 때로는 너무 빠른 것 처럼 느껴진다. 볼이 너무 느릴 때는 지루함이 느껴지고 (핀볼은 한 순간이라도 플레이어를 지루하게 하면 안 된다) 너무 빠를 때는 내가 뭘 보고 있는건지 따라갈 수 없을 정도. 볼의 속도가 가변적인 건 물론 당연하지만 그 폭이 너무 넓게 조정된 게 아닐까 싶다. 여기에 사운드 이펙트가 질량을 가진 쇠공이 물체에 부딪히는 느낌과는 크게 거리가 있달까, 맥이 빠지는 느낌이라 몰입감을 떨어트린다.
그래픽은 64비트보다는 16비트에 가까운 느낌이긴 하지만 실제 16비트 콘솔들보다 기본적으로 고해상도이기 때문에 더 복잡하고 디테일한 묘사가 들어가 있다...만, 이 보드가 좀 오버디자인되어 있어 오브젝트들 중 무엇에 충돌이 있고 없는지를 해 보기 전에는 알기 어렵다. 즉 충돌이 있을 것 같은데 그냥 배경이거나, 반대로 배경인 줄 알았는데 충돌해 튕겨나오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 3D로 제작했으면 발생하지 않을 문제이고, 이전에 다룬 2D 핀볼인 데빌 크래시에서는 점수 멀티플라이어를 나타내는 일부 깜빡이를 제외하면 보드 위에 있는 모든 식별 가능한 건 다 컬리전이 존재해 튕겨날 수 있는 것과 대비된다.
그래픽이 너무 복잡하고 번잡하다는 평도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딱히 동의하기 힘들다. 상기한 대로 각 보드를 처음 플레이할 때는 뭐가 뭔지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핀볼은 원래 이런 놀이잖아. 좀 과할 정도로 배경 그래픽을 복닥복닥하게 박아넣고 혼돈 속의 질서를 즐겨야지. 다만 이렇게 현실 핀볼머신을 재현하는 시뮬레이션 노선으로 갈 거였다면 아예 앗사리 3D로 만들어 살짝 비스듬하게 내려다보는 시점이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루이너 핀볼이 발매된 이듬해인 1996년에 새턴과 PS1용으로 발매된 트루 핀볼과 비교해 보면 재규어를 모자란 콘솔로 보이게 하니까.
비슷한 시기에 재규어로 발매된 핀볼 판타지스도 2D 핀볼이긴 하지만 그건 아미가 게임의 이식작이니 정상참작이 가능하다. 아니, 자기보다 한 세대 이전의 게임을 대량으로 이식해 콘솔의 성능을 다운플레이한 아타리의 경영진은 정상참작이 안 되긴 하지. 타이틀 수를 늘리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타리는 너무 많은 16비트 이식작을 내놓은 덕분에 그렇게 홍보하던 재규어의 '성능'조차 제대로 어필하지 못했잖아. 코모도어도 CD32에서 같은 실수를 저질렀고.
아무튼, 좋은 비디오 핀볼의 조건은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나는 단순히 '얼마나 보드에 몰입이 가능한가'를 기준으로 한다. 복잡한 화면에서 볼이 알아보기 쉽게 눈에 띄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여 플레이어가 쉴 새 없이 눈으로 볼을 쫓게 만들며, 여기에 적절한 사운드 이펙트와 음악이 동반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볼의 움직임은 현실적이면 좋지만 비디오 게임이기 때문에 가능한 판타지적인 요소나 파워업 같은 걸 추가한다면 다소 양보할 수 있지. 이상적으로는 플레이어에게 다른 잡생각이 떠오를 시간적 여유를 아예 주지 말아야 한다.
루이너 핀볼은 딱히 게임을 망치는 중죄를 짓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플레이어블하고 적당한 타임킬링용 타이틀이지만 전체적으로 살짝 모자란 느낌. 살짝 모자란다 싶은 이 느낌을 말로 설명하기 위해 데빌 크래시와 번갈아가면서 플레이하다보니 대체로 어디가 모자라게 느껴졌는지 구체적으로 설명이 된 것 같은데, 전달이 제대로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볼이 느려질 때의 스피드를 약간 올리고, 타격음, 특히 플리퍼와 볼이 부딪히는 순간의 타격음이 좀 더 강화되는 정도만이었어도 재규어 라이브러리의 수작으로 분류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나쁘지는 않은, 그러나 딱히 강한 인상을 남기지도 않는 평범한 핀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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